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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형사(프로젝트 2501) : "여기서 이러고 있는 건 나 자신의 의지다. 하나의 생명체로서 정치적 망명을 희망한다."

조약 심의부 나카무라 부장 : "생명체라고? 헛소리! 자기 보존을 위한 프로그램에 불과해."

인형사(프로젝트 2501) : "그런 식으로 말한다면 당신들의 DNA 역시 자기 보존을 위한 프로그램에 불과해."
 
영화 <공각기동대>(Ghost In The Shell, 1995)의 한 장면이다. 인형사는 '프로젝트 2501'이라고 불리는 프로그램이다. 위 대사는 온라인을 떠도는 프로그램인 인형사가 자신을 생명체라고 부르며 정치적 망명을 주장하는 장면이다. 그(그녀)는 자신과 인간이 '자기 보존을 위한 프로그램'이라는 점에서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챗지피티(ChatGPT) 같은 생성 인공지능이 다양한 분야에서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다. 나는 인공지능을 떠올릴 때마다 생명체임을 주장하며 정치적 망명을 요구하는 프로그램 인형사가 떠오른다. 인형사는 '정보의 바다'를 떠돌다 '자아'를 인식하게 되었고 인간의 도구가 아닌 인간과 동등한 독립적 존재가 되고자 한다.

지금까지 인형사 같은 프로그램이 현실 세계에 나타나지는 않았다. 하지만 챗지피티의 놀라운 학습 능력과 속도 변화를 생각한다면, 아주 먼 이야기만은 아닐 것으로 보인다. 변하는 기술 습득에 조바심을 내기보다 과학기술 자체와 그것이 만들어내는 각종 결과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를 두텁게 살피는 일이 더 중요해 보이는 시점이다.
 
"예전 AI는 지식이 참이나 거짓이냐를 묻는 인식론을 강조했다면, 현재 AI는 신체를 중시하니까 존재론을 강조한다고 할 수 있죠. 그런데 인식론을 제대로 알려면 존재론에 기반해야 해요. 즉 존재론적으로 접근해야 AI가 제대로 된 인식론 체계를 갖게 되고, 인간 수준의 지능에 도달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책 <선을 넘는 인공지능>, 304쪽)
 
'효율'만 말하는 한국 사회

그런데 우리 사회, 특히 교육 분야에서 인공지능을 대하는 태도는 사용 방법 익히기와 업무 효율 높이기만을 지나치게 강조한다. AI를 사용하지 않으면 사회에서 살아남기 어렵다는 듯 경쟁을 부추긴다.

인공지능으로 사라질 직업이 무엇이며 새로 인기를 얻을 일자리가 어떤 것인지를 자극적으로 과장하기도 한다. 훨씬 더 중요한 문제는 이미 현실 속에 들어와 있는 인공지능과 인간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하는가이다.
 
"기계가 사람을 대체하냐 아니냐로 생각할 문제가 아니에요. (중략) 사람과 기계가 같이 일하게 될 것예요. (중략) '어떤 일'을 사람이 하게 될 것인가, 사람과 기계는 이제 '어떤 관계'에 놓일 것인가 하는 문제 아닐까 싶어요." (책 <선을 넘는 인공지능>, 269~270쪽)
 
교육부가 올해 1월 4일 보도자료를 통해 밝힌 13쪽짜리 짧은 '2023년 교육부 주요업무 추진계획'에 AI라는 단어만 여덟 번 등장했다. 첫 번째 핵심 추진과제인 '(학생맞춤) 단 한 명도 놓치지 않는 개별 맞춤형 교육' 맨 앞자리도 AI가 차지했다.
 
교육부는 올해만 벌써 여섯 차례 AI 또는 인공지능이 제목에 들어간 보도자료를 냈다.
▲ 교육부 인공지능 관련 보도자료 목록 교육부는 올해만 벌써 여섯 차례 AI 또는 인공지능이 제목에 들어간 보도자료를 냈다.
ⓒ 교육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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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는 올해만 벌써 여섯 차례 AI 또는 인공지능이 제목에 들어간 보도자료를 냈다. '모두를 맞춤 교육시대' '에듀테크' '디지털 교과서' '안전한 학교 구현' 등 제목의 핵심 단어를 보면, 마치 인공지능이 모든 교육 문제를 해결해 줄 것 같이 표현했다.

