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백선엽(1920~2020)의 '친일반민족행위자' 문구가 사라졌다. 국립대전현충원 홈페이지에 등록된 안장자 정보에서다. 직전까지는 안장자 참배·검색 코너에서 백선엽을 검색하면 비고란에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에서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결정(2009년)'이라는 문구가 기재돼 있었다.

그러나 국가보훈부의 결정에 따라 24일 오전부터 해당 문구가 삭제됐다. 국가보훈부는 "해당 문구가 법적 근거 없이 기재된 것을 확인하고 법적 검토를 거쳐 해당 내용을 삭제하기로 최종 결정했다"고 삭제 이유를 설명했다.
 
국립대전현충원 홈페이지에 수록된 '백선엽'의 안장 기록. 국가보훈부의 결정에 따라 24일부로 비고란에 있던 '친일반민족행위자' 문구가 삭제됐다.
 국립대전현충원 홈페이지에 수록된 '백선엽'의 안장 기록. 국가보훈부의 결정에 따라 24일부로 비고란에 있던 '친일반민족행위자' 문구가 삭제됐다.
ⓒ 김경준

관련사진보기


박민식 보훈부의 백선엽 영웅 만들기

국가보훈부의 전격 결정에 광복회가 원상복구를 요구하는 등 비판 여론이 거세게 일어났지만, 최근 쏟아진 박민식 국가보훈부장관의 발언들을 볼 때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는 일이었다.

7월 초부터 박민식 장관은 백선엽의 명예회복에 대한 강한 의지를 내비쳤었다. 심지어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서는 "백선엽이 친일파가 아니라는 데 장관직을 건다"는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백선엽과 관련해 그가 그동안 쏟아낸 발언들을 잠깐 살펴보자.

"백선엽 장군이 간도특설대에 복무한 것은 사실이지만 독립군을 토벌하였다는 객관적 자료는 없다."
"백선엽 장군을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결정할 당시 반대하는 목소리가 있었음에도 다수의 힘으로 밀어붙인 것인데, 위원회의 결정이 곧 역사적 사실이 되는 것은 아니다."
"백선엽 장군은 최대 국난이었던 6.25전쟁을 극복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워 대한민국 최고 무공훈장인 태극무공훈장을 수여 받은 최고 영웅으로, 친일파 프레임으로 백 장군의 명예를 실추시키는 것은 옳지 않다."


위 발언들은 모두 국가보훈부 공식 보도자료에 인용된 것이다.

노무현 정부 당시 대통령 소속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에서 내린 공식 결정을 정면으로 뒤엎는 발언도 황당하지만, 백선엽의 친일 행위를 반박하는 근거로 장관 한 개인의 근거 없는 주장을 보도자료에 인용한 보훈부의 행태도 궁색하기 짝이 없다.
 
2023년 7월 5일 칠곡 다부동전적기념관에서 열린 백선엽 동상 제막식 참석 후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이 자신의 개인 SNS에 올린 글
 2023년 7월 5일 칠곡 다부동전적기념관에서 열린 백선엽 동상 제막식 참석 후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이 자신의 개인 SNS에 올린 글
ⓒ 박민식 장관 페이스북

관련사진보기

 
문일민과 백선엽, 대조적인 삶

이 기사에선 한 독립운동가의 이야기를 하려 한다. 문일민(1894~1968). 백선엽과 같은 평안남도 강서군 출신이다. 같은 지역 출신이라는 점을 빼면 두 사람의 삶에서는 공통점을 전혀 찾을 수 없다. 한국근현대사에서 두 사람의 행보는 극명하게 갈렸다.

문일민은 1919년 3.1혁명을 계기로 만주로 망명, 신흥무관학교에서 군사훈련을 받고 독립군으로 거듭났다. 1920년 8월 만주 지역 무장단체인 대한광복군총영의 일원으로 평양에 파견돼 일제 식민통치기구인 평남도청에 폭탄을 던졌다. 일경의 추격을 피해 만주로 귀환한 그는 이후 상하이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합류해 임시의정원 의원으로 활동하는 등 해방을 맞이할 때까지 독립운동에 투신했다(그의 보다 자세한 삶은 오마이뉴스 연재 '무강 문일민 평전'을 참고하기 바란다 https://omn.kr/21bxn ).
 
1948년 5월 10일 김구와 함께 한 문일민(오른쪽)
 1948년 5월 10일 김구와 함께 한 문일민(오른쪽)
ⓒ 독립기념관

관련사진보기

 
백선엽은 만주 펑톈군관학교를 졸업한 뒤 1941년부터 1945년 일제 패망 시까지 만주국군 장교로서 침략전쟁에 협력했다. 특히 한인(韓人)으로 하여금 한인(韓人)을 통제하고 토벌하기 위해 조직된 간도특설대에서 복무했다. 간도특설대는 만주국의 '삼광정책'(三光政策: 모두 죽이고, 모두 불태우고, 모두 빼앗아가는 정책)을 충실히 수행한 악명 높은 부대였다.

1945년 8월 15일 해방을 맞았다. 원래대로라면 문일민은 '개선장군'이 돼 돌아와야 했고, 백선엽은 민족반역자로 처단돼야 할 대상이었다. 그러나 역사는 반대로 흘러갔다. 문일민을 비롯한 임시정부 요인들은 미군정에 의해 손발이 묶인 채 개인 자격으로 환국하는 굴욕을 맛봐야 했다.

백선엽은 재빠르게 군복을 바꿔입었다. 미군정 산하 국방경비대 장교로 부임하면서 재기에 성공헸고, 이후 능력을 인정 받으며 승승장구했다.

