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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수고용노동자가 월 20일 일하고 천만 원 넘게 번다는 보수언론의 보도는 진짜일까? 전국서비스산업노동조합연맹 정책연구원은 지난 5월 8개 직종 특수고용노동자 970명을 대상으로 '특수고용노동자 임금 불안정 실태 조사'를 했다. 그 결과 업종에 상관없이 개수임금제, 공짜노동, 각종 부대비용 및 본인 부담금 발생, 초 장시간 노동 등의 문제에 시달리고 있다는 게 드러났다.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특수고용노동자의 실태를 연속 보도한다. [기자말]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원회가 19일 오전 서울 중구 한진택배 본사 앞에서 김아무개씨가 심야 택배 배송을 마치고 자택에서 사망한 일과 관련해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원회가 19일 오전 서울 중구 한진택배 본사 앞에서 김아무개씨가 심야 택배 배송을 마치고 자택에서 사망한 일과 관련해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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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주변에서 수많은 '특수한' 노동자를 보며 살아가고 있다. 요즘 아이들이 부모보다 더 기다린다는 택배기사, 코로나 시기 우리의 일상을 담보해 준 배달·배송·퀵서비스 기사, 많은 이들의 안전 귀가를 책임져 주는 대리운전 기사, 아이들 돌봄과 교육에서 없어선 안 될 학습지교사와 방과후강사, 가장 핵심적 필수재인 먹는 물을 책임지고 있는 방문점검원 등 이들 모두는 우리의 일상에서 없어서는 안 될 특수하고 특별한 존재들이다. 

이들은 다른 의미에서 '특수'하기도 하다. 정부는 이들을 특수형태근로종사자(이하 특고노동자)라고 칭하며 근로계약을 체결한 일반적인 노동자와 구분하고 있다. "당신들은 노동자가 아니다"라고 규정하면서 노동자를 보호해 온 여러 사회안전망 등에서 이들을 배제해 왔다. 

특고노동자 본인들은 자신들이 특수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일반적인 노동자와 다를 바 없는 노동을 하고 있어서다. 돌아보면 배달 등 지금 특고노동자들이 하던 일들은 과거에 일반적인 노동자가 하던 일들이다.

물론 특고노동자들이 일반적인 노동자와 다른 면이 있다. 노동조건이 더 악화된 측면에서 말이다. 

카이로스와 크로노스의 시간  

지난 5월 전국서비스산업노동조합연맹(이하 서비스연맹)은 8개 직종(택배기사, 배달 라이더, 대리운전기사, 퀵서비스기사, 방문점검원, 마트배송기사, 학습지교사, 방과후강사) 968명을 대상으로 특고노동자들의 노동 실태를 들여다봤다. 

택배기사의 과로사 문제 등 특고노동자의 장시간 노동이 사회적 문제가 된 지 오래지만 여전히 특고노동자들은 장시간 노동을 하고 있었다. 
 
8개 직종 특수고용노동자 하루 평균 노동시간과 주당 노동일
 8개 직종 특수고용노동자 하루 평균 노동시간과 주당 노동일
ⓒ 전국서비스산업노동조합연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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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배기사는 평균 주당 5.8일, 하루 9.1시간 일하고 있었고, 배달 라이더들은 주당 6.0일에 하루 10.3시간 노동을 했다. 대리운전기사들은 주 6.1일에 하루 8.7시간, 퀵서비스기사는 주 5.8일에 하루 10.1시간, 방문점검원은 주 5.2일에 하루 9.0시간, 마트배송기사는 주 5.9일에 하루 9.5시간 일하고 있었다. 조사 대상 특고노동자들은 평균적으로 주 5.4일, 하루 8.6시간 일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장시간 노동 자체는 특고노동자의 특수성이라 할 수 있다. 건당 보수(임금)를 받는 특고노동자에게 소득을 높이는 방도란 스스로 노동시간을 늘리는 것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장시간 노동과 더불어 특고노동자들은 노동과정에서 더욱 특별한 경험을 하게 된다. 

고대 그리스인의 시간 개념에는 두 가지 형태가 있었다고 한다. 하나는 물리적으로 흐르는 객관적인 시간인 크로노스(Chronos)이고, 다른 하나는 특정 의미가 부여된 주관적 시간인 카이로스(Kairos)다. 예를 들어 똑같은 1시간을 경험하더라도 어떤 사람은 그 1시간이 인생에서 가장 의미 있는 시간일 수 있고, 어떤 사람은 1시간이 1년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이렇게 시간의 질적인 측면이 카이로스라 할 수 있다.

