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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9월 30일부터 2023년 4월 14일까지 9살 아들과 한국 자동차로 러시아 동쪽에 있는 블라디보스토크에서부터 유라시아 대륙의 가장 서쪽인 포르투갈 호카곶을 지나 그리스 아테네까지 약 4만 km를 자동차로 여행한(3대륙, 40개국, 100개 도시) 이야기를 씁니다. [기자말]
- 지난 기사 "아빠, 못 걷겠어" 주저앉았던 아들이 곧 환해진 이유에서 이어집니다.
 
바르셀로나에 도착한 후 나는 제일 먼저 우리 차를 주차해 놓은 주차장으로 갔다. 아프리카를 여행하는 동안 일주일이나 공공주차장에 주차를 해놓았지만, 우리 차는 아무 탈 없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이제 아들과 천천히 지중해 연안의 따뜻함을 느끼며 프랑스로 이동했다.
 
스페인 국경을 지나면 얼마 가지 않아 '페르피냥(Perpignan)'이라는 프랑스의 작은 도시가 있다. 이곳은 스페인 중에서도 바르셀로나가 있는 카탈루냐의 영향권에 있는 도시로 과거 마요르카 왕국의 수도이기도 했다.

느리게 가는 프랑스의 시계
  
14세기에 지어졌다.
▲ 페르피냥 생 장 밥티스트 대성당 앞에서 14세기에 지어졌다.
ⓒ 오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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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서울의 청계천처럼 '바쓰(Basse)'란 이름의 작은 강이 도심을 가로지르고 있었는데, 그 주변으로는 노천카페들이 모여있어 그 중 한 식당으로 들어갔다.
 
"태풍아, 여기서 밥 먹자."
"응, 아빠 프랑스 요리가 유명하다며?"
"그래, 어린이 스테이크 있으니까 넌 그거 먹고, 아빠는 피자 시킬게, 나눠 먹자."
 

자리에 앉아 음식을 주문하려는데 10분이 넘도록 종업원이 오지 않아 계속 두리번거리며 기다렸다.
 
"아빠, 우린 왔는데 왜 이렇게 주문받으러 안 와?"
"원래 프랑스가 느려. 기다려야 해."

 
한참을 더 기다린 후 주문했지만, 이번엔 음료만 갖다주고 30분이 넘도록 음식이 나오지 않았다. 나는 아들이 지루하지 않게 같이 게임을 하고 놀았다. 마침내 음식이 나왔다.
 
"아빠, 음식 기다리다가 배고파 죽는 줄 알았어."
"그래. 이제 나왔으니 맛있게 먹자."
"아빠, 근데 엄청 맛있네? 오래 기다리긴 했지만, 그래도 음식은 역시 프랑스네~"
 

다행히 햇살도 비추고 날씨도 따뜻해 나는 기다리는 시간이 지루하지 않았지만, 아들은 한국과는 다른 아주 느린 서비스 속도에 답답했는가 보다. 하지만, 이것도 다른 문화에 대해 직접 느낄 수 있는 교육이라고 생각해 나는 일부러 직원을 재촉하거나 하지 않았다.
 
우리는 따뜻한 날씨를 즐기며 페르피냥 시내를 걷다 마요르카 왕궁으로 향했다.
나지막한 언덕 위에 있는 마요르카 왕궁에 가면 페르피냥 시내를 내려다볼 수 있다.
또 이 왕궁은 특이하게도 지중해 방향인 동향이나 남향이 아닌 남서쪽을 향하고 있어 저 멀리 피레네산맥과 안도라(Andorra)의 만년설을 볼 수 있다.
 
사실 피레네산맥 위 '안도라'라는 나라에도 가보고 싶었지만, 대충 길을 검색해 보니 안도라의 수도는 해발 1400m에 있었고 가까운 거리를 피레네산맥 주변으로 빙빙 돌아가야 해서, 길이 안 좋을 것 같아 포기하고 이곳 페르피냥으로 왔었다.
  
피레네 산맥에 안도라가 있다.
▲ 마요르카 왕궁에서 보는 피레네 산맥 피레네 산맥에 안도라가 있다.
ⓒ 오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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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모로코에서 아들을 고생시킨 게 미안해 되도록 안 좋은 길은 피하고 따뜻한 지중해 연안으로 이동하기로 했다. 그래서 아쉬운 마음에 아들을 마요르카 왕궁 성벽 위에 앉혀 저 멀리 보이는 설산을 보여줬다.
 
