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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교육 멈춤의 날 - 서이초 교사 49재 추모집회’가 지난 9월 4일 오후 여의도 국회앞에서 교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공교육 멈춤의 날 - 서이초 교사 49재 추모집회’가 지난 9월 4일 오후 여의도 국회앞에서 교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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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정된 교원지위법에서 과도하고 반복적인 학부모의 악성민원을 교육활동 침해 행위로 규정했지만, 약간의 진전일 뿐이다. 결국 (서이초 사건 수사 종결로) 교육활동 침해 학부모를 법률적으로 기소할 체계가 마련돼 있지 않다는 것만 확인됐다. 그림의 떡이다." - 장대진 서울교사노조 수석부위원장

지난 14일 경찰이 서이초 교사 사망사건 발생 넉 달 만에 범죄혐의 없음으로 수사를 종결했다. 발표 당일 장대진 서울교사노조 수석부위원장은 <오마이뉴스>에 "선생님을 힘들게 한 정황과 가해자는 있는데 처벌할 수는 없다? 아무도 책임질 사람이 없다는 건가"라고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앞서 학부모로부터 '과실치사' 혐의로 형사 고소당했던 용인시 고등학교 60대 체육교사 사망사건도 무혐의로 종결됐던 터라 이번 발표로 교사들의 무력감은 더욱 커졌다. 많은 교사들이 서이초 수사 종결에 대한 견해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답변하지 않겠다"라며 입을 다물었다.

[법조계] "서이초 범죄혐의 없음... 법리보다는 증거불충분의 문제"

진전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오랫동안 답보 상태였던 소위 교권보호 4법(교육기본법·초중등교육법·유아교육법·교원위 향상 및 교육활동 보호를 위한 특별법)이 국회 문턱을 넘었다. 하지만 교사들은 변화를 체감하지 못한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가 지난달 전국 교원 5461명을 조사한 결과, 55.3%가 교권 4법 통과에도 변화는 없다고 답했다.

일부 교사들은 교권침해를 좀더 강력하게 처벌한 법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이른바 형법상 공무집행방해죄 처벌이다. 장대진 수석부위원장은 "경찰이 발표한 내용을 보면 고인이 학생지도와 학부모의 민원과 중재로 교육활동을 침해당한 게 드러난다"며 "연필사건 다음날 학부모 중재가 안 되어서 다음날 수업도 못 했다. 교사들한테는 교권침해가 공무집행 방해"라고 주장했다.

이어 "교사들은 악성 학부모의 민원으로부터 우리를 지켜줄 수사·교육당국이 없다는 것에 절망하고 있다"라며 "경찰이 소극적으로 법의 잣대를 들이밀고 '범죄혐의'가 없다고 발표하는 뉘앙스를 교사들은 결코 납득하지 못하고 있다"라고 했다. 경기도 소재 초등학교 2년차 교사 A씨도 "현장의 신속한 회복과 교사들의 보호를 위해 위해 강력 처벌할 수 있는 법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변호사 등 법률 전문가들은 수사기관의 이번 판단이 현 법체계에서 법리적으로 무리하지 않다고 봤다. 또 교권침해 행위를 형법상 공무집행방해로 처벌하려면 입법 단계를 거쳐야 하고 그를 위해서는 사회적 논의가 충분히 진행돼야 한다는 의견이었다. 구체적으로는 "(학부모들의 과잉 민원을) 기소하려면 행위의 '강도'를 구체적으로 입증했어야 하는데 물증이 없었을 것"이라고 봤다. 

양혜인 법률사무소 은인 대표 변호사는 "형사 범죄로 기소되기 위해선 침해된 보호법익과 인과관계를 구체적·객관적으로 입증해야 하는데 경찰은 '범죄혐의가 없다'고 발표했다. 이는 법리적 문제보다 증거불충분의 사유"라며 "아무리 사회적으로 비난받아야 마땅한 행위일지라도 법률에 범죄로 규정되지 않는 이상 형사처벌 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학교폭력 전문 변호사인 노윤호 법률사무소 사월 대표변호사는 "일반 형사사건에서도 피해자가 사망에 이르렀다는 결과만으로 피의자를 반드시 살인죄로 기소할 수 없듯 인과관계를 무시한 채 결과만 따져 법 적용을 할 수는없다"고 말했다.

