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시민의 칠거지악> 공연 포스터

<소시민의 칠거지악> 공연 포스터 ⓒ 극단 '테아터라움 철학하는 몸'

 
2023년 8월 2일부터 6일까지 대학로 소극장 공유에서 공연된 극단 테아터라움 철학하는 몸(아래 '철몸')의 <소시민의 칠거지악>은 독일의 극작가 베르톨트 브레히트(1898-1956)의 원작을 한국적 상황에 맞게 각색한 작품이다. <소시민의 칠거지악>은 브레히트가 작곡가 쿠르트 바일과의 협업으로 1933년 6월 파리에서 초연된 발레극이다. '철몸'의 이번 공연은 발레극을 연극-텍스트로 재해석한 작품이다.

브레히트는 게으름, 자만, 분노, 식탐, 호색, 탐욕, 시기심이라는 기독교의 7가지 죄악을 자본주의에서 생존하는 것을 방해하는 칠거지악으로 재맥락화했다. 불의를 저지를 때 게으름을 피우는 것, 자신이 최고라는 자만으로 자신의 상품성을 해치는 것, 비열함에 대해 분노를 표시하는 것, 절제 없이 먹고 마셔 자신의 상품성을 떨어뜨리는 것, 자신을 돌보지 않는 이타적인 사랑, 적나라한 탐욕을 드러내 착취할 대상을 잃어버리는 것, 행복하게 사는 사람을 시기하는 것 등이다. 스물네번의 각색을 거쳐 완성된 '철몸' 공연의 칠거지악은 주인공 안나가 거쳐가는 도시의 이름으로 표상화된다.

죽음의 자리마다 피어나는 욕망의 꽃
 
스토리는 안나가 시골집을 떠나 대도시로 향하는 여정에서 시작된다. 안나의 집은 전세사기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게 되고, 아버지는 노동능력을 상실한 채 집에만 틀어박혀 있다. 식당에서 일하는 어머니는 다리 통증으로 하루하루가 위태롭다. 집안의 생계와 어린 동생들의 미래까지 책임져야 하는 안나는 가수의 꿈을 뒤로 하고 돈을 벌기 위해 '부지런시'의 제빵공장에 취직한다. 상상을 초월하는 노동착취 속에 동료가 기계에 몸이 끼어 사망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그럼에도 안나는 묵묵히 일을 하지만 어느날 갑자기 권고사직 당한다.

이후 공장월급으로는 집을 사기 어렵다고 생각한 안나는 두 번째 도시 '겸손시'에서 유튜버가 되기로 결심하고 커버곡을 부르는 라이브 방송을 시작한다. 슈퍼챗을 쏘며 안나에게 관심을 보이던 한 구독자는 안나의 재능이 아깝다며 지인이 운영하는 라이브카페에 일자리를 소개한다. 무대에 설 수 있다는 기쁨도 잠시, 카페 사장은 안나에게 최대한 섹시한 동작과 눈빛으로 손님들을 자극하라고 충고한다. 자존심과 자부심은 부자들이나 가질 수 있는 것이라며 애써 자신을 채찍질하는 안나. 리듬에 맞춰 기계적으로 가슴과 엉덩이를 흔드는 안나는 점점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는 꼭두각시가 되어간다. 전세사기, 제빵공장, 유튜버... 안나가 거쳐가는 자리들은 현대 사회 죽음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운 공간들이다.
 
칠거지악에 갇힌 안나의 삶
 
라이브카페에서 임금을 사기 당한 안나는 세 번째 도시 '인내시'에서 유명 스타의 CF에 백댄서로 출연하는 기회를 얻는다. 그러나 스태프들에 대한 배우의 비인격적 태도에 분노한 안나는 격렬하게 항의했고, 즉시 해고된다. '비열함에 분노를 표시하면 안 된다'는 칠거지악을 어긴 안나는 스스로를 꾸짖으며 스타를 찾아가 용서를 빈다. 배우는 안나에게 이제부터 사람의 말 대신 개짖는 소리만 내라며 네 발로 바닥을 기라고 명령한다. 불행 중 다행으로 CF가 성공하고, 일약 스타가 된 안나는 방송국 근처 '절제시'로 이사한다. 그녀의 성공으로 가족들은 땅을 사고 7층 건물을 짓기 시작한다. 그러나 안나의 삶은 더 팍팍해진다. 대형 기획사와 계약했지만 몸무게 50㎏을 초과하면 다섯 배의 위약금을 물어야 하는 조건이 붙은 것이다. 물 한 모금, 빵 한 조각도 마음대로 먹을 수 없는 안나. 건물주를 향한 안나의 꿈은 처절한 굶주림을 견디는 채찍이 된다.

외로움에 지친 안나는 '사랑시'에서 공시생을 만나 사랑에 빠지지만 현실적인 고민 끝에 결국 자신에게 막대한 돈과 지원을 아끼지 않는 박 사장과 결혼한다. 결혼식날 찾아온 안나의 사생팬은 그동안 자신이 투자했던 돈을 돌려달라며 자해를 시도한다. 안나는 그를 말리기는커녕 오히려 죽음을 부추기며 조롱한다. 순수한 사랑을 동경했던 안나는 이제 자신을 좋아하는 남자들을 유혹해 돈을 갈취하는 괴물이 된 것이다. 결혼 후 '만족시'에서 남편을 이용해 불법적인 방법으로 돈을 벌던 안나는 박 사장의 자살 이후 재혼하지만 두 번째 남편 역시 스스로 생을 마감한다.

