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성산 정상에서 내려다본 금강 하류(강줄기 왼쪽은 군산시 오른쪽은 서천군)

오성산 정상에서 내려다본 금강 하류(강줄기 왼쪽은 군산시 오른쪽은 서천군) ⓒ 조종안

 
전북 군산시와 충남 서천군은 금강(401km)을 경계로 마주하고 있다. 그렇지만 하나의 행정구역이었던 시절도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두 지역은 풍토와 언어가 유사하다. 군산과 서천에 내용이 비슷한 전설이 각각 내려오고 이름이 같은 사찰과 지명도 존재한다. 군산 주민이 서울이나 경상도에 가면 고향이 충청도냐고 묻는 사람을 종종 만날 정도다.
 
고려시대에 8도 체제가 갖춰지면서 군산은 전라도, 서천은 충청도로 나뉘어 오늘에 이른다. 그럼에도 두 지역 주민은 수백 년을 이웃사촌처럼 지내왔다. 광복 후 동장협의회 추천을 받아 부임한 초대 군산시장 김용철도 서천 출신이었다. 그는 군산에서 양조장 주인과 동산학원 이사장을 지냈으며, 1959년 6월 재취임, '군산호 선장'을 두 번 역임한 인물로 기록되었다.
 
서천 지역에서 군산으로 통학하는 통학생과 하숙생이 수백에 이르고, 군산의 문화예술 동아리에 가입, 활동하는 젊은이도 많았다. 행정구역만 다를 뿐 생활권이 같았던 두 지역은 1971년 대통령 선거 이후 갈등 관계로 바뀐다. 1990년대 지방자치 부활 이후에는 갈등의 골이 더욱 깊어져 역사 논쟁, 인공섬 개발, 어업권 분쟁 등 각종 현안을 놓고 사사건건 마찰을 빚어왔다.
 
김대현 감독과 금강역사영화제
   
군산시와 서천군은 2003년 이후 끊겼던 행정협의회를 2015년 5월 재개한다. 이어 군산 시청에서 화해·협력 및 상생, 공동 발전을 위한 제1차 행정실무협의회가 개최된다. 실무자들은 다양한 현안을 놓고 의견을 나눈다. 이후 성공적인 협의로 '군산세계철새축제'를 '금강철새여행'으로 바꿔 그해 11월 공동 개최하였다. 2018년에는 군산·서천 금강역사영화제가 열렸다.
 
 군산·서천, 제1회 금강역사영화제 협약식(왼쪽에서 세 번째 김대현 감독)

군산·서천, 제1회 금강역사영화제 협약식(왼쪽에서 세 번째 김대현 감독) ⓒ 군산시

   
 군산·서천 금강역사영화제 스탭들(맨 앞 김대현 집행위원장, 그 오른쪽은 이가령 기획팀장)

군산·서천 금강역사영화제 스탭들(맨 앞 김대현 집행위원장, 그 오른쪽은 이가령 기획팀장) ⓒ 이가령

 
 
제1회 금강역사영화제(집행위원장 김대현 감독)는 동아시아 각국의 근·현대사를 다룬 17편의 영화가 군산예술의전당, 롯데시네마군산몰, 서천기벌포영화관 등에서 3일 동안(6월 15일~17일) 상영됐다. 두 지역의 유구한 역사와 문화 콘텐츠 기반으로 고유성을 지니고 있었으며, 기존 영화제와 차별화된 테마로 진행되어 호평받았다. 눈길을 끄는 대목은 두 지자체 협업으로 이뤄진 국내 최초 '역사영화제'였다는 것.
 
김대현(1965~) 감독은 그해 2월 군산시와 협약체결 뒤 서천군 장항읍에 거주지를 정하고 뜨거운 사명감으로 최선을 다한다. 관객들이 오래 기억할 수 있도록 역사적 교훈이 담긴 영화들을 찾아내 탄탄한 영화제로 만드는 게 그의 목표였다. 캐치프레이즈도 잊힌 역사를 많이 발굴하자는 취지에서 '다시 역사를 불러오자!'로 정한다.
 
김 감독은 경상북도 선산(구미) 출신이다. 초중고 대학을 서울에서 다녔다. 대학 졸업하고 영화제작에 입문한 뒤에도 수도권에서 활동하였다. 군산과 서천이 낯설지 않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금강·만경강 하구 갈대밭 지역은 영화 촬영지로 예전에 자주 와봤고, 히로스가옥 등 군산 명소들도 돌아본 적 있어 오히려 친숙함이 느껴졌다"고 말한다.
 
다큐영화 <김 군> 상영금지 요청으로 갈등 비화
 
군산·서천 금강역사영화제는 두 지역이 역사적 문화적 공통점을 공유하고 주민들에게 영상예술을 향유할 기회를 제공하고자 기획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주민들 기대에는 부응하지 못했다. 2019년 영화제 이후 갈등의 골만 더욱 깊어졌고 몇 년이 지나도록 열리지 못하고 있어 뜻있는 사람들 마음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
   
아래는 2018 금강역사영화제에 기획팀장으로 참여했던 이가령 감독(아트교담 대표) 후일담이다.
    
