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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흑석동 중앙대 앞 북카페 청맥살롱에서 만난 방현석 작가. 방 작가는 중앙대 문예창작과 교수이기도 하다.
 서울 흑석동 중앙대 앞 북카페 청맥살롱에서 만난 방현석 작가. 방 작가는 중앙대 문예창작과 교수이기도 하다.
ⓒ 최진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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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소설 <범도>를 펴낸 방현석 작가(중앙대 문예창작과 교수)를 만나기로 한 곳은 서울 흑석동 중앙대 앞 북카페 청맥살롱이었다. 지난 6월 26일, 살롱에 들어서자 눈에 잘 띄는 곳에 <범도>(문학동네)가 놓여 있었다. 이곳에서 작가의 사진을 찍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왼쪽 서가의 위쪽에는 청맥서점을 소개하는 글이 큼지막하게 적혀 있었다.
 
청맥서점은 흑석동 유일의 동네책방이었습니다. 사회과학 전문 서점이었던 청맥서점은 1980년대 금서를 구할 수 있었던 혁명의 보금자리였으며, 1990년대를 함께 살아온 다정한 이웃이기도 했습니다.

'혁명'이라는 말에 순간 놀랐다. 2020년대 대학가 앞에서 '혁명'이라는 글자를 목격할 줄이야. 청맥서점은 2011년 말 문을 닫았지만, 2019년 청맥살롱으로 이름을 바꿔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매대에 놓인 책의 표지를 훒어보고 있는 사이 방현석 작가가 살롱으로 들어왔다. 살롱의 한쪽 구석에 자리를 잡고 앉아 주문한 커피가 나오는 동안 잡담을 나누다가 몰랐던 사실을 하나 알게 됐다. 방 교수는 1990년대 초반에 청맥서점의 주인이었다고 한다. 그러니까 이곳은 젊은 시절 '혁명'을 꿈꾸던 방현석 작가의 옛 아지트였던 셈이다. 이곳에선 그를 알아보고 인사하는 문예창작과 학생도 여러 명 있었다.

드라마로 만들면 좋을 흥미진진한 소설

- 소설 <범도>를 읽은 문창과 학생들의 반응도 들어보셨나요?

"재미있다고 해요, 선생이 쓴 거라 하는 빈말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웃음) "

- 혹시 영화제작자한테 연락이 오지는 않았나요? 관심 기울일 만한 소재 같은데요.

"드라마 만드는 제자에게서 판권 넘기라는 얘기 많이 들었습니다. 홍범도를 중심으로 백무아, 진포, 김 알렉산드리아, 안중근, 최재형 같은 매혹적인 인물들이 펼치는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드라마로 만들면 좋겠다고 하면서." 

- <미스터 션샤인> 같은 드라마를 만들면 좋은 소설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10년 넘게 자료 준비하고 답사한 뒤에 3년이 넘는 집필 끝에 소설을 완성했다고 들었습니다. 강행군을 끝낸 지금 심정은 어떤가요?

"13년 걸린 소설을 끝내고 나서 참 허전했어요. 전투가 끝나버린 전장에 저 혼자만 덩그러니 남은 것 같은 느낌을 떨칠 수 없었죠. 1920년 독립전쟁 제1회전 봉오동 전투를 치르기 위해 홍범도부대가 만주로 떠난 다음 연해주에 홀로 남았던 대한독립군 참모 최의관의 심정이 지금의 저와 같았을 거예요. <범도>는 내가 13년 동안 최선을 다한 전투였습니다."

- 소설이 발간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지만 성과를 느끼기도 하나요.

"개인적으로는 일면식도 없는 한 유명한 출판인이 <범도>를 나흘 동안 완독했는데 가슴이 먹먹하다며 전화를 주셨습니다. 바로 지금 우리에게 꼭 필요한 소설이 나왔다며 격려해주셨어요. 열 질을 구매해서 주변에 나눠줬다는 말씀에 큰 위로를 받았고요."
     
100년 지났어도 현존하는 세 개의 표적... '억압, 차별, 외세 침탈'
 
서울 흑석동 중앙대 앞 북카페 청맥살롱에 진열된 소설 <범도>.
 서울 흑석동 중앙대 앞 북카페 청맥살롱에 진열된 소설 <범도>.
ⓒ 최진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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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왜 소설 제목이 '홍범도'가 아니고 <범도>인가요?

