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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수능 한파'가 있다면 뉴욕에는 '핼러윈 칠'이 있다. 사실 날씨가 아니라 '핼러윈 칠리(Halloween Chili)'라는 전통 음식을 말한다. 그런데 이상할 정도로 10월의 마지막 날, 할로윈이 되면 유독 하늘이 무겁고 으슬으슬 추워지니 '핼러윈 칠리(Halloween Chill, chilly)'가 왔다고 말장난을 하게 된다.

기부하는 화요일
 
인근 Tanger Outlet에는 땡스기빙이 채 지나기도 전에 크리스마스 장식이 설치되었다. 블랙프라이데이에는 주차할 곳이 없게 대형주차장이 자동차로 가득차고 매장밖까지 길게 쇼핑객들이 줄을 서서 대기하고 있었다.
▲ 블랙 프라이데이 쇼핑 인근 Tanger Outlet에는 땡스기빙이 채 지나기도 전에 크리스마스 장식이 설치되었다. 블랙프라이데이에는 주차할 곳이 없게 대형주차장이 자동차로 가득차고 매장밖까지 길게 쇼핑객들이 줄을 서서 대기하고 있었다.
ⓒ 장소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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핼러윈이 지나면 미국은 본격적인 연말의 흥겨움에 들어간다. 가족들이 모여 특별한 전통 저녁식사를 즐기는 땡스기빙을 마치고 나면 집과 거리는 빨강, 초록, 눈꽃장식 가득한 크리스마스 타운으로 변신을 한다. 그러나 크리스마스 장식을 하기 전에 며칠 더 바쁘게 보내야 한다. 

목요일 땡스기빙, 금요일 블랙 프라이데이(Black Friday), 주말부터 월요일까지 사이버 먼데이(Cyber Monday)를 지나 이제는 또하나의 중요한 날이된 화요일, '기빙 투즈데이(Giving Tuesday)'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맨해튼에 살고, 생활에 여유가 조금만 있다면 맴버십 가입을 하고 싶은 단체가 있다. 92Y나 92NY로 불리는 '92nd street Y'이다. 맨해튼 동쪽 92가에 위치한 공연 홀이자 문화 단체로 올해 설립 150주년이 되었다.
 
92NY는 맨해튼 동쪽 92번가에 있는 공연장이자 문화예술단체이다. '기빙 투즈데이'를 시작한 단체이기도 하다.
▲ 설립150주년을 맞은 92 NY 92NY는 맨해튼 동쪽 92번가에 있는 공연장이자 문화예술단체이다. '기빙 투즈데이'를 시작한 단체이기도 하다.
ⓒ 92ny홈페이지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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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 작가의 북토크부터 세계적인 명성을 가진 예술가들의 실험적인 협업과 연주, 영화인과의 만남 등 다채로운 문화 행사가 1년 내내 열린다. 봄이면 어린이들과 함께 '피자 북토크'를 진행하기도 하고, 신진 예술인의 데뷔를 도와주면서 다음 세대에게 예술의 문을 열어주는 일에도 적극적이다. 

'기빙 투즈데이'는 이곳에서 시작된 일종의 후원금 혹은 기부금 모금의 날이다. 처음 '기빙 투즈데이'의 광고를 보았을 때는 이게 뭔가 하고 낯설었는데 여러 단체로 확산되더니, 어느새 기부를 위한 중요한 날로 자리를 잡았다. 

기부를 요청하는 단체도 다양하다. 뉴욕 필하모닉 같은 예술 단체에서부터 국경없는 의사회 같은 구호 단체, 최근에는 가까운 생활권 내의 중소규모 단체들도 기빙 튜즈데이를 적극 활용하여 모금을 하고, 단체를 알리고 있다. 

의외의 사회 공부가 된 시간  

우리 부부는 오래전부터 어린이와 관련된 구호단체에 매달 정기 후원을 하고 있다. 그러나 심부름값으로 푼돈을 쥐여주는 걸로 용돈을 대신하는 형편에 아이들에게까지 정기 후원을 제안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잖아도 기부가 생활화 되어 있는 미국이라 일년 내내 기부로 적잖이 용돈이 빠져나가기 때문이다.

