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링 스톤스(the Rolling Stones)와 올맨 브라더스 밴드(The Allman Brothers Band), 영국과 미국의 대표적 록 밴드들이다. 이들이 사랑한 뮤지션들이 모여 재즈와 블루스, 서던록의 조화를 도모한 밴드. 5년만 먼저 혹은 늦게 결성됐으면 인기를 톡톡히 누렸을 밴드. 바로 시 레벨(Sea Level)이다.

시 레벨은 올맨 브라더스 밴드의 불행에서 배태됐다. 1971년 10월 29일 올맨 브라더스 베이스 주자 베리 오클리(Berry Oakley)의 부인 린다 생일 파티가 열렸다. 파티장을 빠져나온 두에인 올맨(Duane Allman)은 오토바이를 몰고 귀갓길을 서둘렀다. 교차로에 서 있던 트럭을 들이받고 숨졌다. 지금까지도 가장 뛰어난 슬라이드 기타리스트로 추앙받는 두에인의 어처구니없는 죽음이다.

13개월 뒤 두에인 사고 현장에서 세 블록 떨어진 곳을 베리 오클리가 오토바이를 타고 지나갔다. 급하게 우회전하다가 중앙선을 넘었고 마주 오던 버스와 충돌했다. 베리는 일어나 오토바이를 타고 귀가했다. 3시간 뒤 의식을 잃어 응급실로 이송됐으나, 숨졌다.

네 번째 앨범 <잇 어 피치(Eat a Peach)> 녹음 중 벌어진 일이다. 멤버 보강이 필요했다. 보컬이자 건반 주자인 그렉 올맨(Gregg Allman)은 자기 솔로 앨범에 참여한 스무살의 건반 주자 척 레벨(Chuck Leavell)을 영입했다. 베이스 주자로는 라마 윌리엄스(Lamar Williams)를 데려왔다. 윌리엄스는 드러머 존 리 존슨(John Lee Johnson), 일명 제이모(Jaimoe)의 친구다. 이들 멤버로 네 번째 앨범을 완성한 데 이어 1973년 <브라더스 앤드 시스터스(Brothers and Sisters)> 앨범을 냈다.

상업적으로 성공했지만, 불화가 고개를 들었다. 그렉 올맨이 따로 놀기 시작했다. 약물 중독이 심했다. 팝 가수 셰(Cher)와 결혼한 뒤 밴드 근거지인 조지아주 메이컨시를 떠나 LA로 이주했다. 기타 주자 디키 베츠(Dickey Betts)도 솔로 활동에 나섰다.

밴드 갈등은 척 레벨, 라마 윌리엄스, 제이모에게 구심력으로 작용했다. 늘 붙어 다녔다. 스스로 '우리 셋(위 스리, We Three)'이라는 별칭을 붙였다.

엉망인 밴드에 결정적 불씨가 날아들었다. 밴드 경호원이던 스쿠터 헤링에 대한 마약 재판에서 그렉 올맨이 증언했다. 멤버들은 그렉을 밀고자로 보고, 대화를 끊었다. 그렉에게 살해 위협이 잇달았다. 1976년 밴드는 해산하고, 각자 활동에 들어갔다.

'위 스리'도 밴드를 결성했다. 척 레벨과 함께 활동했던 지미 놀스(Jimmy Nalls)를 기타 주자로 영입했다. 밴드 이름은 척 레벨 이름에서 따왔다. 이름 첫 글자 시(C), 레벨(Levell)과 발음이 같은 Level을 합쳤다. '해수면'이라는 뜻이다.

손발을 맞춰온 이들은 어렵지 않게 1977년 2월 데뷔 앨범 <시 레벨>을 냈다. 이는 올맨 브라더스 밴드 음악의 연장 선상에 있다. 물론 '서던록'이라는 이전의 확고한 지향점에서 살짝 벗어난 소리를 들려준다. 압도적 명성의 밴드에서는 눌러놨던 자신들의 감성을 폭발시킨 것이다.
 
Sea Level 데뷔 앨범 Sea Level 데뷔 앨범 <시 레벨> 앞면에 멤버들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 Sea Level 데뷔 앨범 Sea Level 데뷔 앨범 <시 레벨> 앞면에 멤버들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최우규

 
첫 곡 '더 레인 인 스페인(The Rain in Spain)'은 밴드가 가고자 하는 방향을 보여준다. 올맨 브라더스의 사촌이되, 더 자유로운 음악. 기타는 올맨 브라더스의 서던록, 블루스 록 색깔이다. 드럼과 피아노는 GRP(재즈 음반사) 계열의 퓨전 재즈다. 자칫 양측이 따로 놀 수 있다. 이를 베이스 기타가 확고하게 서서 중심을 잡는다.

