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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선옥 작가는 전작 <은주의 영화> 출간 후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남의 집 초상집에 가서 서럽게 울어주면 어때요. 그런 쓸데없는 짓을 좀 해보자고요. 그것을 막 부추기는 것이 소설이기도 해요. 눈물이 흔해지는 사회였으면 좋겠어요. 힘없는 사람이 더 이상 뺏기지 않는 세상은 그렇게 울어주는 사람들이 만들어줘야 돼요. 뺏은 적도 없고 뺏겨보지도 않은 젊은 사람들이 해야지. 그들이 어느 쪽으로 더 방향을 트느냐에 따라서 우리 세상이 어디로 갈 것인가가 정해질 것 같아요."     
'초상집에서 우는 마음으로 쓰인' 소설을 읽는다는 건 독자로서 함께 애도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30년 가까이 공선옥 작가가 써온 소설들이 그랬다. <선재의 노래> 또한 깊은 슬픔을 느끼며 애도하는 마음으로 읽었다.     
 
선재의 노래 / 공선옥 / 창비 / 2023년
▲ 선재의 노래 선재의 노래 / 공선옥 / 창비 / 2023년
ⓒ 김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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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재는 오달막 할머니와 사는 열세 살 소년이다. 아빠는 아파트 공사장에서 철근 일을 하다가 사고로 죽었다. 엄마에 대해서는 모른다. 여름방학 첫날 할머니를 따라 장에 가기 싫은 선재는 학교에 간다고 거짓말을 하고 집에 남는다.

시장에서 콩나물을 파는 할머니는 혼자 길을 나섰다가 시장에서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난다. 선재는 생각한다. '시간을 돌릴 수만 있다면, 그날 아침으로 다시 돌아갈 수만 있다면'

소설의 첫 장 <실제 상황>은 이렇게 시작된다. 이후 소설은 선재와 주변 사람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할머니를 애도하는 이야기다.      

열세 살 소년이 세상에 홀로 남은 상황을 마음 편히 지켜볼 수는 없다. 세상의 전부였던 할머니를 잃은 선재가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갈지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지켜본다. 이런 나의 마음을 진정시켜 주는 건 이웃 사람들이다.

이웃에 사는 친구 상필이도 할머니와 사는 조손가정의 소년이다. 상필이 할머니는 선재에게 돼지고기를 많이 넣은 호박찌개를 끓여준다. 허리가 반으로 접힌 국자할머니는 선재의 밥을 챙기고 선재 할머니 영정 사진 앞에 음식을 놓아준다. 산골짜기에서 염소를 키우는 염소할아버지는 비닐봉지에 담긴 찰밥을 선재 집 마루에 놓아준다. 아마도 일주일에 세 번 오는 요양보호사가 해놓고 간 밥을 챙겨 온 것이리라.

염소할아버지는 "아가, 아가, 우지 마라, 우지를 마러라' 하면서 자신이 울고 있다. 선재의 담임 선생님은 선재를 찾아와 말한다. "사람이 죽은 뒤에는 산 사람 마음속에서 살아가는 거란다.' 선생님은 지난해 딸아이를 먼저 떠나보냈다. 이장은 걸핏하면 술에 취하고 선재에게 '야, 이노마~'라며 소리를 높이지만 할머니의 장례와 선재의 미래를 챙기는 일에 발 벗고 나선다.      

지금은 선재가 할머니와 할아버지들이 하는 말을 이해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예를 들어 "사는 거시 가랑잎이나 한 가지여. 바람 한번 건듯 불면 또르르르 굴러가 부러. 이쪽에서 저쪽으로 굴러가 분당게. 잡도 못 허게 또르르르, 가 부러." 같은 말. "암만해도 제 생각에는 산다는 것은 나비나 잠자리처럼 꽃에서 잠시 쉬다가 다시 날아가는 것이 아닌가 싶으네요." 같은 이야기.

하지만 나는 안다. 지금 선재의 마음속에 가득 찬 화는 할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사랑을 어쩌지 못해 표출되는 것이라는 걸 안다. 
 
"아무도 없는데도 할머니는 팔을 휘저었다. 할머니 몸에서 산국화 냄새가 났다. 산국화 냄새나는 팔을 휘젓던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내 편, 오, 달, 막, 내 할머니."(65p) 

결국 선재는 어른이 될 것이다. 혼자 남은 생을 살아내느라 어른스러운 척하는 사람이 아닌 진짜 어른이 될 것이다. 그때까지 선재는 공선옥 작가가 선재를 위해 보내준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살아갈 것이다.

상필이 할머니도, 국자 할머니도 그리고 염소 할아버지, 선생님, 이장 모두가 선재에게 각자의 방식으로 사랑을 줄 것이다. 세상 떠난 오달막 할머니 대신 선재의 눈물을 닦아줄 것이다. 그러므로 독자인 나는 슬픔과 동시에 약간의 안도감을 느낀다.  

수시로 책장을 정리한다. 책은 기부를 하거나 중고서점에 판다. 공선옥 작가의 칸은 내 책꽂이가 생긴 이래로 한 번도 비우지 않았다. 신간이 나올 때마다 차곡차곡 채우며 그의 이야기를 따라가고 있다.

공선옥의 소설을 통해 다른 이의 슬픔을 들여다본다. 작가가 인터뷰에서 한 말처럼 국가와 사회로부터 무언가를 빼앗겨 보거나 빼앗은 경험이 없는, 작가의 말을 빌면 고약한 상황에 처해 보지 않은 나 같은 사람이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공선옥 작가는 <선재의 노래> 다음 이야기를 쓰고 있다고 했다. 어떤 슬픔과 위로가 이야기가 되어 올지 곡진한 마음으로 기다린다.                  

선재의 노래

공선옥 (지은이), 창비(2023)


태그:#선재의노래, #공선옥, #북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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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이 안 보일까봐 가끔 안경을 끼고 잡니다. 글자를 좋아합니다. 특히 남이 쓴 글자를 좋아합니다. 묘비에 '나 여기 없다'라고 쓸까, '책에 파묻혀 죽다'라고 쓸까 고민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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