'기빙 투즈데이'는 여러모로 우리 부부의 고민과 아이들의 부담을 덜어주었다. 일 년에 한 차례, 잠깐의 관심이면 충분하기 때문이다. 일단 홀리데이 시즌이다 보니 주변에서 용돈이 날아든다. 땡스기빙 만찬이 끝나고 나면 우리 가족만의 2부 순서, 작은 상금이 걸린 게임 시간도 있다. 곳간에서 인심 난다고, 주머니가 두둑해야 마음도 넉넉해지는 것이 인지상정.

기부금 이야기를 꺼내기도 쉬웠다. 대신, 기부할 곳은 스스로 정해보도록 했다. 별 뜻 없이 소액을 기부할 수 있는 단체를 찾아보라고 한 것이었는데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 

익숙한 문화 예술 단체는 가장 적은 금액이라도 아이들에게는 꽤 고액이었다. 뉴욕 필하모닉만 해도 최소 시작 금액이 100달러이다. 물론 기부자들에 대한 베네핏이 있긴 하지만 아이들이 받을 만한 혜택은 아니었다. 자연스럽게 소액 기부를 할 수 있는 단체를 검색하게 되었다.

세상은 넓고 기부처는 다양했다. 우리가 알지 못했던 단체, 우리가 미처 생각지도 못한 선한 일을 하는 모임이 너무 많았다. 잠깐 검색을 하고 쉽게 기부하려 했는데, 서로가 찾아낸 단체와 하는 일이 화두가 되어 한 시간은 족히 흘렀던 것 같다. 
  
선택의 시간, 아이 하나는 우리가 사는 롱아일랜드의 어느 구호 단체를 골랐다. 음식을 나누는 단체다. 나는 교회에서도 익히 들어왔고, 얼마 전에 어린이 납치와 인신매매, 노예 노동 관련 실화를 다룬 영화 <사운드 오브 프리덤>(Sound of freedom)도 감명 깊게 본 터라 현대판 노예들을 구출하는 국제 단체에 기부하기로 했다.

곁에 있던 아이가 고민에 빠졌다. 선택한 단체의 기부 출발 금액이 조금 높았나 보다. 아이가 생각한 만큼 용돈에서 덜어 내놓고 내가 조금 보태주기로 했다. 

며칠 후 선택한 단체의 목표액이 채워졌는지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일 년쯤은 도너(donor, 기부자)에게 보내오는 메일을 통해 자신이 기부한 단체의 활동 소식도 알게 될 것이다.

아이들도 이제는 어엿한 기부자가 된 셈이다. 벌써부터 아이들은 나중에 대학생이 되면 자원봉사자로 참여하고 싶다고 이야기한다. 홈페이지를 찾아 활동 영상과 활동가의 인터뷰를 보고, 관련 뉴스도 찾아보면서 '기부'를 진지하게 받아들인 아이들을 보며 생각이 많아졌다.

클릭 몇 번으로 좋은 일에 돈이나 좀 보태지 하고 단순하게 생각했던 내가 부끄러웠다. 이제부터라도 정기 후원하는 단체에서 보내오는 소식지를 꼼꼼하고 정성을 들여 읽어야겠다. 

상처투성이인 세상을 보듬어 안으려는 선한 활동들, 거칠어진 마음을 부드럽게 다독이는 예술 활동이 쇼핑 할인가보다 더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았으면 좋겠다. 잠시 즐거운 쇼핑보다 기부자로의 뿌듯함을 아이들이 일 년 내내 누려보게 하는 건 어떨까. 알지 못했던 세상의 한구석에 대한 관심과 빛을 비추어 주었다는 기쁨은 쇼핑백에는 결코 담을 수 없는 것이니 말이다. 
 
'기빙투즈데이'를 통해 활동을 알리고 후원을 요청하는 단체들이 생각보다 많았다. 문화예술, 구호, 구제, 음식나눔, 교육재단 등 하나씩 찾아 활동을 읽고 영상을 보며 아이들과 의외의 공부를 하게되었다.
▲ 기빙투즈데이 기부금 모금을 위한 홍보물들 '기빙투즈데이'를 통해 활동을 알리고 후원을 요청하는 단체들이 생각보다 많았다. 문화예술, 구호, 구제, 음식나눔, 교육재단 등 하나씩 찾아 활동을 읽고 영상을 보며 아이들과 의외의 공부를 하게되었다.
ⓒ 인터넷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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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기부, #후원, #기빙투즈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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