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아이는 어른의 거울이라고들 한다. 순진무구한 아이의 행동 근저에 어른에게서 보고 배운 것들이 자리한다는 말일 테다. 그러나 오로지 그뿐일까. 어른의 행동이 아이에게 전해지는 것처럼 아이의 행동 또한 여러 경로로써 어른들의 삶에 전해진다. 아이를 그저 어른의 축소판이라거나 아무것도 묻지 않은 결백한 존재로 대하는 시선으로는 세상에 존재하는 다종다양한 아이를 올바로 이해할 수 없는 법이다.
 
아이들은 자주 어른을 당혹케 한다. 모든 어른이 아이인 시절을 지내왔음에도 어른들은 아이일 적을 쉽게 잊는다. 학교와 사회에서 다듬어지고 깎여나간 어른들의 시각으로는 아이의 행동은 도통 이해되지 않는 것들 뿐이다.
 
다분히 자기중심적이고 호기심이 넘치는 아이들 중에서도 다른 아이들과 확연히 구분되는 유별난 아이들이 있다. 가끔은 그 순진무구함이 다른 이들을 괴롭게 할 때도 있다. 심지어는 부모며 선생까지도 말이다. 그런 아이들을 어른들을 어떻게 대하여야 하는가.
 
여기는 아미코 포스터

▲ 여기는 아미코 포스터 ⓒ 슈아픽처스

 
유별난 아이의 남다른 이야기
 
<여기는 아미코>는 아이의 성장기를 그린다. 많은 일본영화가 그러하듯 자극적이지 않고 담박한 일상을 그리지만, 그 일상의 좌절과 고통, 성장과 극복의 이야기는 결코 밋밋할 수만은 없는 일이다.
 
주인공은 유별난 걸로는 빠지지 않는 아이 아미코(오사와 카나 분)다. 소년인지 소녀인지 좀처럼 짐작되지 않는 요상한 이 아이는 독특한 행동으로 주변의 눈총을 받고는 한다. 부모의 말은 좀처럼 따르지 않고 제 욕구가 풀릴 때까지 하고픈 행동을 하는 것부터가 그렇다. 그렇다고 딱히 나쁜 아이인 것은 아니지만.
 
회사원인 아버지는 종일 일하고 늦게야 집에 들어온다. 엄마는 동네 어린아이들을 모아 서예를 가르치는데 아미코에겐 수업을 허락하지 않는다. 아미코가 학교 숙제 같이 해야 할 일부터 다 끝내야 수업을 들을 수 있게 하겠다는 것이지만 이루어질 리 만무하다. 하나 있는 몇 살 터울의 오빠도 딱히 친근하지 않다. 이렇다 할 친구도 없는 일상 가운데 아미코의 눈에 든 소년 노리가 있지만 그는 아미코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다. 말하자면 아미코는 혼자다.
 
여기는 아미코 스틸컷

▲ 여기는 아미코 스틸컷 ⓒ 슈아픽처스

 
아미코의 집에 닥친 불행의 씨앗
 
여러모로 아미코는 조금쯤 남다르다. 어머니 얼굴에 난 점에 유달리 관심을 갖는다거나 동급생 친구 노리에게 집착에 가까운 애정을 표한다는 점 등이 그렇다. 그 나이 때 아이들이 으레 그럴 수 있겠다 싶기도 하지만 동네 아이들에게 이상한 아이로 정평이 났다면 다시 생각해볼 필요도 있을 것이다.
 
아미코의 일상을 지켜보면 볼수록 아이를 쉽게 정의하긴 어렵다. 유별나다고는 하지만 이렇다 할 문제가 있다고 할 수는 없고, 못됐다고 하기엔 선한 의도로 하는 행동들이 많다. 주변에 많은 관심을 보이면서도 주변이 제 자신을 어떻게 보는지를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모습이 낯설기까지 하다.
 