"홍범도가 주인공이지만 개인에게 초점을 맞춘 소설은 아니거든요. 홍범도라고 하면 장군 개인의 이미지가 너무 강하게 느껴지고요. 홍범도를 위대한 장군으로 그릴 생각은 조금도 없었죠. "

- 그럼 <범도>라는 제목에는 홍범도와 다른 어떤 의미를 담으려 한 거죠?

"범도에는 범의 길, 호랑이의 길이라는 뜻도 있어요. 자기 길을 거침없이 걸어갔던 독립운동가들의 길이 바로 범의 길이죠. 나는 홍범도를 통해 한 시대의 가치가 어떻게 새롭게 출현하고, 그 가치가 어떻게 낡은 가치를 돌파하면서 자신의 길을 가는지를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원래 오마이뉴스에 연재(2021년, 총 37회)했을 때 제목은 '저격'이었고요.(관련기사 : 홍범도 실명소설 '저격')"

- 아, 그랬군요. 그때는 왜 '저격'이었죠?

"절망의 시대를, 억압과 차별, 외침을 저격한다는 의미였죠. 범을 잡던 포수들이 독립군의 저격수로 활약하기도 했고요."

- 연재했던 '저격'과 소설 <범도>에 다른 점도 있나요?

"무엇보다 홍범도의 유년 시절이 <범도>에선 빠진 게 가장 큰 차이죠. <오마이뉴스>에 연재한 초반부를 읽은 독자 중에 이 점을 아쉽게 여기는 분이 많더라구요. 저도 무척 아쉽습니다. 속도감 있게 읽을 수 있는 두 권으로 만들기 위해 원고지 1200매를 들어냈거든요. 살점을 들어내는 것처럼, 쓰는 것보다 힘들고 아까웠어요. 작품이 좋은 반응을 얻어서 줄이지 않은 풀버전을 특별판으로 내거나, '저격'의 앞부분을 드라마로 보여주면 좋을 텐데 그럴 기회가 올 지 모르겠습니다."

저격. <범도>를 읽으면서 어렴풋하게 느꼈던 것을 명확하게 드러나게 하는 단어였다. 개인적으로 이 소설에서 가장 인상적인 구절 하나를 꼽으라면, 홍범도가 러시아혁명 직후 하바롭스크에 들어선 극동 소비에트 인민 정부의 외무장관인 김 알렉산드리아를 만난 뒤 자기 자신에게 묻는 대목이었다.
 
"가늠자의 정중앙에 들어찬 가늠쇠의 삼각 꼭지점 위에 세 개의 단어를 하나씩 차례로 올려놓았다. 차별, 억압, 침략. 이 세 개의 목표물을 격파하면 진정한 인민의 권력이, 자유와 독립이, 참된 민주공화정이 찾아올까."
 
홍범도가 '저격'하고 격파하려고 한 주요 타깃 세 가지, 이는 현존하는 목표물이기도 하다. 방현석 작가는 지금도 다양한 형태의 '억압, 차별, 외세의 침탈'이 있다고 했다. 이에 맞서는 것이 바로 1980년대 젊은 학생들이 청맥서점에서 꿈꾸던 '혁명'이고, 여전히 청맥살롱의 젊은이가 추구해야 할 가치가 아닐까 싶다.

신흥무관학교 100주년 기념 답사에서 충격받고 집필 결심
 
2011년, 이상룡과 이회영 등이 간도에 세웠던 농병자치조직 경학사가 있던 마을을 답사하고 있는 소설가 방현석. 가운데 노트를 들고 있는 사람이 방 작가다.
 2011년, 이상룡과 이회영 등이 간도에 세웠던 농병자치조직 경학사가 있던 마을을 답사하고 있는 소설가 방현석. 가운데 노트를 들고 있는 사람이 방 작가다.
ⓒ 최경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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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현석 작가는 <범도>를 쓰기 위해 13년 동안 자료 뒤지고, 주인공 따라 만주 지역을 4회, 중앙아시아와 러시아 지역을 6회 답사했다. 집필에만 꼬박 3년 반을 매달렸다. 200자 원고지 5400매를 썼고, 출판사와 상의해서 4200매로 줄였다 한다. 5400매면 단행본 5~6권으로 발간할 수 있는 대하소설 분량이었다.

- 10여 년 동안 <범도>(저격)에 몰입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어떤 계기나 사연이 있을 것 같은데요.

"2011년에 신흥무관학교 100주년을 맞이해서 박영희 시인 등과 함께 서간도, 북간도 독립운동 유적지를 답사했어요. 그때 너무 큰 충격을 받았어요."

