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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새가 벽돌담 구멍으로 머리를 박고 곤충을 잡아먹는 모습
 박새가 벽돌담 구멍으로 머리를 박고 곤충을 잡아먹는 모습
ⓒ 일러스트 최원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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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은 새잎이 돋고 꽃이 피는 계절이기도 하지만 꼬물꼬물 애벌레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계절이기도 하다. 알에서 깨어난 애벌레들은 막 나오기 시작한 여린 잎을 먹으며 무럭무럭 몸집을 키우다가 몇 번의 탈피를 거쳐 늠름한 성충이 된다. 노린재처럼 애벌레가 어른벌레와 비슷한 곤충이라면 모를까, 애벌레 단계의 곤충을 보고 어른벌레를 상상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끝내 멋지게 날개를 펼친 나비를 한번 상상해보라.

물론 꿈틀꿈틀 기어가는 애벌레를 보면 멋지다는 생각보다는 징그럽고 싫은 마음이 드는 사람이 훨씬 많을 것이다. 어떤 마음이든 다 괜찮다. 당장 징그럽고 혐오감이 드는 것을 어쩌란 말인가. 인간이 진화 과정에 길고 꿈틀거리는 뱀을 두려워하다 끝내 혐오하는 마음이 생긴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뱀에 물려 독이 온몸에 퍼지며 죽어가는 이를 지켜보면서 우리 조상들은 두려움을 키웠고, 뱀을 보면 조심해야 한다는 경험을 정보로 축적했을 것이다. 뱀처럼 가늘고 길며 꿈틀거리는 지렁이며 애벌레에까지 두려움과 혐오가 이어졌을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우리 조상이 활동하던 시대와 21세기 사이 과학은 엄청나게 진보했다, "'기적의 살충제' DDT를 남용하다 보면 어느 순간 새들의 노랫소리마저 사라진 조용한 봄을 맞이할 수 있다"는 해양생물학자 레이첼 카슨(Rachel Carson)의 경고는 환경운동의 기폭제가 되었다. 그런데 조용한 봄이 어떤 의미인지 사람들은 알기나 할까? 봄이 새소리로 떠들썩하다는 걸 알고 있어야 조용한 봄의 두려움을 알 텐데 대체 그걸 느끼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도시에 사는 사람의 귀는 새소리가 아니라 소음에 더 많이 노출된다. 거리를 걸으면 차를 타든 걷든 자동차 소리에 노출되고 카페에 들어가면 음악 소리가 우리 귀를 채운다. 그러니 새가 사라진다고 해도 심각성을 느낄 사람은 많지 않을 것 같다. 물론 곧이어 우리 삶에 큰 재난이 벌어지면서 체감을 할 테지만.

뿌리부터 우듬지1)까지 한 그루 나무는 다양한 곤충의 서식지이다. 지구에 얼마나 많은 곤충이 살아가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다. 우리가 알기도 전에 사라진 곤충, 발견은 했으되 이름을 붙이기도 전에 사라진 곤충이 얼마나 되는지는 가늠할 수조차 없다.

1978년 안데스산맥 기슭에 있는 에콰도르의 센티넬라 능선 근처 숲에서 생물학자 두 사람이 약 90종의 미기록 종 곤충들을 발견했다. 그런데 에콰도르 정부가 이 숲을 개간해서 농경지로 바꿔버렸다. 서식지가 사라졌으니 이 곤충들은 아예 기록조차 할 수 없는 상태로 멸종해 버렸다. 이 일을 계기로 '센티넬라 멸종'이란 말이 생겼다. 이름을 붙이기도 전에 사라진 생물 종의 멸종이란 뜻이다. 이처럼 기록은커녕 눈에 띄지도 못한 채 사라진 생물 종이 얼마나 많을까? 그런 점에서 이 봄날 눈앞에 꼬물거리는 애벌레는 반갑기만 하다.

곤충에게 해로운 것은 사람에게도 해롭다

기온이 올라가고 애벌레 수가 늘어나기 시작하면 아파트나 공원·학교 할 것 없이 나무가 있는 곳마다 '수목 소독'이라는 걸 한다. 소독이라는 말에는 다친 곳을 치료한다는 긍정의 의미가 담겼다. 그렇다면 나무가 다쳤다는 건가? 아니다. 수목 소독은 그냥 나무에 살충제를 살포한다는 뜻이다. 나무에 있는 애벌레를 비롯한 곤충이 사람에게 해를 끼치던가? 보기에 징그러울 수는 있지만 대부분 애벌레는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다.

애벌레가 집으로 들어오면 어떡하냐는 이들이 있다. 대부분 집은 창에 방충망도 있고, 혹시라도 애벌레가 들어왔더라도 빳빳한 종이 두 장으로 살며시 들어 창밖으로 내보내면 될 일이다. 어떤 애벌레는 얼마 지나지 않아 예쁜 나비가 될 수도 있다. 어떤 애벌레는 나중에 아름다운 새소리로 돌아올 것이다. 새가 새끼를 기를 때 애벌레는 요긴한 단백질 공급원이 되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벌레가 꿈틀거리는 모습이 징그럽다면 애벌레가 있는 곳을 우리가 피해 다니는 것이 어떨까? 이미 인간의 활동 영역은 너무 넓다. 이젠 애벌레의 공간을 인정해 줘야 하지 않을까? 그러다가 혹시 마음에 여유가 조금 생긴다면 애벌레를 관찰해봐도 좋을 것 같다. 애벌레가 징그럽다는 건 과거의 유산이고 오래된 의식이 만들어낸 선입견일 수 있으니까.

'애벌레가 우글거린다'는 표현에는 이미 혐오감이 담겨있다. 그러나 단지 애벌레이기 때문에 박멸의 대상이라 생각하는 것은 젠가2)의 아래 블록을 빼버리는 행위와 다르지 않다. 애벌레가 사라진다는 건 이 세상에 곤충이 자취를 감춘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그러면 어떤 세상이 펼쳐질까? 낙엽은 썩지 않은 채 쌓일 거고 동물의 사체도 그대로 쌓여 지구를 금세 뒤덮을 것이다.

지구 생태계에서 곤충이 하는 역할에 대해 우린 얼마나 알고 있을까? 애벌레의 균형이 깨져서 문제가 된다면 깨진 균형을 바로잡을 궁리를 해야 한다. 앞으로 생겨날 애벌레를 죽여 없애야 할 존재라고 예단한 채 살충제를 살포하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건 이상한 일이다.

아무리 나무에 살충제를 뿌려대도 곤충을 완전히 사라지게 할 수는 없다. 뿌려진 살충제는 대부분 땅에 내려앉을 것이다. 가뜩이나 해마다 봄비가 아쉬운 시절에 가물어 바싹 마른 흙이 바람에 날리면 살충제는 어디로 갈까? 곤충에게 해로운 것은 인간에게도 해로울 수밖에 없다. 올봄엔 꼬물꼬물하는 애벌레에게 그윽한 눈길을 보낼 용기가 필요하다.

1) 나무의 맨 꼭대기 줄기
2) 나무 블록을 엇갈리게 쌓아 탑을 만들고, 돌아가며 블록 하나를 빼내어 맨 위층에 쌓는 게임이다. 블록을 제대로 빼내지 못하거나 탑을 무너지면 패배한다.

덧붙이는 글 | 글 최원형 환경생태작가. 이 글은 참여연대 소식지 〈월간참여사회〉 2024년 3월호에 실립니다. 참여연대 회원가입 02-723-4251


태그:#애벌레, #조용한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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