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이 한국축구대표팀 사령탑 부임 이후 첫 시험대에 직면했다. 주축 선수들의 잇단 부상과 난조 속에 대표팀의 전력은 크게 하락하며 곳곳에서 불안요소를 드러내고 있다. 여기에 경기 내외적인 돌발 악재까지 겹치면서 클린스만 감독의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클린스만 감독이 지휘하는 대표팀은 6월 페루-엘살바도르와의 국내 A매치 2연전 일정을 진행중이다. 지난 3월 첫 출범 당시 콜롬비아와 우루과이와의 2연전은 클린스만 감독이 지휘봉을 잡은 지 나흘 만에 명단을 꾸려야했기 때문에 선수를 파악할 시간이 부족하여 지난해 12월 카타르월드컵에 출전했던 선수단이 주축을 이룬 바 있다.
 
그래서 이번 6월 A매치 2연전이 사실상 클린스만호의 진정한 1기라고 할 수 있었다. 본격적으로 클린스만 감독의 축구 컬러와 지도력을 확인할 수 있는 무대라는 점에서 이번 2연전에 축구팬들의 시선이 몰렸다.
 
하지만 클린스만호는 시작부터 잇단 암초에 직면했다. 대표팀은 주축 선수들인 김민재, 김영권, 정우영, 김문환 등이 부상과 군사훈련 등으로 모두 소집이 불발됐다. 주장 손흥민은 소집에는 참여했지만 탈장 수술의 여파로 몸상태가 아니어서 페루전에 결장해야 했다. 반년 전 카타르월드컵과 비교하면 베스트 11의 절반 이상이 통째로 날아간 셈이었다. 특히 수비진은 골키퍼를 제외하고 완전히 붕괴된 것이 마찬가지일 만큼 상태가 심각했다.
 
우려한 대로 클린스만호는 지난 6월 16일 부산 아시아드주경기장에서 열린 '남미의 복병' 페루와 6월 2연전 첫 경기에서 아쉬운 경기력을 노출하며 0-1로 패했다. 클린스만 감독은 지난 3월 콜롬비아(2-2), 우루과이(1-2)전에 이어 다시 한 번 한국 데뷔승을 거두는 데 실패하며 1무 2패에 그치고 있다.
 
클린스만 감독은 페루전에서 이기제, 박지수, 정승현, 안현범, 원두재, 오현규 등 새로운 얼굴들을 대거 기용했다. 하지만 불안한 조직력과, 심각한 골결정력, 1, 2군 선수들간의 현저한 기량차이만 확인하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그나마 최근 물오른 기량을 과시하고 있는 이강인의 활약상을 확인한 것이 유일한 위안이라고 할 만했다.
 
녹록지 않은 대표팀의 상황
 
훈련 참여한 손흥민 대한민국 축구대표팀 손흥민이 18일 오후 대전 월드컵경기장에서 훈련하고 있다. 대표팀은 20일 엘살바도르와의 평가전을 치른다.

▲ 훈련 참여한 손흥민 대한민국 축구대표팀 손흥민이 18일 오후 대전 월드컵경기장에서 훈련하고 있다. 대표팀은 20일 엘살바도르와의 평가전을 치른다. ⓒ 연합뉴스

 
대표팀은 지난해 열린 카타르월드컵에서 12년 만의 본선 16강이라는 성과를 일궈내며 뜨거운 국민적 지지을 받았다. 손흥민-김민재-이강인같은 월드클래스 선수들의 활약상과 지난 월드컵의 후광, 최근 U-20 대표팀의 4강 신화 같은 호재가 더해지며 자연스럽게 클린스만호에 대한 기대치도 높아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지난 월드컵의 여운을 벗어나 냉정하게 돌아보면, 현재 대표팀이 처한 상황은 그리 녹록하지 않다. 이번 2연전 상황에만 국한하지 않더라도, 일단 수비진은 김영권, 김진수, 정우영 등이 모두 30대를 훌쩍 넘기며 기량과 내구성이 모두 하락세를 그리고 있어서 세대교체를 준비해야 하는 시점이다. 빌드업을 주도할 수 있는 센터백과, 공수밸런스를 겸비한 풀백 자원의 기근은 전임 벤투 감독도 4년간 해결하지 못한 숙제였다.
 
손흥민-이강인의 활용법과 공격진의 조합을 정비하는 것도 어려운 과제다. 클린스만 감독은 3월 2연전에서는 에이스 손흥민에게 공격형 미드필더와 세컨드 스트라이커를 오가는 사실상 '프리롤'로 활용하며 자유롭게 공격을 전개하는 역할을 맡겼다. 그런데 손흥민이 빠진 페루전에서는 대표팀의 공격력이 크게 떨어졌다. 손흥민이 지난 시즌 토트넘에서 부상과 부진에 시달리며 최악의 슬럼프를 겪었고, 이제는 적절한 관리가 필요한 나이가 되었다는 것도 감안해야 할 대목이다.
 
