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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책을 통해 책 너머의 세상을 봅니다. 서평 쓰는 사람들의 모임,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북클럽' 3기입니다.[편집자말]
시간은 언제나 어디에나 있지만 자주 부족하고 그로 인해 우리를 고통스럽게 한다. 그러면서도 경험과 기억이라는 삶의 가장 귀한 선물을 안겨준다. 탄생이란 저마다의 시간(삶)을 선물 받는 일. 길지만 짧기도 한, 영원할 것 같지만 매 순간 흩어져 버리는 시간이 삶의 토대다. 보이지도 만져지지도 않는 허상 같은 토대라니. 시간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시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김상욱) 뉴턴 이후로 '시간'은 물리학자에게 '숫자'입니다. 철학적으로 표현하면 "(물리적 실체로서) 시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같은 멋진 말을 사용할 수도 있겠네요. - 28쪽 <살아 보니, 시간>

뉴턴은 시간을 절대적인 숫자로 생각했다. 아인슈타인도 뉴턴과 같은 입장으로 과거, 현재, 미래는 환상이라고 말했다. 시간은 "첫 번째 사건과 두 번째 사건이 일어났을 때의 시계 눈금을 각각 읽고 나서 그 차를 구한 것"(28쪽)일 뿐이라고. 물리적 실체로 따지면 시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물리학에서는 엔트로피를 두고 시간의 방향을 말하기도 한다.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날 수 없는 것처럼 우리가 사는 시공간에는 되돌릴 수 없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러한 사건은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방향으로 진행한다.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방향에서 사건과 사건의 간격을 숫자로 표시한 것이 시간이다. 
 
(김상욱) 과거는 존재하지 않아요. 미래도 존재하지 않아요. 오로지 현재만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무엇인가 흘러가는 실체, 즉 시간이 있고 심지어 그것을 느낀다고 착각해요. 바로 기억 때문이에요. (…) 변하는 것은 시간이 아니라 나입니다." - 39쪽 <살아 보니, 시간>

시간은 실체가 없고 흐르지도 않는다. 단지 숫자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우리는 시간의 지배를 받으면서 시간에 의해 나와 세상이 변한다고 생각한다. 바로 기억 때문이다. 우리 안에 각자의 무궁한 사건이 발생과 축적을 반복하고 그것이 기억으로 쌓인다. 기억이 퇴적되어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현상을 우리는 시간이 흐른다고 감각한다. 그렇다면 기억은 시간의 다른 이름이 아닐까. 시간이 형식이나 틀이라면 기억이 그 내용은 아닐까.

'환갑'을 축하하기 위해 시간의 의미를 묻는 학자들 
 
<살아 보니, 시간> 환갑을 축하하기 위해 모인 네 명의 학자가 시간에 대해 묻고 답한다.
 <살아 보니, 시간> 환갑을 축하하기 위해 모인 네 명의 학자가 시간에 대해 묻고 답한다.
ⓒ 알라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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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보니, 시간>(이권우, 이명현, 이정모, 김상욱, 강양구 기획·정리, 생각의 힘)은 '환갑'을 축하하기 위해 만들어진 책이다. 평소 친분이 깊은 세 명의 학자, 이권우(도서 평론가), 이명현(천문학자), 그리고 이정모(펭귄 각종과학관장)가 환갑을 맞아 그 일을 축하하고 의미를 되새기기 위해 그들과 친한 과학자 세 명(장대익, 정재승, 김상욱)을 초대해 진화, 생명, 시간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세 학자를 깊이 애정하는 제자이자 후배 강양구(과학 전문 기자)가 모임을 기획하고 대담을 정리해 책(<살아 보니, 진화>, <살아 보니, 지능>, <살아 보니, 시간>)으로 펴냈다. <살아 보니, 시간>은 그 시리즈 중 하나로 물리학자인 김상욱을 초대해 시간을 주제로 했던 논의를 담고 있다. 

인문학자, 천문학자, 생물학자, 물리학자라는 구성 때문인지, 책에서는 인간의 시간에서 우주의 시간, 생명의 시간에서 사회적 관점의 시간(노동의 시간), 문학과 신화의 시간 등, '시간'에 대해 다각도로 그 의미를 살핀다.