아미코의 일상은 아이의 주변이 허물어지며 급속히 달라진다. 시작은 아주 일상적인 문제로부터 벌어진다. 아미코의 엄마가 셋째를 임신하고 출산을 위해 병원을 찾은 날이다. 그러나 며칠의 시간이 흐른 뒤 돌아온 건 아버지와 엄마 둘 뿐이었다. 기대했던 셋째는 함께 오지 못했다. 부모는 그 이유를 말해주지 않았지만 아미코와 오빠 코타는 알 수 있었다. 모두가 그들에게 '참 안 되었다'고 이야기를 건넸던 것이다.
 
여기는 아미코 스틸컷

▲ 여기는 아미코 스틸컷 ⓒ 슈아픽처스

 
소녀가 마당에 만든 동생의 무덤
 
주변이 말해주지 않는 동생의 죽음을 코타는 코타대로, 아미코는 아미코대로 견뎠으리라. 그러다 어느 날인가. 아미코는 마당 화단에 나무로 위패를 세우고 동생의 무덤을 세운다. 위패엔 '동생의 묘'라고 이름까지 써 붙인다. 그리고는 제 엄마를 이끌고 동생을 위해 만들었다며 내보이는 것이다. 그로부터 시작된 건 가히 절망적인 일이다.
 
엄마는 급격하게 무너진다. 제 자리를 지키지 못하고 두문불출하여 모두를 걱정케 한다. 아미코도 코타도 돌보지 못하고, 스스로를 살피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아버지가 종일 집에 붙어있을 수도 없는 일, 집안 꼴이 말이 아니게 되는 것이다. 코타와 아미코가 그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을 수는 없다. 저들 각자의 방식으로 변화한 세상을 받아들이려 애쓴다.
 
그렇다고 뾰족한 수가 있는 것도 아니다. 코타는 비행청소년이 되어 도피하고 아미코는 예의 그 이상한 일들을 더욱 심하게 하기 시작한다. 영화는 그 모든 과정을 차근히 살피며 망가진 것과 아직 망가지지 않은 것, 그 속에서도 발버둥치는 생명력 있는 것을 살펴나간다.
 
여기는 아미코 스틸컷

▲ 여기는 아미코 스틸컷 ⓒ 슈아픽처스

 
첫 영화, 첫 연기... 그 생생한 에너지
 
<여기는 아미코>는 주인공 아미코가 그렇듯 독특한 영화다. 흡인력 있는 사건들이 연달아 벌어지는 것도 아니고, 극적인 성장이며 위기가 잇따라 닥치지도 않는다. 우리네 일상 가운데 얼마든지 벌어질 수 있는 소소하고 애매한 사건들이 바닷물처럼 밀려왔다 빠져나간다. 그 속에서 누군가는 무너져 일어날 줄 모르고, 누군가는 마침내 다음 단계로 건너간다.
 
영화는 일본의 촉망받는 작가 이마무라 나쓰코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영화만큼이나 담박한 문체를 가진 그녀의 소설이 그대로 영화로 옮겨왔다는 평이 나붙을 정도다. 감독 모리 유스케는 이 영화로 첫 작품을 만드는 영광을 얻었고, 경험이 없는 어린이 배우들을 내세워 보는 이를 움직이는 작품을 만들려 시도한다. 영화 중간중간 초현실적 장면을 삽입하고, 소설의 강점이었던 공감각적 이미지를 영화 안에 효과적으로 녹여냈다는 점은 분명한 장점이다.
 
330대 1의 경쟁을 뚫고 발탁되었다는 주연배우 오사와 카나는 제가 이해하기조차 쉽지 않았을 이 영화를 온전히 짊어지고 나아가는 에너지를 내보인다. 만약 이 아이가 없었다면 영화는 지금보다도 훨씬 형편없는 작품이 되고 말았을 테다.
덧붙이는 글 김성호 평론가의 얼룩소(https://alook.so/users/LZt0JM)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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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기자.글쟁이. 인간은 존엄하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을 간직한 사람이고자 합니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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