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에서는 전설적인 선배들에 버금가는는 또 다른 전설들이 계속 등장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한국 여자배구에서 한 동안 '여제' 김연경(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을 능가하거나 그에 버금가는 기량을 가진 선수가 나타나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실제로 김연경은 192cm의 큰 신장을 바탕으로 한 뛰어난 공격력은 물론 안정된 수비와 승리를 향한 강한 의지, 동료 선수들을 독려하는 리더십까지 갖춘 역대 최고의 선수다.

하지만 흥국생명은 김연경이 활약했던 2020-2021 시즌과 2022-2023 시즌 챔프전에서 각각 GS칼텍스 KIXX와 한국도로공사 하이패스에 막혀 우승컵을 들어올리지 못했다. 특히 지난 시즌 도로공사에게 당한 리버스 스윕은 굉장히 뼈 아팠다. 은퇴와 잔류, 이적 사이에서 고민하던 김연경을 잔류시키고 김연경의 '절친' 김수지를 영입하며 전력을 강화한 흥국생명은 지난 시즌에 이루지 못한 통합우승에 다시 도전한다.

지난 시즌 챔프전 리버스 스윕의 희생양
 
 V리그에서 처음으로 FA자격을 얻은 '여제' 김연경은 많은 구단의 이적제안을 뿌리치고 흥국생명 잔류를 선택했다.

V리그에서 처음으로 FA자격을 얻은 '여제' 김연경은 많은 구단의 이적제안을 뿌리치고 흥국생명 잔류를 선택했다. ⓒ 한국배구연맹

 
지난 2020-2021 시즌 팀을 챔프전까지 이끌었던 김연경은 시즌이 끝난 후 유럽구단들의 유혹을 뿌리치고 중국리그로 진출했다. 그리고 2020-2021 시즌 준우승을 차지했던 흥국생명은 김연경이 없었던 2021-2022 시즌 그녀의 공백을 뼈 저리게 느끼며 6위로 추락했다. 2021년 9월에 창단해 V리그에 처음 참가했던 신생팀 페처저축은행 AI페퍼스를 제외하면 사실상 리그 최하위나 다름 없는 성적이었다.

2021-2022 시즌 종료 후 계약기간이 끝난 박미희 감독(KBS N스포츠 해설위원)이 물러난 흥국생명은 작년 4월 남자부의 KB손해보험 스타즈를 이끌었던 권순찬 감독을 선임했다. 여기에 김연경이 한 시즌 만에 흥국생명으로 복귀하면서 단숨에 강한 전력을 구축했다. 하지만 흥국생명은 2022-2023 시즌 4라운드 초반 권순찬 감독이 사퇴하고 '감독대행의 대행'이 팀을 이끄는 촌극이 발생하는 등 쉽지 않은 시즌을 보냈다.

김대경 감독대행으로 시즌을 치르던 흥국생명은 지난 2월 이탈리아 출신의 마르첼로 아본단자 감독이 부임하면서 안정을 찾았고 시즌 후반 흔들리는 현대건설 힐스테이트를 제치고 정규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통산 5번째 챔프전 우승과 4번째 통합우승이 눈 앞에 보이는 듯 했지만 흥국생명은 챔프전에게 도로공사를 상대로 2연승 후 3연패라는 역대 최초의 '리버스 스윕'을 당하며 대이변의 희생양이 되고 말았다.

아쉽게 우승을 놓친 것과 별개로 '돌아온 여제' 김연경의 활약은 그야말로 명불허전이었다. 김연경은 지난 시즌 정규리그 34경기에 출전해 45.76%의 공격성공률(1위)과 46.80%의 리시브효율(8위)로 669득점(5위,국내선수 1위)을 기록하며 공수에서 맹활약했다. 정관장 레드스파크스에서 흥국생명으로 팀을 옮긴 외국인 선수 옐레나 므라제노비치 역시 득점 3위(821점), 공격성공률 4위(42.79%)를 기록하며 제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시즌 개막을 앞두고 무릎부상으로 수술을 받은 박혜진 세터가 지난 시즌 한 경기도 출전하지 못하면서 흥국생명은 세터진을 보강하기 위해 작년 12월 GS칼텍스와의 트레이드를 통해 이원정 세터를 영입했다. 루키 시즌(2017-2018시즌)과 GS칼텍스 이적 첫 시즌(2020-2021 시즌)에 챔프전 우승을 경험했던 이원정 세터는 흥국생명에서도 이적 첫 시즌에 우승을 노렸지만 흥국생명이 리버스 스윕을 당하는 바람에 개인 통산 3번째 우승이 무산됐다.

