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하는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 축구대표팀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이 13일(한국시간) 영국 뉴캐슬의 세인트 제임스 파크에서 열린 사우디아라비아와의 친선 경기를 마치고 인터뷰하고 있다. (대한축구협회 제공)

▲ 인터뷰하는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 축구대표팀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이 9월 13일(한국시간) 영국 뉴캐슬의 세인트 제임스 파크에서 열린 사우디아라비아와의 친선 경기를 마치고 인터뷰하고 있다. (대한축구협회 제공) ⓒ 연합뉴스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이 이끄는 대한민국 축구대표팀의 10월 A매치 명단이 발표됐다. 대표팀은 9일 파주 국가대표트레이닝센터(NFC)로 소집된 뒤 13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튀니지(피파랭킹 29위), 17일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베트남(95위)과 잇달아 맞붙는다.
 
이번 A대표팀 명단의 특징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그 나물에 그 밥'이라고 할 수 있다. 마치 복사 후 붙여넣기를 하듯, 예상가능한 대부분의 선수들이 변동없이 그대로 이름을 올렸다. 여기서 가장 큰 문제는, 대표팀 명단에서 한국축구의 발전과 경쟁력 강화를 위한 치열한 고민이나 공감대가 별로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주장 손흥민(토트넘)을 비롯해 김민재(바이에른 뮌헨), 이강인(파리 생제르맹), 이재성(마인츠), 황인범(츠르베나 즈베즈다), 황의조(노리치시티), 황희찬(울버햄튼), 조규성(미트윌란) 등 주축 멤버들이 그대로 승선했다. 지난 명단과 굳이 달라진 부분을 꼽자면 카타르월드컵 멤버였던 베테랑 김진수(전북)와 김태환(울산)의 복귀 정도가 전부이고 '새 얼굴'은 전무하다. 지난달 유럽 원정에서 최초 발탁된 이순민(광주)과 신예 골키퍼 김준홍(김천)은 한 번 더 기회를 받았다.
 
내년 아시안컵이 얼마 남지않은 상황에서 무리해서 큰 변화를 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큰 대회에서는 얼마든지 변수가 발생할 수 있고, 팀에 건강한 긴장감과 자극을 주기 위해서라도 어느 정도 새로운 얼굴들의 수혈과 경쟁은 필수다. 바꿔말하면 이번 10월 A매치가 아시안컵을 앞두고 뉴페이스들을 자유롭게 실험해볼 수도 있는 마지막 기회였다.
 
역대 아시안컵을 앞두고 2010년 조광래 감독이 구자철-지동원 등 당시 10대 후반-20대 초반 젊은 선수들을 과감히 발탁하여 주전으로 중용했고, 2014년 울리 슈틸리케 감독은 2부리그에서 뛰고 있던 이정협이라는 황태자를 찾아냈으며, 바로 전임자인 파울루 벤투 감독은 2018년 훗날 '기성용의 후계자'가 될 황인범을 발굴해냈다.
 
역대 대표팀 감독들이 바뀔 때마다 새롭게 기회를 얻는 선수들이 등장하기 마련이고, 이들은 'OOO의 황태자'같은 수식어를 얻었다. 그런데 클린스만 감독이 부임한지 7개월이 넘었고 벌써 6번의 A매치를 치렀는데 대표팀에서 새롭게 두각을 나타냈다고 할 만한 선수는 아직 전무하다. 그만큼 대표팀이 이미 기존에 검증된 선수, 쓰는 선수만 쓰는 '고인 물'이 되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그렇다고 해서 굳이 새로운 선수들의 보강이 불필요할만큼, 현재 기존 대표팀 선수들의 활약이나 컨디션이 월등한 것도 아니다. 그나마 클린스만 감독 체제에서 새롭게 중용된 몇 안 되는 선수 중 한 명인 이기제(수원)가 대표적이다. 이기제는 소속팀 수원이 극심한 부진으로 강등권에서 허덕이고 있는 데다 본인 역시 시즌 후반으로 갈수록 수비력에서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다.
 