배달·배송, 가정방문 노동자들이 고객과의 약속 시간을 맞추기 위해 다급히 이동하는 시간, 업무 수행 중에도 다음 일(콜)을 잡기 위해 긴장을 늦추지 않고 스마트기기와 씨름하는 시간 등 특고노동자들은 그때그때 시시각각 변화하는 환경에 따라 긴장과 초조함을 경험하게 된다. 이런 종류의 10분은 통상적인 10분과는 다르다. 카이로스적 시간이 극대화되는 것이다. 

시간에 쫓기며 일하고 있는지를 확인해 본 결과 절반 이상(50.4%)이 그런 것으로  나타났다(시간에 조금 쫓기며 일한다 36.7%, 시간에 매우 쫓기며 일한다 13.7%). 여유롭게 일한다는 응답은 9.5%(여유롭게 일한다 6.8%, 아주 여유롭게 일한다 2.7%)에 불과했다. 
 
8개 직종 특수고용노동자의 시간에 쫓기듯 일하고 있는지 응답 결과
 8개 직종 특수고용노동자의 시간에 쫓기듯 일하고 있는지 응답 결과
ⓒ 전국서비스산업노동조합연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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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개 직종 특수고용노동자의 업무로의 이동 시간이나 다른 일(콜)을 찾는 시간이 충분한지 응답 결과
 8개 직종 특수고용노동자의 업무로의 이동 시간이나 다른 일(콜)을 찾는 시간이 충분한지 응답 결과
ⓒ 전국서비스산업노동조합연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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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무로의 이동 시간이나 다른 일을 찾는 시간이 충분하냐는 질문에는 부족하다는 응답자 비중(매우 부족 10.4%, 부족 28.6%)이 39.0%로 충분하다고 응답한 비중 12.4%(매우 충분 2.0%, 충분 10.4%)보다 훨씬 높았다. 

오늘 일이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특고노동자

특고노동자들이 경험하는 노동시간의 또 다른 특수한 측면은 노동시간의 비예측성이다. 

통상 일반적인 노동자들은 본인의 퇴근 시각을 정확히 알 수 있다. 갑자기 야근을 해야 하는 경우가 있지만 일상적이라고 보긴 어렵다. 업종에 따라서는 몇 개월 후 본인의 퇴근 시간을 예측하는 것도 어렵지 않다. 

이에 비해 특고노동자는 하루하루의 상황에 따라 노동시간이 달라지며 자신의 업무종료 시간을 예상하기 어렵다. 업무 시작 시 업무종료 시각(퇴근 시각) 예상이 가능하냐는 질문에 40%가량은 예측이 어렵다고 답했다. 당일 본인의 퇴근 시각 예측도 쉽지 않은 것이다. 

계획적인 삶을 위해서는 적어도 1주, 1달 전 본인의 업무가 어떨지를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어야 한다. 1주일 전에 업무 종료 시각을 예상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는 60.6%가량이 불가능하다고 응답했다. 직종별로 보면 택배기사, 대리운전기사, 퀵서비스기사, 마트배송기사 등 운송 업무를 하는 경우 업무 종료 시각 예상이 거의 불가능했다. 
 
8개 직종 특수고용노동자 업무 종료 시각 예상이 불가능하다고 응답한 비율
 8개 직종 특수고용노동자 업무 종료 시각 예상이 불가능하다고 응답한 비율
ⓒ 전국서비스산업노동조합연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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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하루 일이 언제 끝날지 모르는 상황이 지속되면 계획적인 삶을 살기가 힘들다. 지인과 저녁 약속을 잡거나, 가족과 함께 보내기 위한 시간을 계획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결국 삶의 질은 저하한다. 

혹자는 특고노동자들은 시간 선택이 자유롭고 아이를 키우면서도 할 만한 일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시간 선택의 자유'를 얻으려면 소득을 포기해야 한다. 어느 정도 소득을 얻으려면 앞서 살펴본 것처럼 장시간 노동 없이는 불가능하다. 

오히려 특고노동자들은 장시간 노동에 더해 카이로스적 노동시간, 비예측적 노동시간이 늘어나는 경험을 해야 한다. 이들의 노동 시간을 다양한 측면에서 분석하고 노동강도를 줄이기 위한 사회적 노력이 절실한 때이다. 

* 참고: [다운로드] 경제위기 시대 특수고용노동자의 실질임금 인상 및 임금안정 방안 모색 토론회 자료집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서비스연맹 정책연구원에서 2023년 5월 중 진행한 <경제위기 시기 특수고용노동자 임금 불안정 실태조사>의 내용을 토대로 백남주 연구위원이 작성하였습니다.


태그:#특수고용, #장시간노동, #호출노동, #서비스연맹, #특고 수수료 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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