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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의면 독자마을 정연식
 안의면 독자마을 정연식
ⓒ 주간함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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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의 쓸모'를 쓴 이승희 작가도 업무일지를 기록한 경험을 설명한 걸 보면 기록은 특별히 따로 수행해야 할 일이 아니라 일상에 포함된 하나의 행위임이 분명하다. 다만 이 기록을 어떤 형태로 얼마나 꾸준히 이어오고 보관하느냐에 따라 가치가 달라진다. 기억은 짧고 기록은 길다는 말처럼 기록은 나의 모든 과거의 증거가 되니 말이다.

"인생이 왔다가 살고 간 흔적은 써 놓은 기록과 남모르게 쌓은 덕 뿐이다"라는 말을 새기며 30여년 간 기록하며 자료를 모아두고 있다는 안의면 독자마을 정연식씨를 만났다. 그의 방 책꽂이에는 30년간 기록물을 정리한 파일이 꽂혀 있다.

수박, 벼, 채소, 고추 등을 재배하는 정연식씨는 30여년간 농사일지를 써 오며 시비관리나 농산물 수확일자, 농산물 계약 등을 기록해 두었다. "농사일지는 더욱 중요하지, 올해 농사에 표본이 되니 말이야" 몇 년 전 농기계를 외상으로 구입하고 1년 뒤 상환하려는데 금액에 문제가 생겼지만 정연식씨의 일기장이 증거가 되어 해결하기도 했다.

정연식씨가 기록의 중요성을 깨닫게 된 계기는 그가 초등학교 시절 아버지가 겪은 억울한 일 때문이다.

정연식씨는 포은 정몽주의 손자 정보의 후손으로 그의 고조부는 대평에 살다가 콜레라를 피해 산좋고 물좋은 이곳 함양으로 이주했다. 그의 증조부는 소작을 하며 겨우 입에 풀칠만 하며 살았다고 한다. 이후 이승만 대통령의 농지개혁으로 땅을 얻어 산지를 개간하며 농사를 지을 수 있었다. 세월이 흘러 아버지 대에 와서 산주가 농지개혁 때 농지를 분배받으며 대가를 상환한 내역이 적힌 상환대장을 요구하는 일이 벌어졌다. 하지만 한 세대가 지나 문서가 남아 있을리 만무했고 글을 모르는 아버지는 영수증을 찾을 수도 없었다.

아버지는 초등학교에 다니는 정연식씨에게 영수증을 찾아보라 했지만 허사였다. 결국 논이며 밭을 땅주인에게 돌려줘야 했고 이 일은 어린 정연식씨 마음에 상처가 되었다고.

"기록이나 영수증이 중요하다는 걸 그때 알게 되고 기록을 해야겠다 마음먹었지. 정작 기록을 시작한 건 1991년이야."

그때 일을 회상하면서 기록이 인생을 바꾼다는 생각으로 하루의 일과 좋은 글 좋은 말, 집안 대소사, 마을 일 등 일단 눈 앞에 보이는 것, 닥친 일들은 모두 기록했다.

마을 이장 일을 6년간 하면서도 주민들과 언쟁한번 한 일이 없었다. 이장 직을 그만 두었어도 마을 기록은 멈추지 않았다. 마을에 상수도가 언제 들어왔는지, 무슨 사업을 했는지, 누가 무슨 말을 했는지, 마을회의록에 모두 기록돼 있다. 농업직불금 지급 초기에는 그의 기록이 증거가 되어 농가에 문제되는 일들도 잘 해결하여 국립농산물관리원으로부터 표창을 받기도 했다.

 내 눈앞에 보이는 건 모두 기록으로 남기려고 했다는 정연식씨는 또 다른 기록으로 채워진 노트 하나를 가지고 있다. '글 모으기, 마음에 보약이 되는 말'이 노트표지에 박혀있다. "내 마음에 지표가 되는 성인의 말부터, 식당 벽에 걸린 글, 화장실 낙서, 보이고 들리는 대로 다 적어놨지. 무심코 던진 말 한마디에도 철학이 있고 식당이나 화장실 벽에 낙서에도 마음에 보약이 되는 글들이 많아"

이제 일흔의 나이가 되니 건강에 적신호가 왔다. 뇌졸중으로 두 번이나 쓰러진 정연식씨는 시력이 예전 같지 않고 팔도 부자연스럽다. 다행히 글 쓰는 오른팔은 마비가 오지 않았다면서 건강이 허락하는 동안에는 글 모으기 말 모으기 등 모든 일상을 기록할 것이라고 한다.

정연식씨는 한 순간이라도 기록을 놓치지 않으려고 집 안팎에 칠판을 각각 걸어두고 메모를 한다. 기록의 가치를 쌓아가는 정연식씨의 일상이 오랫동안 멈춰지지 않기를.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함양뉴스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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