김진수는 안면 부상에서 회복한 지 얼마 안 되어 겨우 경기력을 끌어올리는 단계다. 소속팀에서 주전경쟁에서 밀려 임대된 황의조나, 유럽 2년 차인 오현규는 올시즌 경기출전 시간도 부족할 뿐 아니라 아예 공격포인트가 아직 전무한 데도 또다시 발탁됐다. 소속팀에서 별다른 활약을 못 해도 대표팀에 무조건 발탁되는 모습을 보면서 선수들은 과연 어떤 생각을 할까.
 
대표팀에서 오랫동안 혹사 당하고 있는 핵심 선수들에 대한 배려도 아쉽다. 손흥민과 김민재는 유럽파의 간판이자 대표팀에서도 공수의 핵심으로 평가받고 있다. 하지만 손흥민은 최근 유럽통산 200골을 달성했음에도 불구하고 허벅지 등 잔부상에서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리버풀전에서도 골을 넣었지만 풀타임을 소화하지 못하고 교체된 이유다.
 
김민재 역시 올시즌 뮌헨에서 주전으로 뛰고 있지만 독일 현지에서는 지난 시즌 이탈리에서만큼의 경기력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김민재는 올해 초에서 이미 체력적 부담과 번아웃을 호소한 바 있다.
 
또한 이강인은 현재 항저우 아시안게임에 24세 이하 대표팀으로 출전중인데, 소속팀 PSG에서의 이적 첫해 주전경쟁과 부상으로 힘든 와중에 또다시 A대표팀까지 차출됐다. 가뜩이나 지친 선수들에게 A매치 기간에 또다시 장거리 이동에 따른 경기출전은 더 큰 독이 될 수 있다. 튀니지와 베트남을 홈에서 상대하는 평가전에서 굳이 검증이 끝난 최정예 멤버들을 무리해서 동원할 필요가 있었느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한편으로 이러한 대표팀 운영에 대한 의구심이 더 깊어지는 것은, 곧 클린스만 감독의 '워크에식' 논란과도 맞물려 있다. 클린스만 감독은 한국 대표팀 사령탑 부임 이후 국내 상주 약속을 어기고 잦은 외유와 재택근무, 한국 대표팀과 상관없는 개인활동 치중 등으로 논란의 중심에 섰다. 클린스만 감독은 그동안 관행으로 이어져오던 대표팀 명단 발표 공식 기자회견마저 자신의 편의을 내세워 거부하고, 지난 9월에 이어 10월에도 A대표팀 명단 발표를 보도자료로 대체했다.
 
클린스만이 대표팀 감독으로서의 기본인 자국리그 점검을 자신의 주요 업무가 아니라고 생각하다보니, 자연히 새로운 얼굴의 발탁이나 실험에도 소홀해질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귀결된다. 클린스만의 방식대로 성과라도 좋으면 모를까, 대표팀은 클린스만 부임 이후 A매치 1승 3무 2패라는 저조한 성적에 그치고 있다.
 
클린스만은 부임 이후 A매치 5연속 무승이라는 역대 외국인 감독 최악의 기록을 세웠으나 지난 유럽 원정에서 사우디를 1-0으로 꺾으며 간신히 기사회생했다. 여론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클린스만 감독은 평가전도 새로운 선수나 전술에 대한 실험보다는 최정예 멤버들을 총동원하며 매경기 단두대 매치처럼 치러야 하는 상황이다.
 
클린스만 감독은 거듭되는 논란에도 "모든 평가는 아시안컵 이후에 해달라", "부정적인 이야기가 계속되면 대표팀이 흔들린다"며 최근 자신을 향한 비판의 화살을 외면했다. 여론에 떠밀려 잠시 '보여주기식 귀국'을 했던 클린스만은 국내에서 K리그 2경기만 관람하고 다시 미국에 있는 자택으로 출국하며 앞으로도 자기 방식을 고수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 클린스만 감독의 이러한 독불장군식 행보가 과연 다가오는 10월 A매치와 내년 아시안컵에서 어떤 결과를 불러오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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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A매치명단 클린스만호 축구대표팀 튀니지 베트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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