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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오후 여의도 국회의사당.
 21일 오후 여의도 국회의사당.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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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여기저기서, 지역구 의석수와 상관없이 정당 득표율에 비례해 비례 의석수를 나누는 병립형 비례대표제 회귀를 반대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온다.

22대 총선이 약 5개월 남은 10일 현재, '병립형 비례대표제' 회귀는 지금껏 21대 국회에서 진행했던 선거제도 개편 논의를 무색케 하는 방향이다. 헌정 사상 최초라는 선거제도 관련 공론조사와 국회 전원위원회까지 진행했건만 여야가 아무런 합의점도 찾지 못한 채 시간을 흘러 보냈다는 점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그런데 최근 제기되고 있는 '병립형 회귀 반대' 목소리는 표의 등가성·비례성 확대란 선거제도 개편의 방향성에 어긋난다는 원론적 주장이 아니다. '정말 병립형으로 돌아갈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크다.

원내 제1당, 더불어민주당의 계산이 끝났다는 기류가 감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선거제도 개편 논의가 침체된 사이 민주당에서 '병립형 회귀'를 만지작거린다는 얘기가 간간히 나오긴 했지만 11월 들어서는 '마음을 굳힌 것 같다'고 보는 이들도 있다.

'선거제 퇴행 담합' 자꾸 말 나오는 이유

한국의 국회의원은 지역구 의원 253명과 비례대표 의원 47명, 총 300명이다. 현재로선 지역구 선거는 기존의 소선거구제 유지가 사실상 확정됐다. 다만 비례대표제는 불분명하다. 정당득표율을 총 의석 수와 연동시키되 그 절반만 반영하는 '준연동형'은 21대 총선에서 처음 도입됐고, 위성정당을 둘러싼 무수한 논란을 낳았다. 애초 현행 선거제를 반대했던 국민의힘은 이런 명분을 들면서 정당득표율만큼 비례의석을 가져가는 옛날 방식, 병립형으로 돌아가자고 주장했다. 민주당 내에선 여러 대안들이 제기됐지만 딱 부러진 답을 내진 못하는 상황이었다.

병립형으로 돌아가면 어떻게 될까. 이 제도가 나쁜 제도는 아니다. 그러나 '다양한 집단과 계층을 대표하는 이들이 골고루 국회에 들어온다'는 비례대표제 취지를 살리려면 병립형 유지시 비례대표 의석을 더 늘려야 한다는 게 시민사회·학계의 오랜 주장이었다. 지난 5월 국회 정치개혁특위에서 숙의 과정을 거쳐 진행한 선거제 개혁 공론조사에서도 '비례대표를 늘려야 한다'는 의견이 무려 70%를 기록했다.

하지만 현 시점의 '병립형 회귀 논의'는 비례대표 의석 수 유지를 전제한다. '퇴행'이라 비판받는 이유다. 목적은 한 가지, '위성정당' 혹은 '형제정당'의 출현 방지다. 이 대목에서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진다는 게 중론이다.

국민의힘은 최근 '이준석 신당'의 여파가 어디까지 미칠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준석 전 대표는 12월 27일이라는 날짜까지 못 박으며 신당 창당을 구체화하고 있다. 그는 지난 8일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선 "창당하게 되면 가장 어려운 역할을 맡겠다"며 대구 출마까지 공언했다. 유력한 모델은 2016년 국민의당이다. 당시 '반문재인'을 내세우며 탈당한 안철수 의원 등은 민주당 텃밭 호남을 싹쓸이, 지역구에서 25석이나 차지했고 정당득표율도 2위를 기록해 비례 13석을 가져갔다.

국민의힘에게 더 마뜩찮은 것은, 이준석 신당이 '지역구 의석을 많이 차지한 정당이 비례 의석 배분에서 불리한' 현행 제도의 혜택을 받을 수 있단 점이다. 전체 지역구 선거에선 여당을 앞설 수 없음에도 유의미한 정당 득표율을 얻어 상당한 의석수를 확보할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우려는 민주당에서도 마찬가지다. 미디어토마토가 <뉴스토마토> 의뢰로 10월 21~22일 전국 성인 1015명에게 ARS로 물었더니, 이준석 신당의 정당 지지도는 17.7%에 달했다. 국민의힘(신당 없을 때 30.4%→있을 때 26.1%)은 물론 민주당 지지층(46.6%→38.1%)도 이동한 결과였다.
 