"태풍아, 저기가 피레네산맥이라는 큰 산이야. 우리 모로코에서 본 아틀라스산맥처럼. 그 위에 안도라라는 유럽에서 6번째로 작은 나라가 있데. 원래 거기도 한 번 가보려고 했는데 산꼭대기에 있어서 네가 힘들까 봐 그냥 여기로 왔어."
"그래? 아빠 여기서 보기에도 엄청 높아 보이는데?"
"그래. 그래서 거긴 스키장이 유명하다네. 나중에 더 크면 아빠랑 꼭 가보자."
"아빠, 고마워! 대신 저기도 나중에 내가 데려갈게. 그럼 되겠지?"
"그래, 약속했다!"
 

프로방스 해변의 자유분방함

지중해 연안의 따뜻한 햇살을 받으며 몽펠리에로 이동했다. 몽펠리에는 프랑스의 교육 도시로 유명한 곳이다. 또한 지중해 연안에 있다보니 해변 항구는 선착장마다 값비싼 요트가 즐비하다. 그래서인지 아들과 해변을 걷다 점심 먹을 곳을 찾는데, 식당 입구에 쓰여 있는 가격에 뒷목을 잡곤 했다.
 
"와~ 태풍아, 여기 햄버거 하나에 2만 5천 원이나 해~"
"진짜? 왜 이렇게 비싸? 우리나라는 5천 원도 안 했던 것 같은데..."
"여기 봐봐! 저게 요트라고 하는 건데. 돈 많은 사람들이 타는 배야. 여기 부자들이 많이 오나 보다."

 
아들과 주변을 걸으며 싼 음식점을 찾다 한 피자 가게에서 피자를 주문해 먹었다.

"태풍아, 이거 다 먹고 이따가 아까 해변에서 놀자. 거기 그네도 있고 놀이터 있던데?"
"그럴까?"

 
프로방스 지방은 한 겨울에도 따뜻한 해변이 있다
▲ 몽펠리에 해변 프로방스 지방은 한 겨울에도 따뜻한 해변이 있다
ⓒ 오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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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에게 모래사장 위에 있는 그네를 타게 하고 주변을 둘러보는데 그 순간 두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분명 무언가 내가 잘못 봤을 거란 생각에 다른 사람들 표정을 보고 다시 한 곳을 바라봤다. 하지만 잘못 본 게 아니었다. 우리 옆에는 10대 후반쯤으로 보이는 젊은 남성이, 옷을 다 벗고 자연스럽게 모래 위를 걸어 다니고 있었다.
 
"태풍아! 저 사람 봐. 옷을 다 벗고 돌아다녀."
"어디? 어디? 와~ 진짜네? 왜 그래?"
"글쎄…. 유럽에는 원래 누드 비치라고 옷을 안 입고 돌아다니는 해변이 있긴 한데…. 여긴 가족들도 다 있고, 누드 비치는 아닌 거 같은데 아빠도 잘 모르겠네."

 
당황한 나와는 달리 주변의 다른 사람들은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제 할 일을 하고 있었다. 신기한 경험이었지만, 그리 유쾌하게 느껴지진 않아서 아들에게 아이스크림을 사주고 아를(Arles)로 이동했다.
 
반 고흐가 강렬한 색채로 그려낸 도시

아들과 여행을 계획하며 꼭 가보고 싶었던 도시가 두 곳이 있었다. 첫 번째가 핀란드의 '로바니에미(Rovaniemi)'이고 두 번째는 프랑스의 '아를(Arles)'이었다. 나는 빈센트 반 고흐의 작품을 좋아하는데 아를은 반 고흐가 살며 300여 점의 작품을 그린 도시이다.
 
그의 그림 중에서도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 '론강의 별이 빛나는 밤'과 '포룸 광장의 밤의 카페테라스'이다. 두 작품 모두 빈센트 반 고흐 작품의 특징인 강렬한 색감이 돋보이는 작품으로, 밤하늘에 노랗게 빛나는 별을 볼 수 있다.

나는 아를에 직접 가서 반 고흐가 그토록 행복했던 시절과 수많은 작품을 그리며 받았을 느낌을 알고 싶었다.
 
