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의 한 장면.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의 한 장면. ⓒ SBS

 
이호성(1967-2008)은 프로야구 해태 타이거즈에서 활약한 야구선수 출신으로 1990년대를 풍미한 유명 스타플레이어이자 프로야구 선수협회 회장까지 역임한 인물이다. 하지만 은퇴후 2008년 내연녀와 그녀의 세 딸까지 총 4명을 살해하고 본인은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충격적인 사건을 저지르며 세상을 놀라게 했다.
 
한때 최고의 야구스타는 왜 살인범이 되어야만 했을까. 이 사건은 이호성이 경찰에 체포되기 전에 아무런 진술도 남기지 않고 자살해버렸기 때문에 범행동기나 관련 의혹들은 명확하게 규명되지 못하고 찜찜하게 종결되어야 했다. 그리고 그 이면에는 취재윤리를 무시하고 진실을 밝힐 수 있었던 기회를 날려버리게 만든 언론의 책임도 적지 않았다.
 
네 명을 살해한 야구선수 이호성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의 한 장면.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의 한 장면. ⓒ SBS

 
2월 1일 방송된 SBS 실화 스토리텔링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113회에서는 '선아의 SOS, 네 모녀 실종사건'편을 통하여 이호성 살인사건의 미스터리를 조명했다.
 
2008년, 서울 마포에 거주하던 올해 22살의 선아씨는 세 자매  첫째로 뮤지컬학과에 재학중인 학생이었다. 뮤지컬 배우를 꿈꾸던 선아씨는 과에서 장학금을 받을 정도로 모범생이었고, 바쁜 대학 생활 중에도 동생의 입시 준비를 물심앙면으로 도울 정도로 자매관계도 돈독했다. 선아씨의 가족은 1년 전 부친이 별세한 후 식당을 운영하는 어머니와 세 딸이 서로를 의지하며 화목하게 지내고 있었다.
 
2월의 셋째 주 월요일. 방학이었지만 뮤지컬 공연을 앞두고 선아씨는 학교에서 늦게 까지 연습을 마치고 귀가한다. 선아씨는 근처 자취방에 가자는 친구의 제안을 집에 가야 한다며 거절하고 용인에서 서울로 향하는 버스에 올랐다. 그리고 이 모습이 친구들이 선아씨를 본 마지막 순간이었다.
 
다음날부터 선아씨는 며칠째 학교에 나오지 않았고 감감무소식이었다. 선아씨만이 아니라 가족인 네 모녀가 모두 동시에 연락이 두절됐다. 일주일이 흘러 불안해진 선아씨의 외삼촌은 모녀의 행방을 수소문했다. 선아 엄마가 운영하던 가게의 직원들은 그녀가 "좋은 일이 있어서, 어디 며칠 여행 다녀온다"는 말을 했다고 진술했다.
 
결국 외삼촌은 지구대 경찰들과 함께 선아네 집으로 찾아갔다. 하지만 말끔히 정돈된 집안에는 아무도 없었고 네 모녀의 행방은 여전히 묘연했다. 선아씨를 비롯해 네 모녀의 행적이 끊긴 것은 2월 18일, 선아 모친이 운영하던 식당의 주방장이 문자를 받은 건 2월 20일, 외삼촌이 가족 모두가 연락두절인 걸 알아차린 것은 24일부터, 외삼촌과 경찰들이 집을 찾아간 것은 26일이었다. 그로부터 다시 일주일이 지나 3월이 되어도 네 모녀에게는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외삼촌은 다시 경찰에 신고했고, 단순 실종 이상의 심각한 사건임을 직감한 경찰은 강력팀이 수사에 나섰다. 경찰은 과학수사팀을 동원하여 집안을 수사하다가 집안에서 혈액반응을 검출해냈다. 누군가 집안에서 출혈이 있었고 그 흔적을 잉크로 감추려고 했던 것이었다.
 
이어 경찰은 1층 공용현관 엘리베이터 CCTV를 통하여 모녀의 행적을 추적했다. 실종 당일날 선아의 엄마와 두 동생은 집에 있었던 것이 확인됐다. 다만 용인에서 서울로 간다던 첫째 선아가 귀가하는 모습은 포착되지 않았다. 또한 네 모녀 모두 집을 나가는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엄마와 두 동생은 아파트 안에서, 선아씨는 집 밖에서 깜쪽같이 사라진 것.
 
경찰은 여기서 중요한 장면 하나를 추가로 포착해냈다. 오후 9시 15분경. 모자를 푹 눌러 쓴 한 남자가 대형 가방을 실은 카트를 수 차례에 걸쳐 반복하여 집 밖으로 나르는 수상한 모습이 CCTV에 잡혔다. 이어서 남자는 큰 이불과 핸드백으로 보이는 작은 가방 여러 개까지 챙겨서 사라졌다.
 
