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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지난 6월 2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해 의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지난 6월 2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해 의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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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훈 법무부장관이 휴대폰을 분실 후 도로 찾았다는 소식이 포털을 도배했다. 26일 오후 <문화일보>의 단독 보도 이후 28일 오후까지 네이버 뉴스 기준 100건이 넘는 기사들이 쏟아졌다. 내용은 이랬다. 25일 열린 '6·25전쟁 제73주년 기념식'에 참석한 한 장관이 휴대폰을 분실했고, 이후 기념식 참석자가 이를 습득해 인근 한 경찰서에 분실물로 접수한 것이다.

"그런데 보통 요즘에는 핸드폰 잃어버리면 핸드폰 찾기 기능과 '소리, 진동 울리기' 정도로 찾​지 않나요."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도 꽤 궁금했나 보다. 27일 본인 페이스북에 글을 올린 이 대표는 "아이폰에는 그 기능이 잘 안 구현되어 있나요? 진짜 아이폰 안 써봐서 잘 몰라서 물어보는 겁니다"라고 덧붙였다.

비꽜거나 혹은 우려가 됐거나. 이 대표나 언론의 관심 모두 이해하기 어려운 건 아니다. 종종 본인을 "일국의 장관"이라 자칭해온 한 장관의 휴대폰(아이폰)은 검찰 재직시절부터 온 국민의 관심사였던 게 사실이다. 지난 2020년 한 장관은 '채널A 검언유착 의혹'과 관련해 수사를 받으면서 본인의 아이폰 비밀번호를 알려주지 않았다. 검찰이 사건의 실체를 파악하기 힘들게 만들었던 것이 바로 한 장관의 아이폰 아니었던가.

일국의 장관이 사용 중인 아이폰 속 고급 정보들이 혹은 사생활이 세상에 유포된다? 그래서 범죄에 악용된다? 그럴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다.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고? 하지만 일반인의 경우도 마찬가지 아니겠는가. 경찰의 생각도 마찬가지였나 보다. 한 장관의 휴대폰 분실 사건을 며칠간 화제의 뉴스로 등극시킨 공동주연이 바로 경찰이었으니까 말이다.

일국의 장관, 휴대폰을 분실하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지난 5월 31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윤석열 대통령 주재로 열린 사회보장 전략회의에서 전화통화를 하고 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지난 5월 31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윤석열 대통령 주재로 열린 사회보장 전략회의에서 전화통화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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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나라예요? 이게 법치국가예요? (...) 5천만 국민이 휴대폰을 잃어버리면, 경찰이 출동해서 찾고 법석을 떠나?"

박지원 전 국정원장이 28일 불교방송 라디오 <전영신의 아침저널>에 출연해 내놓은 촌평이다. 언론보도를 종합하면, 한 장관이 휴대폰을 분실한 직후 관할인 중부경찰서 당직팀인 강력계 형사들이 기념식이 열린 장충체육관에 출동해 수색에 나섰다. 한 장관 측이 휴대전화 분실 신고를 했고, 경찰서장이 직접 출동 지시를 내렸다고 한다.

추미애 전 법무부장관 또한 27일 YTN 라디오 <뉴스킹 박지훈입니다>에 출연해서 이번 사건에 대한 비판에 가세했다.

"경찰을 국민의 생명, 재산을 지키는 하나의 전문 집단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같은 공직자로 보는 것이 아니라 검사의 수족으로 보는 거예요. (...)  집에 종 부리듯이 '핸드폰 수색해' 그러면 하는 것처럼 시늉을 해야지만 되겠죠."

논란이 될 만했다. 국민 눈높이에서 따져보자. 한 장관 휴대폰 분실 사건이 보도된 이후 한 시민이 인근 파출소에 휴대폰 분실을 신고했고, 이어 "강력반 출동 안 하냐"라고 묻자 수화기 건너편 경찰들의 헛웃음을 전해 들었다는 글이 SNS상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개인의 휴대폰 분실 사건에 강력계 당직 형사들이 즉시 출동하는 일은 일국의 장관에게만 벌어질 수 있는 일 아니냐는 의문이 고개를 들 수밖에 없다. 이준석 전 대표의 갸우뚱도 사실 여기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을 것이다.

보도가 집중되자 중부경찰서는 설명자료를 내고 '통상 휴대전화가 현장에서 없어졌다는 신고가 들어오면 당직팀이 출동한다'고 해명했다. '점유이탈물횡령죄 적용 가능'이 그 근거였다.

한동훈과 검찰국가의 오늘
 
지난 2021년 3월 3일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앞 깃발.
 지난 2021년 3월 3일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앞 깃발.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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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채널이나 종편 등에서도 한 장관의 휴대폰 분실 소식은 화제가 됐지만, 대부분 '소동극'이나 '해프닝'으로 초점이 맞춰졌다. 휴대폰을 찾아준 시민, 그리고 한 장관이 참석자로부터 받은 쪽지를 휴대폰으로 찍었다는 일화가 미담처럼 보도되기도 했다.

