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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유류피해극복 기록물’이 전시되고 있는 ‘태안의 기록, 세계의 기억’ 특별전.
 ‘태안유류피해극복 기록물’이 전시되고 있는 ‘태안의 기록, 세계의 기억’ 특별전.
ⓒ 김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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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 최악의 원유유출 사고로 기록된 태안원유 유출사고는 발생 후 16년 간 많은 일을 겪었다. 그중에서도 피해 배·보상과 지역발전기금을 두고 발생한 공동체 붕괴는 태안주민들을 더욱 나락으로 이끌었다. 그럼에도 사고 소식을 듣고 한달음에 달려와 원유덩어리를 닦아낸 123만 명의 자원봉사자의 땀과 눈물은 '태안의 빚'으로 남아 있다.

최근에는 낭보도 이어졌다. 태안유류피해극복기념물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것이다. 지난해 11월, 태안유류피해극복기념물은 삼국유사 및 내방가사와 함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아시아태평양 지역목록에 등재됐다. 기념물은 2007년 태안에서 발생한 대형 유류유출 사고와 극복 과정을 담은 22만 2129건의 문서다.    

그 기록의 일부가 특별전시회 '태안의 기록, 세계의 기억'에서 공개됐다. 오는 12월 10일까지 태안유류피해극복기념관서 진행중인 특별전에서는 2007년 12월 7일 태안원유 유출사고 이후 사고대응 기록이 담긴 일일종합상황일지를 비롯해 대책회의 결과 보고서, 방제작업 진행 보고서, 작업자 출근일지, 자원봉사활동 경험 구술기록, 피해주민단체 구성 및 신고서, 배·보상 지급대상자 명부 등 재난극복 과정이 담겨 있다. 

▲사고대응 ▲방제활동 ▲자원봉사활동 ▲배·보상 ▲복구활동 ▲환경·사회 복원 ▲국제협력 등 7개 주제로 구분해 전시되고 있으며, 태안 유류피해 극복 기록물 100여 건도 함께 만나볼 수 있다.

특별전서 만난 16년 전 주민들의 심경
 
‘태안유류피해극복 기록물’이 전시되고 있는 ‘태안의 기록, 세계의 기억’ 특별전에서는 원유덩어리를 닦은 6인의 자원봉사자의 구술영상이 흘러나온다.
 ‘태안유류피해극복 기록물’이 전시되고 있는 ‘태안의 기록, 세계의 기억’ 특별전에서는 원유덩어리를 닦은 6인의 자원봉사자의 구술영상이 흘러나온다.
ⓒ 김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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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전 속에서 눈길을 끄는 장면이 있다. 사고 당시 주민들의 심경을 풀어 쓴 인터뷰와 사고 이후 태안을 찾아 원유덩어리를 닦아 냈던 자원봉사자 6명의 이야기다. 

먼저 사고 당시 주민들의 심경을 되뇌어 보고자 한다. 그 당시 심경을 그대로 옮겨본다.

"섬사람들의 터전이 바다 아닙니까. 여기는 바다가 풍부해요. 자연산 홍합, 돌미역, 돌다시마, 톳, 굴, 세모 그런 것들을 바다에서 1년 내내 뜯고, 봄부터 겨울 될 때까지 낚시질해서 우럭도 잡고 광어도 잡고, 놀래미도 잡고, 노인네들이 그걸 잡아서 팔아서 살았어요.

여기가 전부 양식장이에요. 거기에 대한 수입이 있고, 여유 있는 생활을 했죠. 그런데 기름 피해로 바다가 망가진 거 아니에요. 겨울 동안 굴하고 홍합을 따야 하는데, 하나도 못 한 거죠. 그러니 생계가 막막하죠. 생활의 터전을 잃었기 때문에.

섬사람들의 생명이 바다 아닙니까. 바다에 못 나가니 막막하죠. 문제가 뭐냐면 원유유출 피해로 인해 생태계가 언제 살아날지 모른다는 거죠. 1년 뒤에 살아날지, 5년 뒤, 10년 뒤가 될지. 바다가 살아나지 않는다면 여기 사람들은 그냥 죽어요. 아무것도 못 하니까."


"원유유출사고 나서 아주 소용없게 됐지. 돈을 못 벌어. 못 벌기만 혀. 작년에 이천만 원 벌었다면 올해는 천만 원도 못 해. 사고 전에는 관광객들이 전복 먹으러 평일에도 왔거든. 근데 주말에도 오지 않아.

지금 내가 데리고 있는 해녀가 일곱, 여덟 되거든. 해녀들이 5kg 전복을 잡아도 그걸 다 못 판다니까. 그래서 죽는 게 반이야. 손님이 없어. 물건도 없지, 판로도 없지. 해녀들이 힘들어.

