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최고의 사극은 무엇일까. 취향과 선호에 따라 차이가 있겠으나, 대개는 몇 작품으로 수렴될 테다. 그중 가장 많이 언급되는 작품으로는 <용의 눈물><태조 왕건><불멸의 이순신>을 꼽을 수 있다(제작연도 순).
 
그중에서도 <태조 왕건>은 KBS 대하 사극의 정점을 이룬 작품이라 평가된다. 21세기의 시작을 기리며 2000년부터 2002년까지 2년에 걸친 200부작 대서사시를 이뤘다. 주말 저녁 황금시간대를 2년 동안 내어줄 만큼 화제를 모았고, 시청률이 평균 40%, 최고 60.5%로 한국 드라마사상 역대 5위를 기록했다(닐슨코리아 전국 기준).
 
이 드라마의 특별함은 그저 성적에만 머물지 않는다. 사극 명가라는 호칭이 무색하게 <불멸의 이순신> 이후 지리멸렬했던 KBS가 <고려거란전쟁>을 내놓고 마주하는 비판을 이 작품은 그야말로 정면에서 뚫어냈다. 말하자면 역사를 변주해 오늘의 대중과 만나는 사극의 고유한 권리를 역사왜곡이란 이름으로 비판하는 굳은 시선을 이 작품은 그대로 돌파해냈다.
 
 드라마 <태조 왕건> 포스터

드라마 <태조 왕건> 포스터 ⓒ KBS

 
깨지지 않는 기록... 60.5% 시청률 찍은 대하사극
 
제목에서 보여주듯 <태조 왕건>은 한반도 최초 통일국가인 신라의 마지막, 즉 후삼국 시대를 다룬다. 외세의 힘을 끌어들여 백제와 고구려를 멸하고 300년간 통일을 이뤄온 신라지만 9세기 말에 이르러 국운은 급격히 고꾸라지고 있었다. 서라벌에선 진골 귀족의 권력다툼이 잇따랐고, 구시대적 제도를 개혁하려는 시도는 번번이 골품제 최상단에 위치한 귀족들에 의해 좌절됐다. 배울 만큼 배웠다는 6두품 지식인은 나라를 떠나거나 지방 향리로 살기를 선택하기 일쑤였다.
 
무너져 문란해진 질서는 백성들을 괴롭게 했다. 민심은 신라를 떠나갔고 새 시대를 열망했다. 살기 힘들어진 백성들이 도처에서 난을 일으켰고 지방 호족들은 눈치를 보며 중앙의 명령을 따르지 않았다. 바야흐로 '군웅할거'의 시대, 지방에서 장군이며 국왕을 참칭하며 세력을 일으킨 이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드라마는 바로 이 시기를 그린다. 송악에서 대대로 무역업에 종사해온 성주 왕륭(신구 분)과 그의 아들 왕건(최수종 분)이 있고, 신라의 왕족으로 태어났으나 권력다툼에 쫓겨 유모와 함께 오랜 도주극을 벌여야 했던 궁예(김영철 분)가 있다. 또 한 편에는 상주 호족 아자개(김성겸 분)의 아들로 태어났으나 스스로 독립하여 신라의 무관이 되고, 훗날 일군을 이끌고 남도지방을 평정한 뒤 후백제를 세우는 견훤(서인석 분)이 있다. 그밖에도 기훤(김윤형 분), 양길(이치우 분), 김순식(박상규 분), 능창(김시원 분) 등 지역에서 굴기해 세력을 과시하는 이도 상당수다.
 
여러 무리의 우두머리가 제가 영웅이라며 일어난 시대는 반세기 동안 한반도를 수많은 전쟁으로 뒤덮는다. <태조 왕건>의 시작은 궁예의 철원 점령부터다. 한반도 중부의 요충지로, 그야말로 천하팔달 사방으로 통하는 곳이 바로 철원이다. 신라의 정규군이 파견돼 지키는 이곳을 점령하면 지역의 패자로 우뚝 설 것이 분명한데, 궁예가 제 병력을 이끌고서 철원을 치는 것이다.
 
