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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어느 여행 영상을 접하게 됐다. 신혼여행 대신 1년간 세계로 신혼 봉사를 다녀오고, 결코 쉽지 않은 히말라야 등반을 하기도 하고, 여행 중 만난 길거리 공연에 감동해 즉흥적으로 K-POP 노래를 틀어놓고 막춤 공연을 선보이기도 하며 내가 가고 싶은 길을 주저 없이 가는 부부 유튜버, 두잇부부 이야기였다.
   
그런데 거칠 것 없이 세계를 누비는 이들 부부의 최근 영상들에 달린 댓글 반응이 유독 양편으로 나뉘었다. 응원 아니면 비난. 아니, 어쩌면 비난 쪽이 더 많았던지 '수백 개의 악플을 견뎌내고 스페인 순례길로 떠난 30대 부부의 고백'이란 제목의 영상이 올라오기도 했다.

과거에도 지금도 여전히 자주 여행하고 있는 부부의 달라진 점이라면, 이제는 이들 곁에 어린 아이가 있다는 점이다.

 
유튜버 두잇부부 채널 기본정보란 일부분 캡쳐
 유튜버 두잇부부 채널 기본정보란 일부분 캡쳐
ⓒ 두잇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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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개월이 된 아이. 최근 영상을 본 사람들 중 많은 사람들이 돌이 갓 지난 아이를 데리고 순례길을 걷는 건 무리란 요지의 말을 전했다. 비바람이 부는 궂은 날씨에, 또 진흙탕 위를 힘겹게 털털 굴러가는 유모차 위의 아이를 보다보면 걱정스런 마음이 들기도 했다.

익명성에 기댄 무분별한 악플

하지만 진심 어린 마음으로 아이를 생각하는 댓글이 아닌, 전후 상황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단편적인 영상 하나만 보고 급기야 '학대'라는 표현까지 쓰는 댓글들은, 표면은 아이에 대한 걱정인 척 내세웠지만 내용을 보면 실은 익명성에 기댄 무분별한 악플에 지나지 않아 보였다.

정말로 어린 아이에게 긴 여행은 좋지 않기만 한 걸까.

순례길 중간 중간 충분한 휴식을 취하며 아이의 컨디션에 맞춰 여행하고 있다는 부부의 설명이 꼭 아니더라도, 이 가족의 여행이 부모에게만 좋을 거란 생각은 들지 않았다. 아이는 부모와 온전히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무엇보다 이것 하나만으로도 아이에게도 꽤 좋은 여행이지 않을까 싶었다. 왜냐면 아이를 향한 타인들의 따뜻한 시선이 있었기 때문이다.

영상 속 순례길을 걷던 또 다른 순례자들이나 현지인들은 아이를 보면 마치 무장해제되듯 환하게 미소 지으며 아이와 눈을 맞췄다. 외국인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사람들도 다르지 않았다. 스페인 순례길 준비를 위해 먼저 국내의 둘레길을 걸어보는 부부를 향해서는 "대단하네~"라는 말을 건네기도, 등에 업혀 있는 아이를 보고는 "아이고~ 보물덩어리가 왔네!"라며 반가워하기도 했다.

아이는 작은 손을 흔들며 인사하거나 아장아장 걸어 그들에게 스스럼없이 안겼다. 부모뿐만 아니라 세상에서 만난 이들이 보내는 따뜻한 눈맞춤이나 애정 어린 말 한 마디. 한 사람이 잘 자라는 데 필요한 건 뭔가 거창한 것들이 아니라 이런 작은 관심들 아닐까 싶다.

따뜻한 시선들, 호의적인 세상 
 
여행은 어린 아이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까
 여행은 어린 아이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까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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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 긍정적인 장면들만 모아서 만든 편집본이니 그런 것 아니냐 생각해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역시 아이가 있는 평범한 우리 가족의 지난 여행들을 떠올려 봐도 크게 다르지 않다. 물론 마냥 아이들에게 친절한 세상은 분명 아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특히 여행길에서 만난 사람들은 어린 아이에게 호의적이었다.

아이가 막 걷기 시작하던 때였다. 여행지 어디선가 흘러나오는 음악을 듣고 그 자리에 멈춰 서서 한동안 궁둥이를 들썩였던 적이 있는데, 당시 지나가던 사람들은 저마다 아이에게 미소를 건넸다.