그러나 장관의 휴대폰 분실에 강력계 형사들이 동원된 것은 초유의 사태가 맞다. 한낱 소동이나 해프닝으로 그치기엔 경찰의 과잉 반응도, 언론들의 보도 행태도, 휴대폰 분실 전후 한 장관 측의 행동 모두 일견 납득하기 어려워 보인다. 기실 이 모두가 검찰 출신들이 장악한 국정 운영의 작동 방식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지 않은가.

'알아서 기는 정권 딸랑이', '조용히 찾아줘도 되는데 이렇게 요란을 떨어요', '우리 조직은 자존심도 없고 힘 있는 자에게 잘 보이려고 하는 거냐', '이제 곧 핸드폰 TF팀 창설되겠네'.

27일 일선 경찰들이 모인 SNS 커뮤니티(밴드)에 올라온 반응이라고 한다. 이날 오후 KBS라디오 <주진우 라이브>에 출연한 장윤선 정치전문기자가 취재해 공개한 내용이다. 해당 커뮤니티엔 '한 장관의 휴대폰을 경찰 강력계가 나아서 찾아주는 것이 맞느냐'는 문항과 관련한 투표에 '맞다'가 1표, '틀리다' 204표(27일 오후 5시 기준)를 받았다고 한다. 일선 경찰들의 한탄과 자조가 감지된다.

윤석열 정권 들어 경찰의 위상 추락이 급전직하 수준이다. 경찰들의 극렬한 반대를 이겨내고 출범한 행정안전부 내 경찰국이 대표적이다. 경찰 지휘권을 둘러싸고 '경찰 장악' 논란이 일었다. 김순호 초대 경찰국장은 과거 프락치 논란으로 비난에 직면했으나 윤석열 정권은 아랑곳없었다.

최근 한국노총 간부 진압 사건을 두고도, 노조 때려잡기에 골몰하는 정권에 충성하는 경찰의 과잉 진압이 근본 원인이라는 비판도 대두됐다. 윤희근 경찰청장도 이러한 기조에 발맞춰 지난 5월 말 불법집회 시 캡사이신 분사 등 강경 대응을 예고한 바 있다. 일선 경찰의 자조는 괜한 것이 아니다. 취재를 통해 일선 경찰들의 반응을 보도한 27일 <한겨레> 기사를 볼까.
 
현장 경찰관들은 황당하다는 반응이다. 한 현직 경찰관은 "휴대전화 분실은 형사 사건이 아니다"라며 "경찰이 일일이 현장에 나가 휴대전화를 찾아준다면 전담팀 수십 개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직권남용"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현직 경찰관도 "강력범죄 수사를 주 임무로 하는 강력반 형사들에게 휴대전화를 찾으라고 한 것은 말도 안 되는 지시"라고 했다. 한 전직 고위 경찰도 "만약 경찰의 자체 판단에 의한 것이라면, 부하들에게 의무 없는 일을 강요한 것이므로 지시자를 직권남용 혐의로 징계위에 회부해야 할 일"이라고 지적했다. - 6월 27일 <한겨레>, <한동훈 전화 분실에 형사 투입, 경찰 내부서도 "직권남용">
 
문재인 정부 당시 부지런히 검찰 내부 게시판을 길어 올리던 그 언론들은 왜 일선 경찰들의 목소리에 침묵하는가. '소통령'에 정권 실세라 불리는 검찰 출신 한동훈 장관의 위세와 권력이 반영되지 않고서야 벌어질 수 없는 황당한 상황이 맞지 않은가. 

과연 지난 정부 전직 장관들이 같은 사건으로 경찰을 동원했다면 지금처럼 언론이, 경찰이 알아서 납작 엎드렸을까? 대다수 언론이 일개 해프닝인 양 납작하게 보도했을까? 또 경찰서장이 알아서 강력계 형사들을 출동시켰을까?

한동훈 장관의 취임 100일을 맞았던 작년 8월, 윤석열 정권의 강력한 무기로 부상했던 압수수색 정치를 비판한 바 있다(관련 기사: 한동훈 취임 100일, 검찰 무서운 건 범죄자만이 아니다. https://omn.kr/20d94). 그리고 1년 뒤, 검찰의 국정 장악은 일상이 됐고, 여야와 진영을 넘어 이를 부인하는 이들조차 찾기 힘들어졌다. 

'한동훈 휴대폰 분실 사건'의 전말, 반응들이야말로 이러한 검찰국가의 오늘을 드러내는 '숏폼' 콘텐츠와 같다고 할 것이다. 그 검찰국가를 완성시켜가는데 일조 중인 경찰과 언론이 공동 주연을 담당한. 

덧붙이는 글 | 얼룩소 등에 게재됩니다.


태그:#한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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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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