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윤석열 대통령이 5월 31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사회보장 전략회의에 입장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5월 31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사회보장 전략회의에 입장하고 있다.
ⓒ 연합뉴스

관련사진보기

 
"보편 복지가 서비스 복지로 갈 때의 장점은 이것이 시장화될 수 있고, 서비스를 제공하는 쪽에 경쟁을 우리가 조성을 함으로 해서 더 나은 서비스가 만들어질 수 있게 그게 가능해진다는 것이죠."

그럴싸한 말들이 많이 있는데 선뜻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발언, 지난 5월 31일 사회보장 전략회의 때 윤석열 대통령의 입에서 나온 말이다. 이날 윤 대통령의 발언과 함께 보건복지부는 '국민이 체감하는 선진 복지국가 전략 수립'이란 제목의 보도자료를 냈다. 핵심은 '윤석열 정부의 복지국가 전략'으로 '사회서비스 고도화'도 그중 하나의 내용으로 담겼다.

필자는 '고도화'를 이날 발표의 상당히 중요한 키워드로 본다. 사회복지에 경쟁 등 민간 시장의 요소를 넣겠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회서비스 고도화는 결국 '사회서비스 민영화'와 일맥상통한다.

정부 발표 내용을 살펴보면, 취약계층의 사회서비스를 중간층으로 확대하고 민간공급자를 육성할 수 있도록 컨설팅을 강화한단다. 경쟁원리 도입과 서비스 품질제도 방안을 마련한다고도 한다. 고도화와 방안 마련을 위한 법, 조직 기반도 정비한다고 한다. 이쯤이면 윤석열 정부에게 묻고 싶다. 누구를 위한 사회서비스 고도화인가? 필자는 이 글에서 돌봄서비스와 관련한 이야기를 하려 한다.

대한민국 사회복지 서비스의 현주소는 '민간'

이미 우리나라의 사회복지 서비스는 정부의 관심 밖 그리고 민간에 내던져진 지 오래다. 노인장기요양기관 중 민간이 차지하는 비중이 약 98%인 현실만 봐도 정부가 지금 어떤 자세로 사회복지를 대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현재 요양기관의 경우 전체 대비 2%가량만이 국공립시설이다. 정부에게 요구되는 '공공성 책임'은 사라지고 없다.

윤석열 정부는 집권 이후 공공연히 '더 나은 서비스' '민관이 협업해 좋은 일자리를 창출하고 복지-고용-성장 선순환을 도모' 같은 아름다운 표현으로 '사회복지의 시장화'를 꾀해왔다. 그러나 좋은 말의 실체는 '사라진 공공성'이다. 어렵고 힘들더라도 2%에 불과한 공공돌봄 비율을 30%로 확대하겠다는 포부 같은 건 없다.

공공돌봄 등 사회복지를 시장에 맡기는 발상은 수요자인 국민과 사회복지 노동자들을 무시하는 처사와 같다. 결국 '한정된 있는 사람'만 서비스를 이용하고, 절대 다수의 국민은 제대로 된 혜택을 누릴 수 없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사회서비스 공공성 약화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간다 
 
지난 3일 공공운수노조가 서울 종로구에서 진행한 '늘려라 공공돌봄! 올려라 최저임금!' 문화제가 진행되고 있다.
 지난 3일 공공운수노조가 서울 종로구에서 진행한 '늘려라 공공돌봄! 올려라 최저임금!' 문화제가 진행되고 있다.
ⓒ 조혜지

관련사진보기

 
'공공성 실종'은 실체 없는 구호가 아니다. 현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실'이다. 7월 1일이 무슨 날인지 아시는가?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가 시작한 날(2008년 7월 1일)을 기점으로 매년 7월 1일은 '요양보호사의 날'이 됐다. '이 년' '잡년' 등 욕설을 얻어먹고, 침 뱉고 때리면 맞을 수밖에 없는 조건에서 헌신하며 돌봄 현장을 지키고 있는 요양보호사의 소중함을 되새겨보자는 날이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오는 7월 1일은 공공돌봄기관인 서울시사회서비스원에서 직접 서비스를 제공했던 26명의 돌봄노동자가 집단해고되는 날이기도 하다. 지난해 12월 서울시·서울시의회가 서울시사회서비스원 예산 142억 원을 삭감한 후폭풍은 고령/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고용 상실로 이어질 예정이다. 

피해는 이용자도 보고 있다. 예산 삭감 방침에 발 맞춘 서울시사회서비스원은 지난 4월 17일 자구안을 발표했는데, 이에 따르면 이곳이 위탁 운영하던 어린이집·데이케어센터 운영을 중단하고, 12개 종합재가센터 중 4개로 통·폐합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서울시사회서비스원의 서비스를 이용 중인 시민들의 돌봄 공백이 뒤따를 것이다. 

서울시에서 벌어지는 일 역시 윤석열 정부의 '사회복지 서비스 고도화'의 범위 안에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한편, 사회복지 분야 노동자들의 임금 등 처우 후진성은 앞날을 더 어둡게 한다. 지난 27일 <노동과 세계>에 실린 박영민 민주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의 글에 따르면 "매년 보건복지부가 권고하는 인건비 가이드라인 준수율은 50% 미만"이고 "가이드라인의 임금 기준 자체도 하위 직급의 경우 몇몇 시·도의 생활임금 수준보다 낮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더 강하게 '사회복지 시장화'를 추진하면 어떻게 될까. 사회복지 서비스의 질은 낮아질 수밖에 없다. 

'5년 짜리 대통령', 돌봄노동자와 국민의 의견을 모으는 데 주력하라
 
윤석열 대통령이 5월 31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사회보장 전략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5월 31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사회보장 전략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 대통령실 제공

관련사진보기

 
무릇 정부 정책의 적용 대상은 국민이다. 땀 흘려 일하는 노동자의 의견도, 서비스를 받는 시민들의 의견도 적확히 반영돼야 실패할 가능성이 작아진다. 그러나 지금 정부는 그것이 없다. 높으신 나리들이 세 치 혀와 손가락으로 방향을 설정하면 공무원들이 손발을 맞추는 모양새다. 아무리 좋은 정책도 이런 식이라면 민주적 정부의 방식이 아니다. 

대통령이 '폭력' 운운하며 적대적으로 대하는 노동조합에서도 간부가 조합원들의 의견을 모으고, 그 간부들이 모여 토론을 하고 합의점을 도출한다. 국민이 정부 운영의 권한을 위임한 '5년 짜리 대통령'이라면 국민의 의견을 모으는 데 적극적이어야 하는데 지금의 대통령은 그렇지 않다. 쉽게 이해하지 못 하는 어법으로 아름다운 단어만 쓰지만, 결국 실상은 공공성과 거리가 멀다. 

윤석열 정부에게 제안한다. 부디 '사회복지 고도화'라고 쓰고 '사회복지 민영화'라고 읽는 지금의 정책을 거둬들이길 바란다. 이미 사회복지는 민간이 주무르고 있고, 그 폐해는 심각하다. 공공성을 강화해도 모자랄 판국에 향후 몇십 년을 좌지우지하는 정책을 펴지 말라. 

덧붙이는 글 | 글쓴이 노우정씨는 전국돌봄서비스노동조합 위원장입니다.


태그:#돌봄노동, #사회복지, #경쟁화, #시장화, #공공성
댓글2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전국돌봄서비스노동조합 위원장입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