홀로된 안나는 일곱 번째 도시 '인정시'에서 자신이 놓쳤던 일상의 소소한 행복을 누리며 사는 사람들을 부러워한다. 그러다 이내 칠거지악의 금기를 떠올리고는 쓸쓸한 표정을 거두며 스스로에게 말한다. "네가 승리해. 누구보다 우월해지는 것을 보게 될 거야." 7년 만에 돌아온 고향엔 그토록 열망했던 7층 건물이 안나를 맞이한다. 뉴스에서는 안나 남편들의 죽음에 대한 강한 의혹을 제기하는 멘트가 흐른다. 그러나 세상의 이목과 의심에도 아랑곳 않고 그녀는 또다시 길을 나선다.  
 
 두 명의 안나를 연기한 오다애 배우(왼쪽)와 문경희 배우(오른쪽). (사진 제공 극단 테아터라움)

두 명의 안나를 연기한 오다애 배우(왼쪽)와 문경희 배우(오른쪽). (사진 제공 극단 테아터라움) ⓒ 최윤정

 두 명의 안나를 연기한 오다애 배우(왼쪽)와 문경희 배우(오른쪽). (사진 제공 극단 테아터라움)

두 명의 안나를 연기한 오다애 배우(왼쪽)와 문경희 배우(오른쪽). (사진 제공 극단 테아터라움) ⓒ 최윤정

 
살아남은 자의 슬픔, 그리고 수많은 안나들
 
<소시민의 칠거지악>에는 두 명의 안나가 등장한다. 현실적인 성격의 안나1과 욕망에 충실한 안나2가 때로는 충돌하고, 때로는 다독이며 대도시의 삶을 견뎌낸다. 극 초반 대사에서 밝히듯 안나1과 2는 동일인물이다. 칠거지악이라는 금기를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안나의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형상화한 것이다. 자본주의라는 거대한 시장에서 팔리지 않는 모든 것은 죄악이다.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상품화하고, 가격을 높게 매겨 누군가의 지갑을 열게 만드는 것이야말로 최고의 능력이자 행복의 척도가 되는 것이다. 자신이 원하는 방향과 속도가 아닌 세상이 바라는 모습을 따라야만 돈없는 설움에서 벗어날 수 있다. 이웃을 걱정하고, 불의에 항거하며, 진정한 사랑을 갈구하는 것은 칠거지악을 방해하는 소모품들이다.

임형진 연출은 여러 명의 배우가 등장하는 브레히트의 발레극을 단 두 명의 인물이 소화하는 서사극으로 각색했다. 그중에서도 현실적 캐릭터인 안나1을 연기한 문경희 배우는 12명의 인물을 소화해내면서 자본주의 사회의 다양한 부조리를 연기한다. 오랜 무대 경험으로 쌓인 탄탄한 그녀가 내뱉는 호흡과 동선은 무형의 공간에 장소를 만들어내는 독특한 수행을 보여준다. 욕망에 충실한 안나2를 연기한 오다애 배우는 유투버, 가수, 댄서, 사랑꾼 등 다양한 감정의 파도를 균형감 있게 잘 표현했다. 특히 사랑을 잃은 절망감으로 밤새 통곡하는 울음소리는 내면의 균열이 느껴지는 아픈 장면이었다.

무엇보다 다소 거친 질감을 유지하면서도 단단하게 이어지는 두 배우의 케미가 몰입도를 높인다. 단출한 무대는 극의 흐름을 단단하게 잡아주는 코어로 작동한다. 무대 벽에 설치된 미니 칠판에 하나씩 써내려간 도시의 이름은 안나가 올라탄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가 서는 정류장들이다. 승객은 있지만 목적지가 불분명한 순환버스. 수수께끼 풀 듯 칠판에 하나씩 써내려가는 도시의 이름은 때로 신박하고, 때로 진부하였으나, 90년 전 브레히트가 절망한 자본주의의 흉포한 영혼이 여전히 우리의 삶을 잠식하는 것을 목도하면서 과연 나는 지금 어느 동네에 살고 있는지 새삼 반추하게 된다. 문득 브레히트의 시, '살아남은 자의 슬픔'의 한 구절이 떠오른다.

"강한 자는 살아남는다. 문득, 나는 내가 미워졌다."
덧붙이는 글 기사가 발행된 후 개인 브런치에 게시할 예정입니다. 오마이뉴스 기사 출처와 링크를 함께 게재할 예정입니다.
극단 테아터라움 철학하는 몸 소시민의 칠거지악 임형진 문경희 오다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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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콘텐츠비평가. 문화콘텐츠학 박사. 디지털과 인문학의 가로지르기를 통해 강의와 연구, 비평을 통해 세상과 소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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