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6.19 10:54최종 업데이트 23.06.19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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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항 밖을 나오자마자 우리를 환영한 프로그레스 프라이드 플래그 색으로 덮인 시드니 조형물 ⓒ 신필규

 
지난 2월 시드니에서 열리는 성소수자 자긍심의 행사인 '마디그라'에 참여하기 위해 호주를 찾았다. 1978년 6월 24일 성소수자를 향한 억압과 차별에 저항하는 행진으로 시작된 마디그라는 첫해 행사가 경찰의 진압에 직면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후 여러 시민들과 활동가들의 노력으로 세계에서 손꼽히는 규모의 성소수자 자긍심의 행사로 성장했다. 이후 2016년 시드니 경찰은 1978년 당시 경찰의 대처가 부적절했다며 공개적으로 사과했고 퍼레이드 행렬에 함께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이처럼 현재 마디그라는 호주 정부와 공공기관들의 지원 속에서 다양한 행사와 함께 개최 중이며 행사가 가진 역사와 전통, 규모와 포용적 분위기 덕분에 해외에서도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중이다. 아예 호주 관광청 홈페이지에서 마디그라가 홍보될 정도다.


실제로 시드니를 찾았을 때도 그랬다. 시드니 공항에 도착해 아직 밖을 나가기 전인데도 여러 공간이 성소수자의 자긍심을 상징하는 무지개로 치장이 되어 있었다. 딱히 방문 목적을 밝히지 않았는데도 출국장 면세점의 직원들은 방문객들에게 자긍심의 기념품이라며 여섯 색 무지개로 치장된 다양한 상품들을 홍보했다.

공항 입구에 설치된 도시 이름을 형상화 한 조형물은 이른바 프로그레스 프라이드 플래그(2018년 논 바이너리 디자이너인 대니얼 퀘이사가 '더 많은 포용을 담아야 한다'는 의미로 기존의 여섯 색 무지개에 더 다양한 정체성을 포함하는 색깔을 추가한 깃발)의 색으로 칠해져 있었다.

성소수자 행사가 국제적인 이유

혹시나 마디그라로 유명해진 시드니가 성소수자 관광객들을 '낚기 위해' 도시의 관문에서만 야단법석을 떤 것은 아닐까 잠시 의심해보았다. 하지만 그건 기우에 불과했다. 도심을 방문했을 때도 가로등마다 걸린 대형 프라이드 플래그들과 마디그라를 축하하는 다양한 광고들이 사람들을 반갑게 맞이했다.

미술관과 도서관 등 문화시설도 마찬가지였다. 아예 그 공간들에서는 마디그라와 연계하여 성소수자와 관련한 다양한 전시와 공연이 이어졌다. 일례로 뉴사우스웨일스 주립 도서관은 호주 성소수자들의 역사를 담은 전시를 개최했다. 주립 미술관에서는 떠들썩한 파티와 드랙(사회에서 주어진 성별의 정의에서 벗어나 겉모습을 꾸미는 것) 공연이 열렸다.

교외의 주거 지역이라고 크게 다르지는 않아 서점과 소품 가게들이 각자의 판매 상품으로 아기자기하게 자긍심의 색을 표현했고 요거트 가게에서는 드랙퀸으로 치장한 사장님이 '행복한 마디그라가 되세요'라고 외치기도 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성소수자는 지구 어디에나 존재한다. 그리고 이는 성소수자를 대상으로 한 행사가 국제 행사가 되기 매우 좋다는 뜻이기도 하다. 실제로 나를 비롯해 많은 성소수자 동료들은 다른 나라의 퀴어 퍼레이드에 참가하기 위해 해외로 떠나곤 한다. 나만해도 시드니와 도쿄, 타이페이의 퍼레이드를 보기 위해 그 도시들을 방문했다. 뉴욕 프라이드 퍼레이드가 50주년을 맞은 해, 많은 주변 친구들이 미국행 비행기 표를 끊기도 했다.

시드니는 원래 다양한 인종이 거주하는 도시라 누가 방문객인지 겉으로 보았을 때는 잘 티가 나지 않았다. 하지만 식당이나 카페 테이블에 앉으면 다양한 국가의 언어들이 주변에서 들려왔다. 종업원들도 영어가 서툰 다수의 관광객들을 맞이하는 게 별로 어색하지 않아 보였다.

