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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오전 서울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에서 만난 쪽방 주민 문윤식씨의 1평 남짓한 방 한쪽 벽면에 쓰레기통, 대야, 비닐봉지 등이 널브러져 있다. 이곳을 건들면 지금도 빈대 같은 잡다한 벌레들이 튀어나온다고 했다.
 14일 오전 서울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에서 만난 쪽방 주민 문윤식씨의 1평 남짓한 방 한쪽 벽면에 쓰레기통, 대야, 비닐봉지 등이 널브러져 있다. 이곳을 건들면 지금도 빈대 같은 잡다한 벌레들이 튀어나온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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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오전 서울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에서 만난 쪽방 주민 문윤식씨가 자물쇠로 잠긴 113호 방문을 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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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호 문윤식의 방에는 빈대가 산다.

14일 오전 서울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에서 만난 문씨는 빈대 얘기에도 덤덤했다. 그를 따라 뻥 뚫린 1층 복도에 자물쇠로 잠긴 방문을 열었다. 1평 남짓한 방 안에 옷가지와 냉장고로 가려진 한쪽 벽면이 눈에 들어왔다. 그곳에 널브러져 있는 쓰레기통, 대야, 비닐봉지를 건들면 지금도 빈대를 비롯한 잡다한 벌레들이 튀어나온다고, 그가 무심하게 말했다.

"저기 바퀴벌레도 한 마리 지나가네."

이미 방역업체가 '소탕 작전'을 한바탕 벌인 뒤였다. 서울시는 지난 9일 쪽방촌 건물 64개동 1244가구를 대상으로 빈대를 퇴치하기 위한 '고온 살균' 방역 작업을 진행했다. 문씨의 방에도 방역복을 입은 사람들이 왔다 갔다. 하지만 약을 뿌리고 스팀 고열을 분사해도 빈대들은 살아남았고, 닷새 만에 다른 벌레들과 함께 문씨의 방에 와 있었다.

방역에도 여전한 '벌레들의 습격'

왜 빈대는 사라지지 않는 걸까. 엄훈식 한국방역협회 선임연구원은 "빈대는 짧은 간격으로 근거리의 먹이원(사람)을 흡혈해야 한다"며 "일반적인 주택과 달리 쪽방촌은 설계 때부터 차폐가 제대로 되지 않아 전선이나 배관 틈을 통해 옆방으로 빈대가 확산하기 쉬운 구조다. 건물 내 한 곳이라도 소독되지 않으면 금방 다시 번식한다"고 했다. 쪽방촌 주민들도 벌레에는 이골이 난 듯했다. 

"약 뿌려도 다 소용없는 짓이야. 바퀴벌레 때문에 못 살겠는데."

50m 정도 떨어져 있는 전인화의 방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건물 2층과 3층 계단을 사이에 둔 곳에 그의 3-2호 쪽방이 있었다. 방문을 열자 좁은 방바닥에 갖가지 잡동사니가 빼곡히 널려져 있었다. 그는 바퀴벌레 때문에 3년간 머문 그 방을 조만간 떠날 심산이다.

"빈대 출몰한다고 빈대 신고만 받더라고. 바퀴벌레에는 입도 뻥긋 안 하던데. 사람이 사람답게 살다 가야지, 이 심정 누가 알겠어."

전씨의 방에는 빈대가 없다. 대신 겨울이 다가오면서 바퀴벌레가 집안으로 몰려왔다. 전씨는 "세탁기와 베란다와 수도꼭지에 열 마리가 움직이면 세 마리 정도 잡는다"며 "벌레가 하도 달려들어서 밤에 잠을 못 잔다"고 했다.
 
14일 오전 서울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에서 만난 쪽방 주민 이상원씨가 방 안에서 청소를 해도 제거되지 않는 벌레들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14일 오전 서울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에서 만난 쪽방 주민 이상원씨가 방 안에서 청소를 해도 제거되지 않는 벌레들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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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4호 이상원의 방에는 방역이 이뤄지지 않았다. 지난주 흰 방역복을 입은 사람들이 쪽방 건물 통로에만 약을 뿌리고, 그의 방까지 들어와 소독하진 않았다는 것이다. 이 동네에서만 30년을 살았다는 이씨는 매일 옷을 갈아입고 빨래를 해도 아침마다 까맣고 손톱만한 구더기가 한두 마리씩 나온다고 했다. 청소를 아무리 해도 벌레는 완전히 제거되지 않았다. 동자동은 이미 수십 년 전부터 벌레들의 습격을 받았다.

