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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 거주했던 반지하 집. 침수 피해로 난장판이 됐다.
 기자가 거주했던 반지하 집. 침수 피해로 난장판이 됐다.
ⓒ 차종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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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반지하 집은 2022년 8월 서울에 내린 폭우로 완전히 침수됐다. 복구하는 데 꼬박 한 달이 걸렸다. 나아질 만하니 이듬해 또다시 장마가 찾아왔다. 늦은 밤 유리창을 때리는 빗소리에 두려워하고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길 며칠. 더는 견디지 못하고 친구의 집으로 피신했다.

간절히 지상층으로 올라가고 싶었다. 하지만 여의찮은 주머니 사정이 문제였다. 반지하 집의 계약만료일이 다가오자, 어떻게 이사 준비를 해야 할지 걱정이 앞섰다. 웹상에도 관련한 경험담을 찾아볼 수 없어 막막했다. 그러다 주택도시기금에서 '비정상거처 이주지원 버팀목전세자금 대출'을 시행한다는 소식을 접했다.

과정은 험난했지만, 기자는 해당 대출의 도움을 받아 한 달 만에 지상층으로 이사를 갈 수 있었다. 같은 어려움을 겪고 있을 이들을 위해 경험담을 남긴다.

5000만 원까지는 무이자 대출

 
비정상거처 이주지원 버팀목전세자금 대출
 비정상거처 이주지원 버팀목전세자금 대출
ⓒ 주택도시기금 홈페이지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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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상거처 이주지원 버팀목 전세자금 대출은 쪽방·고시원·여인숙 등에 거주하고 있는 '비정상거처 거주자'들을 위해 만들어졌다. 수해를 당한 반지하 거주자도 포함된다.

기자는 해당 대출을 이용하면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않아도 이사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해당 대출의 한도는 8000만 원으로, 5000만 원 한도까지는 무이자이며 5000만 원 초과분에 대해 1.2~1.8%의 금리가 발생한다. 이자가 시중은행보다 매우 저렴하기 때문에 사회 초년생 신분이어도 부담이 없었다. 만약 HUG 주택도시보증공사 보증을 받는다면 전세 금액의 100%까지도 대출받을 수 있기에 목돈이 없어도 보증금 조달 걱정을 덜 수 있었다.

대출 신청인과 배우자의 합산 총소득이 5000만 원 이하, 합산 순자산이 3억 6100만 원(2023년 기준) 이하라는 조건을 만족하기에 대출이 승인될 가능성이 컸다. 하지만 공공임대주택 입주 여부, 무주택 여부, 신용도, 중복대출 금지 등의 변수도 있기 때문에 우선 가까운 기금수탁 은행과 상담하기로 했다.

 
부동산 어플리케이션으로 매물을 알아보고 있는 모습
 부동산 어플리케이션으로 매물을 알아보고 있는 모습
ⓒ 직방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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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는 회사 인근인 서울 마포구로 이사하기 위해 대출 한도의 100%를 활용, 보증금 8000만 원짜리 반전세 집을 구하기로 했다. 그러려면 HUG 보증을 받을 수 있는 집을 찾아야 했다.

하지만 서울 마포구에서 보증금 8000만 원이고 HUG 보증까지 가능한 집은 정말 찾기 어려웠다. 어떤 동네의 어느 부동산을 가도 "그런 집은 현재 없다. 그리고 그런 조건의 집을 찾기 위해 예약을 한 사람이 20명이 넘는다"는 답이 돌아왔다.

부동산 애플리케이션에서 대략 1000개 가까이 되는 매물을 조회하고 그중 30군데에 문의를 했다. 하지만 HUG 보증이 되는 매물은 고작 2개뿐이었다. 해당 집이 버팀목 대출을 받을 수 있는 곳인지 아는 사람은 드물었고, "네? 비정상…뭐요?"라며 제도의 존재조차 모르는 부동산도 열에 아홉은 됐다.

방을 찾아본 지 두 달쯤 됐을까, 극적으로 조건에 맞는 지상층 집을 발견했다.
 
전세사기 위험도 스캔 어플리케이션
 전세사기 위험도 스캔 어플리케이션
ⓒ 내집스캔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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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과 같은 시국에 이사할 때는 전세 사기의 위험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집을 보러 가기 전에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전세 사기 위험성을 검토했다. 시중에는 전문권리 분석사가 등기부등본과 건축물대장을 토대로 전세 사기 리포트를 작성해 주는 서비스가 다수 있다. 리포트에는 계약 안전도 등급, 보증보험 가입 가능 여부, 집주인 정보, 세금 체납 및 압류 이력 여부 등이 적혀있다. 보너스로 해당 집이 전세 대출이 나오는지도 조회할 수 있다.

기자가 고른 집은 동네에서도 안전도가 '중상위권'에 속했다. 미미한 빚은 있지만 위험한 권리관계가 없었다. 리포트를 통해 거주 중 발생할 수 있는 여러 시나리오와 그에 맞는 대처 방안까지 숙지한 뒤 부동산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중개사와 함께 집을 본 기자는 부동산에서 준 서류를 들고 은행에 들러 가심사를 받았다. 100% 대출이 나올 거 같다는 답변을 받자 가계약금 50만 원을 지불했다. 본계약까지는 며칠도 걸리지 않았다. 혹시 모를 사고를 대비하기 위해 임대인에게 국세·지방세 완납증명서와 선순위 임차인 정보를 지참하도록 부탁했다.

