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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K-POP 음반 수출액이 역대 최고치(2억 3311만 달러, 약 2895억 원)를 기록하는 등 K-POP을 향한 해외의 관심이 뜨겁다. 그러나 빛나는 스타들의 무대 뒤편에서 그들을 챙기는 이들의 노동환경은 열악한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해 7월 13일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연예매니지먼트 분야 근로감독 결과 발표' 자료에 따르면, 근로감독을 실시한 12개 사에서 55건의 노동관계법 위반사항이 적발되었다. 

"잠을 잘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해요."
"씻지 못한 채 촬영 현장에 갈 때도 있어요."


8월 취재진과 인터뷰를 진행한 의상 스타일리스트 A씨와 헤어 스타일리스트 B씨가 토로한 말이다. 현직자와의 인터뷰를 통해 엔터 업계의 여러 문제점 중에서도 꾸준히 제기되는 스타일리스트 노동 환경 이슈에 대해 알아봤다. 

"담당 아티스트 스케줄에 맞춰서 근무하죠" 
 
스타일리스트와 일반 직장인의 하루 일과 비교
 스타일리스트와 일반 직장인의 하루 일과 비교
ⓒ 정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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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상 스타일리스트인 A씨(26)는 업무 시간이 고정적이지 않다. 스케줄이 끝나도 의상을 정리하거나 다음 날 짐을 챙겨야 한다. 의상 협찬사는 평일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운영하다보니 토요일 오전 스케줄 옷을 준비할 때는 어려움이 많다. 녹화 시간 전까지 모든 의상 준비를 끝내야 하기 때문에 보통 스케줄 6시간 전부터 일을 하는 것이다. 여기에 의상 준비부터 세탁을 맡기는 시간까지 모두 포함하면 24시간 동안 일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A씨는 보통 하나의 방송을 위해 2, 3주 전부터 의상을 준비한다고 말했다. 인원이 많은 아이돌을 담당하게 될 경우, 소요 시간이 몇 배로 증가한다.

"아이돌 활동기 때는 2주 정도 집에 들어가지 못해요."

A씨는 스타일리스트 업무 특성상 또래 친구들과 약속을 쉽게 잡을 수 없는 점도 아쉽다고 말했다. 보통 20대 직장인은 오전 9시에 업무를 시작해서 6시에 퇴근하지만 A씨는 출퇴근 시간이 정해져 있지 않다. 심지어 스케줄이 없다가도 밤에 연락이 와서 다음날 아침에 의상을 준비해야 하는 일도 있었다. 
 
스타일리스트 오픈채팅방 구인 공고
 스타일리스트 오픈채팅방 구인 공고
ⓒ 정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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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의 근무 환경 만족도는 80% 정도라고 답했다. 스스로가 만든 작업물에 보람찼고 경력이 오르니 A씨가 참여할 수 있는 작품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 A씨는 스타일리스트 업무의 경제적 불안과 안정적이지 못한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로 인해 다른 일을 하고 있는 상황이다. 스타일리스트를 처음 시작했던 6년 전과 비교했을 때 많이 나아진 편이긴 하나, 여전히 열정 페이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대부분 스타일리스트는 '구두계약'으로 업무를 시작하기 때문에 정확한 근무 시기와 시간은 정해져 있지 않다. 취재진이 스타일리스트가 채용 정보를 공유하는 한 오픈채팅방에 들어가 신입 구인 공고를 확인한 결과, 임금 수준이 매우 낮은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보통 제시하는 급여는 월 80만 원에서 120만 원 사이였다. 진입장벽이 낮아 수요보다 공급이 큰 직무 특성상, 부르는 게 값인 상황이다. 공고만 봐선 초과 근무 여부도 제대로 확인할 수 없었다. 

계약서가 없어서 발생하는 피해를 어떻게 대응하는지 묻자, A씨는 고개를 내저었다. 스타일리스트 업무 특성상 인맥으로 진행되는 일이 다수라고 한다. 따라서 팀에서 안 좋게 끝나거나 문제에 대해 항의했을 때 다른 팀에게 소문이 나서 채용을 기피하는 경우도 존재한다. 특히 '보복'이 무서워서 부당한 일을 당해도 신고를 꺼리는 경우가 많다고 답했다. 스타일리스트 사이에서 노조를 조직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하지만, 생각보다 참여가 미미한 것이 현실이다. 