이 글의 앞선 부분에서 설명한 시간 개념은 인간의 시간과 우주의 시간에서 논의된 내용이다. 시간의 본질에 대한 질문에서 비롯된 대담은 어떻게 시간을 사용할 것인가라는 현실적인 문제를 향해 나아간다. 과학의 시간, 문학의 시간, 신화의 시간에 대한 이야기 모두가 흥미로웠지만 노동의 시간에 대한 논의와 질문이 가장 인상적이다.      

과학의 발달과 기계의 등장으로 인간이 해야 할 일은 줄었는데도 우리는 여전히 100년 전처럼 하루 8시간, 주 5일을 일에 바친다. 김상욱은 이러한 현상에 대해 '가짜 노동'을 언급하며 '일해야 한다'는 당위 때문에 놀 수 있는데도 일을 만들어하고 있는 건 아닌지 의문한다.

여기에는 인공지능의 탄생으로 사람이 해야 할 노동이 급격히 줄어들 미래에 대한 우려가 포함되어 있다. 불필요한 일을 하지 않도록, 과도한 노동에 시달리지 않아도 될 수 있는 환경은 이미 마련되었다. 그렇다면 모두가 그러한 여건을 누릴 수 있도록 사회적 제도와 시스템을 갖추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이 책의 학자들은 말한다.  

인간의 일이 줄어든 미래에 '재미있게 노는 것'이 인류가 나아갈 방향일 수 있다는 김상욱의 제안이 반가우면서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열심히 일해라, 시간을 아껴 써라, 같은 오래된 조언을 새롭게 바라봐야 할 때인지 모른다. 

시계 말고 몸에 기억을 새기자

시간이 없어 우울했던 적이 있다. 아이가 어려 온종일 엄마 손을 찾을 때, 나를 위한 시간은 턱없이 부족한데 삶이라는 시곗바늘은 너무도 빨리 돌아갔다. 시간이 속절없이 사라졌다. 

아이가 어느 정도 자라 몸집이 커지고 나서야 지난 시간이 아이 몸에 축적되었다는 생각을 할 수 있었다. 그러자 다른 방식으로도 시간을 모을 수 있겠다 싶어 일상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아이와 함께 보내는 매일을 일기장에 적으면서 시간을 쌓는다고 느꼈다. 매일의 시간을 잘 겪어 기억으로 남기자 불안과 허무는 옅어졌다.
 
(이권우) 과거에 연연하는 것만큼이나 바보 같은 일이 없더라고요. 아픔과 상처, 아쉬움과 머뭇거림, 이 모든 걸 잊고서 지금, 오늘에 집중했으면 좋겠어요. - 125쪽
 
올해 '즐겁게 살자'라는 모토를 잡은 내게 환갑을 맞은 이권우의 조언이 든든한다. 사라지는 게 아까워 열심히 기록했던 날을 지나 요즘은 시간을 모으려는 노력보다 아낌없이 써 버리는데 관심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한동안 부족했던 과거를 보충하고자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강박으로 자신을 괴롭히기도 했다. 지금은 지나치게 애를 쓰기보다 내 앞의 현재를 잘 누리자고 생각한다.

애를 쓰며 보내는 시간이 나와 타인에게 해가 될 수 있음을, 좋아서 즐겁게 하는 일이 나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에게 까지 좋은 기운을 불어넣는다는 걸 경험했기 때문이다. 시간을 모을 수 있다면 즐겁게 보낸 시간, 환하게 기쁜 기억으로 수집하고 싶다. 그런데 현재를 즐기는 감각은 '모으기' 보다 '써 버리기'와 유사한 것 같다.  

즐겁게 써 버린 시간은 굳이 기록으로 남기지 않아도 아쉽지 않았다. 잘 써 버린 시간은 숫자로든, 그 무엇으로든, 바꾸어 저장하지 않아도 그 자체로 충분했으니까. 그런데도 기억으로 남았다. 과학적으로 우리는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니까. 잘 살아낸 현재는 우리 안에 기억으로 적립된다. 그러니 시간이라는 형식보다 기억이라는 내용에 충실해보면 어떨까.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기자의 개인 블로그에도 게재됩니다.


살아 보니, 시간 - 바로 지금에 관한 이야기

이권우, 이명현, 이정모, 김상욱 (지은이), 강양구 (기획), 생각의힘(2023)


책을 통해 책 너머의 세상을 봅니다. 서평 쓰는 사람들의 모임,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북클럽' 3기입니다.
태그:#살아보니시간, #이권우, #이명현, #이정모, #김상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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