노 변호사는 "학폭도 교권침해와 마찬가지로 형법보다 넓게 권리침해 행위를 인정하고 있다"며 "잦은 악성 민원을 업무방해와 협박으로 보기 어렵더라도 서이초 사건으로 법이 정말 많이 개정됐다. 경종을 울린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학교에서 열리던 교권보호위원회는 앞으로 객관성·전문성 강화를 위해 교육지원청으로 이관됐다"며 "예전에는 '학생이 선생님을 때리는' 물리적 폭력만 (주로) 교권침해를 인정했다면, 지금은 악성민원과 폭언 등 비물리적 폭력으로 확장한 것"이라고 말했다.

"공무집행방해 처벌? 양육비이행법 개정처럼 충분한 논의 필요"
 
지난 7월 숨진 서울 서이초 교사가 근무했던 1학년 6반 교실 선생님 책상에 국화꽃이 놓여있다.
 지난 7월 숨진 서울 서이초 교사가 근무했던 1학년 6반 교실 선생님 책상에 국화꽃이 놓여있다.
ⓒ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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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 변호사들은 '교육활동 침해를 공무집행방해로 보고 관련 법을 적극 적용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법 개정 없이 어렵다"고 보았다.

양 변호사는 "교권침해 행위를 민사법 영역을 넘어서 구체적으로 형사처벌 대상으로 삼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입법이 필요하다"며 "2021년 양육비를 미지급하면 법에 따라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 벌금 등을 선고할 수 있게 된 양육비이행법 개정이 대표적 사례로 가사·민사 문제가 형사 문제화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교권침해 행위가 형사처벌 되지 않고 단순히 손해배상 등 민사사건으로 본다면 실효성이 떨어지는 것은 사실"이라며 "양육비 미지급자 형사처벌 고소 1호도 형사처벌 대상이 되자 전액을 지급하였기 때문"이라고 부연했다.

노 변호사도 "공무집행방해와 업무방해는 구별돼 있다"며 "업무방해는 사인 간이고, 공무집행은 공무원들을 방해한 것인데 공무집행방해는 오로지 폭행과 협박에 의한 행위로만 구성돼 있다"고 설명했다.

"교사뿐 아니라 일선 주민센터나 구청에서도 악성 민원으로 공무원들이 고통받고 있다. 가장 엄격하게 적용돼야 할 형법으로 처벌하자는 건 지금으로선 시기상조다. 서이초 사건으로 변화한 제도를 현장에 안착시켜 교사들을 보호하는 게 우선이다. 지금으로선 (공무집행방해 적용 주장은) '병에 걸렸는데 당장 배를 갈라 수술하자'는 것과 같다." - 노윤호 법률사무소 사월 대표변호사

양 변호사는 "교사의 정당한 교육활동 침해 행위를 범죄로 규정하고 형사처벌하는 법안은 아동보호를 위해 목적이 정당한 민원도 위축시킬 수 있어 신중하게 판단해야 할 사안"이라며 "교권을 회복시켜야 한다는 명제와 별개로 추가 입법을 통한 형사 사건화는 충분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입법부] "교원지위법 시행 얼마 안돼... 변화 살펴야"

입법부 또한 학부모 악성민원의 형사 처벌 강화에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교원지위법 등이 통과된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변화를 볼 필요가 있다고도 덧붙였다.

교원지위법을 대표 발의했던 강민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관계자는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교원 단체의 요구를 수렴해 교원지위법이 개정됐고 시행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상황"이라며 "교육청이 교권침해 판단과 고발의 책임을 지게 되어 일선 교사들의 부담을 덜어주었다고 본다. 국회도 교육부와 교육청 국정감사를 통해 관련 기관이 교원을 보호하는지 들여다볼 것"이라고 말했다.

개정된 교원지위법에는 교육활동 침해행위로 형법상 ▲공무집행방해 ▲상해와 폭행 ▲협박과 명예훼손 ▲정보통신망법에 따른 불법정보 유통 등이 포함돼 있다(교원지위법 제19조). 또한 관할 교육청이 교권침해 여부를 판단하고, 교육활동 침해행위가 형사처벌규정에 해당된다고 판단하면 수사기관에 고발하도록 규정했다(교원지위법 제20조).
 

태그:#교사사망사건, #교권침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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