- 어떤 충격이었죠?

"독립운동사에서 지워버린 역사가 너무도 많았다는 사실이었죠. 반드시 기록해야 할 인물과 사건을 문학이 외면했다는 자성도 했어요. 나라도 바람처럼 살다 사라진 사람을 기억하고 작품화해야겠다고 마음먹었죠. "

- 1980년대에 학생운동, 사회운동을 한 사람도 러시아혁명사, 베트남혁명사, 쿠바혁명사는 열심히 들여다봤지만 정작 우리나라 독립운동사는 제대로 공부하지 않는 경향이 있었죠.

"중고등학교 교과서에선 안중근, 윤봉길 같은 독립운동가가 목숨 걸고 수행한 암살 중심의 독립운동을 주로 소개했고, 나도 그 정도밖에 몰랐어요. 만주벌판, 간도에서 수천, 수만 명이 벌인 무장투쟁 역사를 접하며 전율을 느끼고, 나라도 써야겠다, 이것을 기록하지 않으면 작가의 직무유기라는 생각을 했어요."

- 그동안 작가들은 왜 이런 소재를 외면했을까요?

"나부터 게을렀어요. 역사적 상상력도 빈곤했고요. 요즘 작가들은 이런 걸 낡은 소재라 여기고, 독자와 시장이 원하는 소재가 아니라며 외면하는 경향도 있고요."

방현석 작가는 <범도>를 집필하는 3년 반 동안 행복했다고 한다. 그동안 쓴 어느 소설보다 몰입해서 썼고, 작품에 빠져들었다. 오랫동안 앉아서 작업하는 바람에 허리 병이 생겼고, 1년 6개월 정도는 병원 치료 받아가며 집필했다. 막판에는 서서 작업할 수 있는 책상을 마련했고, 노트북을 매달아 놓고 반쯤 누워서 작업하기도 했다. 밖에서 지인들과 술 마시는 것보다 소설 속 인물들과 노는 게 더 재밌었다고 한다.

- 소설 속에 등장인물이 많은데 특별히 좋아한 사람은 누구인가요?

"홍범도를 비롯한 모든 인물에 매력을 느꼈죠. 홍범도의 연인이라 할 수 있는 백무아와 진포, 김 알렉산드리아, 김숙경, 여연 같은 여성 인물을 특히 좋아했습니다. 백무아는 홍범도에게 '부디, 당신이 양반과 침략자, 남자의 편에 서지 않기를 바랍니다. 조선에서 양반보다 더한 계급이 남자입니다'라고 일침을 가했죠. 백무아의 이 말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고요. "

- 주인공 홍범도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죽음과는 가장 가까이 있으면서 권력과는 가장 멀리 있었던 사람이죠. 아무런 대가도 바란 적이 없고, 바란 적도 없는 장군입니다. 소설을 몇 번 갈아엎은 게 주인공을 누구로 할 것인가 하는 문제 때문이었어요. 이동휘, 이회영, 서일 등을 주인공으로 해서 소설을 엮으려고도 했는데 매번 실패했어요. 홍범도를 통해서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도 가능했어요. 홍범도는 몸을 낮추면서 길을 찾은 사람이에요. 길은 공중이 아닌 땅바닥에 있고, 몸을 낮추어야 길이 보인다는 걸 알고 있는 사람이었죠."

인터뷰를 위해 <범도>를 읽다가 문득 1980년대 후반에 유행했던 노래 <만주출정가>가의 가사 "내 조국 산천을 등지고 건너는 압록강, 북풍을 거슬러 떠나는 길 목메여 부르는 불망의 조국, 이 목숨 다 바쳐 싸우리라"가 떠올랐다. 유튜브에서 '만주출정가'를 검색해보니 가수 백자가 부른 영상의 처음 이미지는 홍범도 장군 사진이었다. 방현석 작가도 "만주출정가를 들으면 눈물이 났다"면서, 독자들에게 이런 감회를 전했다.

"이 소설을 쓰는 내내 나는 홍범도와 함께 태백준령을 누비는 포수였고 홍범도가 이끄는 대한독립군이었으며, 총을 멘 종군작가였습니다. 이 소설을 읽는 독자 역시 만주출정가를 부르며 만주벌판을 누비는 홍범도부대원이 될 것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역사가 지워버린 눈부시게 아름다웠던 이들의 삶과 사랑, 도전을 기억해주는 사람이 단 몇 사람이라도 생겨난다면 100년 전의 비바람을 맞아가며 태백준령과 연해주, 만주의 전장을 13년간 누비고 다닌 종군작가로서 저는 더 바랄 것이 없습니다."


