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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에어컨을 틀지 않아도 간간이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갓난아기는 낮잠을 자고, 나는 책을 붙들고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감을 느끼던 초여름 오후였다. "엄마, 화났어?" TV를 보고 있던 큰 아이가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아니'라고 답하자 "그런데 왜 그렇게 인상을 팍! 쓰고 있어?" 하고 다시 물었다. "엄마가? 아닌데? 그냥 책 보는 건데?" 멋쩍은 손길로 미간 사이 움푹 파인 주름을 만졌다. "아, 이거? 그냥 원래부터 있는 엄마 주름이야."

나는 뭔가에 집중할 때 미간을 찌푸리는 나쁜 습관을 가지고 있다. 집중할 때, 일을 하거나, 책을 읽거나 아니면 글을 쓸 때 특히 그렇다. 물론 화가 날 때에도. 언제부터 있었는지 기억이 또렷하지는 않지만 최근 들어 더욱 깊어진 것은 확실하다.

안 그래도 신경이 쓰이던 차였는데 일곱 살이 된 아이 눈에 포착된 모양이다. 요즘 부쩍 엄마의 외모에 관심이 많아졌고 직설적으로 이야기한다. 예전엔 세상에서 가장 예쁜 사람이 그저 엄마였는데 이제는 유치원 친구 A가 더 예쁘단다. '엄마는 겉모습보다 마음이 예쁜 사람'이라고 아무리 어필해도 아이는 엄마의 내면에는 관심이 없다.

"보톡스 맞아 보셨죠?"라는 질문

 
늙어가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래도 조금 천천히 나이 들고 싶다.
 늙어가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래도 조금 천천히 나이 들고 싶다.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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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 거울 앞에 섰다. 아이의 말 때문만은 아니었다. 나이가 들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데 지금 상태는 방치에 가깝다. 미간 주름뿐만 아니라, 둘째의 임신과 출산으로 인해 더욱 짙어진 기미와 잡티가 도드라졌다. 최근에 뾰루지가 올라왔던 자리에는 검게 흉터가 남았다.

마흔이 넘으면서 피부 재생 능력이 현저히 떨어졌다. 위기의 순간이다. 외면이 이 지경인데 지금 내면의 아름다움을 논할 때가 아니다. 책은 잠시 접어두고 당장 휴대전화를 집어 들었다. 동네에 전문의가 진료하는 피부과가 생겼다던데. 고민할 새도 없이 덜컥 예약을 잡았다.

진료를 받으면서 미간을 짚으며 "여기 주름이 깊어서요"라고 했더니, 의사가 "보톡스는 전에도 맞아 보셨죠?"라고 물었다. 의사의 질문은 단정적이었다. 요즘 보톡스 시술이 그만큼 흔해졌다는 의미일 테다.

"아니요, 처음이에요." 보톡스 시술을 받아본 적이 없다는 나의 대답에 시술을 받아도 다리미로 다린 것처럼 매끈하게 펴지지는 않는다고 의사가 설명했다. 혹시라도 시술 후에 결과가 만족스럽지 않더라도 당신의 주름이 깊어 그런 거니 이해하라는 소리로 들렸다. 아무렴 지금보다야 낫겠지 싶어 그 자리에서 바로 보톡스 주사를 맞기로 결정했다.

어렸을 때 앞니가 톡 튀어나와 있었다. 주위에서는 다들 괜찮다고, 심지어 엄마는 앞니 때문에 더 귀여워 보인다고 했다. 다른 사람들은 남의 치아에는 관심이 없었을 테고 엄마는 교정하려면 돈이 많이 드니까 그렇게 말한 게 아닐까 싶다. 어느 순간부터 이가 가지런한 사람을 보면 부러웠다. 누굴 만나든 상대방의 잇속이 가장 먼저 보였고, 이야기하거나 웃을 때 손으로 입을 가리는 버릇이 생겼다.

성인이 되고 나서도 한참 지난 어느 날 오전, 산책을 하다가 슬리퍼 차림으로 치과에 들어가 교정을 하러 왔다고 했다. 스물아홉의 어느 날이었고, 그 자리에서 450만 원을 결제했다. 콤플렉스는 그런 거다. 타인은 신경 쓰지 않지만 나는 계속 거슬리는 것, 나만 아는 것, 큰돈을 들여서라도 없애고 싶은 것, 아무리 사소하더라도. 그런 의미에서 미간 주름과 얼굴에 검게 핀 기미는 없애야 할 대상이었다. 심지어 아이 눈에 보일 만큼 사소하지도 않으니 말이다.

