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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아는 방법 중에 으뜸인 것은 같이 살아보는 것이다. 부부로 살든 룸메이트로 살든 함께 지내다 보면 친밀해진다. 그러나 함께 사는 것에는 현실적인 제약이 따른다. 그 외 자유로운 것은 대화나 독서가 있다. 함께 여행을 하면서 대화하는 방법이 좋긴 하겠으나 그 또한 제한적이다. 여러 방법 중에서 대부분이 취하는 방법은 글을 읽는 것이다. 글 중에도 작가의 체험이 녹아든 에세이가 좋겠다. 최근에 두 권의 책을 읽으면서 한 사람에 대하여 많은 것을 알게 되었고 내 사유의 폭이 넓어지는 느낌을 받았다. 그를 만난 것은 우연이고 행운이었다.

며칠 전에 둘째의 대학교 졸업이 있어서 서울에 갔다. 포근한 날씨에 뭉게구름을 품은 하늘은 가을하늘처럼 파랬고 눈부셨다. 학위수여식장에는 졸업생만 들어갈 수 있었다. 큰딸과 함께 식장 밖에서 기다렸다. 졸업식이 끝나고도 많은 사람들이 사진을 찍느라고 오랫동안 캠퍼스에 머물렀다. 일정을 마친 후, 지하철을 타고 식당에 가기 위해 홍대입구역에서 내렸다. 예약 시간보다 일찍 도착해서 식당에 입장이 안되었다. 근처 작은 카페에서 기다리기로 하였다. 문을 열고 들어간 카페는 작았고 두 팀 정도만 찻잔을 앞에 두고 있었다. 낯익은 한 남자는 혼자 앉아 있다. 그의 옆 테이블로 가서 자리를 잡았다. 힐끔힐끔 곁눈질로 그를 보았다. 

그와 눈이 마주쳤다.  

"혹시 변상욱 앵커님 아니신가요?"
"네, 맞습니다. 변상욱입니다."


낯설지 않은 그는 변상욱 앵커였다. 그는 기자로도 활동했으나 내게 있어서는 앵커였다. YTN-TV프로그램 <뉴스가 있는 저녁>에서 보아온 터였다. 변 기자는 그 프로그램의 메인 앵커였다. 저녁이면 그 프로그램을 즐겨 보았다. 뉴스 해설을 곁들인 그 프로그램은 딱 내 스타일이었다. 뉴스 해설은 물론이고 목소리나 말의 뉘앙스가 '신사적'이었다. 

재해 현장이나 전쟁이 일어난 곳에서 위급한 상황에 놓여있는 사람의 사진을 볼 때 궁금했다. 저 상황에서 기자는 사진을 찍고만 있었단 말인가, 바로 구출할 생각을 해야지 말이야, 하면서 말이다. 나중에 알았다. 사진을 찍었기 때문에 세상 모든 사람이 알게 되었음을. 기자는 사회 곳곳에서 일어난 '사실'을 알리는 사람이다. 사진도 찍는 각도에 따라서 느낌이 다르듯이 사실을 알리는 기사도 기자의 주관이 어느 정도는 개입될 수밖에 없다, 고 나는 이해한다. 그래서였을까. 같은 뉴스라도 이를 전하는 기자나 앵커의 시각에 따라 내용이 달리 보였다. 

그는 어느 '지역 신문사' 인터뷰 요청이 있어서 기다리는 중이라고 하였다. 뜻하지 않은 곳에서 뜻하지 않게 보게 된 유명인사기에 긴장이 되었다. 몇 가지 질문을 하였고, 그의 답변도 들을 수 있었다. 일상적인 얘기였다. 시간이 돼 아쉬움을 뒤로하고 나는 딸아이들과 함께 카페를 나왔다. 식사를 하는 내내 변 기자가 궁금했다. 

사람을 알기 위한 합리적인 방법은 그가 쓴 글을 읽는 것이다. 집에 와서 검색해 보니 그가 쓴 책이 많았다. 두 권을 골라 온라인으로 주문했다. 3일을 기다려서 그의 책이 내 손에 들어왔다. <두 사람이 걷는 법에 대하여>와 <인생, 강하고 슬픈 그래서 아름다운>이다.  
 
변상욱, <두 사람이 걷는 법에 대하여>
 변상욱, <두 사람이 걷는 법에 대하여>
ⓒ 멀리깊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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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상욱 대기자는 인간적인 저널리스트이다. 그의 책 <두 사람이 걷는 법에 대하여>에서, 그는 유치환의 시 '깃발'을 소환한다. '이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과 '공중에 달 줄 안 그는'에서, 그는 서울 삼성 서초사옥 철탑 위에 올라 고공농성을 벌였던 해고노동자를 생각한다. 또한 오체투지로 땅바닥을 기는 정리해고당한 노동자를 떠올린다. 사업주는 도망갔고 총수의 자취는 묘연하다. 그래서 다들 대통령을 향한다. 기어가면 무슨 얘기라도 들을 수 있기를 기대하면서. 그런 이들의 마음을 읽어주고 보도하고 책을 쓰는 변상욱 기자는 인간적이다. 그는 사람들 속을 걷고 싶단다. 그의 아내는 자연 속을 걷고 싶다는데 그는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길 주저하지 않는다. 사람들에 귀를 기울이는 그는 뼛속 깊이 저널리스트다. 