 금강역사영화제는 속히 재개돼야 한다고 말하는 이가령 아트교담 대표

금강역사영화제는 속히 재개돼야 한다고 말하는 이가령 아트교담 대표 ⓒ 조종안

 
"제1회 금강역사영화제는 군산시 단독으로 기획했는데 서천군에서 콜(제안)이 왔고, 그 취지가 좋아 공동 개최하게 됐죠. 예산이 부족해 일반 영화제와 같은 규모의 진행은 어려웠지만 김대현 감독(집행위원장)은 혼신을 다했고, 끝난 뒤 호평을 받았지요. 그런데 제2회 영화제 때 문제가 생긴 겁니다. 서천군에서 광주항쟁 관련 다큐멘터리 <김 군>(감독 강상우) 상영을 금지해달라고 요청하는 바람에 사이가 벌어지기 시작했던 거죠.
 
서천군 측에서 의논도 없이 상영 시간표를 지워버리자, 김대현 감독은 '영화제 독립성 훼손이자 반문화적 폭거'라고 비판하면서 공식 사과를 요청했죠. 그래도 영화(<김 군>)는 상영됐습니다. 그 후 그쪽에서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았어요. 갈등의 골은 더욱 깊어졌고, 사과나 재발 방지에 대해 언급이 없자, 집행위원회 측에서 공동 개최가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렸죠. 거기에 코로나 사태까지 겹쳐 흐지부지됐던 겁니다."

 
국내 최초 '역사영화제' 속히 재개돼야
 
 군산 근대건축관 뒷마당에서 열린 상영회(2019)

군산 근대건축관 뒷마당에서 열린 상영회(2019) ⓒ 이가령

 
이가령 대표에 따르면 영화제가 열리는 동안 '충무로 거장'으로 평가받는 이준익 감독을 비롯해 그 레벨 정도의 감독 30여 명이 군산을 다녀간다. 그들의 발걸음은 김대현 감독의 지인 찬스이지 개런티 받고 내려온 것이 아니라는 것. 이 대표는 "김 감독이 무리할 정도로 열과 성을 다했음에도 공적이 덮어져 안타깝다. (영화제가) 두 지역을 상징하는 문화콘텐츠로 승화될 뻔했는데 아쉬움으로 남는다"며 말을 이었다.
 
"군산은 조선 시대 물류 유통 중심지였으나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거치면서 수탈과 전쟁 생채기가 가장 많이 남아 있는 도시가 됐습니다. 따라서 금강역사영화제는 이 지역의 역사적 장소성에 잘 맞아떨어지는 영화제였죠. 30년 넘게 영화 제작에 몰두해 온 김대현 감독은 폭넓게 형성된 인맥과 풍부한 노하우를 아낌없이 쏟아부었지요. 그 같은 열정과 시민의 호응에도 영화제가 맥을 잇지 못하고 있으니 너무나 안타깝고 애석한 일입니다."

2019 금강역사영화제가 파행을 겪은 지 3년 남짓 지난 요즘, 김대현 감독은 주말마다 군산에 내려온다. 매주 토요일 인문학 공간 정담에서 열리는 '정담시네마 시즌2(영화 장르의 세계)' 진행을 위해서다.
 
이가령 대표는 "김대현 감독은 진즉 군산에 사무실을 마련하고 국내 유일의 일본식 절(동국사) 관련 다큐멘터리 등 '군산'을 키워드로 다양한 작품을 만들거나 구상하고 있다. '정담시네마 시즌2' 프로그램도 역사 영화와 독립영화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고 저변확대를 위해 2022년 12월 개설됐다"며 한마디 덧붙였다.
 
"군산 원도심권은 그 자체가 영화 촬영장이라 해도 어색하지 않을 만큼 옛 건물이 많고 레트로 분위기도 물씬 풍깁니다. 이러한 자원을 널리 홍보하고 많은 영화인들에게 주목받는 방법 중 하나가 영화제죠. 그래서 말인데 금강역사영화제는 속히 재개돼야 합니다. 다행히 김대현 감독이 지금도 군산에서 활동하고 있으니 다양한 인프라 생성과 함께 영화제 재개를 기대해 봅니다."
덧붙이는 글 김대현 감독은 서울국제독립영화제(1995-1998) 창설했다. 2010년 <살인의 강>(93분), 2012년 <한국번안가요사>, <그 얼굴에 햇살을>(78분) <나의 패밀리>(90분) 2016년 <시간의 종말>(67분) 2017년 <다방의 푸른 꿈>(70분) 2023년 <코리안 블랙 아이즈>(90분) 등의 장편 영화를 연출했고, 방송용 다큐멘터리와 단편영화 10여 편 만들었다. 그 외에 <첫 변론>(77분), <정돌이>(90분) 등 두 편의 다큐멘터리 개봉을 앞두고 있다.
금강역사영화제 김대현 이가령 군산시 서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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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8월부터 '후광김대중 마을'(다움카페)을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정치와 언론, 예술에 관심이 많으며 올리는 글이 따뜻한 사회가 조성되는 데 미력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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