경찰은 남자의 정체를 확인하기 위하여 선아의 엄마와 가까이 지낸 남자가 있는지 탐문했다. 그런데 선아 엄마의 가게 직원은 "이름만 대면 아는 사람"이라며 전혀 생각지도 못한 놀라운 이름을 꺼냈다.
 
그의 정체는 이호성. 사건 당시 기준으로 한국시리즈 우승을 9번이나 차지한 명문구단 해태 타이거즈의 4번타자 출신으로, 골든글러브를 수상하고 20-20클럽(한 시즌 홈런-도루 20개 이상)까지 가입한 스타 선수였다.
 
이호성은 야구 선수 은퇴 후 사업가로 활동하던 2007년. 서울에서 선아 엄마를 만나 1년 정도 교제한 것으로 알려졌다. 주변에서는 두 사람이 곧 재혼할 것으로 알고 있었고, 이호성이 네 모녀와 가족처럼 함께 다니는 모습들도 자주 목격했다고 한다.
 
경찰은 이호성은 조사대상 1순위로 판단하고 수사를 이어갔다. 경찰은 네 모녀의 실종당일 이호성이 선아 엄마의 승용차 옆에서 큰 가방을 들고 있는 걸 봤다는 목격자들을 확보했다. 이호성은 당일 오후 7시경 네 모녀의 아파트로 들어섰다가 약 2시간 후 큰 가방 세 개를 갖고 혼자 나왔다. 하지만 네 모녀의 행방이 아직 밝히지지 않은 상황이라, 경찰은 섣불리 이호성을 납치나 살인의 용의자로 단정할 수는 없었다.

유일하게 집에 들어오는 장면이 목격되지 않았던 선아씨는 어디로 간 것일까. 당시 선아와 함께 집으로 가는 버스에 탔던 동기는, 선아씨가 버스 안에서 누군가와 휴대폰으로 통화를 했고 "우리 엄마가 만나는 분이 있는데, 다 같이 그분 고향에 내려가봐야 할 거 같아"라는 이야기를 했다고 진술했다.
 
통신 기록을 조회하니 발신자는 선아의 엄마 휴대폰이었다. 그런데 선아가 전화를 받은 시각이 밤 11시경으로 선아 엄마와 두 동생이 이미 실종되고, 이호성이 세 개의 가방을 운반하여 집 밖으로 나가는 모습이 CCTV에 찍힌 이후였음이 드러났다.
 
또한 동기는 "선아가 존댓말을 쓰면서 살짝 어려워하는 느낌이었다"는 결정적인 진술을 하며 통화 대상이 엄마의 휴대폰으로 통화한 상대가 엄마가 아닌 이호성이었음을 암시했다. 선아는 버스에서 내린 후 12시 5분, 종로 인근에서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마지막 통화를 한 것을 끝으로 휴대폰 전원이 꺼졌다.
 
경찰은 이호성을 수사하다가 그가 이미 무려 7건의 사기, 횡령 혐의로 수배중인 전과자라는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됐다. 심지어 이호성은 신용불량자라 자기 명의의 휴대폰, 통장도 하나도 없는 상태였다. 한때 한국 야구계를 주름잡던 야구스타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갑작스런 자살, 이후 들어온 결정적 제보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의 한 장면.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의 한 장면. ⓒ SBS

 
이호성은 34세의 나이에 은퇴한 후, 자신의 연고지인 광주에서 웨딩사업을 크게 벌였다. 초기에는 사업가로 승승장구했으나 욕심이 커지면서 무리하게 스크린 경마장 사업과 부동산 투자유치 등에 뛰어들었다가 연이어 실패하며 막대한 빚을 지게 됐다. 2005년 2월에는 공문서 위조와 횡령 혐의로 구속되어 징역 1년 6개월과 집행유예 3년의 실형을 선고받기도 했다.
 
그 후로 아내와 이혼하고 서울에서 도피 생활을 해오던 이호성은 우연히 선아 엄마를 만나게 된다. 경찰은 선아 엄마가 이호성에게 경제적으로 도움을 준 정황들을 포착했다. 또한 선아 엄마는 실종되던 당일 오전 다섯 곳의 은행을 돌며 거주중이던 아파트의 전세계약잔금인 총 1억 7000만 원을 인출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돈은 네 모녀와 함께 사라졌다.
 
수사 4일 만에 이호성은 출국금지 조치가 내려졌다. 네 모녀와 이호성의 행방을 추적하던 경찰은 종로에서 꺼졌던 선아씨의 휴대폰 신호가 몇 시간 후, 전남 화순에서 잠깐 잡혔다가 사라진 것을 확인했다. 사라진 실종자의 휴대폰이 다시 켜지는 경우는 흔한 일이 아니었다.
 