작가가 홍범도 장군의 묘지에 절을 할 수 없었던 이유
 
2023년 6월 27일, 소설 <범도>를 들고 대전현충원 홍범도 장군 묘지를 찾은 방현석 작가.
 2023년 6월 27일, 소설 <범도>를 들고 대전현충원 홍범도 장군 묘지를 찾은 방현석 작가.
ⓒ 방현석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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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도>의 곳곳에 극적인 장면이 많았다. 그런데 2권 끝에 실린 '작가의 말'을 읽고 소설보다 극적인 현실에 놀랐다. 2021년, 76주년 광복절에 대한민국으로 귀환한 홍범도 장군의 유해는 대전 현충원에 안장됐다. 방 작가는 장군에게 참배하기 위해 현충원을 찾았으나 해방 후에도 승승장구하던 "뇌수까지 일본인이 되자고 외쳤던" 친일파의 묘가 윗자리를 차지하고 있어서 끝내 절을 하지 못했다고 했다. 홍범도에게 절을 하면 친일파에게 절을 하는 셈이 되는 꼴이었다.

- 홍범도 장군은 이런 비극적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까요?

"자신을 위해 어떤 자리도 탐한 적이 없는 홍범도 장군이 원했던 단 하나는 '싸우다 죽을 수 있는 자리' 그 하나가 유일했기에 독립군 때려잡던 친일파들과 함께 묻혀 있는 것을 대범하게 넘길지도 모르죠. 그렇지만 일반인의 눈으로 보면 납득이 안되는 장면입니다. 아이러니한 역사가 주는 모욕감을 느끼게 된다고 할까."

방현석 작가는 <범도>를 읽은 독자에게 서울 동작동 현충원이나 대전 현충원을 꼭 방문해볼 것을 권했다. 그러면 소설이 논픽션 너머의 진실을 그리고 있음을 느끼게 될 것이라 했다. 그는 인터뷰한 다음날(6월 27일, 화요일) 대전 현충원 홍범도 장군 묘지를 찾아갈 예정이라 했다. 홍범도 추모사업회 몇몇 회원과 함께 <범도>를 헌정하기 위해 방문하는 자리였다. 기사에 넣을 현장 사진을 잘 찍어서 보내 달라고 부탁했다.

대전 현충원 홍범도 묘지에서 날아온 사진을 보며

화요일 오후 6시 40분, 카톡으로 방현석 작가의 사진 여러 장이 배달됐다. 홍범도 장군의 묘비에는 '1868년 8월 27일 평양 출생, 1943년 10월 25일 카자흐스탄 서거"라고 적혀 있었다. 장군의 묘지에 소설 <범도>를 바친 방 작가의 사진을 보며 그가 '작가의 말'에 남긴 글을 다시 읽어보았다.

"하지만 나는 그가 아니어서 대전과 동작동(현충원)에서 모욕감을 견디기 어려웠다. 백 년 전, 그와 백무아가 억압과 차별, 불의를 향해 발사한 마지막 한 발의 탄환은 아직 탄착점에 도착하지 않았다. 일격필살의 저격수였던 그들의 탄환은 빗나간 적이 없으므로 반드시 표적의 정중앙을 관통할 것이다."

100년 전 저격수들이 쏜 총알은 지금 어디쯤 날아가고 있는 것일까. 표적의 정중앙에 언제쯤 도달할까. 조선인 최초의 여성 볼셰비키혁명가 김 알렉산드리아를 만난 뒤 홍범도는 그녀가 한 말 '스스로 싸우지 않는 자에게 차례질 권리는 없단 말입니다'를 떠올렸다. 어쩌면 이것이 홍범도와 저격수들이 여전히 억압과 차별, 침략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들려주는 말이 아닐까.

"스스로 싸우지 않는 자에게 차례질 권리는 없단 말입니다."

[세트] 범도 1~2 - 전2권

방현석 (지은이), 문학동네(2023)


태그:#범도, #방현석, #홍범도, #청맥살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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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에는 채식과 마라톤, 지금은 달마와 곤충이 핵심 단어. 2006년에 <뼈로 누운 신화>라는 시집을 자비로 펴냈는데, 10년 후에 또 한 권의 시집을 펴낼만한 꿈이 남아있기 바란다. 자비로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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