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가 2년 연속 초청한 영화가 있다. 가장 많은 관객이 드는 부천시청 어울림관에서 상영을 하고, 가득 찬 관객 앞에서 감독과 출연배우들과 대화시간까지 갖도록 했다. 상영이 끝나자 박수세례가 쏟아졌고 GV가 진행되는 중에도 누구 하나 자리를 뜨려 하지 않았다. 도대체 어떤 대단한 영화이기에 2년 연속 초청 상영을 진행한다는 말인가.
 
영화는 <잔고: 분노의 적자>다. 제목에서 느껴지는 것처럼 <장고: 분노의 추격자>를 노골적으로 떠올리게 한다. 연출자는 백승기, 아는 사람은 다 아는 한국 B급, 사실 B급이라 부르기도 민망하여 많은 이들이 C급 영화라 부르는, 작품을 만드는 감독이다.
 
예산이 적고 완성도가 떨어져서 B급이라 하는 것이 아니다. 오늘의 B급, 나아가 C급 영화란 제 부족을 도리어 장점으로 내세우는 뻔뻔함과 그로부터 일어나는 감상을 멋으로 내세우는 당돌함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백승기의 전작, <숫호구>로부터 <시발, 놈: 인류의 시작> <오늘도 평화로움> <인천스텔라> 중 한 작품만 보았다면 이것이 무슨 뜻인지를 단박에 알아챌 수 있을 테다.
 
부천의 부름을 받은 한국 C급 영화의 기수
 
잔고: 분노의 적자 포스터

▲ 잔고: 분노의 적자 포스터 ⓒ BIFAN

 
백승기의 영화에 대한 감상은 보는 이에 따라 극명하게 갈린다. 다수는 도대체 이게 무슨 영화냐 하고 얼굴을 찌푸릴 것이 분명하다. 만약 당신이 뭉칫돈을 들고 어느 영화에 투자를 해야 한다면 십중팔구 이런 영화에 투자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나는 그렇게 여기는 것이다.
 
그러나 놀랍게도 백승기의 영화는 아직 생존해 있다. 첫 작품에서 그칠 것이란 세간의 평가를 보란 듯 넘어서 그는 두 번째, 세 번째, 심지어는 네 번째 영화를 내어놓았으며 다섯 번째 영화는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 2년 연속 초청돼 박수세례를 받는 영광을 받기에 이른 것이다. 네 번째 작품부터 인천영상위원회로부터 지원을 받기 시작한 그는 어느덧 인천 지역을 대표하는 영화인으로 자리매김하기도 하였는데, <잔고: 분노의 적자> 또한 미국 텍사스를 표방하며 인천 도서지역에서 촬영한 용맹한 작품이라 하겠다.
 
영화는 영화감독이 꿈인 가난한 청년 잔고(정광우 분)가 저와 제 동생 잔디(정수진 분)에게 닥친 위기에 맞서는 일종의 모험기다. 텍사스를 배경으로 서부극을 표방한 작품답게 과거 미국과 이탈리아의 서부극을 떠올리게 하는 설정도 적잖이 등장하지만 그보다는 좌충우돌 어떻게든 나아가는 병맛 C급 영화라 보는 편이 옳겠다.
 
막무가내 대사로 웃음을 자아내는
 
잔고: 분노의 적자 스틸컷

▲ 잔고: 분노의 적자 스틸컷 ⓒ BIFAN

 
영화의 매력은 줄거리보다도 진행되는 과정에 있다. 대사 전부를 정체불명의 영어로 썼고, 그 과정에서 문법이나 맥락에 맞는 영어를 최대한 배제한 점도 기록할 만하다. 요즘 초등학생도 하지 않는 막무가내 대사들이 허를 찌르는 웃음을 자아내는 순간이 적지 않아 영화를 보는 내내 곳곳에서 웃음이 터져 나온다. 언제나 그러하듯 웃음은 서로 전해지게 마련이니, 한 번 터진 웃음이 온 객석을 사로잡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 것이다.
 
그뿐인가. 전작 <인천스텔라>에서 누가 보아도 인천 어느 지역인 곳을 우주로 설정하고 여전히 중력의 지배를 받는 땅 위에서 무중력의 공간을 연기한 그다. 이번 작품이라고 다르지 않다. 한 세기 쯤 전인 미국 텍사스에 인천 시내버스가 대놓고 지나가며, 노예상의 농장은 누가 보아도 비닐하우스인 것이다.

어처구니없는 설정들이 거듭되는 과정에서 관객은 어찌할 수 없이 백승기의 세계 속으로 빠져들 밖에 도리가 없다. 상영관을 박차고 나갈 게 아니라면 말이다. 그리고 수백의 관객 가운데 러닝타임 도중 자리를 뜬 이가 한 명도 없었다는 건 백승기의 영화가 거둔 승리라 할 만하다.
 
쓰자마자 곧 영화로 만드는 패기
 
잔고: 분노의 적자 스틸컷

▲ 잔고: 분노의 적자 스틸컷 ⓒ BIFAN

 
감독은 영화 속 대사 중 상당 부분을 촬영하는 당일 스태프들과 함께 작성해 배우들에게 전달했다고 말한다. 쓰자마자 곧 영화가 되는 이 막무가내식 촬영방법을 듣고 있자면, 이 영화가 이토록 많은 관객을 끊임없이 웃겨내고 국내 주요 영화제에 2년 연속 초청돼 큰 규모로 상영되기에 이르렀다는 사실이 놀랍게까지 여겨진다.
 
이 같은 성공을 바탕으로 <잔고: 분노의 적자>는 마침내 오는 9월 정식 개봉까지 앞두게 되었다. 이로써 백승기 감독은 한국 C급 영화의 독보적인 존재가 되었음이 분명해 보인다.

이날 이 영화를 관람한 수백의 관객 가운데서 또 몇은 그의 매력에 빠져버린 것처럼 보이니, 백승기의 영화가 앞으로도 한동안은 멈추지 않을 것이 확실하다 하겠다.
덧붙이는 글 김성호 평론가의 얼룩소(https://alook.so/users/LZt0JM)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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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기자.글쟁이. 인간은 존엄하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을 간직한 사람이고자 합니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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