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앙투안 베코니에 Monument 展>에 전시된 작품들은 모두 같은 크기와 형태를 하고 있다. 하지만 단순히 똑같은 오브제를 나열한 것에 그치지 않는다.
▲ 빛나는 조형물 <앙투안 베코니에 Monument 展>에 전시된 작품들은 모두 같은 크기와 형태를 하고 있다. 하지만 단순히 똑같은 오브제를 나열한 것에 그치지 않는다.
ⓒ 곽우신

관련사진보기

 
차갑다. 그리고 따뜻하다.

서늘하고 딱딱한 공간을 온화하고 부드러운 빛이 메운다. 전시 공간은 정형화된 모더니즘과 비정형화된 포스트 모더니즘의 사이 어딘가 혹은 그 둘 다 아닌 경계선에 자리 잡는다.

앙투안 베코니에(Antoine Bécognée) 'MONUMENT(모뉴멍)' 전은 큰 규모의 전시회가 아니다. 오브제들이 전시장인 유아트스페이스를 빼곡하게 채우고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이 소담한 공간을 둘러보는 데 걸리는 시간은 그리 짧지 않다.

재료와 작품에서 느껴지는 작가의 고민

 
겉보기에는 똑같이 생긴 작품이지만, 벽면에 비치는 빛의 모양은 제각기 다르다. 오브제마다 각기 다른 틈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틈은 상처를, 뿜어져 나온느 각기 다른 빛은 개성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 빛의 모양 겉보기에는 똑같이 생긴 작품이지만, 벽면에 비치는 빛의 모양은 제각기 다르다. 오브제마다 각기 다른 틈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틈은 상처를, 뿜어져 나온느 각기 다른 빛은 개성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 곽우신

관련사진보기

 
이 전시회는 친절하지 않다. 작품의 제목과 간단한 설명을 포함해 어떤 텍스트도 존재하지 않는다. 작가의 의도가 분명 있을 텐데, 이를 해석하고 감상하는 건 오롯이 관객의 몫으로 남겨두고 있다. 대신 전시회는 작품 하나하나를 보며 의미를 유추하는 데 필요한 여유를 넉넉하게 제공한다.

수직과 수평, 직각과 직선의 모임. 직사각형을 뭉쳐 구성한 이 하얀 오브제들은 일견 단조롭다. 현대 도시의 건축물들을 형상화하고 재조합한 이 작품들은 모두 똑같은 형태와 크기를 갖춘 채 나열되어 있다. 하지만 그 뒤에 뿜어져 나오는 빛의 방향, 그 빛들이 벽면에 만들어 내는 형상은 모두 다르다. 겉보기에는 모두 비슷한 틀에 박혀 있는 도시민들이지만, 각자가 가진 내면의 빛-개성은 다양하다는 의미이다.

이 오브제들을 실제로 만져보면 종이 특유의 거칠지만 포근한 질감을 느낄 수 있다. 주재료로 면직물을 선택했다는 데서도 작가의 고민이 느껴진다. 작품 하나하나 빛의 틈새를 다르게 설계한 덕에, 통일감과 다양성을 동시에 확보했다.

작품에서 빛이 뿜어져 나오는 그 틈은 우리 모두가 안고 있는 '상처'를 뜻하는 것 같다. 각자 다른 모양의 상처들은 그저 아픔이나 슬픔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나름의 의미를 지닌다. 각자 다른 상처를 가진 덕에 각자의 모양대로 빛날 수 있다. 각자의 상처가 있는 이들이 모여 하나의 또다른 빛무리를 만들어낸다. 어쩌면 작가는, 파편화된 개인의 상처가 서로의 희망으로 번지고 서로를 더욱 빛나게끔 만들어주는 모양새를 상상했던 것 아니었을까.
 
전시회의 마지막 작품은 다소 이질적이다. 가운데의 금속은 반지이자 곧 다음 관문으로 가는 열쇠이다. 작가는 자신이 애정하는 물건(반지)을 통해, 앞으로 자신이 보여줄 세상을 예고했다.
▲ 다음으로 넘어가는 관문 전시회의 마지막 작품은 다소 이질적이다. 가운데의 금속은 반지이자 곧 다음 관문으로 가는 열쇠이다. 작가는 자신이 애정하는 물건(반지)을 통해, 앞으로 자신이 보여줄 세상을 예고했다.
ⓒ 곽우신

관련사진보기

 
전시회의 제목이 'MONUMENT'인 것도 그 때문으로 보인다. 각자 상처를 가진 개성 없는 무리의 집합체가, 아름다운 연대가 되고 빛나는 기념비(Monument)로 탈바꿈한다. 오히려 우리 삶을, 기념할 만한 무언가로 승화해낸다.

깨지지 않으면, 상처받지 않으면 빛이 들어올 틈이 생기지 않기 때문이다. 틈이 없다면 우리의 빛도 누군가에게 닿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의 작품은 '도시'로 대표되는 삭막한 현대사회 속에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가치를 상기시킨다. 인간을 향한 작가의 애정 어린 시선이 충분히 전달된다.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바람 소리가 이질적인 듯하면서도, 한쪽 벽면을 채운 푸른 하늘과 구름에 집중할 수 있도록 관람객을 밀어준다. 수많은 구름과 하늘을 합성한 영상, 그 앞에 자유롭게 흔들리며 내걸린 오브제들이 묘한 풍광을 만들어낸다.

새파란 하늘과 하얀 구름의 첫인상은, 바라볼수록 오브제의 노란빛과 어우러지며 생각보다 다채로운 변화를 만들어낸다. 작가는 의도적으로 프로젝션을 관객의 관람 동선에 배치해 관객이 참여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다. 관람객의 그림자가 하늘에 걸리기도 하고, 오브제를 가로막기도 한다.