도시가 포용성을 갖출 때의 장점

이건 풍경에서 뿐만 아니라 숫자로 드러나는 사실이기도 하다. 시드니 마디그라 조직위원회는 코로나19의 대유행 이전 마지막으로 열린 2019년 마디그라 행사에 6만 8000명 이상의 해외 방문객이 찾았으며 지역 경제에 한국 돈으로 1000억 원 규모의 돈이 유입되었다고 발표한 바 있다.

팬데믹 종식 이후 행사가 원래의 규모를 회복하고 여기에 전 세계 도시를 돌며 열리는 월드 프라이드 행사까지 열린 2023년에는 방문객과 경제 효과의 규모가 더 커졌을 것이라 예상되고 있다. 한 호주 매체의 보도에 따르면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침체에 빠진 시드니의 숙박 및 유흥 업계가 마디그라 행사를 부활의 발판으로 삼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했다고도 한다.

누군가는 이 이야기를 '성소수자 행사는 돈이 된다' 정도로 이해하고 그런 이유로 퍼레이드를 수용하자는 말로 읽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방문객의 수와 경제 효과는 그 자체로 의미를 지니기보다 많은 외부인들이 방문한 도시가 얼마나 역동적으로 움직였는지를 보여주는 지표로 이해해야 한다.

만일 시드니가 성소수자에게 배타적이고 차별적인 도시였다면 관광을 하며 먹고 마시고 즐기기는커녕 방문하기조차 꺼려졌을 것이다. 하지만 시드니에 머무는 내내 다양한 성적 지향과 성별 정체성을 가진 나와 동료들은 눈총을 받거나 거부당하는 느낌을 받지 않았다. 오히려 우리가 관광객임을 알아본 사람들은 '마디그라를 위해 왔느냐'며 환영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퍼레이드에는 총리가 참석하고 관공서에는 마디그라를 기념하는 상징물들이 걸렸다. 그러니 시드니에 대한 이미지와 그곳에서의 경험은 좋을 수밖에 없다.

한국 안전하다 여길까
 

왼쪽부터 오세훈 서울시장, 홍준표 대구시장. ⓒ 남소연/조정훈

 
이런 면에서 당혹스러운 행보를 보인 지자체장이 두 사람이 있다. 바로 홍준표 대구시장과 오세훈 서울시장이다. 홍 시장은 17일에 열린 대구퀴어문화축제에 대해 공공연한 반대 의사를 표함은 물론 그 와중에 '성다수자'라는 해괴한 표현을 사용하기도 했다. 또 집회신고를 마치고 진행되는 행사를 '도로점거 불법집회'로 규정하며 '용납치 않겠다'는 엄포를 놓기도 했다(관련기사: 검사 출신 시장이 찾아낸 퀴어축제 막는 '묘수' https://omn.kr/24d22).

오세훈 서울시장의 경우 열린광장위원회의 차별과 혐오가 난무한 논의과정 이후 결정된 서울퀴어문화축제 서울광장 사용 불허에 대해 '성소수자가 하는 모든 행사가 약자로서 배려받아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개인적으로 동성애에 반대한다는 발언까지 하고 말았다(관련기사: 퀴어축제 불허한 서울시... "오세훈, 혐오에 앞장설 건가" https://omn.kr/23t0y).

다양한 문화 콘텐츠의 인기와 함께 지금 한국이 세계에서 주목 받는 국가라는 건 더 이상 부인할 수가 없다. 실제로 서울퀴어문화축제의 서울광장 개최가 불허된 이후 로이터, CNN, 워싱턴 포스트 등 외신들은 이 사건을 주요 뉴스로 다루었다. 상황이 이런데 서울과 대구 지차제장들의 차별적이고 배제적인 발언들이 해외에 알려지지 않게 될까? 그렇게 된다면 성소수자를 포함하여 다양한 소수자 정체성을 가진 외국인들이 한국을 안전하고 환대받을 수 있는 곳으로 인식할까?

앞서 살펴보았듯 소수자를 차별하지 않고 포용성을 높인 도시들은 높은 선호 속에서 다양한 국적의 방문객들을 받았다. 이는 도시가 고립되지 않고 생명력과 역동성을 얻기 위해 매우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두 지자체장은 이를 제대로 실현할 기회를 코앞에 놓고도 환영은커녕 오히려 공공연한 혐오와 차별을 전시했다. 이들이 국제적인 도시를 제대로 이끌 정치인이라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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