로마시대 유적으로 서기 90년에 지어졌다.
▲ 아를 원형경기장 로마시대 유적으로 서기 90년에 지어졌다.
ⓒ 오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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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를은 따뜻한 프랑스 남부지역을 일컫는 프로방스 중에서도 인구 5만 명밖에 안 되는 아주 작은 시골이다. 네덜란드 태생의 화가 빈센트 반 고흐는 1888년 2월 파리에서 아를로 이사를 오면서 프로방스의 태양과 하늘에 완전히 매혹되었다.

반 고흐가 프랑스 파리에서 그린 그림이 회색빛이었다면 아를에서 그린 그림은 특유의 강렬한 색채로 빛나는 게 특징이다. 반 고흐는 당시 친구에게 하나의 스케치와 함께 이런 편지를 보냈다고 한다.

'밤하늘에 가득히 빛나는 별들과 그 별빛을 아련히 품고 있는 론강의 정취가 마치 아름다운 꿈과 같은 순간이었다.'

그리고 완성한 작품이 프랑스 오르세 미술관에 전시된 '아를의 별이 빛나는 밤'이라는 작품이다.
 
아들과 아를에 도착해 제일 먼저 포룸 광장으로 갔다. 정말 작품처럼 작은 광장 옆에 노란색으로 칠해진 카페가 있었다. 그 자리에 서서 작품 속 별이 빛나는 하늘을 바라봤다.
  
반고흐는 이 카페와 하늘을 배경으로 '밤의 카페테라스'란 작품을 그렸다.
▲ 아를의 반고흐 카페 반고흐는 이 카페와 하늘을 배경으로 '밤의 카페테라스'란 작품을 그렸다.
ⓒ 오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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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길을 걸어서 론강 변으로 갔다. 아를은 론강의 하구에 위치해 강폭이 생각보다 넓었고 주변은 멋진 카페도 없었지만, 몇몇 연인들이 강둑에 앉아 강을 바라보는 풍경이 아름다웠다. 아들과 천천히 걸어서 반 고흐가 그림을 그린 장소를 찾아가니 작품 속 밤하늘이 떠올랐다.

아를은 작은 시골에 아무것도 없는 듯 했지만, 파리같은 대도시와는 다른 점이 오히려 더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아빠는 조용한 강변에 더 머물고 싶었지만, 아들녀석은 지루했는지 빨리 숙소에 가서 쉬자고 졸라댔다. 집 거실에 걸려있는 반 고흐의 모작에 대해 설명하려다 길 건너편에 있는 어린이 놀이터가 눈에 들어와 아들을 데려갔다.
 
반 고흐보다는 평범한 놀이터를 더 좋아한 아들
▲ 론강 변에 있던 놀이터 반 고흐보다는 평범한 놀이터를 더 좋아한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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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아, 너 저기 가서 놀래? 방방이 놀이터같은데?"
"방방이? 진짜? 가보자!"

 
아들은 오랜만에 만난 제대로 된 어린이 놀이터에서 프랑스 어린이들과 땀을 뻘뻘 흘리며 뛰어놀았다. 혼자 생각했다.
 
'아빠는 반 고흐의 작품 때문에 왔지만, 아직 너는 한창 놀 나이인데... 그냥 놀자.'
  
이 위치에서 반 고흐가 '론강의 별이 빛나는 밤'이란 작품을 그렸다.
▲ 론강의 풍경 이 위치에서 반 고흐가 '론강의 별이 빛나는 밤'이란 작품을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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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43세라는 젊은 나이에 사직서를 내기 전까지, 지난 20년간 공무원으로 근무하며 바쁘고 힘들었던 시기에 쌓였던 모든 스트레스가 여기서 다 풀리는 기분을 느꼈다. 그냥 강변에 앉아 평화로운 론강을 바라보기만 했을 뿐인데, 모든 나쁜 기억이 사라져 버리는 기분이었다.
 
- 다음 회에 계속됩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여행 기간 내 있었던 실화를 바탕으로 작성하였으나, 일부 내용은 기자의 저서<돼지 아빠와 원숭이 아들의 흰둥이랑 지구 한 바퀴>에 수록되어 있음을 밝힙니다.


태그:#프랑스, #페르피냥, #몽펠리에, #아를, #반고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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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생 아들과 함께 세계 여행을 다니며 글을 쓰고 강연 합니다. 지금까지 6대륙 50개국(아들과 함께 42개국), 앞으로 100개국 여행을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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