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은 10여 년 전부터 기다려온 영화다. 박근혜 대통령 집권기였던 2013년,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제작한 <백년전쟁>이라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역사 수업의 소재로 썼다가 봉변을 당했다. '일베'가 창궐하던 당시 '빨갱이 교사'로 낙인찍혀 조리돌림 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봉인이 해제된 미국 국립 문서보관소의 자료를 바탕으로 제작된 <백년전쟁> 속 '이승만의 두 얼굴'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초대 대통령으로 추대된 독립운동가라고 하기엔 기록으로 드러난 그의 행적이 너무나 비루했다. 오로지 자신의 권력욕을 채우기 위해 독립운동을 활용한 정치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아이들도 경악하긴 마찬가지였다. 초대 대통령을 넘어 '국부'라고 칭송해마지않던 이승만에 대한 배신감을 토로했다. 당시만 해도 아이들은 4.19 혁명으로 권좌에서 물러났다는 것과 6.25 전쟁 중 한강철교를 폭파하고 도망쳤다는 게 이승만의 '유이한' 흠결로 알고 있었다.
 
대통령보다는 '박사'라는 직함이 더 익숙한 이승만의 학위 취득 과정도 석연치 않고, 미주에서의 독립운동 역시 온갖 분란만 초래했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그의 '제2의 고향' 하와이에서 대한인 국민회 설립을 주도한 박용만과의 갈등이 대표적이다. 불세출의 독립운동가인 신채호와 이회영 등과도 독립운동 방식을 두고 끊임없는 마찰을 빚었다는 건 익히 잘 알려져 있다.
 
<백년전쟁>은 3.1 운동 직전 이른바 '국제연맹 위임 통치 청원'을 주도한 사실이 뒤늦게 밝혀져 탄핵의 빌미가 됐다는 점도 부각했다. 제1차 세계대전 직후 창립된 국제연맹의 위임 하에서 실력 배양을 통해 점진적으로 독립하자는 주장이다. 당시 신채호 등이 "이완용은 있는 나라를 팔아먹었지만, 이승만은 없는 나라를 팔아먹었다"라고 한탄한 바로 그 사건이다.
 
이승만은 강대국을 상대로 한 외교만이 독립을 이룰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당시 국내외 항일 무장 투쟁을 폄훼하는 모습도 담겼다. 약육강식의 논리가 횡행하는 현실에 눈감은 순진한 발상이라며 조롱했다. 나아가 그의 독립운동 자금 편취 행적과 여성 편력까지 영상에 담아냈다.
 
반론이 필요했다. 당시 <백년전쟁>의 사회적인 반향이 워낙 컸기에, 곧이어 적시된 내용의 사실 확인부터 역사적 사건의 다양한 해석까지 날 선 반박이 뒤따를 줄 알았다. 그즈음 정부의 '역사 교과서 국정화' 시도를 막아낼 수 있었던 것도 역사적 관점과 해석의 다양성을 존중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3.15 부정선거의 책임, 이승만에게 물을 수 없다? 
 
 16일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건국전쟁'은 전날 5만1천여명(매출액 점유율 22.4%)의 관객을 동원해 박스오피스 2위에 올랐다.

16일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건국전쟁'은 전날 5만1천여명(매출액 점유율 22.4%)의 관객을 동원해 박스오피스 2위에 올랐다. ⓒ 연합뉴스

 
'학교에서 배우지 못한 대한민국의 건국과 이승만 대통령의 역사.'
 
지난 1일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 <건국전쟁>의 부제다. 제목만 보고도 10여 년 만에 <백년전쟁>을 반박하는 작품이 나왔다는 생각에 내심 기뻤다. 사건이든 인물이든 역사적 평가가 긍정 또는 부정 일색일 수는 없다. 공은 공대로, 과는 과대로 인정하고 성찰하는 게 후세의 몫이자 역사교육의 역할이라고 확신해온 터다.
 
그러나 헛된 기대였다. <백년전쟁>이 지금껏 알지 못했던 내용을 드러내 충격을 주었다면, <건국전쟁>은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을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해 충격을 주었다. 아무런 근거도, 전후 맥락도 없이 '국뽕' 수준의 영상과 음악을 활용해 감성적으로 화면을 가득 채웠다. 숫제 '이승만이 그렇다면 그런 것'이라는 식이다.
 
"공은 '자신 덕', 과는 '남 탓'이라는 거잖아요."
 
영화를 함께 본 아이들의 한 줄 평이다. 노골적으로 이승만을 두둔하는 영화치곤 내용이 너무 허술하다며, 되레 그의 업적이 변변찮다는 방증 아니겠냐고 말했다. '학교에서 배우지 못한' 게 아니라, '학교에서 배운 걸 통째로 부정하는' 영화라고 명토 박았다.
 
아이들 말마따나, 딱히 새로운 내용은 없다. 4.19 혁명과 6.25 전쟁, 3.1 운동 등 우리 현대사의 굵직한 사건을 다루고 있다. 장면마다 이승만의 업적을 부각시키기 위해 상세한 내레이션을 입혔는데, 우리 현대사를 조금이라도 공부한 이들이라면 궤변투성이임을 단박에 알 수 있다. 등장하는 인터뷰이들의 적실성과 학문적 전문성도 부족하다는 느낌이 역력하다.
 