두 번째 곡 '셰이크 어 레그(Shake a Leg)'는 흥겨운 로큰롤이다. 관악 연주가 능청스럽게 뿜어져 나온다. 척 레벨 노래 솜씨가 예상외다. 목청은 테너인데, 소리가 짱짱하다. 가사와 멜로디가 반복되는 후크(hook)는 귀에 쏙 꽂힌다. 세 번째는 연주곡 '타이달 웨이브(Tidal Wave)'. 멤버들은 기량을 뽐내기로 작정한 듯하다. 드럼이나 베이스도 연주가 화려하다. 한 음, 한 소절도 느슨하게 소비하지 않았다.

B면 첫 번째 곡 '낫싱 매터스 벗 더 피버(Nothing Matters But the Fever)'는 펑키한 스왐프 록이다. 스왐프 록은 로커빌리, 솔, 블루스, 컨트리, 펑크를 섞은 음악이다. 크리덴스 클리어워터 리바이벌(Creedence Clearwater Revival)이 대표 밴드다.

'그랜드 라세니(Grand Larceny)'는 재즈 피아니스트 닐 라센(Neil Larsen)이 썼다. 이 곡만 들으면 멤버들이 흙먼지를 풍기는 서던록 밴드에 몸담았던 과거를 유추하기 힘들다. 데이브 그루신(Dave Grusin)이 이끄는 퓨전 재즈 밴드를 연상시켜서다.
 
재즈록, 서던록 밴드 Sea Level 데뷔 앨범 뒷면 Sea Level 데뷔 앨범 <시 레벨> 뒷면에는 멤버들이 소개돼 있다.

▲ 재즈록, 서던록 밴드 Sea Level 데뷔 앨범 뒷면 Sea Level 데뷔 앨범 <시 레벨> 뒷면에는 멤버들이 소개돼 있다. ⓒ 최우규

 
앨범은 좋은 평가를 받지만, 잘 팔리지 않았다. 밴드는 멤버 세 명을 보강해 <캐츠 온 더 코스트(Cats on the Coast)>를 냈다. '호평, 판매 저조'라는 불운이 계속됐다. 서던록 인기가 과거만 못했기 때문이다. 신인 밴드가 설 자리는 더 좁았다.

1978년 올맨 브라더스 밴드가 재결성되자 제이모는 복귀했다. 레벌과 윌리엄스는 시 레벨을 지키기로 했다. 용 꼬리보다 뱀 머리를 택한 셈이다. 이후 앨범 세 장을 더 냈지만 주목받지 못했다. 시 레벨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멤버 운명도 갈렸다. 윌리엄스는 1983년 폐암으로 숨졌다. 향년 34세다. 놀스는 계속 기타를 잡았다. 1995년 파킨슨 병 진단을 받고도 1999년 앨범을 냈다. 2017년 별세했다. 제이모는 자신 이름을 내건 재즈 밴드를 이끌고 있다.

척 레벨에게는 밴드 해체가 행운으로 돌아왔다. 세션 연주자로 인기를 끌던 그에게 롤링스톤스가 <타투 유(Tattoo You)> 앨범 투어 오디션을 제의했다. 롤링 스톤스는 그의 음악적 역량을 높이 샀다. 1983년 <언더커버(Undercover)>부터 30개가 넘는 앨범에서 연주하고, 공연 때도 함께 다녔다. 공연 곡 선정을 맡기기도 했다. '스톤스 여섯 번째 멤버'라는 별명이 붙었다.

시 레벨 멤버들 역량은 그만큼 출중했다. 이들이 5년 전에만 결성됐다면 서던록 계열에서 올맨브라더스 밴드나 레너드 스키너드(Lynyrd Skynyrd)까지는 몰라도 마셜 터커 밴드(The Marshall Tucker Band), 블랙 오크 아칸소(Black Oak Arkansas)보다 인기를 누렸을 것이다. 무게 중심을 재즈 쪽으로 옮겼다면 스틸리 댄(Steely Dan)처럼 됐을 수도 있다. 5년쯤 뒤에 모여 팝에 중점을 뒀다면 토토(Toto)처럼 됐거나.

가정은 부질없는 일이다. 다만 위에 거론된 밴드를 좋아한다면 시 레벨도 구미에 맞을 것이다. 탕수육 좋아하면 꿔바로우를 좋아하듯이.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최우규 시민기자의 소셜미디어에도 게재합니다.
B메이저AZ록 시레벨 롤링스톤스 올맨브라더스밴드 SEALEV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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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간지 기자로 23년 일했다.문재인 정부 청와대에서 홍보기획, 연설기획비서관을 했다. 음반과 책을 모으다가 시간, 돈, 공간 등 역부족을 깨닫는 중이다. 2023년 12월 문재인 대통령의 말과 글을 다룬 책 <대통령의 마음>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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