용산구청 관계자는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지난주 방역이 한꺼번에 진행되는 과정에서 (일부 가구가) 누락이 됐을 수 있지만, 쪽방촌이라는 집단 밀집 지역에 거주하는 주거 취약계층과 관련해서는 항상 방역을 해왔다"며 "아직 민원이 많진 않지만 앞으로도 직접 현장 방역을 실시하려 한다"고 설명했다. 

'진공청소기로 침대 매트리스와 실내 공간을 청소하세요.' '옷과 침구류는 고온으로 세탁·건조하고 다림질해 비닐봉투에 밀폐 보관하세요.'

서울시의 빈대 예방 행동수칙도 이곳에선 무용지물이었다. 이씨의 방에는 다리미가 없었고 진공청소기는 오래돼 사용이 어려웠다. 근처 쪽방에 사는 한 주민은 "빈대나 벌레가 나온다고 불평불만을 해도 나라에서 들어주지 않는다. 우리 잘못이 아닌데도 우리가 사는 집은 다 이렇다"고 토로했다. 

쪽방 주민들 "빈대 퇴치보다 빈곤 퇴치"

'빈대 대란' 이전에도 쪽방촌 주민들은 항상 벌레와 같이 살아왔다. 노후한 주택 시설 때문에 약을 쳐도 그때뿐, 벌레는 다시 돌아왔다. 한국도시연구소가 연구용역을 받아 작성한 '2020년 서울시 재난 상황에서 노숙인 등 인권상황 실태조사'에 따르면, 쪽방·여관·여인숙 주민들은 해충(39.5%), 습기·곰팡이(32.1%), 냉난방(31.3%) 순으로 현 거주지에서 건강상의 위협을 느꼈다(복수 응답).

박승민 동자동사랑방 활동가는 "최근 빈대가 외국에서 유입됐다고 하는데, 지난해 7~8월부터 동자동 한 고시원 건물에서 이미 빈대가 나왔다"며 "지금처럼 잘 보이는 곳 위주로 소독 몇 번 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개인의 위생보다는 전체적인 주거 환경의 문제가 크다"고 설명했다. 

동자동 주민들도 방역같은 한시적인 조처보다 공공개발을 해서 공공임대주택을 짓길 원한다. 국토교통부와 서울시는 지난 2021년 2월 동자동 쪽방촌 공공주택사업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토지·건물주들의 민간개발 전환 요구에 부딪혀 3년 가까이 사업은 중단된 상태다.

지금 쪽방에 10년째 살고 있다는 문씨는 "공공개발이 필요하긴 한데 답이 안 보인다"며 "민간개발로 건물이 헐리면 다른 곳에 가야 하는데 가고 싶지 않다. (공공개발이 돼서) 깨끗하게 살고 싶다"고 했다. 이씨도 "다른 지역으로 옮겨가면 아는 사람 하나 없이 생활해야 한다. 공공개발이 빨리 진행돼서 매일 보고 인사하는 사람들과 함께 살 수 있는 주거 환경이 만들어지면 좋겠다"고 바람을 전했다. 

김윤영 빈곤사회연대 활동가는 "쪽방·고시원 주민들이 '빈대 퇴치'보다 '빈곤 퇴치'를 외치고 있다"며 "국가가 앞서 약속한 공공주택사업이 조속히 추진돼야 한다. 방역만큼 중요한 건 주거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해 감염병과 해충에 노출되지 않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라고 했다.

최은영 한국도시연구소 소장은 "공공주택사업이 멈춰진 상황에서 서울시가 주거 문제에 굉장히 시혜적으로 접근하고 있다"며 "벌레만 없앤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방역도 필요하지만 쪽방촌 공공사업을 통해 주거권 차원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14일 오전 서울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에서 만난 쪽방 주민 전인화씨가 쪽방 건물 2층과 3층 계단을 사이에 둔 그의 3-2호 쪽방으로 올라가고 있다. 벽면에는 '빈대 발견 시 신고' 안내지가 붙어 있다.
 14일 오전 서울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에서 만난 쪽방 주민 전인화씨가 쪽방 건물 2층과 3층 계단을 사이에 둔 그의 3-2호 쪽방으로 올라가고 있다. 벽면에는 '빈대 발견 시 신고' 안내지가 붙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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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동자동, #쪽방촌, #빈대, #방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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