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일어나서 다시 생각하자'는 마음을 가지니, 저절로 수영장에 가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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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생각을 하면 신기할 정도로 다른 때보다는 수월하게 눈을 뜨고 침대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수영을 하러 갈 때도 나중에는 여러 가지 이유로 집 밖을 나서기 싫을 때도 반복해서 생각했다. 일단 일어나자고. 일어나서 다시 생각하자고. 정말 수영을 갈지, 휴가를 쓰고 출근을 안 할지 약속을 취소하고 집에 있을지. 그런데 많은 경우 일단 눈을 뜨고 침대 밖으로 나오면 별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사람이 눈을 뜨고 침대 밖에 있으려면 일단 그게 가능할 정도로 의식이 또렷해야 했다. 다시 잠들기는 그른 상태라는 것이다. 멀뚱멀뚱 눈을 뜨고 새벽에 멍하니 있어 봐야 집에서 딱히 할 일도 없었다. 그러면 다시 생각하기 시작한다. 일단 집밖으로 나가자. 체육센터까지는 가보자. 씻고 수영복부터 입고 다시 생각하자, 너무 힘이 들면 중간에 집으로 돌아와도 누구도 붙잡지 않는다.
그리고 생각하는 대로 순간순간 할 수 있는 만큼만 움직이면 어느 순간 그날의 수업은 끝나 있었다. 그렇게 몇 년을, 때로는 한파가 몰아치는 아침에도 수영장으로 향했다. 어떻게 이게 가능했는지 곰곰이 생각했다. 답은 의외로 간단했는데 수영을 가야한다는 생각을 안 해버린 것이다. 거기까지 가기에 거쳐야 할 단계가 여러 가지가 있었고 그럼 막막한 생각이 들어버리니까.
그리고 수영을 떠올리면 '가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었다. 그렇다면 당장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다시 고민하기로 했다. 눈은 떴으니 다음은 침대 밖으로 나오는 것이다. 그리고 사실 거기까지 가야만 정말 알 수 있기도 했다. 내가 정말 수영을 갈 수 없는 상태인지 아니면 그냥 귀찮은 것인지 말이다.
할 수 있는 일부터 하자
나는 매해 음력 설 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고 인사하는 걸 좋아한다. 물론 1월 1일이 되면서 연도는 이미 바뀐다. 하지만 대부분 1월에는 시행착오와 방황을 가장 많이 한다. 그러다 2월이 오면 한 해의 시작을 허망하게 날려버린 기분이 되어버린다. 하지만 그 순간 음력 설날이 다가와 새해가 밝았다는 인사를 하면 두 번째 기회를 얻은 느낌이 든다. 여기서부터 다시 시작해 볼 수 있는 것이다. 나는 많은 사람들이 그런 기분을 느꼈으면 좋겠다. 물론 시작이 그렇게 특별한 순간은 아니다. 중도에라도 통찰을 얻어 방향을 전환하는 건 가능하다. 하지만 다시 기회를 얻었다는 느낌은 안도감과 의욕이 함께 오는 좋은 기분이다.
그러니 다시 출발선에 선 사람들에게 인사를 건네고 싶다. 우리 모두는 올해 추구하는 것이 있을 것이다. 그것은 개인의 바람일 수도 있고 혹은 조직이 설정해 준 것일 수도 있다. 목표에 도달하고 싶지 않은 사람은 없으리라 생각한다. 다만 우리가 쉽게 움직이지 못하고 일찍부터 괴로운 감정이 드는 건 도달하기까지 거쳐야 할 긴 과정과 다사다난에 의한 막막함 때문이라 생각한다. 그렇다면 잠시 이후의 과정과 목표를 생각의 한쪽 구석으로 치워보는 건 어떨까. 그리고 그 과정으로 향하기 위해 지금 바로 앞에 있는 단계만 생각해보는 것이다. 일단 그것만 해보는 것이다. 나의 경우 그 방식으로 안정감을 자주 되찾을 수 있었다.
언젠가 새해 정초, 신입이 맡기에 너무 부담스러운 사업의 실행 직전에 친구의 연락을 받았다. 나는 계속해서 '도망치고 싶다'는 이야기만 반복했다. 그러자 친구는 껄껄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네가 맡은 사업이 맞이할 최악의 결과가 뭔지 알아? 그건 담당자가 시작하기도 전에 도망가는 거야. 일단 도망치지 않는 것부터 해봐."
그건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도망가지 않았다. 결국 그해 말에 사업은 무사히 완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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