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2월 9일, SK핸드볼경기장에서 진행된 '이상한 이승환' 공연.

2023년 12월 9일, SK핸드볼경기장에서 진행된 '이상한 이승환' 공연. ⓒ 유재은 시민기자


음반, 공연, 영화, 드라마 등에 대한 리뷰를 쓸 때마다 늘 조심스럽다. 나는 전문가나 평론가가 아닌 일반 소비자이기에 배경지식도 없고, 가수 이승환처럼 재치 있는 사람도 아니다. 지나친 칭송은 반감을 일으킬 수 있고, 글이 너무 건조하면 내가 느낀 감정이 잘 표현되지 않는다. 스포일러가 되지 않도록 주의도 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승환의 이번 전국 투어 연말 공연에 대해서는 글을 꼭 발행하고 싶었다. 포털사이트에 이승환을 검색하면 관련 기사 또는 노출되는 정보가 다소 부족하다는 점, 그리고 앞으로 남아있는 전국 투어 일정에 더 많은 분이 함께하시길 바라는 마음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어떻게든 기록으로 남기지 않고는 견딜 수 없을 정도로 공연이 참 좋았기 때문이다.
 
그동안 발매된 곡 수가 워낙 많아서, 이승환의 공연을 본 경험이 적은 사람들 입장에서는 '공연의 흐름을 따라갈 수 있을까?'라는 진입장벽이 느껴지는 부분도 있을 것이다. 나는 관객 내공 초수, 중수, 고수 중에서 애매하게 중수와 고수 사이에 끼어있는, 열정적인 드팩민이라 하기에는 조금 가볍고 그렇다고 또 머글은 아닌 위치에 있는 관객이다.

이번 전국 투어는 이승환의 1990년대 히트곡 시기에 머무른 관객, 음반을 띄엄띄엄 들어서 중간중간 약간씩 진도가 끊겨있는 관객, 모든 음반의 수록곡을 전부 자기 것으로 소화한 관객들까지, 모두를 충분히 만족시킨 공연이었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총 스물다섯 곡, 취향을 초월하는 다양한 장르의 명곡 맛집이었다. 정말 많이 웃었고, '어떻게 사랑이 그래요'를 들으며 울기도 했고, 위로와 용기도 얻고, 연말의 따뜻한 무드 속에 떼창하고 춤추고 마음껏 뛰어놀며, 살아있음의 희열을 흠뻑 느꼈다.

쉴 틈 없는 웃음 포인트

공연의 주제에 따라 재미있게 구성된 영상 내용, 그리고 이승환 특유의 위트와 센스로 점철된 능수능란한 입담 덕분에, 공연 내내 얼굴 근육이 약간 아플 정도로 웃었다. 우선 영상은, 무대 뒤의 모든 일상을 오로지 음악과 공연만을 위해 살아가는 이승환의 실제 모습들, 거기에 약간의 웃음 요소가 가미된 흐름이었다.

이번 전국 투어 제목이 '이상한 이승환'인 것은, 무대에서 노래하는 일 이외에 공연을 만드는 기획과 연출 과정 전반에 걸쳐 모든 일을 직접 하는 가수라는 점에서, 과연 언제까지 이 일이 지속 가능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에서 시작되었다고, 입짧은햇님 유튜브 채널에 출연하여 밝힌 바 있다. 매니저도 없이, 의상을 포함한 모든 요소를 직접 준비하며 고군분투하는 모습이 영상에 담겼다. 

그리고 1999년에 발매되었던 어떤 곡의 뮤직비디오를 이번 전국 투어 버전으로 새로 찍었다며, 관객분들이 1999년도의 얼굴과 새로 촬영한 얼굴을 구분하지 못하시더라며 선보였다. 정말 말이 안 되게도, 당시의 모습보다 지금 모습이 더 젊어 보였고, 심지어 정말 놀랍게도 귀엽기까지 한 표정 연기 때문에 자꾸 웃음이 터져서 라이브에 집중이 안 될 지경이었다. 

유머 있는 사람들 특징이,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이것이 농담인지 진담인지 혼란스러워하게 만들고는, 너무 깊이 생각하지 말라며 사람을 들었다 놨다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관객의 고령화'에 대해 언제나 가수만 건강해서 미안하다며 잔뜩 놀리고는, 여러분이야말로 나의 청춘이고 젊음이라며 자랑스러워했다. 

팬들이 준비한 종이비행기 이벤트에 대해서는, 아무리 던지셔도 무대까지 날아오는 비행기가 없다고 장난치고, 관객의 사랑한다는 외침에는 화답하기 민망하다며 '듣씹'이라더니, 결국 '가족' 가사를 빌어 '그래서 저는 여러분을, 사랑해요'로 마음을 표현했다. 여전히 팬들을 수줍은 소녀로 만드는 매력과, 이제 곧 환갑이 몇 년 남지 않은 그의 나이 사이에서 오는 간극을 또 깨알 같은 웃음 포인트로 살리는, 숙련된 밀당의 기술 앞에서 여러모로 정신이 혼미한 시간이었다.
 
