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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이준구 서울대 경제학과 명예교수가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린 것으로, 이 교수의 동의를 얻어 게재합니다.[편집자말]
윤석열 대통령이 2023년 6월 15일 경기 포천 승진훈련장에서 '2023 연합·합동 화력격멸훈련'을 주관한 뒤 천무, 천궁 등의 무기를 관람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2023년 6월 15일 경기 포천 승진훈련장에서 '2023 연합·합동 화력격멸훈련'을 주관한 뒤 천무, 천궁 등의 무기를 관람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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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지 2년이 지난 지금, 우리 사회는 여러 측면에서 몇 십 년 전으로 후퇴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특히 우리가 값비싼 희생을 치르고 닦아놓은 민주주의의 기반이 빠르게 잠식되어 가고 있음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습니다.

이 정부는 '공정과 상식'을 입버릇처럼 부르짖어 왔지만 그들이 하는 행동을 보면 공정하지도 않고 상식적이지도 않은 사례가 너무나 많습니다.

그동안 도도하게 흘러오던 민주화의 흐름이 윤석열 정부가 들어오면서 독재화로 반전되었다는 것은 공신력 있는 국제기관의 평가에서도 그대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최근 스웨덴의 민주주의 다양성 연구소(V-Dem Institute)에서 발표한 '민주주의 리포트 2024(Democracy Report 2024)'는 한국이 민주화에서 독재화로 뒷걸음질 친 나라의 대표적 케이스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이 보고서는 179개국의 민주화 수준을 '자유민주주의지수(LDI)로 수치화해서 비교하고 있는데, 한국은 0.60점을 받아 47위를 기록했습니다. 2019년 18위, 2020-21년 17위, 2022년 28위였던 것이 47위로 급전직하해 이제는 라틴아메리카의 웬만한 나라보다도 더 낮은 순위로 떨어진 것입니다. (관련기사 : 17위→ 47위, 30계단 추락..."한국 민주주의 급격히 후퇴" https://omn.kr/27r9s) 

독재화로 반전이 가장 현저한 10개국 비교해보니 
 
한국의 민주주의 지표가 문재인 정부 시절 상승했다가 윤석열 정부 들어 다시 하락하는 것을 보여주는 그래프
 한국의 민주주의 지표가 문재인 정부 시절 상승했다가 윤석열 정부 들어 다시 하락하는 것을 보여주는 그래프
ⓒ V-D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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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더욱 화나게 만드는 것은 세계에서 유례없이 민주화가 진행되고 있었던 한국이 독재화로 인해 예전의 상태로 돌아갔다는 평가입니다.

위 그림은 독재화로의 반전이 가장 현저한 10개국의 상황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민주화(democratization)의 진전은 그림에서 위로 향한 움직임으로 나타나고 있는데 비해 독재화(autocratization)의 진전은 아래로 향한 움직임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그림에서 보는 한국처럼 그래프가 명확한 종(bell) 모양의 곡선을 그리고 있다는 것은 민주화가 독재화로 반전되는 확실한 U-턴 현상의 발생을 뜻합니다.

(이 그림에서 우리와 비교 대상이 되고 있는 9개국의 면면을 눈 여겨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에 비해 발전의 정도가 현저하게 떨어져 있는 나라들 아닙니까? 이런 나라들과 비교의 대상이 된다는 것 자체가 부끄러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유민주주의지수의 급격한 하락의 원인으로는 양성평등 기조의 후퇴, 전 정부 인사들에 대한 강압적 조처, 그리고 언론자유의 침해 등이 열거되고 있습니다. 구태여 민주주의 다양성 연구소가 지적하지 않더라도 우리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현 정부의 반민주적 처사들이지요.

'민주주의 리포트 2024'의 평가에 따르면 문재인 정부에서 이루어졌던 민주화로의 진전이 윤석열 정부에 의해 완전히 물거품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자유민주주의지수는 세계 각국에서 4천 명 이상의 전문가들이 참여해 각 나라의 민주화 수준을 평가하는 권위 있는 지표로 알려져 있습니다. 정치학자들로부터 민주주의에 대한 학문적 연구에서 가장 중요한 양적 데이터를 제공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지요.

이 자유민주주의지수의 순위가 28위였던 한국이 47위로 급락했다는 것은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가 의심의 나위가 없는 후퇴를 경험하고 있음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해외에서 한국의 상황에 대한 어떤 평가가 전해지면 우리 언론은 이를 대서특필해서 보도하기 일쑤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 경제의 국제경쟁력이라든가 신용등급에 변화가 일어났다는 외신이 들어오면 모든 언론이 앞다투어 이를 보도하는 것이 보통입니다.

우리 사회 민주화의 수준에 대해 말해주는 이 소식이 국제경쟁력이나 신용등급에 관한 소식에 비해 그 중요도가 떨어질 이유가 하등 없습니다. 그러나 거의 모든 보수언론이 약속이나 한 듯 이 소식에 대해 모르는 척 시치미를 떼고 있는 것을 봅니다.

만약 한국에 대한 이와 같은 부정적 소식이 문재인 정부 때 들려 왔다면 과연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요? 여러분이 그 답을 잘 알고 계실 테니 구태여 내가 말해야 할 필요가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언론이 어느 때가 되어야 정신을 차리고 본연의 비판기능을 되찾아 사회를 바로잡는 소금의 역할을 할 수 있으려나요?

ps. 며칠 전 독일의 한 유력 일간지가 "한국의 도널드 트럼프가 민주주의를 훼손하고 있다"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는 국내 언론의 기사를 읽어 보셨나요? 누구를 가리켜 트럼프라고 불렀는지는 너무나도 뻔한 일 아니겠습니까?
 

태그:#민주주의리포트, #민주주의, #독재화, #윤석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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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 경제학과 명예교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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