김연경 잔류-김수지 합류로 우승전력 완성
 
 흥국생명은 미들블로커 자리에 김수지가 가세하면서 부족했던 높이와 경험을 더했다.

흥국생명은 미들블로커 자리에 김수지가 가세하면서 부족했던 높이와 경험을 더했다. ⓒ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

 
흥국생명의 비 시즌 목표는 단 하나였다. 바로 V리그에서 처음으로 FA자격을 얻은 슈퍼스타 김연경의 잔류였다. 김연경은 다양한 진로를 두고 고민하면서 흥국생명을 혼란스럽게 했지만 결국 1년 최대 7억5000만 원의 조건에 흥국생명 잔류를 선택했다. 여기에 김연경과 초·중·고등학교를 함께 다닌 '절친' 김수지를 3년 총액 9억3000만원에 영입하면서 국가대표 미들블로커 이주아의 든든한 파트너를 찾는 데 성공했다.

지난 시즌 나무랄 데 없는 활약을 선보였던 외국인 선수 엘레나와 재계약한 흥국생명은 아시아쿼터 드래프트에서 가장 늦은 7순위 지명권을 얻었다. 하지만 아본단자 감독은 아무런 동요없이 일본 청소년대표 출신의 아웃사이드히터 겸 아포짓 스파이커 레이나 토코쿠를 지명했다. 가나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선수 레이나는 아본단자 감독이 처음부터 눈 여겨 봤던 선수 중 한 명이었다고 한다.

김연경과 옐레나가 지난 시즌에 이어 흥국생명의 좌우 쌍포로 활약할 것이 확실시되는 가운데 레이나가 합류하면서 김연경의 파트너로 활약할 아웃사이드히터 한 자리의 경쟁이 매우 치열해졌다. 지난 시즌 흥국생명은 서브가 좋고 경험이 풍부한 주장 김미연이 33경기에서 308득점을 올리며 주전 아웃사이드히터로 활약했다. 하지만 김미연은 상대적으로 공격에서의 폭발력이 다소 떨어져 중요한 승부처에서 공격점유율이 급격히 낮아진다.

흥국생명 구단은 물론 배구팬들이 주목하는 선수는 프로에서 5번째 시즌을 맞는 김다은이다. 김다은은 지난 발리볼 네이션스리그(VNL)에서 아포짓 스파이커로 활약하며 뛰어난 공격력을 선보인 바 있다. 다만 흥국생명의 오른쪽에는 외국인 선수 옐레나가 있어 김다은은 흥국생명에서 아웃사이드히터로 변신이 불가피하다. 만약 김다은이 지난 시즌 34.38%였던 리시브 효율을 끌어 올린다면 흥국생명은 이번 시즌 '쌍포'가 아닌 '삼각편대'를 보유할 수 있다.

지난 시즌 흥국생명과 '3강'을 형성했던 도로공사와 현대건설의 전력이 다소 약해진 이번 시즌 흥국생명은 많은 배구팬들로부터 가장 강력한 우승후보로 평가 받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흥국생명은 김해란 리베로와 김연경, 김수지 등 30대 중·후반에 접어든 노장 선수들이 많고 지난 시즌 리버스 스윕의 트라우마도 완전히 지워지지 않았다. 과연 흥국생명은 지난 시즌의 아픈 기억을 지워내면서 통산 5번째 챔프전 우승에 도달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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