변 기자는 예술을 사랑한다. 그는 사회학과 철학을 전공하고 저널리스트로서의 길을 걷고 있지만 문학을 사랑하고 글을 쓴다. 특히 그의 책 <인생, 강하고 슬픈 그래서 아름다운> 에세이에서 문학인의 면모를 드러낸다. 시를 가까이하며 시를 읊조린다. 책 곳곳에 소개되는 우리나라의 시는 물론 한시와 영미시 등을 보아도 알 수 있다. 책에 소개되는 영화는 또 어떤가. 그가 적재적소에 소개하는 영화에도 나는 주목한다. 그의 글 속에 언급된 영화 <바람의 전설>, <미라클 벨리에>, <체리 향기>, <안개 속의 풍경>, <1850 길로틴 트래지디> 등도 찾아서 보고 싶다. 
 
변상욱, <인생, 강하고 슬픈 그래서 아름다운>
 변상욱, <인생, 강하고 슬픈 그래서 아름다운>
ⓒ 레드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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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책 <인생, 강하고 슬픈 그래서 아름다운>, 책 제목과 관련된 글 한 꼭지를 보자. 그가 했던 첫 주례사를 보면 알 수 있다. 인간의 삶을 보는 그의 시각 내지는 품성을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여기 모인 사람 어느 누구도 그저 평범한 삶을 산 사람은 없어. 늘 힘들고 혼란스럽고 견딜 만큼 견디며 온몸으로 삶을 밀어 여기까지 온 거야. 누구의 삶이든 강하고 또한 슬프고 그래서 아름다운 것이다. 사람을 대할 때 외모나 지위를 보지 말고 그 삶의 무게를 느끼며 대하도록 해. 그렇게 사는 것이 옳다. 결혼식에 이렇게 찾아와 준 사람들을 기억하고 길손이 되어 찾아오면 따뜻한 밥 지어 대접하고 기쁘고 어려울 때는 찾아가 함께하도록.'

변 기자는 긍정적인 마인드를 가지고 있다.  <두 사람이 걷는 법에 대하여>에서 그는 아버지 장례식에 있었던 일화를 들려준다. 그는 아버지 영정을 들고 산길을 걷는 내내 울지 않았던 사연을 말한다. 그는 프랑스 영화 <미라클 벨리에>의 OST '비상'을 소개한다. 잠시 책을 덮고 노래를 찾아 들어보았다. 장애가 있는 부모를 뒤로 하고 부모 곁을 떠나 꿈을 찾아가는 심정을  노래한 곡이다. '사랑하는 엄마 아빠 저는 떠나요. 사랑하지만 나는 떠나요. 당신들의 그 아이는 이제 없어요. 오늘 밤 도망가는 게 아니라 날개를 편 거예요. 이해해 주세요. 저는 날아오를 거예요...'

이 OST를 적으면서 그는 다음과 같이 글 한 꼭지를 마무리한다.

'살아 있다면 된 거다. 멈춰 있는 행복도 멈춰 있는 불행도 없다. 가슴이 뛰면 되고 손을 마주 잡아 따뜻하면 된다. 잠시 울고 크게 웃으며 앞으로 나아가면 그뿐이다. 그 언덕에서 아버지와 아들이 나란히 서서 나를 응원하고 있다.' 

며칠 전, 홍상수 감독의 영화 <소설가의 영화>를 보았다. 어느 소설가가 소설 쓰기에서 슬럼프를 겪던 중, 잠적하다시피 한 후배 작가를 찾아간다. 그 후배는 이미 글쓰기는 접고 작은 책방을 운영하고 있다. 거기서 또 우연히 옛 지인을 만난다. 영화감독이다. 이 영화감독과 산책하던 중에 또 우연히 여배우를 만난다. 다시 또 우연히 젊은 시절 함께 술 마시고 문학을 논하던 남자 선배를 만난다. 소설가는 여배우와 뜻이 맞아 영화제작까지 하게 된다. 소설가는 오래전부터 영화를 찍고 싶었단다.

우연한 만남이 이토록 아름다울 수가 있을까 싶다. 작위적 만남 같은데도 영화를 보다 보면 필연 같은 우연이다. 이렇게 감독의 역량이 빛을 발한다. 소설가가 우연히 여배우를 만나 영화를 제작하듯이, 나 또한 변상욱 대기자를 우연히 만나게 되어 그의 책을 읽고 동시대를 사는 이의 인생과 철학 등을 알게 되었으니 이 또한 값진 우연이 아니겠는가.  

덧붙이는 글 | 브런치스토리에 중복게재합니다.


두 사람이 걷는 법에 대하여

변상욱 (지은이), 멀리깊이(2021)


태그:#변상욱, #두사람이걷는법에대하여, #인생강하고슬픈그래서아름다운, #대기자,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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