제주도 숙소 근처 골목길을 산책할 때였다. 강아지풀을 손에 든 채 걷던 아이는 마침 주인과 함께 산책을 나온 강아지를 보고는 신이 나서 "강아지야~ 강아지풀 봐라~" 라고 말하며 반갑게 인사했다. 그렇게 짧은 만남을 뒤로 하고 돌아서는데, 별말 없이 산책을 이어 하던 주민 분이 이내 아이를 불러 세웠다. 그리고는 들고 있던 검은 봉지 속에서 큼지막한 한라봉 하나를 꺼내 아이의 손에 쥐어주셨다.

어느 유람선을 탔을 때였다. 갈매기에게 새우깡을 던져주는 단체 관광객들을 보곤 아이는 "나도 저거 먹고 싶다."고 말하며 갈매기 먹이에 눈독을 들였다. 그 작은 목소리를 들으셨는지 그분들은 새우깡을 한 움큼 집어 양손이 넘치게 주기도 하셨다.

여행의 많은 추억들 중에서도 언제까지고 기억에 남을 순간들이며, 아이는 비록 기억하지 못할 지라도 그 순간 번지던 따뜻한 온도들이 아이의 마음을 한 뼘 더 자라게 했을 거라 굳게 믿는다.

저마다의 다양한 삶의 방식

이제 다시 두잇부부 이야기다. '우리 부부가 갓난아기를 데리고 스페인 순례길에 떠난 이유'라는 영상에서 그들은 말한다. 스페인 순례길에 아이와 함께 가는 건 엄마의 꿈이었고 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절대 안 된다고 했다고.

아이와 함께 하는 부부의 여행을 보며 우린 응원을 할 수도 비판을 할 수도 있을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단순히 이들의 여행에 악플을 다는 이들은, 실은 모성이나 부성이라는 실체없는 잣대를 들이밀며 부모로서의 자격을 함부로 판단하고 싶어하는 건 아닐지. 

두잇부부는 4년 전에도 비슷한 일을 겪었다고 고백한다. 애초 신혼여행 대신 세계일주를 떠났을 때도 역시나 사람들은 절대 안된다며 이혼을 우려하기도 했지만 부부는 행복하게 잘 살았고, 그래서 깨달았다고 한다.

 
그때 알았다.
남들이 우리의 삶을 정해주는 것이 아니라고.
우리가 살고 싶은 방법대로 살면 되는 거라고.
이 세상을 살아가는 정해진 방식은 없다고.
그냥 우리 방식대로 살자고.

- '우리 부부가 갓난아기를 데리고 스페인 순례길에 떠난 이유' 영상 속 내레이션 일부-
  
‘우리 부부가 갓난아기를 데리고 스페인 순례길에 떠난 이유' 영상 캡쳐
 ‘우리 부부가 갓난아기를 데리고 스페인 순례길에 떠난 이유' 영상 캡쳐
ⓒ 두잇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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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가끔 잊어버리고 사는 게 아닌가 싶다. 이 지구상에서 살아가고 있는 모든 사람들은 다 다른 존재란 사실을 말이다. 우리 모두는 동그라미, 세모, 네모 모양도 다르고 빨주노초파남보 색도 다른 각각의 고유한 존재들이다. 삶의 모습도 모두 다 다를 수밖에 없다.

어느덧 해가 바뀌어 2024년이다. 선물처럼 새롭게 주어진 365일의 하루하루들이 그 누구도 아닌 내가 하고 싶은 일들로 빼곡히 채워지길. 나를 비롯해 우리 모두가 '나만의 삶'을 살길 바라본다.

조금 더 바라보자면 지금 당장은 무리겠지만 우리의 아이들이 쑥쑥 자라 어른이 된 뒤의 세상은 '다름'이 이상한 것도, 또는 특별한 것도 아닌 그저 자연스러움으로 받아들여지는 세상이길. 그런 바람을 담아 나는 영상 아래의 '좋아요'를 꾸욱 눌렀다.

덧붙이는 글 | 위 글은 글쓴이의 블로그 (https://blog.naver.com/tick11)에도 함께 게재됩니다.


태그:#두잇부부, #여행유튜버, #순례길, #다양한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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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여행하며 자주 글자를 적습니다. <그때, 거기, 당신>, <어쩜, 너야말로 꽃 같다> 란 책을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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