노래, 연주, 음향, 조명, 특수효과

그가 공연의 신이라 불리는 데에는 많은 이유와 놀라운 기록들이 있지만, 결국 핵심은 관객들의 귀를 사로잡는 가창자로서 능력이 대단하다는 점, 그리고 현재진행형으로 계속 진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가수로서 워낙 훌륭하다 보니 '싱어송라이터 이승환'은 상대적으로 약간 덜 강조된다는 게 아쉬운 부분이다. 꾸준한 노래 연습과 자기관리가 무대에서 여과 없이 빛을 발하며 귀 호강을 보장한다. 현재에 안주하지 않고 쉼 없이 더 완벽한 무대를 위해 고민하고 연구하는 음악인이라는 게, 무대를 보며 여실히 느껴졌다. 곡의 분위기마다 시시각각 변화하는 다채로운 목소리의 질감은 영상이 아닌 현장에서 직접 들어야만 제대로 느낄 수 있다.

베이스 김지인, 드럼 최기웅, 기타 이근후, 기타 윤경로, 건반 박에녹! 이승환 밴드 멤버분들의 노련한 관록과 강한 에너지, 편곡의 섬세한 느낌을 가장 잘 살려주는 연주 또한 더없이 좋았다. 그리고 공연장이 아닌 경기장이라는 장소의 한계조차 가볍게 뛰어넘는, 소리 깎는 장인이 만든 공연답게 음향 역시 조화롭고 훌륭했다. 팬덤 내에 '뷰빠', '뷰빠석'이라는 단어가 있을 정도로 이승환 공연의 조명은 이미 오래전부터 교과서와 같은 전문성을 자랑하며, 특수효과 또한 공연 초반부터 아낌없이 쏟아부으며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켰다. 
 
We are the dream factory

오랜 세월 변함없이 지지해 준 팬들과 함께 쌓아온 깊은 신뢰와 자부심은, 그를 움직이는 가장 중요한 동력일 것이다. 관객으로서 공연을 볼 때 주변 관객들의 반응이나 분위기에 내 기분도 영향을 받기 마련인데, 드팩민 분들은 공연장에서 워낙 잘 놀기로 유명하다. 가수가 무대에서 굳이, 일어나라는 말 또는 호응 유도 멘트를 할 필요가 없다. 어느 페스티벌에서든 적극적이고 예의 있는 관객 문화를 주도하고, 바닥에 떨어진 이벤트 물품들도 직접 수거한다. 

촬영 금지나 허용 지침에 대한 협조, 그리고 무대 진행에 방해되지 않도록 객석에서 야광 물품을 사용하지 않는 것, 전체 곡 목록도 가급적 공개되지 않도록 하는 팬덤 내 분위기 등, 입문자들에게도 모범이 되는 문화가 정착되어 있다. 오랜만에 보는 휴지 폭탄 광경은 정말 장관이었다.
 
 '물어본다' 중 진행된 휴지 폭탄 이벤트, 좌석마다 놓여있던 종이비행기와 설명서.

'물어본다' 중 진행된 휴지 폭탄 이벤트, 좌석마다 놓여있던 종이비행기와 설명서. ⓒ 유재은 시민기자


'추억팔이' 그 이상의 의미

공연을 보다 보면 머리가 아닌 몸으로, 입으로 기억하는 가사가 있었다는 사실을 실감한다. 과거 그 어느 시절의 나를 소환하는 것은, 잊었던 내 정체성을 다시 만나는 일, 잃어버린 꿈을 다시 갖는 일이기도 하다. 때로는 추억이 삶을 지탱해 주기도 한다. 그 추억 안에, 그 시절의 내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번 공연을 보면서, 어른으로서 나의 일, 삶, 그리고 타인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 여러 생각을 했다. 때로는 수용하고 내려놓는 것, 권위 의식을 끊임없이 경계하며, 고루해지지 않으려 노력하는 것, 남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묵묵히, 해야 할 일을 그저 계속하는 것의 중요성. 이승환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다 느낄 수 있었던 공연이었다. 소년의 꿈, 청년의 열정, 어른의 성숙함이 공연 곳곳에 오롯이 녹아있었다.

사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말랑한 발라드보다는 묵직한 록으로 채워진 셋리스트에 올 스탠딩으로 달리는 소규모 클럽공연을 더 선호했지만, 어느새 슬금슬금 의탠딩이 편안하게 느껴지는 몸이 되어버렸다. 역시, 운동과 건강관리는 아티스트가 아닌, 나만 하면 된다. 나만 늙는다. 앞으로 또 무기력하고 지치는 일상에서, 이번 공연의 멋진 순간들을 초콜릿처럼 꺼내먹으며 버틸 것이다.

이 글의 작성 시점 기준으로 남아있는 '이상한 이승환' 전국 투어 일정은 12월 16일 청주, 25일 천안, 30일 전주, 그리고 2024년 1월 6일 춘천, 20일 창원, 2월 3일 성남 공연이다. 부디 죽지 말고 오래오래 같이 놀 수 있기를, 남은 공연들도 모두 성황리에 무사히 진행되기를 빌며, 주문을 외워보자. 야발라바히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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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오마이스타 창간 8주년 '내가 사랑한 캐릭터' 공모전에 재미로 참여했다가 얼결에 시민기자가 된 그냥 시민. 글이 지닌 공감과 연대의 힘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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