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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녘에는 일제히 봄꽃들이 기지개를 켜고 있다. 꽃망울을 시샘하는 찬바람에도 아랑곳 않고 봄을 알리는 첫 신호탄은 역시 매화소식이다. 섬진강변을 따라 펼쳐진 광양매화마을은 봄의 전령으로 일반에 널리 알려졌다. 

매화의 개화 시기는 나무의 종류마다 다르다. 음력 12월에 피는 납월매는 주로 눈 속에 핀 설중매의 일종으로 순천 낙안면 금둔사는 다른 매화보다 2개월 일찍 꽃이 피는 납매로 유명해진 사찰이다. 그런가하면 4월이 다 되어서야 피는 화엄사의 홍매도 있다. 일반보다도 더 붉은 색을 띠기에 흑매라고도 부른다. 사찰 지붕의 검은 색과 매화의 진한 빛이 환상의 조합을 이룬다. 올해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탐매객의 관심이 더 쏠리고 있다. 

우연한 기회에 몇해전 눌인 선생을 알게 됐다. 그는 경남 청송에서 대규모 매화단지인 눌인매화숲을 조성해 우리나라 야생매화를 연구한다. 그동안 서로 교류하며 매화이야기로 우리의 인연은 깊어졌다. 

그는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 여러 나라의 야생매화를 찾아다니며 나무에 깃들인 옛사람들의 이야기를 조사 중이라고 했다. 중국과도 교류하면서 매우(梅友, 매화를 찾는 사람)들과 깊은 인연을 쌓고 있었다. 눌인 선생께 우리지역 야생매화에 대해 물었더니, 강직한 선비들이 유배했던 곳에서 토종매화를 찾아볼 수 없는 것이 못내 아쉽다고만 전했다. 

완도의 야생매화

주변에 물어물어 내친김에 전남 완도의 야생매화를 찾아봤다. 당인리와 불목리, 대야리에 그나마 진매의 특징을 지닌 토종매화가 자라고 있었다. 눌인 선생뿐만 아니라 전국에는 매화를 연구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것은 한중일 3국의 공통이다.

옛 선비들은 탐매의 풍류를 즐겼다. 춘설에 피어 바람결에 실려 오는 매향을 쫓아 떠나는 여행, 유서 깊은 고택의 담장이나 고찰의 뜨락을 오랫동안 지켜온 격조 있는 매화를 찾는 탐매객이 여전히 늘고 있다.

호남을 대표하는 매화가 있다. 백양사의 고불매, 전남대 교정의 대명매, 담양 지실마을의 계당매, 선암사의 선암매, 지금은 고사된 소록도의 수양매를 호남5매라 부른다. 그중 으뜸은 600년 수령의 천연기념물 제 488호 선암매이다.  

호남5매 외에 산청 3매, 경북 2매, 오죽헌의 율곡매 등이 각 지역을 대표한다. 탐매의 풍류가 중 조선시대 매화와 인연이 깊은 사람은 일평생 매화를 사랑한 퇴계 이황이다. 가사문학의 산실인 담양은 누정문화가 발달했다. 그로인해 선비들이 사랑한 토종매화가 유독 많다. 400년 된 하심매와 350년 된 와송당매 그리고 300년 된 미암매 등이 그것이다.

강직한 성품의 유배자의 흔적이 깃든 곳에 매화가 오랜 세월을 견디며 피어 있을 법도 한데, 우리지역에서 이름난 야생매화를 찾을 수 없어 너무 아쉽다. 찬바람을 이겨내고 핀 꽃을 보려고 선조들은 정원에 매화나무를 심었다. 

그러나 과실이 빈약한 토종매화를 요즘 사람들은 관심두지 않았을 것이다. 열매를 얻기 위함이 아닌, 오로지 꽃을 보려고 매화를 심는다는 것은 어찌 생각하면 이곳 사람들에게 사치스러움이었을까? 망망대해 유배지에서 이름난 토종매화를 볼 수 없는 이유를 들자면 이렇게 추측할밖에. 

매화는 야생 본연의 특성을 지닌 진매계와 살구와 접목한 행매계, 자두와 교잡종인 앵리매계가 있다. 야생매화를 찾는 탐매객이 오래된 매화를 찾는 것은 매화를 아끼고 가꾸던 선비들의 정신세계를 잇기 위함이기도 하다. 

