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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통해 책 너머의 세상을 봅니다. 서평 쓰는 사람들의 모임,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북클럽' 3기입니다.[편집자말]
이꽃님 작가의 신작이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냉큼 책을 찾아 읽었다. 이꽃님 작가의 책은 한번 펼치면 중간에 덮기가 힘들다. 이야기가 날 잡고 성큼성큼 앞으로 나아간다. 이 책도 예외가 아니란 걸 보여주듯 첫 장을 넘기자마자 큰 사건이 터진다.

엄마와 함께 살던 열일곱 살 주인공 하지오는 갑자기 전학 통보를 받는다. 이 세상에 아빠는 없는 줄 알았는데 이제부터는 아빠 집에 가서 살아야 한단다. 지오는 어렸을 때는 아빠에게, 이번에는 엄마에게 버려진 것 같아 하루하루가 견디기 힘들다.
 
소설 표지
▲ 여름을 한 입 베어 물었더니  소설 표지
ⓒ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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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전학 간 학교에는 '유찬'이란 아이가 있다. 유찬이는 화재로 하룻밤에 엄마, 아빠를 잃었다. 화재 사건 이후 유찬이의 귀에는 다른 사람의 속마음이 들린다. 그러나 전학 온 하지오의 속마음은 유찬이에게 들리지 않는다. 하지오가 옆에 있으면 다른 사람 속마음으로 시끌벅적하던 주위가 고요해진다. 둘은 이런저런 사건을 함께 겪으며 가까워지고 이내 서로가 신경 쓰이기 시작한다.

이 책을 읽기 전에 '가슴 설레는 첫사랑 이야기'란 소개 문구를 읽고 나 혼자 말랑말랑 알콩달콩한 러브 스토리를 기대했었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그런 종류의 이야기가 아니다. 오히려 '우직함, 인내, 기다리는 마음, 힘든 선택'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소설의 초반을 조금 더 지났을 즈음, 주인공 하지오가 아빠에게 속마음을 토해내고 울며 집을 뛰쳐 나가다 유찬이를 만난다. 유찬이는 따라오지 말라는 지오의 말을 듣고도 지오를 따라간다. 신경 끄라고 울부짖는 그 손을 붙잡고 말한다.
 
"더 해. 들어 줄게."
"……뭐?"
"궁금했었어. 그래서 듣고 싶었어. 네 속마음."
(~)나는 괜찮으냐고 물어보는 대신 그저 함께 앉아 있어 준다. 언젠가 내가 그랬을 때, 다른 누군가가 그래 주길 바랐던 것처럼. (p58)
 
유찬이는 지오를 혼자 두지 않는다. 다른 사람의 속마음은 다 들리는데 유일하게 알고 싶은 지오의 속마음은 들리지 않는다. 미루어 짐작하거나 다른 이에게 묻지 않고 힘든 그 사람 옆에서 닫았던 귀를 연다.

지오 또한 유찬이를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한다. 유찬이는 화재를 냈다고 생각되는 동네 형을 용서할 수가 없다. 아니, 자신이 그 형을 용서할까 봐 자기 자신의 마음을 감시한다.

그 사건의 자초지종을 알고 있는 지오는 사건에 갇혀 있는 유찬이를 꺼내주고 싶다. 지오는 유찬이에게 그 사건을 직면하게 하고 미움에서 벗어나게 하려다 오히려 유찬이와 멀어진다.

그러나 지오는 포기하지 않는다. 자신을 밀어내는 유찬이가 어떤 오해를 하고 있는지 알아내고 그 오해에 대해 여러모로 알아본 다음 다시 찾아간다. 자기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다.

이 둘을 보며 '끝까지 가보는 마음'에 대해 생각했다. 나는 얼마나 사람을 쉽게 짐작하거나 넘게 짚는가. 그리고 혼자 화를 내고 속상해하는가.

'나에게 이렇게 한 걸 보면 날 무시한 게 분명해.'
'뭐? 걔가 나에 대해 그렇게 말했다고? 정말이야? 내가 자기한테 어떻게 했는데.'


당사자에게 직접 묻지도 않고 판단할 때가 많다. 상대방이 나를 밀어내면 찌익. 뒤로 밀리고, 신경 끄라고 하면 뚝. 신경을 끄며 '쟤는 안 되겠다. 나랑 잘 안 맞네'라며 쉽게 관계를 정리했다.

처음 이 소설을 읽었을 때는 극단적인 판타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로의 응원과 지지로 그리고 좋아하는 감정으로 상황이 이렇게 바뀔 수 있다고? 이렇게 마음이 풀린다고? 이런 건 소설이니까 가능하지. 현실은 달라.'

그러나 이 소설을 몇 번 읽었더니 생각이 바뀌었다. 모든 관계에서 용기를 내고 끝까지 가본다면,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끝까지 시도한다면, 많은 부분 오해가 풀리고 서로를 이해하게 되지 않을까.

관건은 관계를 소중히 여기는 마음, 쉽게 판단하지 않는 마음, 그러니까 상대방을 사랑하는 마음이다. 그렇다면 이 이야기는 사랑에 대한 이야기가 맞다. 비록 설레는 첫사랑 이야기는 아닐지라도.

여름을 한 입 베어 물었더니

이꽃님 (지은이), 문학동네(2023)


책을 통해 책 너머의 세상을 봅니다. 서평 쓰는 사람들의 모임,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북클럽' 3기입니다.
태그:#여름을한입베어물었더니, #이꽃님, #청소년소설베스트셀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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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책을 만드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살아 갈 세상이 지금보다 조금 나아지기를 바라며 내 생각과 행동이 일치하는 삶을 살기 위해 노력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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