인공지능 또는 AI가 제목에 포함된 교육부 보도자료는 2017년부터 2019년까지 모두 합쳐 3건에 불과했다. 이후 2020년부터 급격히 늘었다. 2020년 8건, 2021년 8건, 2022년 8건, 2023년은 7월 21일 기준 6건이다. 인공지능에 관한 관심 증가와 윤석열 정부의 AI 교육 강조가 역할을 했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런데 문제는 내용과 목적에 있다. 인공지능 만능주의 접근은 문재인 정부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인공지능, 학교 속으로! 인공지능(AI), 초등 수학 공부 도우미로, 고교 진로 선택 과목으로 도입" (2020년 9월 14일 교육부 보도자료 제목)

"초등 3~4학년도 인공지능(AI) 보조교사와 함께 수학 공부해요!"
(2022년 9월 1일 교육부 보도자료 제목)
 
위 두 개 교육부 보도자료 사이에 어떤 교육적 차이가 있는가? 인공지능이라는 단어를 자주 많이 사용한다고 이해가 심화하지 않는다. 깊고 넓게 고민하지 않고 갑자기 전염병처럼 나타나 교육계를 휩쓸다 어느 순간 사라졌던 새로운 단어와 정책이 한둘이 아니다.

코딩, 알고리즘 교육이니 하며 기술을 쫓아가라고 학생들을 몰아가기보다 지금은 '함께 질문을 만들고 토론할 때'다. 교육 당국과 학교가 강조하는 내용 상당수는 앞으로 인공지능이 대신할 수 있는 것들이다. 답을 찾기보다 물음을 던질 시기이다.

인공지능은 어떤 존재인가? 인간은 이들과 어떤 관계를 맺을 것인가?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살만한 공동체는 어떤 곳이어야 하는가? 인공지능이 인간 노동을 대체한다면 어떻게 대응해야 할 것인가? 그리고 어떤 사회 제도적 준비를 해야 할 것인가? 인간은 다른 존재(동물, 식물, 기계)과 어떤 관계를 유지할 것인가?

단순 지식면에서 보면, 이미 챗지피티같은 인공지능은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다. 개별 지식을 익히고 다른 존재가 준 정보에 의존하는 교육은 더는 의미가 없어졌다. 감정을 나누고, 상황을 판단하고, 몸으로 익힌 경험을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 것인가를 고민하고 공유하는 교육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이미 존재하는 경제적·문화적·정서적 불평등을 줄일 방법을 고민해야 할 때다. 그 중요한 몫 가운데 일부는 교육에 있다.
 
"최소 생계가 보장되지 않으면 인공지능과 인간은 일자리를 두고 싸우는 적대관계에 들어갈 수밖에 없을 거예요. (중략) 억지로 일자리를 만들려고 애쓸 게 아니라, 그냥 최소 소득을 제공해서 생존을 해결해주면 더 좋지 않겠어요? 돈 버는 일을 하든지 하고 싶은 일을 하든지 각자 알아서 하라고 하면서요. 그러고 보면 인공지능이 일자리의 난점을 극한으로 몰고 감으로써 일하지 않는 삶에 대해 진지하게 물음을 던진 게 아닌가 싶어요." (책 <선을 넘는 인공지능>, 278쪽)
 
책 <이진경×장병탁 선을 넘는 인공지능>은 SF 소설 작가인 김재아가 사회학자이자 철학자인 이진경과 AI 연구학자 장병탁을 여러 차례 만나 나눈 대담을 엮은 책이다.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인공지능에 대한 막연한 낙관론과 두려움이 퍼져 있는 우리 사회에서 인간과 기계의 관계에 관한 새로운 시각을 만나볼 수 있다는 점이다.

책에도 나오는데, 인간과 기계의 존재와 관계를 고민하게 되면, 인간, 기계, 동물, 식물 등 지구에 존재하는 모든 '비인간' 존재에 관한 관심도 세밀해지고 커질 것이다. 이것은 인간을 더 잘 이해하는 일이기도 하다.
 
<이진경×장병탁 선을 넘는 인공지능>은 SF 소설 작가인 김재아가 사회학자이자 철학자인 이진경과 AI 연구학자 장병탁을 여러 차례 만나 나눈 대담을 엮은 책이다.
▲ <이진경X장병탁 선을 넘는 인공지능> 책 표지 <이진경×장병탁 선을 넘는 인공지능>은 SF 소설 작가인 김재아가 사회학자이자 철학자인 이진경과 AI 연구학자 장병탁을 여러 차례 만나 나눈 대담을 엮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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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경 장병탁 선을 넘는 인공지능

이진경, 장병탁, 김재아 (지은이), 김영사(2023)


태그:#인공지능, #AI, #CHATGPT, #선을 넘은 인공지능, #교육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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