100분의 러닝타임 중에 10분가량을 할애한 해방 후 토지개혁 관련 내용이 대표적이다. 토지개혁을 통해 산업 기반이 마련됐고 기적적인 경제 성장을 이룰 수 있었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실제로 친일 지주들의 거센 반대를 무릅쓴 토지개혁은 이승만 정부의 정통성을 확보하는 데에 일등 공신이었다.
 
그러나 은근슬쩍 지워버린 사실이 있다. 1949년 이른바 '농지개혁법'의 제정을 이승만의 공적으로 추앙하기엔 어색한 구석이 많다. 이승만 정부의 초대 농림부 장관이었던 조봉암의 역할이 지대했던 까닭이다. 또한, 농민들의 열망에 따라 1946년 3월 38도선 이북 지역에서 전격 시행된 토지개혁에 대한 미군정의 대응 성격도 뚜렷했다.
 
그토록 강조한 토지개혁의 공로자인 조봉암은 4.19 혁명을 한 해 앞둔 1959년 이승만에 의해 '사법 살인'을 당했다. 평화 통일을 주장하는 등 이적행위를 했다는 죄목이었지만, 실제로는 1956년 3대 대통령 선거 때 혁신계 후보로 출마해 상당한 득표율을 기록했다는 점이 직접적인 이유였다. 민주당 신익희 후보가 갑작스럽게 사망했던 바로 그 선거다.
 
백 보 양보해서, 각료의 성취이니만큼 대통령 이승만의 공적으로 평가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4.19 혁명의 직접적인 원인이 된 3.15 부정선거의 책임도 이승만에게 있다고 보는 게 논리적이다. <건국전쟁>은 이승만에게 3.15 부정선거의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내용으로 시작된다. 85세 고령의 대통령의 눈과 귀를 가린 부패한 관료들의 비위일 뿐이라고 설명한다.

이승만의 공적, 황당한 이유
 
 다큐멘터리 <건국전쟁> 스틸 이미지.

다큐멘터리 <건국전쟁> 스틸 이미지. ⓒ 다큐스토리프로덕션

 
귀를 의심할 만큼 황당한 내용도 있다. '런승만'이라는 별명이 생긴 계기인 6.25 전쟁 발발 직후 한강철교 폭파를 최고 지도자로서 당연한 결정이라고 두둔했다. 대통령이 최전방에서 적과 맞서 싸우는 것보다 후방으로 피신해 전쟁을 지휘하는 게 유리하다는 거다. 폭파 당시 희생된 민간인 숫자도 70명 정도에 불과하다는 믿거나 말거나 식 주장도 덧붙였다.
 
제주 4.3과 여순 사건에 관한 내용도 기존의 정설을 전면 부정하고 있다. 사건이 일어난 전후 맥락을 소거한 채 남로당이 주도한 폭동이자 반란으로 규정했다. 미소 냉전과 극심한 좌우 대립, 그 와중에 생존을 도모한 친일반민족행위자들의 준동이라는 해방 직후의 정치 사회적 현실을 외면한 납작한 역사 인식을 보여준다.
 
심지어 6.25 전쟁 전후에 벌어진 민간인 집단 학살 사건조차도 '피해자 중심주의'가 외려 정확한 진상규명을 방해한다는 주장까지 폈다. 제주 4.3 당시 "남녀노소 가리지 말고 불순분자를 제거하라"는 이승만의 명령을 두둔하려는 듯하다. '빨갱이'여서 죽인 게 아니라, 죽이고 난 뒤 '빨갱이'로 낙인찍었던 야만의 역사에 일말의 반성조차 없다.
 
압권은 전후 1950년대 높은 교육열을 이승만의 업적으로 미화하고, 교육을 통한 민주주의 의식이 4.19 혁명을 가능하게 했다는 주장이다. 말하자면, 이승만의 교육 정책이 이승만을 권좌에서 내쫓으면서 결실을 맺었다는 이야기다. 모든 걸 이승만으로 공으로 돌리려다 보니, '자해'의 논리까지 거침이 없다.
 
"이승만을 먹여 살리는 건 오로지 북한뿐이네요."
 
느닷없는 <건국전쟁>으로 되레 이승만이 더 추레해졌다며, 한 아이가 이렇게 매조지었다. 감독이 이 영화를 통해 건네려는 메시지는 이 하나뿐이라고 단언했다. 가난한 북한에 견줘 남한이 부유한 건 다 이승만 덕이라는 것. 자유민주주의는 '선'이고, 공산주의는 '악'이라는 철 지난 이분법만 난무한다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의 이어진 촌철살인에 무릎을 쳤다.
 
"현대사에 무지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선동 영화에 부화뇌동하는 2024년 대한민국의 현실이 씁쓸하네요."
건국전쟁 이승만 백년전쟁 트루스포럼 김덕영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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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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