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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흙 위에 만든 미니 정원
 찰흙 위에 만든 미니 정원
ⓒ 김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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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짝반짝 빛나는 우리는 예술가'는 추진장애인자립장 회원들과 미술공감채움 작가들이 함께 미술 수업과 산책을 하는 프로그램이다. 이곳에서 첫 번째 산책을 하는 날이다.

나는 두 달 전부터 산책코스를 찾아 월명산 구석구석을 뒤져서 한 곳을 발견했다. 주차장에서 십 분 정도만 걸으면 올 수 있고, 그늘진 넓은 터에 꽤 큰 정자와 지붕이 있는 테이블, 의자가 있어서 회원들이 간식을 먹거나 미술활동을 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가장 중요한 화장실도 있고, 폭신폭신한 산책로가 이어져 있어서 얼마쯤 걷다가 다시 돌아오면 될 것 같았다. 나는 이곳을 보여줄 생각에 신나서 가고 있는데, 수현씨에게 예상치 못한 말을 들었다.   
  
"오늘 카페 가는 줄 알고 기대했는데."

내가 물었다.

"실망했어요?"
"저는 산에 오면 어지러워요."
"그래요? 제 팔 잡아요."
"제가요, 산에 가는 거 말고는 어떤 활동이든 다 잘할 수 있거든요? 근데 산은 싫어요. 어지럽고 토할 것 같아요."  
   

앞으로 다섯 번은 더 산에 가야 하는데 큰 일이다. 하지만 수현씨가 흥분할 것 같아서 그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미리 물어볼 걸 그랬네요."
"산 말고 다른 건 진짜 다 잘해요. 근데 산은 싫어요."


수현 씨는 다시 한번 강조했다.

"알았어요. 선생님들하고 의논해 볼게요. 오늘은 무리하지 말고 천천히 걸어요."

20분 정도 걷고 난 후, 나는 수현씨를 벤치에 쉬게 했다.      

"피곤할 때 먹어요."

주광씨가 박카스를 내밀었다. 주광씨는 나한테 전화번호를 세 번 물어봤다. 그때마다 나는 메모지에 이름과 전화번호를 적어줬지만, 전화가 온 적은 없었다. 주광씨가 휴대폰이 없어서인지, 전화하는 걸 잊어버려서인지 모르겠다.

용현씨가 나와 눈이 마주치자 안주머니에서 믹스커피를 쓱 꺼내서 주었고, 유진씨가 "선생님 전화번호 선우가 알고 있어요"라고 했다. 잘은 모르겠지만, 회원들이 나에게 커피와 박카스를 주거나 나의 전화번호를 알고 싶어 하는 게 마치 내가 예전에 고등학교 선생님에게 하는 행동과 비슷했다.

추진자립장 회원들과 만난 지 3년째다. 이전에 회원들이 다른 선생님에게 박카스와 커피를 주는 것은 봤지만, 나는 받은 적이 거의 없었다. 전화번호를 물어보거나 힘들다는 이야기를 하는 회원도 없었는데, 올해부터 생긴 변화다.
 
회원들과 활동하기 안성맞춤인 장소(월명산)
 회원들과 활동하기 안성맞춤인 장소(월명산)
ⓒ 김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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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연언니는 개인전 때문에 못 오고, 다른 선생님들도 일정이 있어서 참석을 못했다. 추진자립장 문 선생님과 사회복무요원 선생님들이 있었지만, 나 혼자 수업을 진행하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벅차지 않았던 이유는 회원들이 나를 친근하게 대하는 걸 느꼈기 때문이다. 나는 이 변화가 반가웠다. 그건 나에게 중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자기중심적인 성향이 강한 나는 관계를 오래 지속하지 못했다. 마흔이 넘어서 돌아보니 그건 상대의 문제가 아니라 나의 문제라는 걸 알았다. 나를 바꾸지 않으면 언제까지고 반복될, 이건 책을 읽거나 다짐으로 바꿀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자각이 일었다. 낯설었던 존재와 거리를 좁히고 편해지는 경험이야말로 나에게서 벗어날 수 기회였다.

나는 과외를 하고 있는데, 내가 하는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돈 때문이라는 생각이 가끔 나를 지치게 한다. 추진 회원들과의 수업은 나를 정화하는 효과가 있다. 나는 어떤 일을 대가 없이도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나는 생계를 위한 일도 하지만 그것과 상관없이 자발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알게 한다. 이 두 가지 일을 통해 균형 있게 살고 싶다.

사실 추진회원들과 수업한 이야기를 쓰고 나중에 읽어보면 글 속에 내가 미화되어 있어서 불편했다. 스스로 위선적이라는 생각에 쓰다가 그만둔 적도 많았다. 하지만 나를 뺀 선생님들은 모두 미술작가여서 내가 우리의 활동과 회원들의 이야기를 (시키는 사람은 없지만) 기록하고 싶었다.

이 글도 처음에는 미담으로 끝나는 게 싫어서 있었던 사실만 나열해서 오마이뉴스에 기사로 보냈다. 그랬더니 편집기자가 전화가 와서 글에서 전달하려는 게 뭔지 안 보인다고 했다. (내게 무슨 일이 있냐고도 물었다.) 그래서 나는 이런 나의 고민을 얘기했고, 편집자가 말했다.

"기자님 말을 들으니 이해가 돼요. 글 속에서 자신이 미화되는 게 불편하시다는 거죠? 글 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고민하는 지점일 것 같아요. 그런데 작가님 지금 이 이야기를 글로 써보시면 어떨까요?"

그래서 다시 고쳤다. 고치다 보니 내가 왜 이 일을 하는지 알게 되었다. 외국어 공부나 운동처럼 쓸모가 있어서 한다는 걸.

태그:#발달장애인, #정화, #균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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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을 봐서 요리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학원밥 18년에 폐업한 뒤로 매일 나물을 무치고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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