사고 때문에 바다도 없고. 전복 5kg 잡으려고 두세 시간 저 먼 곳으로 나가. 왕복 다섯 시간이 걸린다고. 사고 전에는 이 앞바다가 다 양식장이었는데 이제는 멀리 나가. 멀리 가도 돈도 못 벌고. 진짜 힘들어."


희망을 쏜 자원봉사자들
 
'태안의 기록, 세계의 기억’ 특별전에는 자원봉사자를 비롯해 다양한 직군의 관람객이 발걸음을 하고 있다.
 '태안의 기록, 세계의 기억’ 특별전에는 자원봉사자를 비롯해 다양한 직군의 관람객이 발걸음을 하고 있다.
ⓒ 김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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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유류피해극복 기록물’이 전시되고 있는 ‘태안의 기록, 세계의 기억’ 특별전이 12월 10일까지 열린다.
 ‘태안유류피해극복 기록물’이 전시되고 있는 ‘태안의 기록, 세계의 기억’ 특별전이 12월 10일까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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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오늘날 '청정 태안'의 제 모습을 되찾게 만든 일등 공신인 자원봉사자들은 16년 전 어떠한 심정으로 태안반도를 찾았을까. 그리고 그들이 원유 덩어리를 닦아내며 느낀 소회는 어땠을까.

16년이 지난 지금, 전시장을 가득 메우고 있는 자원봉사자들의 울림을 곱씹어 보며 다시금 그들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특별전시장에서는 6명의 자원봉사자 인터뷰가 영상을 통해 계속 흘러나오고 있다. 6명 중 4명의 소회를 간추려 소개하면 이렇다. 우선 사고 당시 인천사랑회 회원이었던 박노권씨는 이렇게 회상했다.

"처음 갔을 때 고생하러 오신 분들 따뜻한 커피 끓여서 접대하고 2차 참여했을 때는 실제 바다 주변에 깔린 기름을 제거하기 위해 참여했습니다. 참여 회원들이 얼굴에 기름을 묻히면서 고생 많이 했습니다.

당시 환경은 엉망진창이었습니다. 기름 모아 놓은 거 보면 참 비참했습니다. 기름탱크를 한 60여 개 갖다 놓고 거기다 퍼부었습니다. 물바다가 아니었습니다. 그냥 기름 바다였습니다.

자원봉사자들이 너도나도 할 것 없이 각 지역에서 왔어요. 단체들도 많이 왔고요. 기름을 수집한 것을 옮기는 과정을 봤을 때 '단결심이 강하구나', '한국사람 참 대단하다' 내가 대한민국 국민인 게 참 자랑스러웠습니다.

그 이후에 몇 번 더 갔는데 가다 보니까 언제 기름 바다가 있었던가 이런 생각이 들정도로 깨끗했습니다. 작업했던데 가서 돗자리 펴고 앉아 막걸리도 먹고, 그런 기억이 떠오르네요."(박노권)


사고 당시 14살이었던 대학생 박종호씨는 힘들었지만 그 안에서 뿌듯함을 느꼈다고 소회를 밝혔다. 

"돌이 겉으로 보기에는 깨끗해 보이는데 거뭇거뭇한 것들이 많이 묻어있어서 닦아야 하는 상황이었죠. 냄새가 심해 머리 아팠어요. 주로 마스크를 쓰고 닦는 작업을 위주로 했습니다.

가족들이랑 가기도 했고, 친구들 몇 명과도 같이 다녀왔어요. 친구들이 자기 손에 묻은 줄도 모르고 얼굴 만지고 그러는데, 그런 거 보면서 서로 웃고 닦아주고 하면서 재미있게 봉사활동 했습니다.

처음에 갔을 때랑 나올 때랑 처음에는 차이를 많이 못 느꼈습니다. 냄새도 그대로 나고, 열심히 닦았는데도 티가 많이 안나니까. 그런데 많은 봉사자의 노력으로 하루하루 달라졌다는 언론 보도를 보면서 안 될 것 같은 일들도 결국 다 해결할 수 있구나 하는 걸 느꼈습니다."
 
'태안의 기록, 세계의 기억' 특별전에는 태안유류피해민들이 정부청사를 찾아 절규하는 영상도 흘러나오고 있다.
 '태안의 기록, 세계의 기억' 특별전에는 태안유류피해민들이 정부청사를 찾아 절규하는 영상도 흘러나오고 있다.
ⓒ 김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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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자원봉사자들도 태안을 지키기 위해 팔을 걷어붙였다. 파키스탄 투자청 카운슬러인 수바칸씨는 봉사활동을 하면서 느낀 특별한 경험을 공유했다. 그는 한국인들은 나라가 어떤 도전이나 어려움에 직면했을 때 더욱 강해진다고 말했다. 