"해석 열어두긴 했지만... 관객 스스로 작품과 교류하는 게 신기해"

 
각각의 작품은 인간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도시이기도 하다. 작가는 뉴욕과 베를린 등 여러 대도시를 다니며 얻은 영감을 작품으로 형상화했다.
▲ 클라우드 시티 각각의 작품은 인간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도시이기도 하다. 작가는 뉴욕과 베를린 등 여러 대도시를 다니며 얻은 영감을 작품으로 형상화했다.
ⓒ 곽우신

관련사진보기

 
이번 전시회는 한국에 알려지지 않은 작가들을 국내에 처음으로 소개하는 프로젝트의 일환이다. 앙투안 베코니에라는 프랑스 작가의 첫 한국 등판은 나름 성공적으로 보인다. 전시를 쭉 따라가다 제일 마지막에는 또 다른 형태의 오브제를 마주하게 된다. 반지가 열쇠가 되어 새로운 관문을 여는 형태의 작품이다. 벌써부터 그의 다음 전시를 기대하게 만드는 마무리이다.

특유의 묘한 아우라와 분위기는 프랑스 고전미의 전통을 간직하면서도, 이를 보다 '한국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토론과 조율의 결과물이다. 그렇게 그는 각자의 빛을 조각해냈고, 그 빛들을 모아 하나의 세계를 직조했다.

이번 전시회를 기획한 민지은 무제아트 대표는 "전시를 준비하기 시작한 게 한 8개월 정도 됐는데, 프랑스 문화랑 한국 문화가 달라서 서로 이해할 수 있는 부분도 되게 많이 달랐다"라며 "그래서 한국 관람객들이 작품을 이해할 수 있게끔 어떻게 전시를 해야 할지 고민이 컸다. 작가와 제가 같이 전시회를 준비하면서 갈등도 있었다"라고 토로했다. 이어 "하지만 어느 날 작가가 '우리 한번 내려놔 보자. 메시지를 주입하려고 하지 말고 사람들이 자유분방하게 생각할 수 있도록 내려놓자'라고 해서 지금 같은 형태의 전시회를 준비하게 됐다"라고 설명했다.

지난 25일 늦은 오후, 전시회장을 찾았다가 앙투안 베코니에 작가를 직접 만나 잠시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그는 "깜짝 놀랐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관객 분 중에 매일 오시는 분도 있다. 한참을 바라보다 가고는 한다"라며 "(주최 측에서) 정확하게 설명을 다 붙여놓지 않았는데도, 메시지를 일부러 '이렇게 이해하라'라고 딱 던지지 않았는데도, 사람들이 뭔가를 이해하고 자꾸 돌아오고 작품과 교류하려고 하는 게 너무 신기하다"라고 이야기했다.

 
“사람들이 조금 더 접근하기 쉽게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예술품이 예술품으로만 남아 있는 게 아니라, 우리의 생활과 함께하고 들어가는 예술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바람에 흔들리기도 하고, 관람객이 만지기도 하면서, 벽에 비치는 모습이 다 달라지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우리는 같은 모양을 하고 있지만, 그 안에는 각기 다른 다양성을 갖고 있으니까요.”
▲ 작가의 한마디 “사람들이 조금 더 접근하기 쉽게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예술품이 예술품으로만 남아 있는 게 아니라, 우리의 생활과 함께하고 들어가는 예술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바람에 흔들리기도 하고, 관람객이 만지기도 하면서, 벽에 비치는 모습이 다 달라지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우리는 같은 모양을 하고 있지만, 그 안에는 각기 다른 다양성을 갖고 있으니까요.”
ⓒ 곽우신

관련사진보기

 
그는 "일부러 사람들이 직접 받아들이고 해석할 수 있도록 조금 열어놓기는 했다. 보통 어떤 콘셉트나 전시의 주제는 정하지만, 그다음에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관객들이 정하는 것"이라며 "각자 그걸 자유롭게 정했을 때 더 예술이, 진짜 예술이 될 수 있다"라고 말했다.

특히 "우리가 작품에 이름을 붙여놓을 수도 있고, 정확한 설명도 적어놓을 수 있지만, 그렇게 해버리면 관객들이 상상하고 자유롭게 생각할 수 있는 길을 막아버린다"라며 "관람객과의 언어 소통이 자유롭지 않기 때문에 내가 아는 것을 관객이 정말로 이해하는지 확실히 알 수는 없지만, 관람객들이 작품에서 어떤 인상을 받고 교류를 하고 있다는 건 느껴진다. 그것만으로도 예술이 된다"라고도 설명했다.  

지난 21일부터 시작된 <앙투안 베코니에 MONUMENT 展>은 오는 3월 2일까지 서울 청담동 유아트스페이스에서 진행된다.

 
지난 2월 21일부터 오는 3월 2일까지 청담동 유아트스페이스에서 진행되는 <앙투안 베코니에 Monument 展>. 프랑스 작가 앙투안 베코니에의 첫 한국 전시이다.
▲ <앙투안 베코니에 Monument 展> 포스터 지난 2월 21일부터 오는 3월 2일까지 청담동 유아트스페이스에서 진행되는 <앙투안 베코니에 Monument 展>. 프랑스 작가 앙투안 베코니에의 첫 한국 전시이다.
ⓒ 무제아트

관련사진보기

 

태그:#앙투안베코니에, #무제아트, #전시회, #MONUMENT, #유아트스페이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