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레바논 경기 장면

중국-레바논 경기 장면 ⓒ 신화통신/연합뉴스


중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수난사에 끝이 보이지 않는다. 중국은 지난 17일 (한국시간)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2023 아시아축구연맹(AFC) 조별리그 A조 2차전에서 레바논과 0대 0으로 비겼다. 1차전에서 타지키스탄과도 0대 0으로 비긴 중국은 승점 2점으로 조 2위를 기록했다.
 
아직까지 패배도 실점도 허용하지 않았음에도 2차전까지 마친 후 중국 내 반응은 그야말로 초상집이다. 중국 현지 언론과 팬들은 "역대 최악의 대표팀"이라며 대회가 끝나기도전에 자국 대표팀을 강하게 성토하는 분위기다.
 
중국은 이번 대회에서 타지키스탄, 레바논, 카타르와 함께 A조에 편성됐다. 개최국이자 디펜딩 챔피언인 카타르가 예상대로 2연승으로 조 1위를 차지하며 최종전 결과와 상관없이 가장 먼저 16강 진출을 확정지었다. 하지만 모든 팀들이 16강 진출 가능성이 있다고 평가받을만큼 이번 아시안컵 6개조 중 가장 수월한 조편성으로 꼽혔다.
 
중국의 FIFA 랭킹은 79위로 카타르(58위)보다는 낮지만, 100위권 밖인 타지키스탄(106위)-레바논(107위)보다는 월등히 높았다. 중국 언론의 기대도 두 팀에 2승을 거두며 조기에 16강행을 확정하는 것을 유력한 시나리오로 전망했다.
 
하지만 뚜껑을 열자 중국은 만만하게 여겼던 첫 상대 타지키스탄에게 슈팅수 10-20으로 크게 뒤지며 시종일관 열세를 기록하다가 간신히 무승부에 그쳤다. 심지어 전반 35분까지는 타지키스탄이 슈팅 12개를 시도할 동안, 중국은 단 한 번의 슛도 기록하지 못할 만큼 일방적으로 밀렸다. 중국으로서는 간신히 승점을 챙긴 게 다행이었고 오히려 타지키스탄이 이기지못한 게 아쉬울 경기력이었다.
 
레바논과의 2차전에서는 최악의 골 결정력이 또 발목을 잡았다. 중국은 이날 15개의 슈팅을 시도하여 거의 절반에 이르는 7번의 유효슈팅에도 불구하고 단 한 번도 골망을 가르지 못했다.

특히 후반 20분 중국의 간판 공격수 우레이가 빈 골대 1미터 앞에서 세컨드 볼을 받아 완벽한 득점찬스가 만들어진 장면은 이날의 경기내용을 단적으로 요약했다. 우레이는 어설픈 터치로 힘 없이 볼이 떠올랐고 이를 레바논 수비수가 걷어냈다. 중국 언론에서도 이 장면을 거론하며 우레이의 플레이를 강하게 질타하기도 했다.
 
레바논도 골대를 두 차례나 맞히는 등 골결정력이 실망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설상가상 두 팀은 경기내내 난투극에 가까운 거친 비매너 플레이를 여러번씩 주고받으며 신경전을 펼치기도 했다.
 
중국 언론에 따르면 2019년 아랍에미리트 대회 8강에서 이란에 0대 3으로 완패한 것을 포함하여 아시안컵 본선에서 3경기 연속 무득점한 건 1976년 첫 대회 참가 이후 중국축구 역사상 최악의 기록이라고 한다. 중국 언론은 "결선 토너먼트에 오르지 못한다면 감독 교체를 포함해 대표팀에 대대적인 개혁이 불가피하다"며 벌써부터 비관적인 전망이 나오고 있다.
 
중국의 부진은 사실 어느 정도 예상된 결과이기도 했다. 중국은 이번 아시안컵을 앞두고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이 이끄는 한국 축구대표팀과 북중미월드컵 2차 예선 홈경기를 포함해 오만(피파랭킹 74위), 홍콩(150위)과의 비공개 평가전까지 내리 A매치 3연패를 당했다.
 