"저는 아무런 대가 없이 남을 돕는 것을 좋아합니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과 도움을 원하는 사람을 도와주는 것을 자원봉사라고 할 수 있어, 저는 사회구성원들이 서로 친밀해지고 마음을 나누는 데 자원봉사가 정말 좋은 활동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자원봉사자가 된 계기는 미국의 대통령이 된 한 자원봉사자 지미 카터의 이야기를 접한 후입니다. 그는 사람들의 본보기가 되었고, 자원봉사를 함으로써 더욱 행복하고 강해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제가 자원봉사를 하며 가지게 된 생각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태어날 때 빈손으로 태어나고, 태어난 후 사회의 가족으로부터 이름을 받게 되고, 그렇게 받은 이름이 우리가 세상에서 가지는 정체성이 됩니다.

우리는 죽을 때도 빈손으로 떠납니다. 만약 우리가 좋은 일을 한다면 우리는 좋은 이름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 이름을 남길 수 있습니다. 자원봉사는 우리가 좋은 사람, 좋은 일, 좋은 봉사를 한 사람으로 이름을 남길 수 있게 합니다.

남겨진 좋은 이름은 다른 자원봉사자들이 성장하고 그들이 강해지도록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가 자원봉사자로 이름을 남겨야 하는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제가 자원봉사자라는 사실이 좋고 행복합니다."

 
자원봉사자들의 발자취
 자원봉사자들의 발자취
ⓒ 김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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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희 태안의항교사 목사는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를 하나 공개하며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와서 봉사했던 분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아름다운 마을이었는데 기름 피해당했을 때는 정말 막막했죠. 물이 들어와도 기름 바다고 물이 나가도 기름 바다고 사방이 기름 냄새뿐이었어요. 

우리가 사는 지역은 낙후된 지역이라 처음에는 자원봉사자들이 많지 않았어요. 이후 전국 각지에서 자원봉사자가 많이 오셨어요. 아마 제 평생 최고로 많은 사랑을  받아봤고, 최고로 많이 나눠줬던 것으로 기억이 됩니다.

어느 순간부터 자원봉사자들이 저희에게 필요할 것 같다며 옷을 몽땅 내려놓고 가기 시작했어요. 군은 물론 각 지역 교회에서 지원이 나왔어요. 매일 들어오는 물품들이 꽤 많았습니다. 저희는 지원 물품을 바닷가에 있는 일곱 개 교회에 나눠주면서 그렇게 봉사했습니다.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도 있습니다. 어떤 분들이 봉고차로 오셨는데 쌀을 가지고 왔어요. 금식미를 모아서 가지고 왔다는 거죠. 금식미를 준 분들이 한센병 환자들이었어요. 얼굴도, 손도, 코도, 귀도 없는 분들이 금식을 해 가지고 만든 금식미라고. 보탰으면 좋겠다고 가지고 왔는데 정말 받을 수가 없을 정도로 감사했어요.

'어려움 당한 사람들이 내 시간, 내 물질, 내 몸을 희생하면서 이렇게 돕는구나. 내가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게 자랑스럽다'고 느꼈어요. 왔다 가신 모든 분에게 정말 감사드려요. 

원유유출사고는 재앙이었지만 그 재앙 속에서도 한국 국민의 아름다운 정을 느낄 수 있는 좋은 기회였습니다. 또 그 수고가 헛되지 않도록 바다도 깨끗해졌고요."


'태안의 기록, 세계의 기억' 특별전
 
   
유류방제 체험
▲ 유류방제체험 유류방제 체험
ⓒ 김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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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의 기록, 세계의 기억' 특별전에서 그들의 추억과 기억을 알리는 윤성희 학예사는 "특별전시회 개관 이후 많은 분이 다녀갔다"며 감사한 마음을 전했다.

윤 학예사는 가장 가치 있게 생각하는 자료를 묻는 질문에 "어디에 관점을 둬야 하는지에 따라 다른데 22만 건 중에서 추린 자료여서 모든 자료가 다 가치 있고 중요하다"고 답했다.

"당시 자원봉사 했던 분들이 오면 피해 현황이나 방제작업 사진을 함께 보면서 함께 대화를 나눠요. 행정 관련된 일을 하시는 분들은 그와 관련된 자료를 보며 자원봉사자들과는 대화를 나눠요.

방문하는 분들이 어떤 분들이냐에 따라 관심 자료가 달라요. 보통의 전시회는 전시관에 전시된 것들을 쭉 훑어보고 나오는데, 우리 전시는 공간이 작음에도 머무는 시간이 길어요. 뒷얘기들을 많이 하기 때문이에요."

덧붙이는 글 | 태안신문에도 실립니다.


태그:#태안원유유출사고, #자원봉사, #태안기름유출사고, #전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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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의 지역신문인 태안신문 기자입니다. 소외된 이웃들을 위한 밝은 빛이 되고자 펜을 들었습니다. 행동하는 양심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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