해방된 조국에서 일본군 출신들이 군복을 바꿔입고 애국자 행세를 하는 현실에 분개한 문일민은 1947년 10월 25일 중앙청(미군정)에서 할복 자결을 시도한다. 이른바 '중앙청 할복 의거'다.
 
1947년 10월 25일, 중앙청 청사에서 할복 후 쓰러져 있는 문일민.
 1947년 10월 25일, 중앙청 청사에서 할복 후 쓰러져 있는 문일민.
ⓒ 동아일보 갈무리

관련사진보기

 
"돌이켜 남한의 형편을 보면 그것도 아름답지 못하니 친일파의 블럭은 곳곳에 발호하고 있다. 민족반역자의 세력은 군부 방면에까지 벌써 뿌리를 깊이 박혔다. 그들은 표창까지 받는다." - '동지동포께 일언함', <독립신문>, 1947.12.20.

그는 친일파들이 애국자로 둔갑하고, 정작 해외에서 목숨 걸고 독립운동하다 돌아온 독립투사들은 무시 당하는 현실을 비판하기 위해 극단적인 선택을 감행했다. 그러나 문일민의 목숨 건 절규에도 세상은 조금도 바뀌지 않았다.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진 문일민은 이승만 독재정권에 저항하다 경찰서에 구금되기도 하는 등 마지막까지 독립투사로서의 지조와 기개를 잃지 않았다. 그는 죽을 때까지 일체 공직을 맡지 않은 채 조용히 살다 세상을 떠났다.

백선엽은 6.25 전쟁 당시의 공로로 더욱 승승장구하며 육군참모총장, 주중화민국 대사, 주프랑스 대사, 주캐나다 대사, 교통부장관 등을 역임했다. 은퇴 후에도 나라를 지킨 전쟁영웅으로 대접 받으며 천수를 누렸다.

친일파가 영웅이 되는 사회

이렇게 대조적인 삶을 살았던 문일민과 백선엽은 지금 현재 각각 서울과 대전현충원에 잠들어 있다. 독립운동가와 친일반민족행위자가 현충원이라는 공간에 나란히 안장된 것도 아이러니한 일이지만, 이들을 대하는 우리 사회의 태도를 보면 더욱 씁쓸하다.

2021년 6월 행정안전부 이북5도위원회 평안남도청에서는 <평안남도를 빛낸 인물 60인>이라는 책자를 발간했다. 평안남도 출신으로 대한민국을 빛낸 각계 명사들의 삶과 업적을 담았다.

발간 당시 이명우 평안남도지사는 "선정된 60인 모두 한 분 한 분 민족과 국가의 지도자였고 자신과 가족의 안위보다는 나라를 먼저 사랑하고 헌신한 분들이었다"고 치켜세웠다. 당시 후손대표로 행사에 참석했던 조태용 국민의힘 의원(현 국가안보실장) 역시 "평남을 빛낸 60인을 살펴보면 대한민국을 이룩한 60인이라고도 할 수 있다"라고 칭송했다.

문제는 해당 명단에 백선엽은 포함되고 문일민의 이름은 누락돼 있다는 점이다. 평남도청은 2022년 7월 <평안남도를 빛낸 인물 30인>을 추가로 발간했다. 그러나 2차 선정 명단에서도 문일민은 누락됐다.
 
<평안남도를 빛낸 인물> 선정자 명단. 평남 강서군 출신 백선엽도 명단에 포함됐다.
 <평안남도를 빛낸 인물> 선정자 명단. 평남 강서군 출신 백선엽도 명단에 포함됐다.
ⓒ 이북5도위원회

관련사진보기

 
이북5도위원회가 공개한 '평남을 빛낸 인물 추천대상자 명단'을 살펴보면 선정 후보들의 친일반민족행위자 여부도 결격 사유의 하나로써 확인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평남도청은 친일반민족행위자라는 사실을 인지한 이들에 대해서도 최종 명단에 포함시켰다(애국가의 작곡가인 안익태가 대표적). 백선엽의 경우 애초에 친일반민족행위자라는 사실조차 기재돼 있지 않았다. 몰랐다면 무지의 소치요, 알았다면 명백한 역사왜곡이다.

평생 조국 독립에 앞장 섰던 독립투사는 기억 속에서 잊히고, 조국을 등진 채 침략전쟁에 앞장섰던 친일반민족행위자는 '지역을 빛내고 대한민국을 빛낸 위인'으로 존경 받는 게 작금의 현실이다.

이 문제는 박민식 장관 한 개인의 문제가 아닐지도 모른다. 친일파를 영웅으로 대우하고, 독립운동가는 푸대접하는 우리 사회 전반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닐까. 이를 개선하지 않는 한 제2, 제3의 박민식은 계속 나올지도 모른다.

마지막으로 한 사람의 독립운동사 연구자로서 이번 국가보훈부의 결정에 깊은 유감을 표한다. 부디 역사 앞에 죄를 짓는 이번 조치를 철회하기를 간곡히 촉구한다.

태그:#문일민, #백선엽, #무강문일민평전, #독립운동가, #국가보훈부
댓글35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30,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한양대 사학과 박사과정 (한국사 전공) / 독립로드 대표 / 서울강서구궁도협회 공항정 홍보이사 / <어느 대학생의 일본 내 독립운동사적지 탐방기>, <다시 걷는 임정로드>, <무강 문일민 평전>, <활 배웁니다> 등 연재 / 기사 제보는 heigun@naver.com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