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2일 열린 서울독립영화제 아카이브전

12월 2일 열린 서울독립영화제 아카이브전 ⓒ 서울독립영화제 제공

 12월 2일 서울독립영화제 아카이브전에 나온 최정현 감독, 이용배 감독, 안재훈 감독

12월 2일 서울독립영화제 아카이브전에 나온 최정현 감독, 이용배 감독, 안재훈 감독 ⓒ 서울독립영화제 제공

 
"내가 강박처럼 갖고 있었던 이미지 몇 개가 있었다. 서울대의 아크로폴리스, 찢어진 눈 같은 이미지들. 세 작품을 보니 끊임없이 내 안에 남아있던 이 이미지들이 '반쪽이(최정현 감독)' 때문이라는 걸 다시 한 번 확인했다."

지난 2일 서울독립영화제 독립영화 아카이브전에 참석한 이용배 감독(계원예대 교수)은 최정현 감독의 작품을 이렇게 평가했다. 

영화를 통해 사회 비판적 의식을 담았던 한국 영화운동에서 애니메이션 역시 작품을 통해 운동성을 구현했고, 그간 시발점을 이용배 감독의 단편 애니메이션 <와불>로 보고 있었다.

하지만 이날 일반관객들에게 공개된 반쪽이 최정현 감독의 애니메이션 <방충망> <상흔> <그날이 오면> 등 세 편은 애니메이션 운동의 출발이 1980년대 초반이었음을 확인해 주는 중요한 근거 자료였다. 1980년 서울의 봄 이후 권력을 찬탈한 군사독재치하에서 애니메이션을 활용해 이를 비판하는 작업이 진행됐다는 것은 상당히 의미 깊은 발굴이었다. 

최정현 감독은 '반쪽이'란 별칭으로 1980년대~1990년대 만평 등의 작업을 했던 미술작가다. 감독이란 호칭을 낯설어했으나, 이날상영을 통해 초기 애니메이션 운동의 선구자로 인정받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매해 독립영화운동을 조명하는 아카이브전의 올해 주제는 애니메이션이었다. 최정현 감독 작품 외에 이현주 감독 <오래된 꿈>, 이용배 감독 <와불>, 안재훈 감독 <히치콕의 어떤 하루> 등 6편의 단편이 상영됐다. 하나같이 초기 독립 애니메이션을 엿볼 수 있는 자리였다. 물론 관심의 초점은 처음으로 대중에게 선보이는 최정현 감독의 1980년대 작품이었다. 

하숙방에서 작업한 애니메이션
 
 최정현 감독 1983년 작 <방충망>의 한 장면

최정현 감독 1983년 작 <방충망>의 한 장면 ⓒ 서울독립영화제 제공

 
 이용배 감독

이용배 감독 ⓒ 서울독립영화제 제공


<방충망>은 학내 경찰이 상주하고 투신으로 군사독재의 저항한 서울대의 풍경을 담고 있다. 학내 상주하는 경찰을 희화화했다. <상흔>은 분단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고 <그날이 오면>은 6월 항쟁이 펼쳐지던 해 민중가요 '그날이 오면'을 애니메이션으로 형상화하는 작품이다. 하나같이 독재정권 치하에서의 사회 비판 의식이 새겨져 있었다.

1983년 만들어진 첫 번째 애니메이션 <방충망>은 가내 수공업처럼 골방에서 어렵게 8mm 카메라로 담았기에 투박하게 보였으나 담겨 있는 메시지는 뚜렷했다. 학생 시위를 막기 위한 독재의 행태를 조롱하며 비웃고 있었다. 

이용배 감독은 "반쪽이의 <방충망>(1983)은 다시 봐도 치열한 대학 생활과 미술활동을 한 상황이 느껴진다. 전에 듣기로는 예전에 하숙방에서 8mm 필름을 작업했다 했는데, 확실히 어렵사리 한 흔적이 있다"고 평가했다.