미간 보톡스 주사는 3만3000원이었다. 생각보다 저렴해 깜짝 놀랐다(기미 치료는 돈이 더 많이 들긴 하지만). 주사 한 방(사실은 세 방)이면 인상이 달라지는 거였는데 그동안 왜, 공연히 화가 난 사람처럼 미간을 찌푸리고 다녔는지 모를 일이다. 단순히 돈 때문은 아니었다. 예뻐지고 싶은 건 자연스러운 욕망인데 나는 그걸 스스로 조금 부끄럽게 여겼던 것 같다.

치아 교정은 치료에 가깝고(실제로 앞니 때문에 치열이 흐트러져 통증도 있었고 충치가 생기기 좋은 환경이었다) 보톡스 주사는 미용에 가깝다고 생각하면서. 겉모습보다 내면을 가꾸는 게 더 중요하다면서. 겉모습을 신경쓴다고 내면의 아름다움이 사라지는 것도 아닌데 왜 양립할 수 없다고 생각했는지 모를 일이다.

 
보톡스 병을 들고 있는 사람.
 보톡스 병을 들고 있는 사람.
ⓒ pexe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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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뻐지는 게 뭐 어때서

마음을 고쳐먹기로 했다. 예뻐지는 게 뭐 어때서! 사실 치아 교정을 하고 미간에 주름 좀 편다고 해서 예뻐지지는 않는다. 예쁨은 타고 나는 게 맞다. 다만 자신감이나 만족감은 얻을 수 있다. 치아 교정을 한 뒤로는 웃을 때 손으로 얼굴을 가리지 않는다. 언제나 활짝 웃는다. 가지런한 이를 한껏 드러낸 채로.

그간 화난 사람처럼, 고민있는 사람처럼 보이게 만들었던 미간의 주름이 펴진다면 얼굴 찌푸릴 일 대신에 즐거운 일만 더 생기지 않을까? 관상은 볼 줄도 모르면서 근거 없는 기대감에 마음이 살짝 들뜨려던 때 우려의 목소리도 들렸다. 이번에는 미간의 주름일 뿐이지만 다음에는 눈가의 주름을 펴고 싶지 않겠냐고.

나무가 성장하면서 나이테가 늘어나듯 사람은 세월에 따라 주름이 생긴다. 시간이 지나간 자리일 뿐인데 구태여 의학의 힘을 빌리면서까지 주름을 펴야 하는지 불편하게 바라보는 시선도 있다. 비단 주름을 펴고자 보톡스 주사를 맞는 것에 국한되지는 않는다. 쌍커플 수술이나, 콧대 세우기, 가슴 성형부터 모발 이식까지 많은 사람들은 이미 외모를 가꾸며 살아가고 있다. 각자 느끼는 자신의 부족한 점을 채우는 것일 뿐 부끄러울 일도, 나쁜 일도 아니다.

사람마다 생각하는 아름다움이 다르다는 사실은 퍽 재밌다. 가령 누군가는 쌍커풀 있는 또렷한 눈매를 선호하지만 나는 무쌍커풀인 내 눈이 좋다. 쌍커풀 수술은 할 생각이 없다. 콧대가 낮은 것도 조금 아쉽긴 하지만 손 댈 정도는 아니다. 너무 아플까봐 엄두가 나지 않는 것도 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못생기게 보일 수 있는 얼굴이지만 나는 내 얼굴이 좋다. 심지어 사랑스럽다. 미간 주름과 기미는 빼고. 그래서 없애기로 한 것이다.

사람은 타인을 보는 데는 익숙하지만 자기 얼굴은 거울이나 카메라 렌즈처럼 매개를 통해야 볼 수 있다. 때때로 나를 보는 다른 이에게 평가를 받기도 한다. 어떤 거울이냐에 따라, 카메라의 각도에 따라, 또 누가 어떤 마음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더 예뻐보이기도, 더 못나 보이기도 한다. 중요한 건 사물이나 타인에게 비친 모습을 자신이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하는 부분이다.

주변에서 예쁘다고 해서 우쭐댈 것도, 못생겼다고 해서 주눅들 것도 없다. 내가 나를 예쁘게, 사랑스럽게 여기면 된다. 보톡스 주사를 맞든, 성형을 하든, 아니면 자연스럽게 나이들어가든 본인에게 맞는 방식, 좋다고 생각하는 걸 따르면 된다. 내 얼굴의 주인은 나 자신이고 자신보다 자기를 더 잘 아는 이도, 사랑할 이도 없으니까.

태그:#미간주름, #보톡스, #사십대, #내면의아름다움, #외면의아름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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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글을 씁니다. 처음에는 우연히 보았다가도 또 생각나서 찾아 읽게 되는, 일상의 소중함이 느껴지는 글을 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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