총 400만 원 규모의 계약금은 반지하 집 임대인에게 전세금 일부를 좀 일찍 돌려받을 수 있겠느냐고 요청해 마련할 수 있었다. 길고 긴 임대차계약서를 검토한 뒤 도장을 찍었다. 관할 주민센터에서 확정일자를 받고 임대차 신고까지 마쳤다.

이제 버팀목 자산심사를 치러야 한다. 은행에 방문하거나 웹에서 처리할 수 있는데, 기자는 은행에 직접 방문했다. 담당 행원은 신분증·주민등록등본과 초본·임대차계약서·비정상거처 거주 확인서·가족관계증명원·재직증명서·사업자등록증·급여명세서·건강보험자격득실 확인서·건물 등기사항전부증명서를 요구했다.

대부분 간단한 검색을 통해 발급 방법을 확인할 수 있는 서류들이지만, 비정상거처 거주 확인서의 경우 비정상거처가 위치한 관할 주민센터에서 신청을 통해 발급받을 수 있었다. 급여명세서 또한 회사의 직인이 날인된 최근 6개월분이 필요하기에 주의해야 한다.
  
사전자산심사가 끝난 후 도착한 카카오톡 알림톡
 사전자산심사가 끝난 후 도착한 카카오톡 알림톡
ⓒ 주택도시기금 카카오톡 메시지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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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전자산심사는 일반적인 경우 하루 이틀 내로 마무리되며, 카카오톡을 통해 적격 판정 여부가 통지됐다. 사전자산심사 적격 판정을 받은 뒤 재차 은행에 방문해 대출 신청을 했다. 이때 대출거래약정서를 포함한 10종의 서류를 작성해야 했다.

대출 신청을 마치면 은행은 임대인에게 채권양도통지서를 보내게 된다. 이사 당일 전입신고를 완료하고 보증료와 인지세 출금을 위해 통장을 채워놓으라는 담당 행원의 요청을 받았다. 이사 후 한 달 이내에 전입신고 이후의 주민등록등본을 제출하라는 통지도 차후 문자로 왔다.

이사 당일이 되자 반지하 집 임대인이 앞서 준 계약금과 정산할 관리비를 제외한 전세금을 돌려줬다. 기자는 반지하 집에 걸린 전세대출을 애플리케이션으로 상환하고 은행에 전화를 걸어 새 지상층 집에 대한 전세보증금반환보증 발급 및 대출 실행을 요청했다. 은행에서는 기자가 임대인에게 계약금 400만 원을 지급한 사실을 알고 7600만 원을 임대인에게 송금했다. 그리고 나머지 400만 원은 기자에게 돌려줬다. 기자는 이사를 마친 뒤 전입신고와 주민등록증 재발급 신청을 했다.

월세 20만 원도 최장 6년간 지원받아
 
서울형 주택바우처 - 반지하 거주가구 이주 지원(반지하 특정바우처)
 서울형 주택바우처 - 반지하 거주가구 이주 지원(반지하 특정바우처)
ⓒ 서울주거포털 홈페이지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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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왕 서울 마포구에 전입한 만큼 서울시에서 제공하는 '서울형 주택바우처 - 반지하 거주 가구 이주 지원(반지하 특정바우처)' 지원도 놓치지 않았다. 반지하 특정 바우처는 최장 6년 동안 반지하에서 지상층으로 이주한 가구에 월 20만 원을 지원하는 제도다. 최대 1440만 원까지 보조받을 수 있는 셈이다.

기자는 주민센터에 방문해 서울주거포털에 올라온 신청서와 개인정보 이용 및 제공 사전동의서를 작성하고 신분증, 임대차계약서 사본, 통장 사본, 대출 거래 약정서를 제출했다. 전세 대출보다 서류 절차가 매우 간편했다. 담당 공무원에게 지원금이 매월 말 지급되며, 집 계약이 연장될 경우 지원금은 계속 수령할 수 있다는 설명을 받았다.
 
지상층으로 이주한 뒤
 지상층으로 이주한 뒤
ⓒ 차종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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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내 사후자산심사가 끝나면 HUG 보증보험에 가입할 차례다. 임대인이 주택임대사업자인 경우 보증보험을 필수로 가입해야 하기에 임차인은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가끔은 임대인이 전세금의 100% 범위까지 가입을 안 해두는 탓에 낭패를 보곤 한다. 그래서 임차인이 자체적으로 전세금의 100% 범위까지 보증보험을 가입해두는 게 안전하다.

기자는 가진 목돈 한 푼 없이 보증금 8000만 원을 거의 무이자로 대출받았고, 월세 20만 원도 최장 6년간 지원받게 됐다. 처음 집을 본 날로부터 한 달이 되는 날, 모든 절차가 마무리됐다.

이제 기자는 서울 마포구에서 단란하게 지상층 라이프를 즐길 수 있게 됐다. 해당 제도가 없었다면 반지하 집을 탈출할 수 있었을까. 제도의 존재는 필요한 이를 만났을 때 비로소 빛난다.

태그:#반지하, #이주, #지상층, #주택도시기금, #침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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