버추얼 아이돌 그룹 플레이브

버추얼 아이돌 그룹 플레이브 ⓒ 블래스트

 
수십 년간 이어진 음악방송 역사에 새로운 한 획이 그어졌다. 실제 인물이 아닌 가상 캐릭터를 기반으로 하는, 이른바 '버추얼(Virtual) 아이돌'이 음악 방송 순위 정상을 차지한 것. 

블래스트에서 기획해, 얼마 전 데뷔 1주년을 맞이한 5인조 버추얼 아이돌 '플레이브(PLAVE)'는 최근 발표한 앨범 < ASTERUM : 134-1 >의 타이틀곡 'WAY 4 LUV'로 MBC M <쇼챔피언>과 MBC <쇼! 음악중심> 두 방송에서 당당히 정상에 올랐다.

이렇다 할 경쟁자가 없었던 것도 아니었다. 뉴진스, 아이브 등과 함께 4세대 K팝 선두를 이끌고 있는 르세라핌의 'EASY'뿐만 아니라 부드러운 중독성으로 최근 음원 차트를 장악하고 있는 비비의 '밤양갱'까지, 강력한 상대들이 떡하니 버티던 상황이었다.

대중에겐 생소하겠지만 플레이브의 팬덤 규모를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 이는 결코 놀라운 일이 아니다. 이번 앨범 < ASTERUM : 134-1 >가 초동 50만 장을 돌파할 만큼, 데뷔 이후부터 점차 비대해진 플레이브의 코어 팬덤은 여느 중소 아이돌들을 가뿐히 상회하는 체급을 자랑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같으면서도 다른 버추얼 아이돌의 음악 문법

기록할 만한 성과를 거둔 버추얼 아이돌이 비단 플레이브뿐만은 아니다. 인터넷 방송인 '우왁굳'이 기획한 6인조 걸그룹 '이세계아이돌' 또한 발매된 여러 곡이 멜론 등 음원 차트에 어렵지 않게 진입하고 웹툰 등 미디어 믹스까지 활발하게 만들어지고 있다.
 
완전히 버추얼 아이돌이라는 범주에 넣기는 어렵지만, 인터넷 방송인 강지가 기획한 버추얼 유튜버 그룹 '스텔라이브' 역시 싱글 앨범 < Milky Way >를 발매했고, 컬래버레이션 카페, 팝업스토어 등에 많은 인파를 동원하며 적지 않은 인기를 자랑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들은 어떤 음악으로 팬들을 끌어모으고, 또 그 팬덤을 공고히 했을까. 버추얼 아이돌이 비교적 새로운 문화이기에, 단순히 연상해 본다면 독특하고 미래지향적인 음악을 보여주리라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실상은 그 반대다. 일정 부분 복고적인, 이미 검증된 형태의 쉽고 익숙한 음악을 들고 오는 것이 지금까지 버추얼 아이돌들의 일반적인 전략이다.
 
대표 격인 플레이브와 이세계아이돌 모두 수년 전 K팝 아이돌의 감성과 작법을 본뜨고 멜로디 라인을 직관적으로 구성하며 팬과 대중에게 비교적 쉽게 다가간다. 프로듀서 구성에서도 기존 K팝 작곡 인력들을 초빙하기도 하며 유사한 질감과 완성도를 추구한다. 특히 플레이브의 경우 건반, 기타, 드럼 등 실물 악기의 색채를 강조하며 인간적인 느낌을 극대화한다. 외관만 다를 뿐, 현재 그 어떤 K팝 그룹보다도 그 색채가 전통적이다.

버추얼 아이돌의 음악은 왜 다른가
 
 소속사가 제공한 플레이브 포토월 사진

소속사가 제공한 플레이브 포토월 사진 ⓒ 블래스트

 
버추얼 아이돌들이 이러한 전략을 취하는 이유는 결국 일반 K팝 아티스트와 버추얼 아티스트의 태생적인 차이 때문이다. 기존의 아이돌들은 일반적으로 영단어 '아이돌(idol)'이 가진 '우상'이라는 뜻에 걸맞게 대중과 일정 수준의 거리를 유지해야 했다. 대중과 동일 선상에 서기보단 대중과 팬들이 부러워하고 동경하는 대상이 되어야 했다는 얘기다. 
 
외형적으로든 음악적으로든 모두 마찬가지다. K팝 아티스트들이 지속해서 신선하고 독창성 있는, 완성도 높은 음악을 제작하려 애쓰는 이유도 그 결과를 통해 경쟁에서 승리하고, 대중음악을 선도하는 모습이 대중으로 하여금 동경과 존중을 유발하기 때문이다. 물론 단순히 훌륭한 음악으로 듣는 이의 이목을 집중시키기 위해서도 있지만 말이다.
 
그러나 버추얼 아이돌은 일반 아이돌의 이러한 우상적 이미지를 그대로 끌고 가지 않는다. 정확히 말하자면 끌고 갈 필요가 없다. 2D 혹은 3D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져 태생적으로 동경의 감정을 유발하기 힘든 버추얼 아이돌들은 팬들을 향해 동경의 대상으로 떠오르기보다는 친근한 이미지를 강조하며 친밀하게 다가가는 전법을 취한다.

K팝과 오묘한 교집합을 보여준 버추얼 아이돌

버추얼 아이돌들이 인터넷 방송의 형식을 빌리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미지 소비를 막기 위해 예능 출연이나 라이브 소통, 자체 콘텐츠 제작을 조절하는 기존 아이돌들과 달리 버추얼 아이돌들은 팬들과의 소통에 무척 적극적인 자세를 취하며 엔터테인먼트적 성격을 극대화한다. 

플레이브는 인터넷 방송 전문 플랫폼인 아프리카TV, 트위치에서 방송을 하기도 했고, 현재도 한 주에 2번가량 유튜브 라이브의 형식으로 팬들과 만나고 있다. 서구권과 일본의 버추얼 유튜버 체계를 흡수해 온 스텔라이브, 인터넷 방송인이 기획하고 주도한 이세계아이돌 역시 마찬가지, 소통과 유희 활동이 주를 이루고 오히려 음악 활동은 부수적인 느낌이다.
 
이러한 지향점의 특수성으로 인해 아직 무언가 새로운 음악적 발현을 보여주진 못했지만 버추얼 아이돌들이 보여준 사회적 반향과 방향성, 접근 방식은 대단히 흥미롭다. 어느새 K팝과 오묘한 교집합을 가지게 된 버추얼 아이돌들이 앞으로 어떻게 기존 시장에 영감을 주게 될지, 음악계에서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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