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지난 아시안컵 4강 경기 전날 손흥민, 이강인 불화 관련 뜨거운 논란을 접하던 중 문득 2019년 겨울, 오마이뉴스가 주최한 덴마크 기행 때 겪은 일화가 떠올랐다.

에프터스콜레(청소년을 위한 덴마크의 갭이어 제도) 교사 양성학교 방문 중 점심시간에 있던 일이다. 수백 명이 식사하는 학교 내 식당에 40여 명의 한국인 방문객인 우리의 자리는 따로 정해지지 않았다. 여행 주최 측은 서로 교류할 겸 아무 곳이나 빈자리에 앉으라고 권했다.

나는 우리 일행 중 중년의 한 여자 분과 함께 대 여섯 명의 덴마크 청년들이 모인 테이블에 앉았다. 모두 학생이리라 예상하고 궁금한 점을 서로 묻고 들으며 식사를 했다. 대화 중반에 들어서자 그 중 한 명이 교수라는 걸 알게 되었다. 교사 양성학교다 보니 학생들의 나잇대가 비교적 다양했고 서로 격 없는 동등한 관계로 보여 모두 다 학생일 것이라고 착각했다. 그 사이에서 느껴지는 자연스러움과 편안함은 영어가 짧고 처음 그곳을 방문한 외국인인 나에게도 예외가 아니었다.

10여 분 이야기를 나누던 중 어디선가 긴 종소리가 울렸다. 소리가 나는 쪽을 바라보니 식당 천장 한 편에 우리의 오래된 학교에 있을 법한 종이 걸려 있었다. 누군가 그 종에 달린 줄을 잡아 흔들자 모두가 일제히 들고 있던 포크와 나이프를 내려 놓았다. 식사를 반도 하지 못한 나는 의아해서 주변의 눈치를 살폈다. 맞은 편에 앉아 있던 청년 한 명이 식사를 멈추고 그쪽을 향하라는 듯 가벼운 눈짓을 보냈다.

오전 내내 도보량이 상당해 배가 많이 고팠기에 '우리 정서에 영 안 맞네. 밥 먹을 땐 개도 안 건드린다는 말이 있거늘... 밥 먹다 말고 별안간 무슨 일이란 말인가' 하는 불편감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곁에 있던 일행이 내 귀에 대고, '이런 건 좀 공산당 같지 않아?'라고 속삭였다.
 
덴마크의 한 교사 양성 학교 식당에서 모든 학생들과 교직원들이 일제히 식사를 멈추고 한 구성원의 발언에 집중하고 있다.
 덴마크의 한 교사 양성 학교 식당에서 모든 학생들과 교직원들이 일제히 식사를 멈추고 한 구성원의 발언에 집중하고 있다.
ⓒ 김선희

관련사진보기

 
그때부터 나는 사람들의 표정을 두루 살폈다. 종을 친 사람은 덴마크어로 짧게 말하고 옆으로 비켜섰다. 그의 소개를 받은 것인지 곁에 서 있던 한 청년이 마이크 없이 1~2분간 목청껏 발언했다. 그러는 동안 모두 경청했다. 그의 말이 끝나자 청중은 일제히 소리 내어 웃으며 박수를 쳤다. 모두 약속한 듯 너그럽고 환하기 짝이 없었다. 그리고 다시 자연스레 식사가 시작되었다.

어리둥절해 있는 내게 여러 청년들이 다정한 미소로 '이제 먹어도 된다'라고 눈짓해 주었다. 우리 일행이 그의 발언 내용을 궁금해하자 한 청년이 '기숙사 생활하면서 그가 느낀 소소한 불편 사항에 대해 개선점을 제안했다'고 답해주었다. '이런 일이 매일 일어나느냐'고 내가 묻자, '거의 매일 있는 일'이라고 자랑스러운 듯 답했다.

학생, 교사, 교직원 가리지 않고 이 교육기관에 속한 그 누구든 점심시간마다 전체를 향해 하고 싶은 말이 있을 때 종을 울리고 발언할 수 있다고 했다. 구성원 간 공개 토의를 통해 그렇게 하기로 사전 합의가 되어 있다는 것이다. 발언 내용은 대개 소소한 고충 토로거나 가벼운 농담이라고 했다.

그 과정을 지켜보며 가장 놀란 점은 단 한 명에게도 강제나 억압의 정서가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발언자를 향한 호기심 어린 시선과 자발적 참여의 흔쾌함이 제 각각의 표정으로 드러나 있을 뿐이었다.

8일간 여러 교육기관, 공공기관, 환경 보호 시설, 민간 기업 등을 다니며 덴마크 사회 전반에 '구성원 간 차별 없는 소통 구조'가 자리잡혀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갈수록 경직되어 가는 교직 문화 속에서 평소 답답증이 심했던 나에게 무척 부러운 지점이었다.
  
손흥민 선수 인스타그램 갈무리
 손흥민 선수 인스타그램 갈무리
ⓒ 인스타그램

관련사진보기


대표팀의 두 선수 간 갈등 사태에 관한 뉴스를 접했을 때 정확한 사건 경위를 접하기도 전에 몰아닥치는 대중의 격한 논란에 무척 안타까웠다. 두 선수 모두 정신적 타격이 적지 않으리라고 예상되었기 때문이다. 몇 명 선수의 식사 자리 이탈에 대한 주장의 시정 요구로 갈등이 촉발되었다는 내용을 접했을 때, 주요 경기를 앞두고 단합과 소통을 위해 식사 자리를 끝까지 함께하기로 한 점에 관해 구성원 간 가치 공유 과정이 있었는지 궁금했다.

극한 갈등 상황이 일어난 이후에도 당사자 간 대화가 충분히 이루어졌는지도 궁금했다. 어제(21일) 발표된 두 선수 간 화해도 각자의 내면적 이해와 자발성에서 출발한 결과인지 궁금하다.

이 일로 두 스포츠 스타가 대중의 난도질에 더이상 피해받지 않기를 바란다. 다만 스포츠계가 원만한 소통 구조의 필요를 고민하는 계기로 삼았으면 좋겠다. 서로 다른 문화권에서 성장한 인재들이 대화를 통한 정서적 교류 가운데 팀의 가치를 공유하며 자발적 참여로 유감없이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풍토가 조성되기를 갈망한다.

태그:#손흥민이강인불화, #손흥민이강인화해, #꿈틀비행기, #덴마크, #대화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