9일 평산책방에서 저자 사인회를 연 조국 전 장관. 문재인 전 대통령과 함께 했다.
 9일 평산책방에서 저자 사인회를 연 조국 전 장관. 문재인 전 대통령과 함께 했다.
ⓒ 이윤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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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쪽 변수는 더 있다. '조국 신당'이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은 지난 6일 유튜브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에서 처음으로 직접 총선 출마 가능성을 내비쳤다. 곳곳에선 설이 난무하는데, 어떤 방식이든 민주당에겐 부담이다. '우리 당 사람이 아니다'라고 선을 그어도 '조국 대 윤석열' 구도가 선거에 영향을 줄 수 있고, 역시 민주당이 배분받지 못하는 비례 의석이 그쪽으로 돌아갈 수 있다. 아울러 '친이재명'을 내세운 비례신당의 등장도 배제할 수 없다. 이 또한 민주당에겐 난제다.

민주당 내부 상황을 봐도 '병립형 회귀가 이득'이라는 주장도 있다. <오마이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민주당 지도부는 친명계 출마자들이 비명계 현역 의원에게 도전, 당의 분열을 심화하는 일을 우려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비명 지역구 공천, 친명 비례 공천'으로 이재명 대표가 공천에 미칠 영향력을 보장하는 한편 내부 갈등을 최소화하자는 얘기가 나왔다. 이 방안은 현행 제도에선 쉽지 않다. 민주당이 어느 정도 비례 의석을 확보할 수 있는 병립형이어야 실현할 수 있다.

'회귀=실리'일까... "입법권 사유화" 등 비판 이어져

하지만 병립형 회귀가 곧 민주당에게 '실리'일지는 미지수다. 민주당은 2020년 총선 땐 위성정당 창당으로, 2021년 4.7 보궐선거 땐 귀책사유 선거 무공천 당헌당규 뒤집기로, 명분을 버리고 실리를 택할 때마다 안팎의 비판을 받았다.

이재명 대표 스스로도 대선 후보 시절인 2021년 12월 9일 위성정당에 대해 "아주 기상천외한 편법이다. 불가능하게 만드는 조치도 필요하다"며 비판하고, 지난해 3월 2일 TV토론에서는 4.7 보선을 두고 "국민들 회초리의 무서움을 알고 앞으로 이런 일이 더 이상 발생하지 않도록 하겠다"며 사과했다.

이미 당내에선 '명분을 또 버리냐'는 지적이 나온다. 이탄희 의원은 9일 페이스북에 "이준석 신당이든, 조국 신당이든, 원칙적으로 그것이 어떤 당이든, 신당 출현을 막기 위해서 거대양당이 선거제도를 과거 촛불 이전으로 퇴행시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어떤 신당이 나오든 선택은 국민이 한다. 선거법은 국민의 선택권을 보장하기 위한 법이다.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입법권을 행사해 경쟁자를 차단해버리는 것은 입법권의 사유화"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함세웅 신부, 이부영 자유언론실천재단 명예이사장, 김상근 목사 등 시민사회계 원로들도 같은 날 이재명 대표를 만나 병립형 회귀 반대 뜻을 전달했다. 이들은 '민주당이 180석으로도 오만·독주 프레임에 갇혀 제대로 일하지 못했다. 여기서 벗어나려면 더 많은 진보세력들이 국회에 입성할 수 있도록 최소한 준연동형을 유지하되 위성정당 방지법도 꼭 만들어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재명 대표는 이 자리에서도 명확한 답변을 내놓지 못했다고 알려졌다.

윤건영 의원은 '병립형 반대'와 함께 '밀실 담합' 가능성에 우려를 표했다. 그는 10일 페이스북에 "과거로 돌아가서는 절대 안 된다"며 "2020년, 불완전하지만 어렵게 개혁의 첫발을 떼었다. 4년 만에 후퇴해서는 안 된다"고 썼다. 또 "위성정당 방지법은 반드시 처리해야 한다"며 "누구도 '꼼수 정당'인 위성정당을 만들지 못하도록 법적 정비를 해야 된다"고 했다. 나아가 "선거법 논의는 몇몇이 하는, 음지에 둘 사안도 아니다"라며 "국민과 함께 논의하고 결정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와 홍익표 원내대표가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대화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와 홍익표 원내대표가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대화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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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에서 언급한 여론조사 개요는 다음과 같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 2023년 10월 21~22일 전국 만 18세 이상 1015명 대상
- 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 ±3.1%P, 응답률 6.2%


태그:#2024총선, #선거제, #병립형, #연동형형, #위성정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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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정치부. sost38@ohm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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