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크 호러의 황홀한 역사> 포스터

<포크 호러의 황홀한 역사> 포스터 ⓒ BIFAN

 
영화제를 찾는 이유야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그중 빼놓을 수 없는 하나는 다른 곳에서 만나기 어려운 작품을 대면할 수 있다는 것이 되겠다. 배급상의 여러 어려움으로 극장에 걸리지 못하는 영화를 스크린을 통해 만날 수 있다는 건 영화애호가에게 여간 귀한 기회가 아닌 것이다. 쉽게 찾을 수 없는 영화가 소개되는 상영관에 평소보다 많은 관객이 드는 데는 이러한 이유가 자리한다.
 
제27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상영된 2021년작 다큐멘터리 <포크 호러의 황홀한 역사> 상영관에 관람객이 가득 들어찬 것 또한 비슷한 이유다. 영화는 무려 192분 분량의 다큐멘터리로, 이 영화제에서 통상 상영되는 다른 작품에 비한다면 몰입도나 자극성, 재미가 더 크다고 말하기 어려운 작품이다.

그러나 영화는 상영 전부터 뜨거운 관심을 받았으니, 영화를 보는 이유가 오로지 말초적 흥미에 있는 것이 아님을 짐작게 한다.
 
 영화 <포크 호러의 황홀한 역사> 스틸컷

영화 <포크 호러의 황홀한 역사> 스틸컷 ⓒ BIFAN

 
포크 호러의 역사를 망라하는 다큐멘터리
 
<포크 호러의 황홀한 역사>는 제목이 말하는 것처럼 '호러', 그것도 한국어로는 토속적 공포쯤으로 풀이되곤 하는 '포크 호러'의 역사를 정리하는 작품이다. 영화나 소설의 장르 가운데 하나로 짧게는 지난 수 세기 동안 인기를 끈 공포물의 한 분과를 추적하여 그 안에 깃든 유의미한 역사를 끌어내는 작업을 진행한 다큐멘터리라 하겠다. 작품 가운데 정신이상을 보이는 여성캐릭터의 모습 등을 오래 추적해 온 감독 키에르-라 재니스는 이 영화로 제 오랜 작업 가운데 가장 빛나는 성취를 이루었단 평가를 얻었다.
 
무려 3시간이 훌쩍 넘는 이 다큐는 지난 시대 영국 영화를 중심으로 가히 전 세계 영화를 오가며 포크 호러의 양상을 추적한다. 중심이 되는 건 영국이지만 동유럽과 남북 아메리카대륙, 호주, 아시아 등이 모두 등장하고, 도시와 시골 등 다양한 공간이 망라된다. 민담부터 전설, 제의 등 다양한 형태의 포크 호러 형태가 등장하고, 종교적인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이 모두 소재로 쓰이는 이 방대한 분과를 포크 호러라는 하나의 장르로 묶어 부르는 이유를 차츰 납득시켜 간다.
 
얼핏 흔한 공포물로 지나칠 수 있는 여러 작품 가운데 시대와 인간 내면의 무엇을 읽어내는 일은 흥미롭다. 수많은 괴담이 태동한 배경 가운데서 인간이 이룩한 사회의 면면들과 그것이 오작동하며 빚어낸 공포의 씨앗들이 발견되는 모습도 그러하다. 급변하는 사회상 속 구시대의 가치와 새 시대의 무엇이 충돌하고, 그 과정에서의 오류들을 포크 호러 적 상징들로 풀어내는 모습은 이 같은 이야기에 관심이 없는 사람조차 흥미를 갖고 지켜보게끔 하는 요소다.
 
 <포크 호러의 황홀한 역사> 스틸컷

<포크 호러의 황홀한 역사> 스틸컷 ⓒ BIFAN

 
국경을 넘어 발견되는 포커 호러
 
더 크고 세련되며 변화한 세계의 구성원인 인물이 여적 과거에 남겨진 공동체에 홀로, 또는 소수로 등장하며 빚어지는 수많은 포크 호러의 설정이 국경과 문화권을 넘어 공통되고 있다는 점 또한 흥미롭다. 문화와 의례를 알지 못하는 외부인이 처참하게 부서져가고, 또 때로는 구시대의 전통을 완전히 박살 내는 이들 이야기로부터 지키려는 힘과 바꾸려는 힘이 첨예하게 맞서온 인류의 오랜 싸움을 확인하게 되기도 한다.
 
결국 포크 호러는 어느 시대, 어느 계층이 두려워한 것들이 영화며 소설 안으로 녹아든 결과물이다. 때로는 침략이고 때로는 과학이며 또 때로는 새 시대의 삶의 방식이기도 한 것들이 결국 지난 시대의 것들을 점령하여 바꾸어낸 역사를 떠올리면 그 과정에서 생성된 공포가 작품 안에 녹아든 과정이 그저 어느 괴담의 독립적 생성에 머물지 않는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된다.
 
다큐멘터리는 결국 공포를 직면하고 오래 바라보는 것이 세상과 인간을 바라보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인간이 사는 곳이라면 어느 사회에나 공포가 있고, 그 공포는 문화의 장벽을 넘어 크게 다르지 않은 방식으로 작동하며 사람들을 극한으로 몰아가는 것이다. 때로는 현실에서 정벌된 이들이 승리를 거두고, 또 때로는 더욱 참담한 방식으로 패퇴하기도 하지만, 그 공포는 알알이 살아남아 오늘을 사는 이들에게 제 가치를 증명하고 있다.
 
 <포크 호러의 황홀한 역사> 스틸컷

<포크 호러의 황홀한 역사> 스틸컷 ⓒ BIFAN

 
포크 호러는 사멸하지 않는다
 
영화는 지난 몇 년 간 로버트 에거스의 <더 위치>, 아리 에스터의 <미드소마>, 조코 안와르의 <임페티고어> 같은 작품이 연달아 등장한 것이 움츠러들었던 포크 호러의 부활이라 말한다. 또 이 장르가 부활하게 된 이유는 그저 소재의 고갈을 넘어서는 시대적 부름이 있을 것이라는 인식을 감추지 않는다.

영화에 등장하는 약 50여 명의 영화인과 작가, 학자들의 인터뷰는 포크 호러라는 한 장르를 넘어 이야기를 통해 사회적 긴장을 해소해 온 인류 문명의 단면을 여실히 일깨운다.
 
도깨비며 처녀귀신과 같이 전통적 괴담이 존재했고, 또 꾸준히 새로운 괴담이 스크린이며 지면을 통해 생성되고 반복되어 온 한국사회를 이로부터 돌아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 될 것이다. 결국 영화 속 공포란 현실의 갈등과 그로부터 파생된 공포의 씨앗이 변형되고 가공되어 빚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김성호 평론가의 얼룩소(https://alook.so/users/LZt0JM)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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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기자.글쟁이. 인간은 존엄하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을 간직한 사람이고자 합니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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