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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 8월 3일 오후 10시. 조용하던 평양 시내 일대에 굉음이 울려 퍼졌습니다. 평남도청에 폭탄이 터진 것이었습니다.

​일제는 즉시 경찰을 소집해 범인 추격에 나섰지만 끝내 잡을 수 없었습니다. 폭탄을 던진 이들은 대한광복군총영 평양 폭탄대 대원들이었습니다.

​앞서 1920년 5월 미국 의원단의 방한 소식을 접한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한국인들의 독립 의지를 알리고자 만주의 광복군총영을 동원해 서울·평양·선천·신의주 등 국내 각지에서 동시다발적 거사를 추진했습니다.

평양 일대의 거사를 맡은 평양 폭탄대(문일민·장덕진·박태열·우덕선·안경신)는 총영장 오동진의 명령에 따라 압록강을 건너 평양에 잠입했습니다. 이어 8월 3일 각자 담당한 구역에서 동시다발적 거사에 돌입했습니다.

먼저 장덕진과 박태열이 평양경찰서에 폭탄을 던졌으나 심지가 고장나는 바람에 실패로 돌아갔고, 문일민과 우덕선이 담당한 평남도청 투탄 의거는 성공했습니다. 평남도청 투탄 의거는 일제 식민통치기구였던 평남도청에 폭탄을 던져 한국인의 자주독립 의지를 만천하에 알린 일대 쾌거였습니다.

현충원에 없던 유일한 이름, 우덕선

국립서울현충원에는 평남도청 투탄 의거의 주역들이 잠들어 있습니다. 거사를 총지휘했던 광복군총영 오동진 장군을 비롯하여 문일민, 박태열, 장덕진, 안경신 지사 등의 평양 폭탄대원들과 거사를 도왔던 김예진, 표영준, 여행렬, 권기옥 지사 등입니다.

문일민, 권기옥, 김예진, 여행렬 네 분은 독립유공자 묘역에 묘소가 있고, 다른 분들은 후손 및 묘소의 위치가 확인되지 않아 '무후선열제단'에 위패로 모셔져 있습니다.
 
국립서울현충원 무후선열제단에는 광복군총영 총영장 오동진을 비롯하여 박태열·장덕진·안경신 등 광복군총영 평양 폭탄대 대원들이 위패로 모셔져 있다. 광복군총영 대원은 아니었으나 거사에 함께 했던 의용단 표영준의 위패도 모셔져 있다.
 국립서울현충원 무후선열제단에는 광복군총영 총영장 오동진을 비롯하여 박태열·장덕진·안경신 등 광복군총영 평양 폭탄대 대원들이 위패로 모셔져 있다. 광복군총영 대원은 아니었으나 거사에 함께 했던 의용단 표영준의 위패도 모셔져 있다.
ⓒ 김경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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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늘 의아했습니다. 정작 중요한 한 사람이 빠져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거사 당시 문일민 지사와 함께 평남도청 폭탄 투척을 담당했던 '우덕선(禹德善: ?~?)' 지사입니다.

우덕선 지사는 거사 직후 임시정부가 있던 중국 상하이로 무사히 피신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러나 이후 행적은 알려진 바가 없습니다. 국가보훈부 독립유공자 공훈록은 "이후 그의 행적 및 인적사항에 대한 기록은 발견되지 않는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우덕선 지사에 대한 기록은 1924년에 생산된 일제 첩보자료가 마지막인 것으로 확인됩니다. 동지 장덕진이 불의의 사고로 사망했을 당시, 일제가 파악한 부고장 발송 명단에 우덕선이라는 이름이 등장합니다. 해당 문서를 통해 당시 그의 거주지가 '미주(美州)'였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1924년 9월 20일 조선총독부 경무국장이 작성한 '亡張德震의 死亡通知狀 發送先에 관한 件 1'에 등장하는 우덕선의 이름. 미주(미국)에 거주하고 있는 사실이 확인된다. 이 기록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우덕선에 대한 기록이 보이지 않는다.
 1924년 9월 20일 조선총독부 경무국장이 작성한 '亡張德震의 死亡通知狀 發送先에 관한 件 1'에 등장하는 우덕선의 이름. 미주(미국)에 거주하고 있는 사실이 확인된다. 이 기록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우덕선에 대한 기록이 보이지 않는다.
ⓒ 국사편찬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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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후 그가 어디에서 어떻게 살다 죽었는지, 후손들은 남아있는지 전혀 알려진 바가 없습니다. 심지어 평양 폭탄대원 중 유일하게 사진 한 장 남아있지 않아 얼굴조차 알 수 없습니다.

위패봉안관에 모셔진 '애국지사 우덕선'

왜 그의 위패만이 현충원에 모셔져 있지 않은지 늘 의문이었습니다. 우덕선 지사는 독립유공자로 서훈되었기에(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 딱히 안장 자격에 문제가 있어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혹 훈장의 등급이 낮아서 그런 것은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지난 8월 평남도청 투탄 의거 103주년을 계기로 국립서울현충원 측에 "무후선열제단에 우덕선 지사의 위패를 모셔달라"라고 민원을 넣었습니다. '혹시 반려되지는 않을까' 하는 우려와는 달리 싱겁게도 서울현충원 측에서는 "검토 결과 안장 자격에 부합되는 것으로 확인되어 조만간 위패를 봉안할 예정"이라고 통보해 왔습니다.