 드라마 <태조 왕건> 스틸컷

드라마 <태조 왕건> 스틸컷 ⓒ KBS

 
궁예질, 누가 소리를 내었는가... 엄청난 캐릭터
 
그로부터 극은 궁예의 탄생과 성장, 시대의 영웅으로 자리하고 다시 몰락하기까지의 과정을 극적으로 그려낸다. 기실 이 극에서 궁예의 존재는 가히 전반부의 주인공이라 할 만하다. 신라의 왕족 출신이라는 확인된 바 없는 비사를 채택함으로써 주인공이 흔히 갖는 출생의 비밀을 설정하고, 어린 시절 그가 왕건의 아비인 왕륭에게 은혜를 입는 사건 등을 추가하여 극적 재미를 키운다.
 
뿐만 아니다. 난세의 영웅이라 해도 좋을 특출난 인간성을 담아내고, 다시 믿기 어려운 광증으로 파멸하는 입체적 캐릭터를 구현함으로써 <태조 왕건>, 나아가 한국 사극 사상 독보적 캐릭터를 창조해냈다. 그 결과가 무엇인가. 작품이 제작된 지 20년이 흘러서까지 궁예의 존재가 한국 사회에 각인된 것이다.
 
오늘날 한국인은 합리적 근거 없이 다른 이의 속마음을 단정 짓는 걸 궁예질이라 말한다. '누가 기침소리를 내었는가'라는 명대사를 변주하여 '누가 OO를 하였는가' 하고 말하는 경우도 잦다. 마구니가 가득 찼다며 신하들을 때려 죽이던 폭정까지도 때때로 소환되고는 한다. 그가 썼다는 관심법이란 말도 여전히 통용된다. 이쯤 되면 궁예라는 캐릭터가 얼마나 강렬했는지를 알 수 있을 테다.
 
극의 전반부를 궁예가 장악했다면 후반부는 왕건의 것이다. 궁예에 비해 선하고 덕을 갖춘 밋밋한 주인공으로 그려졌다고 아쉬운 소리가 나오기는 하지만, 어디까지나 궁예가 대단해서일 뿐 왕건이 못해서는 아니다. 오죽하면 고려를 세운 것이 최수종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만큼 안정된 캐릭터와 배우가 아니었던가.
 
 드라마 <태조 왕건> 스틸컷

드라마 <태조 왕건> 스틸컷 ⓒ KBS

 
<태조 왕건>을 후삼국판 <삼국지>라 부르는 이유
 
최후의 승자로서 비교적 많은 사료가 있기에 왕건은 궁예며 견훤에 비해 더 많은 에피소드가 역사를 바탕으로 다뤄진다. 그럼에도 드라마는 역사적 사실을 그대로 재구성하는 데 멈추지 않는다. 많은 부분에 상상을 더하고, 극적 재미를 위해 적극 변주하기를 멈추지 않는다. 심지어는 중국 역사 대하소설 가운데 제일로 손꼽히는 <삼국지>를 받아들여 극 안에 녹여내기까지 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극은 왕건에게 세 명의 의제를 둔다. 유금필, 능산(훗날의 신숭겸), 박술희가 그들로, 고려에서 손꼽는 무장이며 개국공신인 이들 셋을 왕건의 의제로 붙여놓는 것이다. 심지어는 이들이 의형제를 맺는 장면의 대사까지 '낳은 날은 다르나 죽는 날은 같으리라'는 저 나관중의 유명한 문장을 빌려다 쓸 정도다.
 