경찰은 휴대폰 위치추적을 바탕으로 이호성의 아버지 묘가 화순 동면에 있다는 중요한 정보를 입수한다. 이는 선아씨의 휴대폰 위치가 화순에서 포착된 이유와 맞물려, 이호성이 네 모녀의 실종과 관계되었음을 알려주는 유력한 정황이었다.

이어 수사중에 이호성이 이미 3년 전에도 한 남자의 실종사건에 연루됐으며, 그 대상은 조직폭력배인 무등산파 행동대장 조씨로 드러났다. 대외적으로 이호성과 동업하는 관계로 알려져 있던 조씨는 가족들에게 '이호성을 만나러 간다'는 이야기를 마지막으로 남기고 증발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호성이 연관된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고 조씨는 결국 실종된 상태로 남았다.
  
경찰은 고심 끝에 공개수사로의 전환를 선택했다. 경찰은 이호성을 네 모녀 실종 사건의 용의자로 특정하고 전국 수배를 내렸다.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의 한 장면.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의 한 장면. ⓒ SBS

 
그런데 얼마가지 못해 충격적인 소식이 들려온다. 네 모녀 실종사건의 유력한 용의자였던 이호성이 사망한 채로 발견된 것. 방송에서는 9시 뉴스 속보로 경찰의 추적에 압박감을 느낀 이호성이 한강에 투신해서 극단적 선택을 했다고 보도했다. 경찰은 유력한 용의자의 자살로, 피해자들의 행방과 억울함을 규명할 기회를 잃은 데 망연자실했다.
 
다행히 경찰서로 결정적인 제보 하나가 전해진다. 화순에서 일용직으로 일한다는 제보자는 이호성이 사망하기 얼마 전, 부친의 묘지 앞에 표지석을 세운다는 이유로 제보자를 비롯한 인부들에게 일당을 주고 땅을 파달라고 요청했다는 사실을 알렸다. 경찰은 곧바로 묘지 인근을 수색한 끝에 마침내 땅 속 깊숙한 구덩이에서 커다란 검은색 가방 3개를 발견한다. CCTV 속에서 이호성이 운반했던 그 가방이었다.
 
그리고 그 안에는 안타깝게도 선아양을 비롯한 네 모녀의 시신이 비닐에 싸인 채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가족과 친구들은 네 모녀의 마지막 모습을 보고 비통한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당시 형사들은 시신을 수습하며 범인의 잔혹성에 분노를 참지 못했다. 시신은 하나같이 잔혹하게 살해된 상태였고, 특히 큰딸 선아씨는 둔기에 머리를 심하게 얻어맞아 구멍이 나고 얼굴이 퉁퉁 부은 상태였다. 심지어 범인은 죽은 시신 위에다가 범행을 은폐하려고 80kg짜리 바위까지 올려놓는 짓까지 저질렀다.
 
2008년 2월 18일 밤, 이호성은 무방비 상태의 세 모녀를 차례대로 목 졸라 살해한 것으로 드러났다. 운동으로 단련된 거구의 이호성에게 여자 세 명을 제압하는 건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이호성은 세 모녀를 가방에 유기한 뒤 선아 엄마의 휴대폰으로 마지막 남은 선아에게 전화를 걸었고, 종로 어딘가로 유인하여 둔기로 선아양마저 살해했다. 단 하루에 네 번의 살인을 연쇄적으로 저지른 것이다.
 
이호성은 범행에 쓰일 도구에서부터 은행업무 처리, 시신 매장을 위한 준비까지 사전에 철저하게 범행을 계획한 것으로 드러났다. 네 모녀를 살해하고 매장한 다음날에는 선아 엄마 휴대폰으로 직원에게 선아 엄마가 보낸 것처럼 위장하고 문자를 보내기도 했다. 끔찍하게도 이호성의 계획은 거의 성공할 뻔했다. 만약에 선아양의 휴대폰이 잠시 켜져서 위치를 알려주지 않았거나 땅을 팠던 유씨가 제보하지 않았다면, 사건의 진실은 영원히 미궁 속에 빠질 뻔했다.
 
SBS의 단독보도, 그 전후 벌어진 일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의 한 장면.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의 한 장면. ⓒ SBS

 
이호성은 대체 왜 이런 끔찍한 짓을 저지른 걸까? 경찰은 이호성이 금전적인 문제 때문에 네 모녀를 살해했다고 결론을 내렸다. 이호성은 네 모녀를 매장한 후 광주에서 지인을 통하여 선아 엄마에게서 뺏은 것으로 추정되는 현금 5000만 원을 친형한테 입금해 달라 부탁한 것도 알아냈다.
 
