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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이과 통합 3년 차를 맞이한 올해 이과 학생의 문과 침공 현상이 가속화할 전망이다. 6월 1일 치러진 수능 모의평가에서 처음으로 과학탐구 선택자가 사회탐구 선택자를 역전한 만큼 상대적으로 표준점수가 낮은 사회탐구 응시생은 대입 선택지가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수능에서 과학탐구를 응시하는 비율은 매년 증가하는 추세다. 실제로 강남구의 한 고등학교는 2학년 학생 400여 명 중 지난 모의평가에서 사회탐구 선택한 학생이 30명대 수준으로 떨어졌다. 이 중 운동부를 제외한다면 실질적으로 전교생이 이과라고 해도 무방하다. 지난 2022학년도 수능부터 문·이과가 통합돼 공식적으로 문과와 이과를 분류하고 있지는 않지만 통상 사회탐구 응시자를 문과, 과학탐구 응시자를 이과로 간주한다.
 
연도별 대학수학능력시험 과학탐구 선택 비율
 연도별 대학수학능력시험 과학탐구 선택 비율
ⓒ 이동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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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과 침공 현상은 어느 정도 예견됐던 결과다. 지난해 수능의 경우 국어 영역과 수학 영역의 표준점수 최고점이 무려 13점 차이나 서울대에서 이과생의 문과 교차지원 합격 비율이 50%를 넘겼다.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정경희 의원이 서울대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문·이과 통합 첫해인 2022학년도 서울대 정시 모집에서 이과생의 문과 교차지원 합격 비율은 44.3%였으나 2년 차인 2023학년도에는 그 비율이 51.6%로 높아졌다. 연세대와 고려대를 포함한 서울 시내 주요 대학도 일제히 이과 비율이 늘어나는 추세다.

입학해도 떠나는 학생들

이러한 상황이 장기화하며 상위권 학교에 이름을 걸어놓고 반수를 하는 이른바 '중도 이탈자'가 늘어나고 있다. 연세대학교 문과대학의 경우 2022학년도 정시모집 합격생 중 60% 이상이 과학탐구를 선택했으며 이 중 대부분의 학생은 2학기에 휴학을 신청했다. 실제로 문과대학에서 정시모집으로 들어온 휴학생 중 90% 이상은 과학탐구 선택자다.

대부분의 휴학생은 의학 계열이나 공학 계열로 가기 위해 수능에 재도전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지난해 고려대 경영학과에 합격했던 A(21세, 여)씨는 1학기에 수업을 한 개만 신청했다. 의대에 가기 위해 반수를 결심했지만, 학칙상 1학년 1학기에는 휴학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A씨는 '처음부터 경영학과가 아닌 의대를 희망해 우선 점수대에 맞는 대학에 등록하고 반수를 시작했다'며 '재수학원에는 소위 SKY 대학 문과에 이름을 걸어놓고 온 학생이 많았다'고 말했다.
 
연세대학교 정문
 연세대학교 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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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규모 문과 침공 현상으로 인문계열 학과에는 위기가 찾아왔다. 연세대학교 문과대학 B교수는 "반수를 염두에 두고 입학한 이과 학생들로 인해 정작 해당 학과를 목표로 공부했던 문과 수험생이 입학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한다"라며 "문·이과 통합 이전과 비교했을 때 휴학생 비율이 2배가량 늘었고 결국 이탈한 학생의 자리는 추후 편입생 등으로 채워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어 "해당 학문에 관심 있는 학생이 들어와야 학문 유지에도 도움이 되고 수업도 원활하게 진행이 되는데, 독서를 거의 안 하던 학생이 문과대학에 들어오면 강의에도 차질이 생길 수 있다"라고 덧붙였다.
 
서울의 한 대학교 커뮤니티에 올라온 전과 관련 게시글
 서울의 한 대학교 커뮤니티에 올라온 전과 관련 게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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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수 실패하면 전과라도

교육계에선 이러한 상황이 인문계열 학과의 존립 위기를 가져올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실제로 이과 학생 중 상당수는 반수에 실패할 경우 이공계 학과로의 복수전공이나 전과를 염두에 두고 인문계열 학과에 입학하기 때문이다.

대학생 C(21세, 남)씨는 "반수에 실패할 경우를 대비해 우선 상위권 대학 인문계열에 입학했는데, 이번 수능에서도 만족할 만한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라며 공대로 전과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특히 교육부는 지난 4월 '제5차 대학 규제개혁 협의회'를 열어 현행 2학년 이상에게만 허용된 전과 제도를 대학 자율에 맡길 수 있도록 시행령을 개정하겠다고 밝혔다. 이렇게 되면 인문계열 학과의 학생 이탈은 더욱 심화할 전망이다.

이에 일부 대학에서는 문과 침공 현상을 막기 위한 각종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연세대는 2025학년도 입시부터 사회탐구 응시자가 인문계열 학과에 지원할 경우 3%의 가산점을 부여한다. 서울시립대와 경희대도 마찬가지로 사회탐구 가산점을 부여하기로 했다. 하지만 입시 전문가들은 현재의 입시제도 하에서 일부 대학의 제도 개선만으로는 근본적인 문제 해결이 힘들다며 더  실효성 있는 대책이 필요함을 강조했다.

태그:#문과침공, #대학교, #문과, #이과, #교차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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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한 기자입니다. 연세대학교에서 아동가족학과 언론홍보영상학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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