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린스만호'가 출항 3개월만에 흔들리고 있다. 독일 출신의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은 지난 3월 한국 남자축구대표팀 사령탑으로 부임한 이래 4경기 연속으로 아직까지 첫 승을 거두지 못했다.
 
클린스만호는 3월에 열린 2차례 평가전에서 콜롬비아(2-2 무), 우루과이(1-2 패)를 상대했고, 6월에는 페루(0-1 패), 엘살바도르(1-1 무)를 만나 2무 2패에 그쳤다. 한국축구 역대 외국인 사령탑 중 가장 좋지 않은 초반 승률이다. 여기에 국제무대에서도 강팀이라고는 하기 어려운 데다, 라이벌 일본이 낙승을 거둔 페루와 엘살바도르를 상대로 1승도 거두지 못한 것은 타격이 컸다.
 
역대 외국인 감독중 아나톨리 비쇼베츠(1994~96년), 조 본프레레(2004~05), 딕 아드보카트(2005~06), 핌 베어벡(2006~07), 울리 슈틸리케(2014~17), 파울루 벤투(2018~22) 등은 모두 데뷔전에서 승리를 맛봤다. 움베르트 쿠엘류(2003~04) 감독은 부임 3경기 만인 일본전에서 승리를 기록했다.
 
첫 승이 가장 늦었던 사령탑은 바로 거스 히딩크(2001-2002) 감독이었는데 부임 4번째 경기만인 UAE전에서 4-1로 대승을 거두며 무승 탈출에 성공했다. 다만 히딩크 감독은 엄밀히 말하면 2번째 경기였던 파라과이전(홍콩 칼스버그컵)에서 이미 승부차기 승리(공식기록은 무승부)가 포함된 기록이었다. 국내 감독으로 범위를 넓히면 홍명보(2013-14)와 신태용(2017-18) 감독이 클린스만과 마찬가지로 4경기 연속 무승으로 출발했으나 5경기만에 첫 승을 거뒀다.
 
문제는 클린스만 감독의 무승이 홍명보-신태용 전 감독보다도 더 길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다음 A매치 소집은 9월인데, 이번에는 홈도 아닌 유럽 원정으로 치러진다. 상대는 이미 확정된 유럽의 웨일스에 이어 북중미의 멕시코가 유력하다. 두 팀 모두 한국보다 피파랭킹이 높은 만만치 않은 상대들이다. 여기에 비슷한 사기에 열리는 항저우 아시안게임으로 인하여 A팀과 소집이 겹치는 24세 이하 대표팀에 해당 연령대와 몇몇 와일드카드 선수까지 내줘야할 수 있다.
 
클린스만호의 무승이 생각보다 길어지면서 자연스럽게 비판과 우려의 목소리도 조금씩 나오고 있다. 일각에서는 반년 전 카타르월드컵 16강을 달성한 전임 벤투호의 성과와 비교하여 클린스만 감독의 역량에 대한 의구심도 제기되고 있다.

신뢰 호소한 클린스만 감독
 
기자회견에서 발언하는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 2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축구회관에서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이 A매치 4경기에 대한 전체적인 평가와 향후 대표팀 운영 방향 등을 밝히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기자회견에서 발언하는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 2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축구회관에서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이 A매치 4경기에 대한 전체적인 평가와 향후 대표팀 운영 방향 등을 밝히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좋지 않은 여론을 의식한 듯, 클린스만 감독은 A매치 이후 이례적으로 기자회견을 자청하기도 했다. 대한축구협회는 지난 6월 22일 축구회관에서 클린스만 감독과 코치진 전원이 함께 참석한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클린스만 감독은 여기서 자신의 축구철학과 대표팀의 운영방향에 대한 입장을 이야기하며 "최대한 빨리 결과를 가져올 수 있도록 하겠다. 앞으로 어떻게 팀을 발전시킬 수 있을지 계속해서 고민을 하겠다"고 해명하며 신뢰를 호소했다.
 
사실 클린스만 감독은 대표팀 사령탑 선임 당시부터 높은 기대를 받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선수시절에는 슈퍼스타 공격수 출신의 전설, 지도자로서는 독일-미국 대표팀 사령탑을 역임하며 월드컵에서 이룬 성과 등, 겉보기에는 화려했지만 막상 그 이면에는 전술과 훈련의 전문성, 선수단 장악력, 워크에씩, 돌발적인 기행 등으로 인하여 평가가 엇갈리는 인물이었다. 이러다보니 클린스만 감독은 부임 초기부터 성적으로 최대한 빨리 여론을 반전시켜야만 했지만, 결과적으로 상황이 더 꼬이고 말았다.
 