그뿐인가. 왕건이 나주로 이름 붙이게 되는 금성, 백제의 영토로 해외와 통하는 이 천혜의 땅을 도모할 때는 노골적으로 <삼국지>의 설정을 가져온다. 왕건의 책사로 그 캐릭터가 다분히 제갈량 등 <삼국지>의 군사를 연상시키는 태평(김하균 분)이 하늘에 기원하여 바람을 빌리고 그로부터 화공을 통해 백제 수군을 전멸시키는 전투가 이어지는 것이다. 저 유명한 적벽대전이 <태조 왕건>에서 금성해전으로 재현되는 순간이다.
 
이 전투에선 태평의 계책에 따라 도망하는 견훤군을 왕건의 수하들이 기다렸다 타격하는 이야기가 잇따른다. 이 역시 제갈량의 계책으로 유비의 수하들이 조조에게 심대한 타격을 입히는 <삼국지>의 차용이라 할 만하다.
 
 드라마 <태조 왕건> 스틸컷

드라마 <태조 왕건> 스틸컷 ⓒ KBS

 
불편이 없던 시절, 명작이 빚어졌다
 
더욱 흥미로운 건 이 같은 차용과 변주를 그저 소소하게만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오늘날처럼 돋보기를 들이대고 마치 사극이 역사다큐인양 불편하게 바라보는 시각이 없던 시절의 미덕을 그대로 보여준다. 궁예가 양길의 세력을 흡수하고 그 수하의 장수 복지겸(길용우 분)을 얻는 장면은 조조가 관우를 객으로 들이던 순간을 연상케 한다. 관우가 유비의 아내들의 안전을 보장받는 조건으로 조조 수하에 들었듯, 복지겸은 궁예의 아내로 있는 양길의 딸의 안전을 약속받는 것이다.
 
이밖에도 견훤이 삼한에 명성 높은 지식인 최승우(전무송 분)를 얻을 때는 그가 머무는 절을 여러 차례 찾고 절까지 올리며 예를 다하는데, 이는 노골적으로 <삼국지>의 삼고초려를 본 딴 것이다. 또 제1차 조물성 전투에선 견훤의 아들 금강(전현 분)이 눈에 화살을 맞고 이를 뽑다 빠져나온 눈알을 삼키는 장면이 나온다. 이때 그는 <삼국지>의 하후돈을 언급하며 '부모가 준 눈알을 버릴 수 없다'고 삼키는 것이다. <태조 왕건>이 <삼국지>의 영향을 얼마나 받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드러내는 대목이다.
 
전술했듯 <태조 왕건>은 <삼국지>의 주요 에피소드를 작품 곳곳에서 가져다 재활용한다. 중국이 아닌 한반도 역사를 무대로 한 정통 사극이 중국을 대표하는 역사소설을 노골적으로 차용했음에도 이 작품을 비난하는 목소리는 얼마 되지 않았다. 그건 이 작품이 한국 사극을 대표하는 작품 가운데 하나로 길이 남을 만큼 잘 만들어졌기 때문이기도 하거니와, 극은 어디까지나 역사와 별개의 토대를 가질 수 있다는 성숙한 인식이 자리하고 있었던 덕분이다. 그러나 오늘날엔 과연 어떠한가.
 
<태조 왕건>은 궁예와 견훤, 왕건, 박술희, 아자개, 최승우, 최응 등 수십 년이 지나서까지 생생한 캐릭터를 여럿 창조했다. 그를 바탕으로 극을 즐기는 재미를 주었고, 그 근간이 된 역사를 찾아 공부하게끔 이끌었다. 무엇보다 극 자체가 수십 년이 지나서까지 꾸준히 작품을 찾는 이를 만들어낼 만큼 멋진 드라마로 남았다. 그리고 그 성공에 저변에는 작가에게 보장되는 창작의 자유와 좋은 원작이 이끌어내는 관계자들의 열정이 자리한 것이 분명한 일이다.
덧붙이는 글 김성호 평론가의 얼룩소(https://alook.so/users/LZt0JM)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태조왕건 KBS 사극 최수종 김성호의씨네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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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기자.글쟁이. 인간은 존엄하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을 간직한 사람이고자 합니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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