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상 괴수액션영화로 여겨지는 <킹콩>을 보고 아련함이며 진한 슬픔을 느꼈다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그건 괴수 킹콩이 어느 종의 마지막 개체이며, 더는 번식조차 할 수 없는 유일한 수컷이고, 인간으로부터 서식지마저 침범당한 끝에 마침내 비극적 운명을 맞이하는 탓이다.
 
놀랍게도 <킹콩>은 킹콩에게 인간의 전유물처럼 여겨졌던 깊은 감정을 그대로 투영한다. 그건 바로 외로움이다. 개체의 유지와 종의 존속을 위하여 집단을 꾸려야만 하는 인간이란 종에 있어 혼자가 되는 일은 그 자체로 위협적일 밖에 없다. 아마도 이것이 다른 존재와의 교류가 상실된 인간이 스스로를 괴롭게 하는 외로움과 그대로 마주하는 이유일 테다.
 
이를 전략적으로 선택한 <킹콩>은 가장 외로운 상황에 처한 영장류 개체의 이야기가 된다. 특정 종의 마지막 남은 개체가 가진 외로움이 어찌나 커다란지 영화 속 인물은 물론 영화를 보는 관객마저도 그 외로움에 공명할 밖에 없다.
 
그리하여 이 영화는 킹콩을 주인공들에게 생명의 위협을 느끼게 하는 거대한 괴수로써만이 아닌, 쇠락하여 종의 절멸을 눈앞에 둔 영장류로써 그려낸다. 그로부터 보는 이는 자연스레 제가 아는 외로움을 떠올리며 안쓰러움과 슬픔을 느끼게 된다. 바로 이것이 수많은 시리즈가 나온 이 영화의 변치 않는 성공방정식인 것이다.
  
 <닥터 후> 포스터

<닥터 후> 포스터 ⓒ BBC

 
종의 절멸 뒤 마지막 남은 개체의 외로움
 
인간은 외로움을 누구보다 잘 알아 이를 예술에 적극 활용해왔다. 난파 뒤 표류한 삶을 사는 이나 감옥에 수감된 이들, 나아가 가족과 친구를 잃은 이들의 외로움을 예술 가운데 포용하여 다른 누구와의 연결이며 교류가 인간에게 얼마나 큰 지지가 되어주는지를 보여주곤 하였다. <킹콩> 뿐 아니라 <로빈슨 크루소>며 <피아니스트의 전설> 같은 길이 남을 명작들이 모두 그와 같은 사례다.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드라마 시리즈를 논할 때 빠지지 않는 <닥터 후> 또한 외로움을 다룬다. 지난 2006년부터 방영된 세 번째 뉴 시즌에선 유독 이 같은 외로움이 중요하게 다뤄진다.

OTT 서비스를 통해 여전히 활발히 시청되는 이 시즌은 10개를 훌쩍 넘는 <닥터 후> 여러 시리즈 가운데서도 상당한 인기를 구가하는데 매력적인 주인공과 보다 화려해진 영상을 넘어 여러모로 생각할 지점이 있는 주제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닥터 후> 스틸컷

<닥터 후> 스틸컷 ⓒ BBC

 
외로움은 생명의 숙명인가
 
세 번째 시즌이 특히 인상적인 건 주인공인 닥터(데이비드 테넌트 분)의 외로움을 전면에 꺼냈다는 점에 있다. 제 종족에서 마지막 남은 개체인 닥터가 외로움의 세례를 견디는 모습은 그와 같은 감정을 잘 아는 인간에게 특별한 감상을 일으킬 밖에 없다. 더구나 한 종족의 마지막 개체가 느끼는 외로움이란 현대 인류로선 경험하기 어려운 정도의 감정일 테고 말이다.
 
전 우주에서 가장 발전된 문명을 자랑했던 타임로드 족은 숙적인 달렉 족과의 전쟁 끝에 전멸한다. 닥터는 타임로드 족의 마지막 남은 개체로, 시간을 여행하는 기술을 이용해 우주 이곳저곳을 오가며 제 남은 생을 소진해가는 인물이다. <닥터 후>는 바로 닥터의 이야기며, 그가 각별히 아끼는 지구와 우주를 지키려는 모험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닥터 후> 스틸컷

<닥터 후> 스틸컷 ⓒ BBC

 
외로움과 싸우며 나아가는 게 인간의 숙명
 
드라마는 타임로드와 인간의 외모를 거의 동일하게 구축했으나 비슷한 것과 같은 것은 어디까지나 전혀 다른 것이다. 닥터는 몇몇 인간과의 동행이며 교류를 갖게 되기는 하지만 이것이 본질적인 외로움을 달랠 만큼의 무엇을 주지는 못한다.
 
뉴 시즌 3는 후반부에서 실은 닥터가 타임로드 족의 마지막 남은 존재가 아니란 사실을 알린다. 옛 전쟁으로부터 도망쳐 살아남은 또 다른 타임로드 마스터(해롤드 색슨 분)를 등장시켜 그를 닥터의 숙적으로 그려내는 것이다. 마스터는 지구를 지배하려 하고, 닥터는 그를 막으려 한다. 언제나 그러했듯 한 판 싸움이 벌어지고 닥터는 어떻게든 모든 역경을 뚫고 승리를 거두고 만다. 그리고 그 싸움의 끝에서 마스터는 결국 사망한다.
 
<닥터 후> 뉴 시즌 3가 여전히 닥터에겐 절망적인 삶의 연장으로 여겨진다는 사실은 외로움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인간에게 특별한 감상을 일으킬 밖에 없다. 전 우주에서 손꼽는 고등한 존재이며 온 시공간을 자유롭게 오가는 그조차 관계의 상실로부터 괴로워하는 모습이 인간의 운명을 생각하게 하기 때문이다.

곁에 사람 하나 없는 인생이 얼마나 절망하게 하는가를 귀한 누구를 잃어본 누구나가 알고 있다. 사람 하나가 아닌 온 인류를 잃는다면 그 절망은 또 얼마나 클 것인가. 결국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떠한 물질이며 재화도 아닌 또 다른 인간임을 우리는 이렇게 만나게 되는 것이다.
 
 <닥터 후> 스틸컷

<닥터 후> 스틸컷 ⓒ BBC

덧붙이는 글 김성호 평론가의 얼룩소(https://alook.so/users/LZt0JM)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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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기자.글쟁이. 인간은 존엄하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을 간직한 사람이고자 합니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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