물론 클린스만 감독에게도 참작할 여지는 있다. 부임 이후 첫 3월 A매치의 경우, 클린스만 감독이 직접 선수를 점검할 시간이 없어서 카타르월드컵 멤버들을 그대로 선발해야 했다. 남미의 강호인 콜롬비아와 우루과이는 홈이라고 해도 한국이 반드시 승리를 장담할 수 있는 상대도 아니며, 경기 내용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
 
6월에는 클린스만 감독이 직접 선수들을 선발한 첫 A매치였지만, 하필 주축 선수들의 연이은 공백 사태가 벌어졌다. 김민재, 김영권, 정우영, 김문환, 손준호 등이 줄줄이 부상과 개인사정으로 합류하지 못했다. 손흥민은 탈장 후유증으로 정상 컨디션이 아니어서 교체멤버로만 제한적으로 활용해야 했고, 김진수는 경기중 부상을 당하며 3월보다 오히려 전력이 크게 하락했다.
 
경기 외적인 악재들도 겹쳤다. 수비형 미드필더 손준호가 중국에서 불미스러운 사건에 연루된 혐의로 구속되며 장기간 억류가 불가피해졌다. 박용우는 SNS에서 인종차별 사건에 휘말리며 논란에 휩싸였다. 여기서 불똥은 클린스만 감독에게도 튀었다. 클린스만 감독이 어차피 합류가 불가능했던 손준호를 굳이 발탁하여 명단 한 자리를 사실상 허비한 것이나, 인종차별 논란으로 징계를 앞둔 박용우를 A매치에 정상 출전시키고 비호하는 태도를 보인 것도 비판의 도마에 올랐다.
 
대표팀과 외국인 감독을 향한 건강한 비판과 문제제기는 항상 필요하다. 다만 아직 부임한지 3개월 밖에 되지 않은 외국인 감독을 향하여 벌써부터 성급한 판단은 신중해야 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현재 클린스만 감독이 가장 비판받는 부분은 전임 벤투 감독에 비하여 확실한 색깔이나 방향성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축구 대표팀 역대 최장수인 4년을 재임한 벤투와 고작 4경기를 지휘한 클린스만의 축구를 벌써 동일선상에서 비교하는 것은 무리다.
 
벤투 감독은 이른바 빌드업을 대표되는 점유율과 패싱플레이를 통한 축구를 4년에 걸쳐 끈기있에 한국축구에 이식시켰다. 결과적으로 카타르월드컵 16강이라는 해피엔딩을 맞이했지만, 그 과정에서는 아시안컵 8강탈락, 한일전 2연속 세골차 참패, 선수선발과 전술의 경직성, 미디어 및 팬들과의 폐쇄적인 소통 등 많은 시행착오도 겪었다.
 
클린스만 감독은 스트라이커 출신답게 '공격축구'에 대한 선호도를 분명하게 드러냈다. 물론 그 디테일을 어떻게 구현할 것인지는 더 지켜봐야겠지만 4경기를 통하여 힌트는 엿볼 수 있었다. 벤투 감독이 후방에서부터의 짧은 패스와 조직적인 팀플레이를 강조했다면, 클린스만호는 점유율에 크게 연연하지 않고 직선적인 움직임과 함께 경기의 '속도'를 더 끌어올리는 데 중점을 둔 플레이라는 차이점이 있었다.
 
비록 골결정력에 아쉬움을 노출하며 마무리가 아쉬웠지만, 그것은 벤투호도 마찬가지였고, 클린스만호는 손흥민-이강인같은 주축 선수들의 조합과 활용법이 아직 정리되지 않았다는 것도 감안해야 한다. 벤투 체제에서 4년간 이어온 점유율 축구의 연속성을 이어갈 바랬던 팬들로서는 아쉽겠지만 감독이 바뀐만큼 팀컬러가 변화하는 것은 불가피한 부분이다.
 
한편으로 선수들을 적극적으로 보호하고 미디어-팬들과도 소통하려는 유연한 자세는 충분히 클린스만 감독만의 장점이 될 수 있는 대목이다. 부임 직후 김민재의 인터뷰 실언에서 비롯된 대표팀 은퇴설과 불화-파벌설을 조기에 수습했고, 위기에 처한 손준호-박용우를 포용한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비록 외부에서 비판을 받을지언정, 항상 '선수편에 서는 감독이 되겠다'를 메시지를 전달했다는 것은 의미가 있다.
 
성공했다는 벤투 감독조차 종종 자신의 축구에 대한 고집이 지나치게 강하여 좋지않은 평가를 받기도 했다. 반면 클린스만 감독은 욕을 먹을지언정 자신의 생각과 입장을 솔직하게 전달하며 소통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분명히 긍정적인 부분이다.

부임 당시 우려되었던 기행이나 성실성에 관련된 문제는 지금까지는 전혀 나오지 않았다. 아시안게임 대표팀과의 선수 차출문제도 별다른 잡음이 없었다. 오히려 한국축구를 존중하고 외부의 목소리를 받아들이며 유연하게 대처하려는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클린스만 감독은 아시안컵과 차기월드컵 예선 등을 통하여 검증받을 충분한 시간이 있다. 물론 좋지 않은 여론을 반전시키는 것도 클린스만의 본인의 몫이다. 한국축구는 2026년까지 클린스만과 동행을 이어가야 한다. 지금까지의 4경기가 클린스만 축구가 보여줄 수 있었던 전부는 아니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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