또한 "세 작품을 한꺼번에 보니 기술적인 완성도가 눈에 띈다. 특히 세 번째 작품 <그날이 오면>(1987)을 보면 페이퍼로 완벽한 화면을 구성하는 게 아니라, 움직이는 것과 움직이지 않는 것을 분리해서 작업한 것이다. 초창기 재주이기는 하지만, (애니메이션의) 셀 작업을 개인 작업으로 처리했다는 게 다시 한번 감동스럽게 다가온다"고 덧붙였다.

"이름 넣었으면 모두 잡혀갔을 것"

이들 세 편 애니메이션의 특징이자 공통점은 엔딩 크레디트가 없다는 점이다. 한 편의 영화가 끝나면 마지막으로 영화에 관계했던 모든 이들의 이름이 올라가는 엔딩 크레디트는 영화의 필수적인 요소지만 단 한 사람의 이름도 존재하지 않는다. 
 
최정현 감독은 "그 당시는 크레디트 안에 이름을 넣으면 잡혀가던 시대라 '반쪽이'라는 예명만 넣었다"고 말했다. 

이어 "언젠가 이런 자리가 마련되면 꼭 밝히고 싶었던 게 있다. 1980년대엔 내 이름조차도 크레디트에 못 넣었고 실제로 마포경찰서에 잡혀 들어가기도 했다"고 회상했다.
 
 최정현 감독

최정현 감독 ⓒ 서울독립영화제 제공

 
최 감독에 따르면 프랑스문화원에서 상영을 제안받아 준비하고 있다가 어떤 모임에 갔는데 경찰이 들이닥쳤고 수갑을 찬 후 영사기하고 필름을 봉고차에 싣고 가면서 이제 모든 게 끝났구나 싶었다고 한다. 그 와중에 영사기 렌즈를 풀어서 의자 밑에 숨겼고, 8mm 필름을 본 적이 없던 경찰이 렌즈가 없는 영사기를 빛에 비추었으나 내용을 확인하기 어렵다 보니 추궁만 당하다 얼버무린 덕에 일주일 만에 풀려날 수 있었다. 

최 감독은 "만약 당시 크레디트에 내 이름을 넣고 도움을 줬던 분들의 이름을 실었으면 모두 잡혀갔을 거다. 작품 크레디트에는 못 실었던 분들이 오늘 이 자리에 함께해 줬다"고 관객석에 있는 당사자들을 일일이 소개했다.

<방충망>(1983)에서 노래 불러준 조용호씨를 언급하며 "(서울대) 아크로폴리스 광장에서 혼자 웅장하게 저 노래를 불렀는데 얼마나 인상적이었는지 모른다"고 말했고, "<상흔>(1984)은 (성공회대) 김창남 교수의 다락방에서 살면서 결혼 전이었던 김창남 교수 사모님이 가져다준 반찬과 김창남 교수의 조언 덕에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고 전했다. 

아울러 "<그날이 오면>(1987)의 장면에 나오는 고등학교 친구가 유인물을 뿌리다가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실제로 교도소에 1년 정도 살다 왔고, 같이 자취를 하면서 취직도 못하고 둘이 앉아 '교도소 1년이 편하냐, 군대 3년이 편하냐' 토론하기도 했다"고 회상하면서 "<그날이 오면>을 만들면서 경제적으로 너무 힘들었다 보니 네 번째 애니메이션은 포기하게 됐다"고 말했다.

최정현 감독은 또한 "대학교 때 학보사에 들어간 이후 사회의식의 영향을 많이 받았고 그때 만난 반쪽이의 뿌리가 여기 계시다"며 40년 이상 멘토가 되어준 하영권씨를 소개한 후 "이렇게 모두를 소개해 드릴 수 있어 속이 풀어진 것 같다. 감사하다"고 인사했다.

한편 서울독립영화제 독립영화 아카이브전은 폐막일인 8일 오후 한번 더 상영이 예정돼 있다.
서울독립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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