"출퇴근 시간은 매번 달라져요"

연예인 헤어 스타일리스트인 B씨(23)의 사정도 다르지 않다. B씨는 청담동에 위치한 헤어샵에서 2년째 스태프로 일하고 있다. 청담 헤어샵은 '워라밸'이라는 단어가 없는 공간이다. 아이돌 컴백 주간에는 음악방송, 라디오, 예능 등 다양한 활동으로 이동시간에 쪽잠만 잘 수 있었다.

불규칙하고 바쁜 연예인 스케줄에 일정을 맞춰야 해 출퇴근 시간과 휴무일은 매번 변한다. 겨우 생긴 휴무일에도 온전히 휴식을 취한다는 보장은 없다. 휴일에 업무 전화가 오는 것은 당연한 것이 됐다. B씨는 당일에 출근 연락이 오는 것보단 낫다고 위안하며 출근을 준비한다.  
 
2021년 청년유니온이 발표한 '2021 미용실 스텝&헤어 디자이너 근로조건 실태 조사 분석 결과'
 2021년 청년유니온이 발표한 '2021 미용실 스텝&헤어 디자이너 근로조건 실태 조사 분석 결과'
ⓒ 정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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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과근무도 마찬가지다. B씨가 근무하는 헤어샵은 초과근무 수당 지급을 피하기 위해 자체적으로 근무 시간을 휴가 시간으로 변환하는 '시간 제도'를 시행하고 있었다. 초과근무 시간만큼 일찍 퇴근할 수 있지만 3개월 안에 시간을 사용하지 못하면 없던 것이 된다. 하지만 일정이 바빠 시간을 사용하는 것은 쉽지 않다. 아예 사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더 많은 것이다. 

과거 헤어 스태프는 최저시급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현재는 헤어샵에서 최저시급을 보장하고 있다. 하지만 B씨는 월급을 받아도 헤어샵에 다시 교육비를 납부해야 해 결국 최저임금에 못 미치는 월급을 받게 된다. 교육비는 헤어샵에서 자체적으로 스태프들에게 제공하는 교육을 위해 납부하는 비용이다. 정해진 규정이 없어 헤어샵별로 횟수, 납부 금액이 다르다.

청년유니온이 2021년 발표한 '미용실 스텝&헤어디자이너 근로조건 실태조사 분석 결과'에 따르면 월급에서 약 20만 원에 달하는 재료비·교육비를 공제하는 헤어샵이 전체의 75.4%로 나타났다. 서울 강남권에 위치한 헤어샵은 무려 95.7%가 재료비·교육비를 공제하고 있다. B씨의 월급 실수령액도 최저시급에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었다.

"몸만 힘든 게 아니라 정신적 스트레스도 커요"

B씨는 업무가 힘들 것을 알고 입사했지만 현장에서 직면한 노동 강도는 상상 이상이었다고 토로했다. 빠르게 돌아가는 촬영 현장에서 수정 타이밍을 맞추는 것도 헤어 스타일리스트의 일이다. 출장 시에 챙겨야 하는 고데기와 드라이기의 무게도 만만치 않다.

높은 노동 강도를 버티고 있는 B씨는 근무 환경으로 인해 건강상의 문제가 많아졌다. 오래 서 있는 것이 일상이라 하지정맥류 초기 증상이 나타났고, 불규칙한 식사 시간 안에 빠르게 먹어야 하는 경우가 많다보니 위경련을 겪을 때도 있다. 그런데도 B씨는 헤어 디자이너가 되겠다는 목표 하나로 버티고 있다. 

A씨와 B씨 모두 스타일리스트를 꿈꾸는 사람들이 이 분야에 종사하지 않길 바란다. 대부분 성인이 되자마자 시작하기 때문에 한 번 해보고 그만둘 마음이라면 시간이 아깝고, 무엇이 옳은지 조언해줄 사람이 없어 힘들다는 게 그들의 의견이다.

지난해 12월, 고용노동부와 문화체육관광부는 연예매니지먼트 분야 현장 종사자의 노동권익 보호를 위해 표준 하도급계약서 제정과 노동관계법령 교육 강화, 간담회 개최 등을 추진하기로 했다. 이를 반영해 올해 1월 연예매니지먼트 분야 협회, 단체 간담회가 열려 환경 개선 관련 의견 수렴을 진행했다.

스타일리스트의 열정을 바탕으로 치장한 스타는 대중 앞에 선다. 이들은 인기를 얻는 스타를 보며 만족감을 얻는다. 열정과 자부심은 부당하고 지친 상황 속 그들이 그만두지 않고 끝까지 버티는 이유이다. 연예 매니지먼트 현장 종사자를 위한 지속적인 관심과 권익 보호가 필요한 실정이다.

태그:#열정페이, #스타일리스트,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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