신안 임자도에 유배했던 우봉 조희룡은 매화 그림으로 이름을 날렸다. 그는 무인의 벼슬을 얻었지만, 문무를 겸한 인물로서 추사 김정희의 제자이기도 해서 글씨는 추사체에 가깝고 난초와 매화 그림을 많이 남겼다. 1846년 58세 때 우봉은 왕명으로 금강산의 절경을 그렸으며 임자도 유배 중에는 꾸준히 매화 그림을 그렸다. 흰 매화꽃들이 향기로운 눈꽃의 바다처럼 빛나는 향설해를 남긴 조희룡은 매화백영루라고 이름 지은 집에서, 매화 병풍을 둘러놓은 채, 매화를 새긴 벼루와 먹을 쓰고, 매화차를 마시며 지냈을 만큼 매화를 무척이나 사랑했다. 

우봉은 매화를 그릴 때 "한 줄기를 치더라도 용을 움켜잡고 범을 잡아맨 듯해야 하며, 꽃 한 송이를 그려 넣더라도 하늘의 선녀와 같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의 그림 속 홍백매도대련에서 뿜어져 나오는 강렬한 기세와 화려한 색채의 향연은 보는 사람을 흠뻑 빠져 들게 한다. 그래서 위창 오세창은 우봉을 '묵장의 영수'라고 부르기도 한다.

완도군 당인리 지은사에는 운용매라고 하는 매화나무가 두 그루 있다. 15년 전 구불구불한 가지가 특징인 운용매를 가져다 심었는데, 꽃이 피면 사람들이 찾아온다. 용이 구름 위를 나는 것 같은 형태를 지녔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매화나무다. 

군외초등학교 불목분교 도서관 건물 뒤뜰에서 만난 야생매화
 
군외면 완도과수연구소 마당에는 수양매가 있다. 50~60년 수령으로 연구소 설립 당시 영암군에 사는 개인에게서 매입해 심어져 관리하고 있다.
 군외면 완도과수연구소 마당에는 수양매가 있다. 50~60년 수령으로 연구소 설립 당시 영암군에 사는 개인에게서 매입해 심어져 관리하고 있다.
ⓒ 완도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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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외초등학교 불목분교의 도서관 건물 뒤뜰에는 제법 큰 키를 자랑하는 야생매화 세 그루가 있다. 아는 사람만 안다는 불목매이다.
 군외초등학교 불목분교의 도서관 건물 뒤뜰에는 제법 큰 키를 자랑하는 야생매화 세 그루가 있다. 아는 사람만 안다는 불목매이다.
ⓒ 완도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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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외초등학교 불목분교의 도서관 건물 뒤뜰에는 제법 큰 키를 자랑하는 야생매화 세 그루가 있다. 아는 사람만 안다는 불목매이다. 도서관을 짓고 심었는지, 학교가 설립될 때 기념해 심었는지는 알려진 바가 없다.

그러나 분명 누군가는 학교의 시설을 기념해 오래도록 향기를 잃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심었을 것이다. 또, 군외면 완도과수연구소 마당에는 수양매가 있다. 50~60년 수령으로 연구소 설립 당시 영암군에 사는 개인에게서 매입해 심어져 관리하고 있다. 호남5매 중 소록도의 수양매가 고사해서인지 유독 관심을 끌고 있는 야생매화이다. 세 종류의 야생매화를 찾아 본 것만으로 그나마 위안을 삼는다. 

지금 완도읍 염수골에도, 서부도로 따라 줄곧 이어진 상왕산 지류 골짜기 마다 매화가 만발했다. 매화는 봄의 전령이다. 꽃샘바람에 날려 매화꽃 하나하나가 산화하기 까지 봄은 우리의 마음을 달뜨게 한다. 

마오쩌뚱이 좋아하던 모란을 뒤집고 중국의 국화로 제정 될 뻔했던 매화, 중국에는 매화를 사랑한 선비가 있었다. 송나라 사람 인포는 평생 혼자 살며 300그루의 매화를 심어 아내를 삼고 두 마리의 학을 길러 자식으로 삼았다. 

그를 기념해 속새를 떠나 자연을 벗 삼으며 유유자적하게 사는 선비의 풍류생활을 비유한 매처학자라는 말이 생겨났다. 그의 글에 새긴 소영과 암향은 성긴 그림자와 그윽한 향기를 풍기는 매화를 의미한다. 

곰곰이 매화를 생각하다가 보길도에 살면서 고산 윤선도를 연구하는 이에게 물었다. 보길도 원림 어디쯤에 고산 윤공께서 아끼시던 매화나무가 있는지요? 

돌아오는 대답은 강한 부정이었다. 

고산선생은 매화보다는 배꽃과 복숭아꽃을 즐기셨다는 것. 매화에 관한 자료를 정리하다가 한참 후에야 그 말뜻을 이해했다. 고산은 선비의 풍류보다는 신선의 삶을 살고자했던 차원이 다른 세상과 교류하고 있었음을.

정지승 문화예술활동가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완도신문에도 실렸습니다.


태그:#완도, #야생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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