결국 안장 자격 등에 문제가 있었던 게 아니라 우리들의 무관심이 문제였던 것입니다. 누군가 조금이라도 관심을 갖고 문제를 제기했더라면 이렇게까지 늦어지지는 않았을 텐데. 늦었지만 그래도 다행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안장 결정 통보를 받고 "언제쯤 위패가 봉안되느냐"고 묻자 서울현충원 관계자는 "10월 중에 안장 예정"이라고 말해주었습니다. 그런데 지난 2일 우연히 현충원 홈페이지에서 안장자 정보를 열람하던 중, 우덕선 지사의 위패가 이미 위패봉안관에 모셔진 것을 확인했습니다. 연휴 직전이었던 지난 9월 22일 서울현충원 측에서 위패봉안관에 우덕선 지사의 위패를 봉안한 것입니다.

그러나 지사의 위패 봉안 소식은 그 어디에도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훈장의 등급이 높거나, 이름이 알려진 독립투사들은 정부에서 보도자료까지 내가며 요란하게 안장 행사를 치르는 반면, 우덕선 지사의 위패 안장 소식은 기사 한 줄 나가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것이 후손도 없고 훈장의 격도 낮은 무명 독립운동가의 현실인가 싶어 씁쓸했습니다.

안장 사실을 확인한 직후 바로 서울현충원을 찾았습니다. 우덕선 지사의 위패를 확인하고 술 한 잔 올렸습니다. 원래 저는 독립운동가들의 묘소에 참배할 때, 고인의 고향에서 빚은 술을 올리곤 합니다. 그러나 우덕선 지사는 고향이 알려지지 않았기에 아쉬운 대로 그가 활동했던 평양 지역에서 유래된 '문배술(문배주)'을 준비해 갔습니다. 
 
국립서울현충원 위패봉안관에 모셔진 우덕선 지사의 위패. '대한민국 임시정부 배지'와 '한국광복군총사령부 배지'를 달고 선생의 넋을 기렸다.
 국립서울현충원 위패봉안관에 모셔진 우덕선 지사의 위패. '대한민국 임시정부 배지'와 '한국광복군총사령부 배지'를 달고 선생의 넋을 기렸다.
ⓒ 김경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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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덕선 지사의 영전에 올린 '문배술(문배주)'
 우덕선 지사의 영전에 올린 '문배술(문배주)'
ⓒ 김경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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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로써 평남도청 투탄 의거의 주역들이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이게 됐습니다. 그야말로 103년 만의 해후인 셈입니다.

무후선열제단 이장을 희망합니다

그러나 막상 참배를 마치고 나니 아쉬운 마음이 또 듭니다. 애초에 저는 서울현충원 측에 무후선열제단 봉안을 요청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지사의 위패가 모셔진 곳은 무후선열제단이 아닌 현충탑 아래 위패봉안관이었습니다. 

여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습니다. 서울현충원 관계자의 말에 의하면 서울현충원은 국방부 관할이지만 무후선열제단 관리만큼은 국가보훈부에서 관여해 왔다고 합니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보훈부가 무후선열제단 관리에서 손을 뗐고, 국방부 역시 자의적으로 판단하기 어려워 더 이상 위패를 추가 봉안하지 않고 있다고 합니다. 우덕선 지사의 위패가 무후선열제단이 아닌 위패봉안관에 모셔진 까닭입니다.

무후선열제단에 가보니 추가 봉안을 위해 예비로 마련된 공간이 존재했습니다. 이 넓은 공간을 빈 공간으로 방치한 채, 선열들의 위패를 다른 곳에 모시고 있다는 게 선뜻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빈 공간으로 방치되고 있는 무후선열제단
 빈 공간으로 방치되고 있는 무후선열제단
ⓒ 김경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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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덕선 지사의 동지들 대부분이 무후선열제단에 모셔져 있습니다. 기왕이면 우덕선 지사의 위패 역시 무후선열제단에 봉안하여, 옛 동지들을 한 자리에 모시는 게 바람직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아무쪼록 우덕선 지사의 이름 석 자를 많이들 기억해주셨으면 합니다. 후손들의 무관심 속에 이제야 현충원에 그분을 기릴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됐습니다. 후손 없는 지사를 위해 우리 모두가 그분의 후손이라는 생각으로 가끔씩 들러 술 한 잔 올리고 지사의 넋을 위로하면 어떨까 합니다.

※ 우덕선 지사 위패 봉안 위치: 국립서울현충원 위패봉안관 48-8-169(판/명/위패번호)

태그:#우덕선, #문일민, #대한광복군총영, #독립군, #현충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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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대 사학과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습니다. (한국근대사 전공) / 취미로 전통활쏘기를 수련하고 있습니다. / <어느 대학생의 일본 내 독립운동사적지 탐방기>, <다시 걷는 임정로드>, <무강 문일민 평전>, <활 배웁니다> 등 연재 / 기사 제보는 heigu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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