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7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상영작 <내 안에>

제 27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상영작 <내 안에> ⓒ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01
<내 안에>
라트비아, 러시아 / 2023 / 14분
감독: 니카 자코브레바

01.
태아가 생기면 자라기 전에 유전자 검사를 미리 실시하는 미래 사회가 있다. 예외는 없다. 모든 임산부는 이 과정을 거쳐야 하고, 연구 결과에 따라 문제가 없다고 여겨지는 유전자를 가진 태아만 출산이 가능하다. 그렇지 못한 경우 사회 질서의 확립이라는 미명 하에 무조건적인 유산을 시행하도록 되어 있다. 마리 역시 7년 만에 생긴 아이의 상태를 검사받으러 왔다. 모든 지표가 정상이고 태아도 아주 건강하다는 기쁜 소식. 다만 문제가 하나 있다. D-4라는 유전자를 아이가 갖고 있다고 한다. 이 유전자의 경우 태어나 성인이 되면 강간범이나 연쇄 살인범이 된다. 연구에 따르면 한 치의 오차도 없는 100%의 확률이라고 한다. 사회의 규정에 따르면 역시, 강제적 낙태다.

영화 <내 안에>는 정해 놓은 규칙에 따라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의 성향을 유전자 검사를 통해 확인한 후 어떠한 예외도 없이 사전적 조치를 취하는 사회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작품이다. 이는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2002년 작인 <마이너리티 리포트>의 배경적 설정과도 일부 동일한 측면이 있다. 범죄가 일어나기 전 시스템의 예측을 통해 범죄자를 단죄하는 것과 아이가 태어나기도 전에 유전자 검사를 통해 존재 자체를 지우는 일 양쪽 모두에 존재하는 결과론적인 행위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과 신념과 같은 것들. 영화는 이제 내일이면 건강한 태아를 만나지도 못하고 떠나보내야 하는 한 여성의 모습을 통해 이 지점에 놓여 있는 문제들을 상기시키고자 한다.

02.
이 상황을 받아들일 수 없지만 사회의 강제적 규정을 따를 수밖에 없는 마리는 하루 머물게 되는 병실에서 이브라는 또 다른 산모를 만나게 된다. 당장 내일이면 낙태를 당하게 되는 마리와 달리 한 달째 병실 생활을 하고 있다는 이브로 인해 영화는 자신이 구축한 설정에 의도적 균열을 일으킨다. 지금까지 영화가 관객들에게 주입했던 내용인 '나쁜 유전자를 가진 태아는 태어나기도 전에 낙태를 당한다'는 내용에서 벗어난 다른 경우의 상황이 이브라는 산모에게 벌어지고 있음을 드러내면서다. 병원에 시스템에 의해 걸러져야 할 유전자로 인해 당장 낙태를 받아야 하는 상황에 놓여있지 않은 산모 역시 머물 수 있다는 뜻이다.

이브의 경우는 마리와 정확히 반대다. 출산을 하고 싶지 않지만 시스템에 의해 중절 수술이 금지된 경우다. 아이의 유전자가 장차 천재가 될 유전자를 갖고 있다고 판명되어 낙태가 금지되었고, 무사히 출산을 마칠 때까지 병원에서 나갈 수 없게 되었다. 그녀가 아이를 갖게 된 계기가 비윤리적이고 비인간적이며 폭력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한 사람은 아이를 사랑하는데 낳을 수가 없고, 또 한 사람은 아이를 증오하는데 낳아야만 하는 모순적인 상황이 사회의 시스템과 유전자 연구에 의해 발생하게 된 것이다.

영화는 마리와 이브 두 사람의 모습을 하나의 프레임 속에 함께 위치시키며 두 가지를 말한다. 하나는 시스템에 의해 사회가 운영되는 동안 그 과정에서 인간의 감정과 개인의 자유 및 권리가 모두 외면당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또 하나는 그렇게 믿고 따르는 유전자에 의한 선별 과정을 거친 사회에서도 범죄가 일어나고 그로 인한 피해자가 발생했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다시 물을 수 있겠다. 100%라고 확언했던 시스템에 대한 신뢰를 앞으로도 계속 가져갈 수 있을 것인가? 또한 성인의 인격과 사회성 및 도덕성과 같은 내재적 요소가 완성되는데 성장 환경이나 양육 방식과 같은 후천적인 인자들은 여전히 배제되고 무시당하는 것이 옳은가?

03.
"당신 아이는 착하게 자라고, 잠재적 천재인 내 아이는 나쁘게 자랄 수도 있어요. 양육 방식에 달려 있지만 시스템은 아무런 신경도 쓰지 않죠."

후반부에서 의사 출신임이 밝혀지는 이브가 '편차(Deviation)'에 대해 말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같은 유전자라도 어떤 환경에서 어떤 방식으로 키워지느냐에 따라 충분히 달라질 수 있다는 것. 하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모르지만 영화 속 사회의 시스템이 그런 요소에 대해 이상하리만큼 아무런 신경을 쓰고 있지 않는다는 점을 꼬집으면서 말이다. 사회의 안전을 운운하는 세상이 정의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어설프게 완성된 규칙만 오랜 시간 묵묵히 따르는 것처럼 이 사회도 역시 그런 모습이다.