이강인은 페루전을 비롯하여 현재 대표팀에서 가장 빛나는 선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이강인의 능력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적절한 포지셔닝과 전술적 지원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전제가 붙는다. 이강인은 공을 소유하고 있을 때 차이를 만들어낼 수 있는 선수지만, 그의 볼소유시간이 길어지 는만큼 비례하게 되는 의존도, 대표팀의 공격 템포와 공간 활용에 빈틈이 발생한다는 부작용, 공중전에 특화된 조규성의 부진으로 이강인의 패스-크로스를 마무리해줄 수 있는 해결사의 부재 등 아직 해결해야 할 과제가 수두룩하다.
 
여기에 경기 외적으로 클린스만 감독이 통제하기 어려운 악재들이 속출하고 있다는 것도 대표팀에는 그리 좋지않은 조짐이다. 이미 지난 3월에는 김민재의 인터뷰 실언에서 비롯된 '대표팀 은퇴설-손흥민과의 불화설-파벌설' 등이 일파만파로 퍼지며 큰 논란이 되기도 했다. 다행히 김민재의 빠른 사과와, 클린스만 감독과의 연이은 해외파 면담 등으로 상황을 조기에 수습했지만, 벤투호 시절에는 한 번도 없었던 장면이라서 경각심을 느끼게 한 순간이다.
 
또한 대표팀의 주요 수비형 미드필더 자원이었던 손준호는 최근 중국에서 불미스러운 의혹에 휩쓸리며 장기간 구금되어 있는 상태로 충격을 주고 있다. 여기에 박용우는 소속팀 울산 현대에서 최근 인종차별 논란에 휘말리며 큰 곤욕을 치렀다.
 
클린스만 감독은 대표팀 소집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손준호를 6월 A매치 명단에 포함시켰다. 어려운 상황에 놓여있던 선수에 대한 지지와 신뢰의 표현이었다.
 
또한 인종차별 논란을 일으킨 박용우에 대해서는 국가대표 자격 박탈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있었지만, 페루전에서 교체투입하여 A대표팀 데뷔전을 치르게 하는 결정을 내리기도 했다. 클린스만 감독은 박용우에 대하여 "누구나 실수는 할 수 있다. 선수가 실수할 때 올바른 조언을 하는 것도 지도자의 역할"이라며 감쌌다. 하지만 페루전 패배와 아쉬운 경기력 속에, 굳이 논란이 있는 선수들을 선택한 클린스만 감독의 결정에 대한 의구심도 높아지고 있다.
 
작전 지시하는 클린스만 감독 대한민국 축구대표팀 클린스만 감독이 18일 오후 대전 월드컵경기장에서 작전 지시를 하고 있다. 대표팀은 20일 엘살바도르와의 평가전을 치른다.

▲ 작전 지시하는 클린스만 감독 대한민국 축구대표팀 클린스만 감독이 18일 오후 대전 월드컵경기장에서 작전 지시를 하고 있다. 대표팀은 20일 엘살바도르와의 평가전을 치른다. ⓒ 연합뉴스

 
클린스만 감독은 아직 한국대표팀 사령탑으로 입지가 안정적인 상황이 아니다. 선수시절 커리어는 누구보다 화려하지만, 감독으로서는 지도력과 기행, 성실성 등을 놓고 여러 차례 구설수에 휘말린 바 있다. 이로 인하여 한국 대표팀 부임 당시부터 높은 기대나 지지를 받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다행히 부임 직후에는 클린스만 감독의 적극적인 해명과 겸손한 태도로 분위기가 반전되며 비난 여론이 잠시 수그러드는 듯했다. 하지만 최근 A매치 3경기 연속 무승이라는 기대에 못 미친 결과물이 나오면서 벌써부터 클린스만 감독에 대한 우려의 시선이 또다시 슬슬 나오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클린스만호에게 지난 카타르월드컵 16강의 후광은 이미 지나간 추억이나 마찬가지다. 신임 감독 부임 직후, 한국축구-언론과의 짧은 허니문 기간도 사실상 끝났다. 클린스만 감독은 이제부터는 벤투호의 그늘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팀을 만들기 위하여 본격적으로 새판짜기에 나서야 하는 시점이다.
 
클린스만호는 20일 오후 8시 대전월드컵경기장에서 엘살바도르와 6월 두 번째 평가전을 통하여 다시 첫 승에 도전한다. 내년 아시안컵 우승과 차기 월드컵을 노리고 있는 클린스만호가 엘살바도르전에서 대표팀의 분위기 전환을 위한 어떤 해법을 제시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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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살바도르축구 클린스만호 이강인 A매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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