이 기간 UAE 2부리그 팀을 상대로 한 평가전에서 5대 1로 크게 이긴 경기도 있었지만 클럽팀과의 경기라 A매치에는 포함되지 않는다. 중국이 최근 A매치에서 마지막으로 승리한 것은 지난해 11월 16일 열린 태국과의 북중미월드컵 2차예선 원정(2-1)경기였다.
 
국제무대에서의 거듭된 굴욕은 중국축구의 근본적인 한계를 보여준다는 분석이 나온다. 중국은 한때 정부 차원에서 '축구굴기'를 내세워 축구 부흥을 위하여 천문학적인 자본을 쏟아부어 세계축구의 큰 손으로 떠올랐다.
 
중국 프로축구 슈퍼리그는 세계적인 스타 선수들와 명장들을 영입하는 게 유행이 되었고, 광저우 헝다 같은 팀들은 아시아 챔피언스리그를 잇달아 제패하기도 했다. 이 시기에 한국 축구 국가대표 선수들도 다수가 중국리그로 진출하기도 했다. 대표팀에도 마르첼로 리피 등 해외 명장들을 영입하고 외국의 유명 선수들을 귀화시키며 전력을 강화하기 위하여 노력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막강한 자본력과 외국인 효과에 가려졌을 뿐, 중국축구의 자체적인 경쟁력은 크게 발전하지 못했다. 유소년과 전문 지도자 육성, 현대적인 대표팀 운영 시스템, 해외 진출 선수의 부재 등 근본적인 문제점에 대한 개혁 없이 단기간에 성적 향상만 기대하는 땜질식 처방에서 벗어나지 못한 게 원인이었다.
 
최근들어 '차이나 머니' 열풍이 줄어들면서 축구계에 대한 투자가 크게 감소했고, 설상가상 각종 비리까지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상황은 더욱 악화했다. 2020년 중국 대표팀 지휘봉을 잡은 리티에 전 감독과 전 중국 축구협회장 등이 뇌물 수수와 공여 등의 혐의로 기소되며 축구계가 발칵 뒤집어지기도 했다.

어수선한 분위기속에 귀화 선수들도 중국 국적과 대표팀을 포기하고 하나둘씩 떠나며 전력은 더욱 약해졌다. 중국의 슈퍼스타로 꼽힌 우레이가 유럽에서 실패하고 돌아온 이후 해외파는 터키 2부리그에서 뛰고있는 우샤오콩(바샥세히르) 한 명 정도에 불과하다. 그나마 이번 아시안컵에서 우레이마저 노쇠화하는 조짐을 보이자 중국축구는 대안을 찾지 못하는 모습이다.

2002년 한국과 일본이 개최국 자격으로 본선에 직행했던 한일월드컵에서 유일하게 본선을 경험했던 중국은, 이후 지난 카타르월드컵까지 더이상 자력으로 본선무대를 밟지 못하고 있다. 이번 북중미월드컵의 경우, AFC에 배정된 월드컵 출전권이 4.5장에서 8.5장으로 늘어나며 그동안 기회가 적었던 아시아팀들에게는 호재가 됐다. 하지만 그럼에도 중국에서는 벌써부터 이번 대회도 월드컵의 꿈을 접어야 한다는 비관적인 전망이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중국의 소후닷컴은 "현재 중국축구 수준은 아시아 20위권 안에도 들지 못한다. 월드컵의 꿈을 포기해야 할 수준"이라고 자국대표팀의 초라한 현 주소를 꼬집기도 했다. A팀만이 아니라 연령대별 대표팀 역시 아시아 무대에서도 줄줄이 동네북이 되고 있어서 미래도 그리 밝아 보이지 않는다.
 
현재 중국대표팀은 아시안컵에서 2무를 기록하며 일단 조 2위에 올랐지만 마지막 상대가 2연승을 달리고 있는 1위이자 A조 최강 카타르라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 반면 최종전에서 맞붙는 레바논과 타지키스탄은 나란히 1무 1패를 기록하고 있다. 중국은 카타르를 잡아야 자력으로 16강행을 확정할 수 있다. 비기거나 패할 경우에는 타지키스탄-레바논전의 결과를 지켜봐야 한다. 과연 아시안컵이 마지막까지 중국축구에 또 한 번의 악몽으로 끝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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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축구대표팀 우레이 아시안컵 A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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