영화의 마지막, 두 사람은 서로가 안고 있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전복시키기 위한 선택을 시도한다. 이 작품에서 가장 아쉬운 장면이 바로 여기라고 할 수 있는데, 이는 두 사람의 선택에 대한 문제라기보다는 이 거대한 담화를 펼쳐두고도 1차원적인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감독의 단순한 시도가 너무나 안타깝기 때문이다. 이 점만 제외하면 생명의 존엄성과 낙태에 대한 여성의 권리, 사회와 국가의 역할 등의 중요한 사회적 화두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좋은 작품이다.
 
 제 27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상영작 <심판>

제 27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상영작 <심판> ⓒ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02
<심판>
한국 / 2022 / 17분
감독: 남윤희

01.
나연(최하영 분)의 고발로 같은 반 학생인 건우(양범수 분)에 대한 학생자치재판이 열린다. 다른 학생들을 상대로 교내에서 담배를 판매하고 흡연까지 한 사실에 대한 처벌 논의가 그 안건. 심지어 그는 학생이 쉽게 구할 수 없는 부분을 이용해 두 배가 넘는 값을 부르기도 했다고 한다. 분명 학생의 본분을 망각한 행동이며 교내에서 금지된 행동에 대한 처벌이 필요해 보인다. 다만 한 가지 의아한 것은 건우를 고발한 나연이 이 자치재판의 검사로 선출되어 활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녀는 이런 아이들이 학교를 망친다고 생각한다며 정의로 가득 찬 모습을 보인다. 자신이 믿고 있는 그의 잘못에 대한 처벌을 확정적으로 이끌어내기 위해 몰래 가방을 뒤지기도 하고, 은밀히 뒤를 쫓아다니는 등 스스로가 정의롭지 못한 이중적 태도를 갖고 있는 점만 제외하면.

영화 <심판>은 동급생의 불법적인 행위를 자치재판에 올려 직접 심판하고자 하는 한 학생의 그릇된 욕망에 대해 이야기하는 작품이다. 절차로서의 정의와 수단, 목적으로서의 선의와 탐욕 사이에서 제대로 지탱하지 못하고 휩쓸리고 마는 인간의 모습은 이 작품이 들여다보고자 하는 인간의 유약함이다. 어딘가 기시감이 들면서도 익숙해지지는 않는 종류의 위선적인 태도. 그 중심에 있는 나연이라는 인물이 아직 성인이 되지 못한 학생의 신분이라는 점이 이야기의 서슬을 더욱 날카롭게 세운다.

02.
초반부에서 그려지는 나연의 모습은 모범생의 표상과도 같다. 그 때문에 자치재판의 검사 역을 맡고 있는지도 모르겠지만, 굳이 건우의 일이 아니더라도 자신이 원하는 대학에 진학하는데 어려움은 없을 것처럼 보인다. 영화가 그런 그녀의 이미지를 전복시키는 것은 판사 역할을 하게 되는 선생님(강선아 분)이 나연에 의해 심판대 위에 올라온 건우의 처분을 초범이라는 점을 감안하여 벌점으로 매듭지으면서부터다. 자신이 원했던 결과인 유기 정학을 이끌어내지 못한 나연은 이내 곧 격분하기 시작한다.

이쯤 되면 궁금해지는 것이 하나 있다. 의도다. 나연이 보이는 행동의 변화를 친구의 잘못된 행동에 대한 적절한 처분을 내리지 못했다고 생각하기엔 다소 과한 경향이 있다. 그보다는 이 재판을 통해 자신이 얻을 수 있었던 무엇을 얻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것이 조금 더 적합하다. 이어지는 장면에서 그녀는 자신의 편을 들어주지 않는 선생님을 모함하기 위해 자신이 직접 목격했던 장면까지도 자신의 의도에 따라 왜곡해 거짓 공표하는 모습까지 보인다. 이 일련의 과정을 통해 나연이 얻고자 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동안 그녀가 쌓아 올린 모범생의 이미지와 내신 성적은 또 다른 누군가의 희생 위에 세워진 것은 아닐까?

03.
"너 선생님이랑 건우랑 그런 사이 아닌 거 알잖아."

거짓된 진술의 진실이 드러나고 모두가 등을 돌리고 난 뒤에도 나연은 자신이 처한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타인의 잘못을 심판하려던 자의 욕망이 스스로의 오만을 심판한 모양새다. 영화의 타이틀이 가진 의미 역시 후자의 쪽에 더욱 가까우리라. 훗날 자신이 어떤 심판을 받게 될지는 알지도 못한 채 정확하지도 않은 사실을 바탕으로 타인을 심판하고자 했던 사람에 대한 이야기. 무겁게 남게 될 결과에 대한 책임을 그녀가 과연 질 수 있을까 하는 작은 의문을 남긴 채 영화는 그 모습을 비춘다.

이 작품은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사회에 큰 메시지를 던진다. 인터넷을 통해 하루에 수도 없이 마주하게 되는 타인의 잘못과 실수에 대한 소식들. 정말 잘못된 일이라면 엄격한 절차와 조사를 통해 그에 합당한 처벌을 받는 것이 맞다. 다만 아직 정확하지 않은 정보를 확정적으로 받아들이고 빠르게 끓어올랐다가 다시 빠르게 가라앉는 대중이 모습에는 아쉬움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마치 이 영화 <심판> 속 나연의 모습처럼 말이다. 의도를 막론하고 사회의 정의를 지키는 일은 중요하다. 하지만 그 일에는 그보다 더 큰 책임감이 따른다는 사실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영화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내안에 심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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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숫자로 평가받지 않기를 바라며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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