그런데 단순히 돈 때문이었다면 세 딸들까지 죽일 필요가 있었는지는 의문이 남는다. 범죄 프로파일러는 이호성처럼 명성과 자존감이 강했던 인물들일수록 어떤 계기로 자극을 받았을 때 참아왔던 분노가 폭발하여 가장 잔혹한 범죄가 나올 수 있다고 분석한다.
 
하지만 이호성은 무책임하게 스스로 목숨을 끊어버리는 것으로 현실에서 도피했다. 이호성에 죄를 물을 수도 범행의 이유도 정확히 알 수 없게 됐다. 또한 이호성은 선아 엄마와 교제하는 동안 또다른 내연녀가 있었고, 선아 엄마에게서 훔친 돈을 내연녀에게 주는가하면 자살 직전까지 함께 지냈던 것으로 확인됐다.
 
이호성은 한강에 투신하기 이틀 전, 친형에게도 유서를 남겼지만, 자기 아들을 잘 부탁한다는 말만 남겼을뿐, 자신의 범행이나 피해자의 존재에 대해서는 어떤 말도 남기지 않았다고 한다. 또다른 희생자로 추정되는 동업자 조씨의 행방은 끝내 미제로 남았다. 이호성이 끝까지 피해자에 대한 최소한 미안함이나 죄책감이 없는 잔혹무도한 범죄자에 불과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런데 비록 방송에서는 언급되지않았지만, 이호성의 갑작스러운 자살과, 사건의 진실이 미궁에 빠지게 된 데는 언론의 책임도 일부 있었다. <꼬꼬무> 방송에서는 '경찰이 시민들의 제보를 얻기 위하여 공개수사를 시작했고, 직후 압박감을 느낀 이호성이 자살했다'는 식으로만 간략하게 언급했다.
 
그러나 진실은, 경찰은 이호성을 용의자로 지목한 후에도 조심스럽게 비밀리로 수사를 진행했으며, 만약의 상황을 감안하여 공개수사에는 끝까지 신중한 입장이었다. 그리고 언론에서도 모종의 취재 경로를 통해 용의자가 이호성이라는 사실을 파악하고 있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경찰측은 범인 검거가 임박했으니 보도를 조금만 미뤄 달라는 '엠바고(Embargo, 시한후 보도유보)'를 요청했다. 그런데 이를 거부하고 단독으로 이호성이 범인이라고 가장 먼저 최초로 특종보도를 한 매체가 바로 SBS였다.

뉴스를 통하여 자신이 경찰에 수배중이라는 사실을 알게되고 궁지에 몰린 이호성은, 얼마뒤 극단적 선택을 저질렀다. 결국 범인을 체포하여 죄의 댓가를 치르게 하고, 피해자들의 억울한 죽음에 대한 진실을 규명할수 있었던 소중한 기회를 날렸다.
 
정작 SBS에서 방영된 <꼬꼬무>에서는 이런 사실은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 방송에서는 느긋하게 식사를 하려던 형사들이 뉴스보도를 보고 이호성의 죽음을 확인한뒤 당황한 모습으로 설명하며, 마치 경찰이 이호성을 찾지못해 공개수사로 전환해놓고 방심하다가 마치 사건을 그르친 것 같은 뉘앙스로 묘사했다.
 
이호성 사건이 하필 SBS에서 방영되는 <꼬꼬무>를 통해 다루어진다는 소식이 알려졌을때부터 일부 시청자들은 비판적인 반응을 보이며 주시했다. 그러나 방송에서는 특종에 눈이 멀어 취재윤리와 피해자들의 안위를 내팽개친 무책임한 행태에 대해서는 끝내 사과나 성찰없이 회피를 선택해버린 것은 아쉬움을 남긴다.
 
이호성의 장례식은 세상의 냉담한 시선속에 조용히 치러졌다. 장례식장엔 고인의 이름도 공란이었고, 영정사진도 흰 수건으로 가려져 있었다. 이름도 사진도 조문객도 없는 장례식이이었다. 무고한 여성과 아이들을 무참히 살해한 범인에게 꽃 한송이라도 동정의 여지는 없었을 것이다.
 
이 사건은 가해자도 피해자가 모두 생존하지 않다 보니, 이들 사이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는 알 수 없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가해자의 범행을 부인하고 옹호하는 이들도 있었다. 피해자와 그 유족들- 지인들에게는 또다른 큰 상처가 될 수밖에 없는 장면이다.
 
한편 이 사건의 결정적인 실마리가 된 선아 양의 휴대폰과 관련된 미스터리는 밝혀지지 않았다. 통신사에서도 꺼진 휴대폰에서 신호가 잡히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하나. 세상에는 종종논리로는 설명이 안 되는 일들이 존재한다. 어쩌면 켜졌던 휴대폰은 '나를 찾아줘'라는 피해자의 마지막 SOS가 아니었을까.
꼬꼬무 이호성살인사건 SBS 엠바고 취재윤리
댓글6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